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날씨가 참 좋습니다.  어릴적 보던 하늘처럼 커다란 솜사탕 구름들이 둥둥 떠다닙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주변 공원을 걷는데, 볕이 쨍쨍하다가 그늘이 드리웠다가 다시 해빛이 강하게 내리비춥니다. 

공원에서는 마스크를 벗고 실컷 숨을 들이쉽니다. 몸이 띠끔띠끔 후들후들 신호를 보내길래 점심에 잠간이라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태양과 바람과 나무와 풀에게 도움을 청하는 거지요. 

사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성격이나 습관상 저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세 져 미안하고 내가 약해보일가 두렵고 간섭 받기도 싫습니다. 그렇게 점점 내 작은 세상에 움츠리고 오그라 들게 되더군요. 그러다 <타인의 힘>이라는 책을 읽고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알게 됐습니다.

책에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작가의 친구인 성공한 심장외과의사가 어느날 연락이 옵니다: "나 큰 일 났어". 알고보니 몇년간 주변의 간호사, 의사와 외도를 한 사실이 안해와 상사에게 들킨겁니다. 일터와 사랑을 한꺼번에 잃을 위기에 처한거죠. 

친구는 모든 것을 원래대로 돌려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안해에게 앞으로 잘하겠다고 매우 진지하게 약속했다고 하면서 작가의 조언을 듣고 싶다고 합니다. 심장 외과의사라 일할 때 고도로 긴장하다 보니 일이 끝나면 널부러져 있고 싶지만 안해와 식사하고 산책할 것이며, 마음을 편하게 하는 책을 읽고 건강하게 먹고 더 열심히 운동해서 좋은 상태를 유지하겠다는겁니다. 

어때요? 자율적이고 건강하게 살겠다니 바람직해 보이지요? 하지만 작가는 들을수록 걱정이 커집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말합니다. 

진심을 듣고 싶어? 너 지금 상황을 악화시키는 길을 가려 해. 문제는 더 복잡해질 것이고 문제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될거야. 

친구는 휘둥그레 물어보죠. 어떻게 그럴수가?

네가 가려는 길은 너 자신이 더 많이 노력하고 희생하는 길이야. 모든게 네 손에 달렸어. 그래서 안돼.

뭔 말이야? 내가 변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나만 참으면 되는데", "나만 잘하면 되는데" 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시집살이 시절, 아이는 할머니가 봐주시고 우리 젊은이들은 마음 놓고 일 할 수 있어 좋았지만 한편으로 웬지 먼 친척집에 얹혀 사는 듯한 불편함에 우리끼리 살면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가 "너만 참으면 되는데"라고 남편에게 빵꾸 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내가 못된 인간 같았는데요.

작가는 계속 말합니다. 네가 일으킨 문제는 네게 필요한게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지. 너의 약점, 너의 취약한 면도 보이고. 너의 이러한 수요, 약점과 취약한 면은 여전히 거기에 있어. 사라지지 않았어. 

그래요. 나만 참으면 된다고, 그래야 아이도 안전하고 어른들도 행복하다고 아무리 주문을 걸어도 마음같지 않았지요. 내 주방과 내 남편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 아양을 떨줄 모르는 성격과 민감하고 쉽게 초조해지는 체질이 거기 그대로 있었으니까요.

결국 나를 먼저 돌보라는 말이겠지요. 나를 사랑해야 남도 사랑할 수 있다. 만일 그냥 여기서 그쳤으면 오다가다 그저그런 책이였을텐데 작가는 그냥 그런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작가가 말합니다. 하지만 넌 자신의 수요를 받아들이고 약점을 인정하는 대신 막무가내로 힘을 쓰려 해. 마치 기름이 다 떨어진 차에게, 힘 내 달리라는것과 같아. 기름은 스스로 넣을 수 없어. 누군가 넣어줘야 해. 

저는 이 대목에서 소름이 끼쳤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독립'하고 독립하다 못해 몇년째 거의 독박육아 하면서 세상은 홀로서기이니 내 코부터 닦고 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고 나름 우기고 있던터라.

단란히 살고픈 내 수요는 알아챘으나, 혼자 힘으로, 의지로, 자존심으로 지탱하려 한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분을 단위로 시간을 계산하며 헐레벌떡 뛰여다니고 더 재치 있고 요령 있게 소위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추려 할수록 마음이 더 메마르고 몸이 더 침식되지 않았는지. 

아마도 저는 언녕 도움을 청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직장 동료에게 출장과 잔업이 어렵다고 좀 더 양해를 구하고, 남편에게 집에 들라고 바가지 더 긁고, 기꺼이 도와주겠다는 이웃들을 좀 더 편하게 대하고 필요하면 일해줄 분 구하고.

