신종코로나 때문에 세상이 어수선하다. 나라마다 그 대응효과의 차이는 있으나, 글로벌을 외친 이래 초유의 사태로 적게 또는 많게 허둥지둥 갈팡질팡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연변말에서는 이런 모양을 "매재기를 캔다" 라고 표현한다. 고향에서 꽤나 자주 써왔던 말이고, 소리의 어감상에서도 뭔가 친근하게 입에 잘 붙는 말이다. 근데 왜? 매재기는 뭐고, 왜서 캐는거지? 캐는게 어떻다는 얘기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정작 말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될까. 

1. 매재기가 뭐지?

사전을 찾아보면, '매재기'는 수록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매자기'라는 표제어는 존재한다. 

사초(莎草)과의 여러해살이풀. 높이는 1.5미터 정도이고 뿌리는 길게 뻗으며, 끝에 단단한 덩이뿌리가 몇 개 생긴다. 세모진 줄기는 곧게 서며… (중략) 뿌리는 한약재로 쓴다. 논이나 늪 같은 습지에 나는데…(중략) 삼릉초. 형삼릉.   <우리말샘>

즉 '매자기'는 한자어 ‘荆三稜' ‘京三稜' '三稜草' 등에 해당하는 식물의 고유어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실제 이미지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은 식물이다. 아마 고향의 강변이나 늪가에서 봤던 것 같은 인상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것이다. 

줄기와 열매 부분

전체(뿌리 미숙)

자란 뒤의 덩이뿌리

같은 사전의 역사정보에는 15~19세기에는 낱말형태가 '자기였다가 20세기에 들어서서 '매자기'의 형태로 변화하였다고 적고있다. 실제로 용례 출처들을 훑어보면 <구급간역방(救急簡易方)>(1489), <동의보감>(1613), <제중신편(濟衆新編)>(1799), <의종손익(醫宗損益)>(1868) 등으로서 모두가 의약학 관련 서적들이다. 즉 '매자기'는 500년 훨씬 전부터 있었던 우리말이 되겠다. 

이 낱말은 한글창제 이전의 자료로 더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자료들 역시 의학서들이다. 한자를 빌어 우리말을 쓴 이두(吏讀)식 표기인 '每作只' 라는 사례가 <향약집성방>(1433)과 <향약채취월령>(1431)에 보인다고 지적된 바가 있다. 이제 600년 가까이 캐고 올라갔다. 

방종현 <고어재료사전>(1983, p4 왼쪽)

<향약채취월령>(원본국어국문학총림 40 영인)

여기서 다가 아니다. 이보다 더 일찍한 고려시기 사례도 있다. 고려 대장도감에서 간행한 것을 1417년 7월에 중간한 <향약구급방>에 나타나는 '结次邑笠根'이 바로 그것으로서 원 문헌의 13세기 표기법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结'은 맺[ㅁ.ㅣㅈ]이란 뜻을 취한 것이고, '次'는 앞의 '맺'의 'ㅈ' 받침을 받쳐 읽어야 함을 지시, '邑'은 한자음 소리를 따서 'ㅂ' 받침의 소리를, '笠'은 '갇'이란 뜻의 소리를 취한 것, '根'은 뿌리를 나타내어 통털어어 '매잡갇불휘'로 재구. 남풍현 <차자표기법 연구> 1981, pp.30-34)

의술이나 약처방은 사람 목숨과 직결된다. 중의학을 기초로 조선에서 의학서를 집필하게 될 때, 한약재의 한자어 이름을 민간에서 쓰이는 고유어 약재 이름과 정확하게 대응시킬 것이 요구된다. 하여 의학서에는 고유의 우리말들이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로써 '매자기'란 낱말은 풀이름으로서 800년 가까이인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순우리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매재기=매자기'인가? 그럴 가능성은 다분하다. '매자기'가 연변말에서는 발음의 편의상 앞의 '매'소리의 영향 혹은 뒤의 '기' 소리 모음 'ㅣ' 의 영향을 받아 '자>재'로 바뀌어 '매재기'로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음운적으로는 '움라우트'  현상 즉 'ㅣ'모음역행동화로 설명 가능) 연변말에서 '왼손잡이 > 왼손잽이', '찬찬히 > 챈채이' 등도 비슷한 사례이다. 

하여튼, 현재에는 거의 경삼릉이나 삼릉초 같은 한자어로 대체되어 버린 '매자기'라는 우리말이 연변말에서는 아직도 우리 주변 가까이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2. 그러면 왜 '캐다' 인가?

위로써 '매재기'가 뭔지는 밝혀진 것 같지만, 아직도 그러면 왜 '캐다'인가, 라는 문제가 남는다. 남측의 사전에 풀이름으로써의 명사로는 기재되어 있지만 그 이상의 파생적 의미나 다른 낱말과 함께 쓰이는 관용어의 예는 올라와 있지 않다.

한 가지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북측의 사전에는 '매자기'와 '매재기' 자체가 표제어로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매자기'는 그냥 풀이름으로 되어있고, '매재기'의 뜻은 연변말에서 쓰이는 뜻이랑 가까워 보인다. 

