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사라져버린 물건이라 더 기억을 헤집는지 모른다.

어쩌면 가장 추웠을 적의 가장 따뜻한 온기로 퍼져 오래도록 기억나는지 모른다.”


말랑콩떡이던 꼬꼬마시절에 찍은 사진 한장이 있다.

얼굴은 보아하니 대충 내가 맞았다.

근데 입고 있던 옷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에 없어 어머니에게 여쭈었다.

“이 옷은 누기 떠준겜다?”

“니 생일이라구 아지미 떠준 게재야.”

“어째 나는 이 옷으 본 기억이 없는데?”

“니 큰 담에 못 입어서 실으 풀어서 게도바지를 떴다.”

“아. 그랬다구?”

게도바지.

그러고 보니 비슷한 색깔의 게도바지를 입어본 것 같기도 하다.

밤이 유난히 어둡고 길었던 내 고향 겨울은 

추위와 맞싸우는 전투력이 필요한 계절이었다.

전투력을 올리려고 눈만 빼꼼 나오게 털모자에 털목도리로 얼굴을 무장하기도 하고

털장갑에 털신발을 신기도 했다.

전투력 갑 중의 갑은 따로 있었다.

매서운 추위를 이기게 해준 건 다름 아닌 게도바지였다.

칼바람에 펄러덕거리는 문풍지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오던 밤,

따따산 가매목에 앉아 뜨개질 중인 어머니 곁에서 나는 돌돌 뭉쳐진 실덩어리로 매삼질을 했다.

어머니는 그새 훌쩍 커버려 한 뼘이나 작아진 게도바지의 밑단을 이어 떠주셨다.

엉덩이는 빨간색, 허벅지는 희버즈란 빨간색, 종아리는 또 파란색.

있는 실로 이어 떠서 알록이딸록이가 되어버린 게도바지지만 나는 좋았다.

게도바지를 입을 때면 어머니는 무릎까지 올라간 속벌(내복)을 잡아당겨 주셨다.

어머니의 손길에 간지럽다고 깔깔 거리면서도 나는 그게 좋았다.

게도바지를 벗을 때면 또 정전기가 어찌나 붙던지, 타다닥 소리와 따가운 감촉이 생생하다.

집에 돌아와 아무데나 쫠 벗어 놓으면 어머니는 꼭 한소리 하셨다.

“저건 바지야, 순대야. 벗구는 제댈루 대배놓으랬지.”

빨래를 하는 날이면 게도바지를 밖에 널어 말렸는데 동태처럼 얼어 꽈꽈대졌다.

또 한번은 기어코 어머니가 뜨던 걸 앗아빼서 뜨겠다고 징징 떼를 썼었다.

마지못해 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뜨는 법을 배워주셨지만

결과는 코가 제대로 맞물리지 않아 다시 풀어서 떠야 했다.

“너는 참 애를 매끼는 법두 가지가지구나.”

어머니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보이셨다.

지금은 손쉽게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는 뜨개질이긴 하나,

그때 어머니에게서 배우지 못했던 것이 늘 아쉬움으로 남는다.

게도바지는 찾아보기 힘든 물건이 되어버렸다.

얇은데 따뜻하기까지 한 기능성 바지들이 널리고 널려

게도바지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거다.

추운 겨울이 지나 꽃도 다 떨어진 봄의 끝자락에서 때지난 게도바지가 나를 추억에 잠기게 한다.

내 게도바지들은  집 안 구석에 잘 처박혀 있나 몰라?


썸네일 BY 서재성 : https://grafolio.naver.com/works/139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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