바가지가 나왔으니 말인데, 비가 내릴 때 바가지를 들고 있으면 바가지 크기에 따라 많게 적게 비물을 받을 수 있으나 딱 한가지 경우에는 아무리 오래 들고 서 있어도 물이 고이지 않는대요. 바로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있을 때라고 합니다. 

1년 후 친구가 말합니다. 그때는 잘 몰랐으나 너를 믿고 따라서 다행이야.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 나는 생각을 아예 바꾸는 게 필요했어. 내 약점과 취약한 면을 똑바로 보고 외부에 도움을 청해야 했어. 어릴 때 부모를 잃고 두 동생을 돌봐야 했을때 나 자신에게 말했거든. 이제 기댈 사람이 없어. 홀로서기야. 그런채로 살다보니 누구에게 손을 내밀 생각을 못하나봐.

친구는 여러모로 도움을 받아 천천히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순간 부터 좋아지는 방향으로 간거지요. 

비물을 받으려면 바가지 방향을 바꿔야 하는데, 오래된 습관이나 생각을 바꾸는게 쉽지 않습니다. 애써 의식하는 동안에는 바뀌는 듯 하지만 정신줄을 놓고 있으면 어느새 무의식 속에서 원래 모델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래서 시간을 들여 꾸준히 해야 하고요. 

다만 비물은 좋은 인간관계를 통해 받아야 합니다. 단비를 맞고 자양해야지, 산성비를 맞고 부식되면 도리여 해가 되니까요

책에서 작가는 인간관계를 4개 부류로 나눕니다. 고립 상태, 나쁜 련결, 겉보기에 좋은 련결, 좋은 련결이 그것입니다. 

고립 상태.  바가지를 거꾸로 들고 있는거지요. 스마트폰으로 비유한다면 와이파이를 끈채 내 휴대폰에 내장되여 있는 내용이 최고야 하면서 외부의 신호를 차단한 상태. 

돌이켜보면 지난 몇년간 몇명의 지인과 동료를 제외하고 만난 사람이 거의 없고, 집, 직장과 아이 학교학원을 제외하고 별로 다닌 데가 없습니다. 점점 좁아지는 세계에서 반복되는 일상, 저의 뇌는 얼마나 지루했을가요. 지루하다 못해 몸에 이런저런 자극을 보내 아프게 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나쁜 련결. 바가지를 들고 산성비를 담는거지요. 자양받기는커녕 부식돼요. 스마트폰이라면 와이파이는 연결됐으나 바이러스 투성이 앱만 다운 받는다 할가요. 

나쁜 련결이라 하여 나쁜 사람이나 나를 학대하는 사람과만 맺어지는 연결이 아니에요. 오히려 같이 있으면 불편하거나 자신이 늘 부족해 보이거나 낮아보이거나 심지어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경우가 많아요. 나를 불편하게 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과의 련결이지요. 

과도하게 높은 기대, 완벽주의, 합리적이지 않은 요구, 트집, 칭찬을 아끼는 것, 수치심을 끌어내기, 깔보기, 이런 부정적인 특징을 가진 사람들 앞에서 방어상태에 들어가게 되고 부족함을 보완하려 애쓰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족시키려고 바득바득 애쓰는 사이 에너지가 고갈돼 자신이 점점 부족해보이다가 능력이나 문제 해결보다 타인의 시선에 관심을 쏟게 됩니다. 아무리 애 써도 이들을 만족시킬 수 없기에 잘 보이려 할수록 타격이나 비난을 받는 악성순환에 빠지게 됩니다. 

부모인자들은 아이를 이런 나쁜 련결속에 빠뜨리지 않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나쁜 련결 속에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면 저도 몰래 다시 아이와 나쁜 련결을 맺는 딜레마가 생길 수 있으니 어른이 먼저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야겠지요.

겉보기에 좋은 련결. 단비인줄 알았는데 산성비인거지요. 스마트폰일 경우 도박, 19금, 로맨틱하기만 이야기에 련결된 상태라 할가요. 

오그라든 마음을 달래고자 과식을 하거나 과도한 쇼핑을 하거나 도박이나 술담배에 중독된다면 잠시 즐거울지 모르나 결국 해로운 련결을 맺었다 볼수 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또는 서로 아부만 하는 관계도 여기에 속합니다.  

좋은 련결. 곡식이 우썩우썩 자라게 돕는 단비입니다. 와이파이 신호가 빵빵 터지고 건강한 정보를 다양하게 접촉하는 스마트폰입니다. 