북측의 <조선말대사전> (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매재기치다' 라는 관용법도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캐다'는 아니지만 좀 더 캐볼만한 여지가 생긴 것 같다. 매재기 풀을 '내려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장난치다' '덤벼치다' 처럼 단순히 '-치다' 라는 어미와 결합된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다. <조선말대사전>은 '매재기' 표제어에서 이를 '매자기'의 다른 형태로 기재하고 있지는 않다. 즉 '매재기'는 매자기란 풀이름의 또다른 표기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더이상은 어떤 문헌에서도 '매재기를 캐다' 혹은 '매자기를 캐다'가 사용된 예를 찾을 수가 없다. 단순히 풀을 캐는 이상의 추상적인 의미로는 더더욱 말이다. 사례는 없지만 우리는 매자기라는 풀의 특성을 주목할 때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사전에도 나와있 듯이, '뿌리는 약으로 쓴다'고 하니 일단 '캐어야' 될 필요와 목적은 해결된 셈이다. 게다가 '뿌리가 길다'고 하니 어지간한 요령이 없이는 뿌리를 잘 캐어내기가 어렵겠고, '논이나 늪 등 습지에 자란다'고 하니 캐려고 하면 몸을 적시고 흙탕물을 뒤집어 쓸 각오 없이는 어려운 줄을 알겠다. 실제 글쓴이의 기억을 더음어봐도 강변에서 사초(莎草)류의 풀꽃을 뜯으려고 '세모진 줄기'를 당겼을 때 아무리 당겨도 잘 끊어지지 않아 애먹었던 것 같다. 역시 매재기를 캐는 일이 그리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을 듯하다. 

이쯤 오면 진펄에서 무거운 발을 끌어올리며 풀을 당기고 캐고 하느라 온몸에 흙탕을 묻혀가며 진땀을 뻘뻘 흘리는 이미지가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다. 그래서 난항을 겪으면서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연변말에서는 '매재기를 캔다'고 하나 보다. 중세어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연변말에서, '매재기'라는 고유어를 보존하고있을 뿐만 아니라 '매재기를 캐다'라는 생동한 관용어 표현도 남기고 있다는 것은 우리말 표현력의 지평을 넓히는 면에서 자랑할 가치를 가진다. 이런 사례는 파면 팔수록 더 나올 것이다. 

3. '매자기 = 매재기'

남측에서는 '매자기'라는 낱말에 대해 '매재기'라는 형태 자체를 모르고 있고, 북측에서는 '매재기'라는 낱말은 알고 있으나 '매자기'와의 관계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남북 모두에서 '매재기를 캐다' 라는 생생한 표현은 이미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연변말에서 '매재기를 캐다' 라는 말이  일상에서도 살아있었기에 이 모든 문제가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단서가 되었다. 

현존의 사전에서 수정이 필요해진 대목이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아래처럼 간단히 정리를 해본다. 

[표제어] 

매재기를 캐다

[뜻 정리]

① 매자기라 불리는 사초과 여러해살이풀, 약용으로 쓰이는 그 뿌리를 캐다.

② 매자기를 캐는 일이 섣불리 시작하기 어려운 일임에서부터, 미리 제대로 알지 못하고 겁없이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어려움을 겪어 시달리는 모양을 이름.

[연변말 예문]

내 말 아이 듣구, 준비두 아이 하구 기어쿠 혼자 차 몰구 여행가던게, 여지없이 매재기르 캤지므. 

흔히 일상의 삶에서 몸으로 터득하는 경험들이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말로 바뀐다. 그리고 그것이 옛적부터 전해져 올 경우에는 삶의 맥락이 담긴 고유 낱말로 되고 또 속담으로 된다. 물가에서 어떤 약초를 캐던 경험이 한두 개의 간단한 낱말로 모여 복잡한 감정을 집약하여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말로 탄생하는 것,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경험이 현실의 삶에서 멀어지더라도 그 말은 한 민족의 언어 속에 남아 여전히 살아있는 지혜로 전승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의 '고고학'은 현재의 '혁신'과도 직결된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매재기 캐는 삶은 하루 빨리 지나가고, 연변말에서 우리 말의 진주를 캐내는 일은 계속되기를 바라면서 다음 진주를 또 기대해 본다. 

2020.05.11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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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면서: 말은 누구나 말할 수 있고 어렵잖게 얘기가 오고갈 수 있는 화제로 되기 쉽다. 연변말이 연변사람에게 역시 그럴 것이다. 연변말을 파서 헤쳐보고픈 뜻을 “고고학”이라는 짧은 단어로 쓰긴 했다만, 어딘가 거창하고 딱딱하고 고리타분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GoGo學”이라는 표기로 가벼움을 더해보려고 했다. 가며가며 배워보자 라는 뜻도 살짝 곁들여졌을지도. 

[연변말GoGo學] (1) '도투'와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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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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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우, 이런 뜻이. 이렇게 정리해주니 이해하기도 쉽슴다. 자라면서 많이 들었던 예문을 하나 더 추가함다. 연변 축구팀 경기를 현장에서 관람할때 여기저기서 많이 들을수 있었던… “햐, 자 와늘 문대앞에서 매재기를 캐니?! 어찜 하나도 못 넣니?”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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