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진령(秦嶺)의 세례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제3편을 펴낸 뒤로 너무 바삐 보내다 오늘 다시 기억을 이어본다. 제3편에서 얘기했다싶이 진령과의 첫 대면은 온갖 고초를 안겨준 만남이었다. 그래서 진령에서 벌어진 사소한 이야기도 기억속에 오래 남는가보다. 진령과의 이야기가 너무 길어 둘로 나눠 풀어가본다. 짧게나마 이 편으로 진령과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 한다.

(진령에서 벌어진 앞부분 이야기는 “Vol.3 중국의 남과 북이 바뀌는 시간”을 보시라.)

늦은 밤. 12시 30분 정도로 기억된다. 지도속 판방자(板房子)진으로 막 들어섰다. 길 량켠으로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늦은 시간이라 길가의 모든 것들이 잠들고 매미들만 지저대는 시간이었다. 멀지않은 곳에 나지막한 불빛이 보였다. 다가가 보니 토산품 가게였다. 가게안에는 로인 한 분이 쪽걸상에 앉아 뭔가를 썩뚝썩뚝 자르고 있었다. 왠지 모를 음산한 느낌이 들어 그냥 지나쳐갔다.

토산품 가게 바로 옆에는 려관이었다. 전등도 꺼져있었고 문도 굳게 잠겨있었다. 토산품 가게에서 흘러나온 불빛으로 어렴풋이나마 '려관'이라 적혀 있는 색 바랜 간판을 읽을 수 있었고 그 려관앞에는 화물차 2대가 가지런히 주차되어 있었다.

느낌상으로 판방자진에 갓 들어선 듯 하였다. 앞으로 가다보면 조금 더 번화한 거리로 들어서려니 하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하지만 조금 더 가다보니 더 이상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나를 맞이한 건 다시 보이는 컴컴한 산과 어렴풋한 길뿐이었다.

고작 걸어서 1분?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뭐 산속에 위치한 진이라 많이 작을 줄은 알았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튿날 아침 눈으로 확인한 바로는 내가 달리고 있던 그 국도가 판방자진의 유일한 도로였고 '시가지'는 정부, 사법소, 파출소 건물들과 려관 그리고 토산품 가게가 전부였다.)

[조금은 번화해진 듯한 판방자진의 위성지도]

컴컴한 산들과 희미하게 보이는 길을 앞두고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좀 더 걷다 텐트를 치고 잘까, 아니면 뒤로 다시 돌아가 려관문을 두드려 볼까, 아니면 토산품 가게로 들어가 도움을 청할까? 머뭇거리다 일단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려관이랑 토산품 가게 사이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고민고민하다 토산품 가게로 들어섰다. 그리고 가게 로인이랑 대화를 나눴다. 정확히는 비럭질을 한 셈이었다. 굳이 그러려고 그런건 아닌데 아주 자연스레 불쌍한 목소리로 끓인 물이 있는지 물었다.

로인이 대접해준 뜨끈한 물을 들이키니 좀 살 것 같았다. 머리가 좀 맑아지고 정신도 더 또렷해졌다. 그렇게 쉬다가 려관에 빈방이 있는지 로인한테 여쭤보니 자기 가게에 머물 곳이 있단다. 따라가 보니 가게 한 쪽에 자리잡고 있는 침실이었다. 보아하니 로인이 평시에 쓰는 침실이었다. 이것저것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거기서 머물기로 했다. 짐을 풀어놓고 물었다, 샤워는 어디서 하냐고. 가게 뒤쪽을 가리켰다. 수건이랑 갈아입을 옷을 두루 챙기고 가게 뒤뜰로 나갔다.

뒤뜰이 샤워실이었다. 로인은 큼직한 대야를 준비해뒀고 옆에서 난로로 물을 끓이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또한 이것저것 가릴 입장이 아니었다. 멀지않은 산기슭에 듬성듬성 보이는 판방자(板房子)들을 마주하고 가게 로인의 '보좌'하에 뒤뜰에서 몸을 씻어댔다.

그 날 밤, 조금은 텁텁한 공기를 마시며 모기들과 함께 잠을 청해보았다.