책에서 이런 사례를 듭니다. 골프를 좋아하는 아들에게 아빠가 조언을 합니다. 오늘 시합에서 그 공은 이렇게 다뤘더면 좋았겠다. 아들이 말합니다. 아빠, 이건 제 시합이에요.

한계가 분명하지요. 내 일이고 내 손에 잡힌 골프채라는 통제감. 

아빠는 아들이 전업 선수로 되는건 찬성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들은 고민끝에 전업선수로 되려 합니다. 아빠는 내 의견과 다른 결론을 내렸지만 지지한다고 합니다. 

아들의 입장에서 조언은 고맙지만 결과는 내가 책임진다는, 아빠의 입장에서 충분히 조언 하지만 아들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지지와 자유가 적당히 균형을 잡은 건강한 련결입니다. 

쉽지 않겠지요.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특히 아이의 일에 있어서 더욱)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상대의 통제감을 존중해서 [조언을 요구하는 전제하에] 평등하고 온화하게 의견을 공유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지도록 지지하는거. 

평소에 아이가 모를 문제를 물어보지 않으면 공부에 관심을 끕니다. 아이가 먹고 싶지 않은데 마구 쑤셔넣으면 체하니까요. 

그냥 지켜보는게 서둘러 가르치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학교 제대로 못가고 인터넷 수업을 하네마네 하는 지금은 한눈이 아니라 두눈 다 감고 있어야 하는데요. 그 어려운 것을 용케 해내고 있습니다. 

공부에 있어 제가 어릴 때 부모님에게 받은 가장 소중한 선물은 아낌없는 지원과 공부 방법입니다. 한살 일찍 입학해서 교과서와 방학숙제가 없는 내게 어머니가 한학기 책들을 필사 해주셨습니다 (지금처럼 서점에서 쉽게 구할수 있는 시절이 아니였지요). 아버지는 매일저녁과 이튿날 아침, 일주일 후, 한달 후 반복해서 회억하고 복습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어요. 그냥 슬쩍 던지듯 말씀하셨어요. 찬찬히 배워주거나 실행과정을 지켜보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오히려 통제감을 키우게 했지요. 

저도 아이에게 가끔 조언합니다. 슬쩍, 조심스레, 그리고 이야기 주머니가 터지면 신나게. (그러다 상태가 안좋아 초조한 날에는 나올 수 있는 안좋은 결과를 마구 과대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좋은 련결에서 도움을 받으면 좋겠으나 요즘 같이 제코도 닦기 어려운 세상에서는 도움을 받으려다 자칫 부정적인 에너지 소용돌이에 빠져버릴 수 있습니다.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는 힘은 평소에 좋은 련결에서 받은 사랑과 스스로 준 사랑에서 온다고 봅니다. 

좋은 련결이라 하여 하나만 붙잡고 있을게 아니라 다양하게 서로 다른 차원에서 많이 맺어야 든든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은 아픈 애관견을 돌보는 마음을 내라고 하는데요. 인간이 자기비하하는 경향을 타고난지라 무의식에서 '내따위가 무슨' 이럴 수 있어 더욱 아끼고 사랑하래요. 

그리고 어떤 원인에서든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한겁니다. '내가 이러면 안되지'가 아닌, 불편하면 그냥 불편한거에요. 머리로 해석이 안되더라도 '내가 불편해하는구나, 이곳에서 잠시 빠져나오자' 이렇게 돌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냥 빠져 나와요. 우리는 자유니까.

좀만 더 중얼댄다면, 친밀한 관계에서는 좋거나 안좋은 느낌이 확대될 수 있어서, 좋을 때는 실컷 좋아하되 안좋을 때는 '내가 과대평가하는구나, 사로잡히는구나' 알아차리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누구든 일부러 나를 괴롭힐만큼 한가하지 않잖아요. 

아이가 친구집에 놀러간 날, 오랜만에 자유롭게 지낸 밤, 새벽에 눈을 뜨고 글을 마무리했습니다. 아이 친구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자유시간을 가지고, 남편의 도움으로 헛된 꿈에서 깨고 내가 자유임을 절실히 느끼면서 좋은 련결을 향해 안테나를 세우고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The Power of Other

타인의 힘

他人的力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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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속의 글들과 작가님의 생각들을 사이사이 조화롭게 잘 엮어낸데 대해 감탄했습니다. 연결, “좋은 연결”을 하려고 많은 자유시간을 사용하면서 신호를 보낸거 같은데, 유용한 정보들을 잘 받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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