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에는 알람을 끕니다.
아침에 눈이 절로 떠지면 하늘부터 봅니다. 창이 서쪽으로 열린 낮은 층에 살다가 남향의 조금 높은 층으로 이사하고나서 커튼을 치지 않습니다. 오늘 하늘은 이런 모습이구나.
아저씨가 먼저 일어납니다. 창문을 열어달라고 하니, 싫다고 합니다.
샤워를 하겠으니 그 사이에 마실 물을 덥히라고 합니다. 싫다고 했습니다. 창문도 열어주지 않으면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다 멈춥니다. 웬지 아저씨가 나오기 전에 물을 끓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놈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갑니다.
나가서 산책하고 아침거리를 사오자고 합니다. 싫다고 했습니다. 나는 바닥을 닦아야 한다고. 평일에는 하루 건너, 휴일에는 매일 바닥을 닦습니다. 맨발로 걸어다니다보니 닦지 않으면 뭔가 밟혀서 불쾌합니다. 예전에 엄마가 하던 것처럼 손걸레질합니다. 청소도구는 자그만 소래 하나, 낡은 수건 한장, 고무장갑 한컬레.
절반쯤 닦았을 때 벌써 아저씨가 장을 보고 돌아왔습니다. 호박, 옥수수, 아보카드를 사왔다고 하면서 호박이랑 옥수수를 찌고, 아보카드를 자르라고 합니다.
웬지 당장 해야 할 것 같아서(바로 하지 않으면 잔소리가 귀찮아서), 고무장갑을 벗고 가스불을 켭니다. 호박은 씨를 걸러내고 겉을 치약으로 씻어 자르고, 옥수수는 껍질을 벗깁니다. 호박이랑 옥수수를 찜통에 올려 놓고 다시 바닥을 닦습니다.
아보카드는 왜 손질하지 않았냐고 합니다. 아차, 깜박했습니다. 바닥 닦기에 마음이 급했나봅니다. 못들은척 했습니다. 아저씨가 똑딱똑딱 칼질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릇에 담긴 아보카드를 못알아볼번 했습니다. 키위 사촌쯤 되는 모양으로 잘려져 있었습니다.
다 익은 호박과 옥수수를 게눈감추듯 먹습니다. 양념을 바르지 않은 음식 그대로의 맛이 구수합니다. 고향의 맛입니다. 우리 나이 들면 같이 고향에 가서 옥수수를 심자고 합니다. 가을에 아이에게 보내주면 좋아할거라고, 요즘은 잘 포장해서 랭동보관하면 겨울에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하면서.
싫다고 했습니다.
말이 같이 옥수수를 심자지, 그때 가바라, '야, 옥수수 심자, 니 가서 밭고랑 좀 만들어라', '내 씨를 뿌릴게, 니 흙을 잘 덮어라', '물 줘라', '풀이 자랐다, 기슴 좀 매라', '옥수수 다 익은거 같다, 가서 좀 따오라'……. 온통 내만 부려먹자고
아저씨가 웃습니다. 눈물 쏙 빼면서 웃습니다. 본인이 듣기에도 그럴것 같은가 봅니다.
'우리 나이 들면'으로 시작하는 말을 부쩍 많이 합니다. 35세부터 준비하여 40세에 은퇴한 부부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이제부터 준비해서 10년 내에 은퇴하자고 합니다. 그럴듯해보이지만 사실은 감언리설입니다.
은퇴? 40세에 은퇴한다면 당분간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준비할 수도 있지. 50세에 무슨 은퇴야? 어차피 일을 못할텐데. 당신은 은퇴로 둔갑해서, 내가 가능한 일을 오래 하면서도 아껴쓰기를 바랄 뿐이야. 내게 좋은 점이 하나도 없구만뭐.
아이가 일어나면 나머지 호박조각과 옥수수를 줍니다. 며칠 련속 줬더니, 옥수수는 그나마 괜찮은데 호박은 목이 메서 더이상 못먹겠다고 합니다. 컵라면을 꺼냅니다.
아저씨가 아이에게 라면국물 한모금만 달라고 합니다. 라면은 안건드릴테니 국물만 딱 한모금 먹자고 합니다. 아이가 거절합니다. 국물이 줄면 라면의 완벽함을 깨트린다고 합니다. 국수 두입에 국물 한입이 짝궁이라네요.
특별할게 없는 일상입니다. 반복되는듯 조금씩 다른 하루하루입니다. 어릴때 좋아하던 호박이랑 옥수수도 먹고, 어른이 돼서 알게 된 아보카도도 먹고요, 아이는 어른이 주는 음식도 먹고 컵라면도 찾아먹고. 가부장적인듯 하면서도 아빠는 라면 국물 한입 못얻어마시고.
신영복 선생님은 세계기행 <더불어숲>에서 나의 삶은 누군가의 생을 잇고 있으며, 또 누군가의 생으로 이어지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린 손자의 모습에서 문득 그 할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어린 손자를 통해 할아버지가 계승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만다라처럼 얽히고설킨 인연으로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는 다시 다음 사회로 이어지는 사회적 윤회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존재'의 윤회가 아니라 '관계'의 윤회입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엽서에서 아름다움도 그 지속성을 본질로 한다고 합니다. 녀성을 볼 때 그녀가 어떤 녀자로 변화발전할 것인지 가늠해봐야 한다면서 착한 아내, 고운 며느리, 친절한 엄마, 인자한 시어머니, 자비로운 할머니 등 긍정적 미래로 열려있는 녀자인가, 현재속에 닫혀있는 녀자인가를 살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재를 고정불변한 것으로 완결하지 않고 과거와 미래의 연관 속에서 변화발전의 부단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찰학적태도이며 현실성 보다는 그 가능성에 모으는 동태적시각입니다.
선생님은 머리보다는 발이 먼저 깨닫고 있는 것 같다면서 깨달음은 어느 순간에 섬광처럼 오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깨달음은 결국 각자의 삶과 각자의 일 속에서 길어 올려야 할 것입니다. 그나마도 단 한번의 깨달음으로 얻을 수 있다는 결연함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깨달음은 오늘의 깨달음 위에 다시 내일의 깨달음을 쌓아 감으로써 깨달음 그 자체를 부단히 높여나가는 과정의 총체일 뿐이리라 믿습니다.
그러니 늘 아쉬울수밖에 없습니다. 완성된 상태란 없으니 말입니다. 과정일뿐입니다. 그러기에 더욱 소중한 일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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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더불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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