이튿날 아침이 밝아왔다. 가게문을 나와 청량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길가를 둘러봤다. 뭐 정확히는 둘러볼 것은 없었다. 麻雀虽小五脏俱全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가게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길에 들어섰다.

갓 출발했을 때는 올리막길이었다. 힘들었던 기억이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부터 내리막으로 변했던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점심을 어디서 먹었던지도 기억속에서 사라졌다. 다만 기억나는 건 내리막을 내려갈 때의 일들이다.

어디서부턴가 길의 세(势)가 기울더니 진령의 뭇산들을 휘감는 G108 국도는 진령에서의 정점을 찍고 내리막으로 변했다. 조금은 가파른 그리고 고불고불한 내리막길. 호루라기를 꺼내들고 힘차게 불며 내려갔다. 맞은켠에서 올라오는 자동차가 있을지 몰라 호루라기를 힘껏 불어댔다.

내리막길이라고 마냥 쉬운 건 아니다. 정신도 바짝 차려야 했고 팔에도 힘이 많이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무었보다도 나를 힘들게 한건 내려가는 도중에 만난 2차례의 산비였다. 산비를 맞고 홀딱 젖은 몸으로 맞바람을 다시 맞아대야 했으니, 체온이 급속도로 떨어졌다. 산비의 세례를 온몸으로 받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 가슴 깊숙한 곳까지 한기가 파고들어 난 몸이 떨려왔다. 그 떨림은 점차 강해지더니 나중에는 사시나무 떨 듯 했다.(과장법 아님.) 처음에는 팔이 들썩, 다리가 들썩, 그리고는 발이 들썩이더니 나중에는 엉덩이까지 들썩였다. 사람의 의지로는 공제할 수 없는 그런 들썩임이었다. 그바람에 자전거도 같이 들썩이며 이상한 금속 마찰음을 냈다.  

려행을 중단하기로 하고 내려가는 길에 만난 한 려관에 머물렀다. 불평현(佛坪县)으로 기억된다. 자전거에서 내려와 려관으로 들어갈 때의 그 랭기는 몸과 마음을 모두 얼어붙혔다. 말로는 표현하기가 어려운 느낌이었다. 20년간 겪어온 동북의 겨울도 나를 그렇게 만들지는 못했었다.

려관방에 들어가 부랴부랴 샤워를 했다. 수온은 점점 높아졌지만 몸은 따뜻해지기는 커녕 점점 더 추운 느낌이 들었다. 몸속 깊숙이 파고든 랭기를 잠재우기는 참으로 어려웠다. 뜨끈한 물로 적셔도 적셔도 몸은 차가웠다. 1시간여를 그렇게 샤워를 해댔다. 언 돼지고기를 그렇게 적셔도 해동은 됐을텐데… 몸이 따뜻해지기도 전에 난 먼저 진이 빠져 샤워실을 나왔다.

려관을 빠져나와 저녁을 때우고 서성이다 다시 려관으로 들어왔다. 저녁에 다시 한 번 샤워를 하고 잠을 청했다. 이불 속. 몸도 차가웠고 마음도 차가웠다. 잠을 청하기가 어려웠다.

핸드폰으로 “저체온증”을 검색해 보았다. 정확한 진단은 아니지만, 그 당시 짐작으로는 내 상태가 딱 저체온증인 듯 했다. 검색해보니 심한 저체온증에 걸린 사람은 상식과는 반대로 몸을 급하게 덥히면 안된다고 한다. 표층의 차가운 혈액이 갑작스레 인체 중심부로 회류(回流)하면 되려 생명에 지장이 있다고 한다. 샤워를 하면 할수록 랭기가 몸 김숙이 파고드는 듯했던 느낌도 같은 원인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렇게 온기가 1도 없는 이불속에서 이부자리 함께 덥혀줄 녀인을 마음속에서 그려보다 힘들게 잠이 들었다.

이튿날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하고 다시 길에 올랐다. 앞 두 날의 조우와 비교했을 때 무난한 려정이었다. 그 날, 내 기억으로는 성고현(城固县)에 도착했고 진령을 완전히 빠져나와 한중평원에 들어섰다. 그로써 2014년 여름의 진령과의 첫 만남은 끝이 났다.

… …

그 강렬했던 첫 만남의 기억 때문에, 2017년 진령과 재회했을 때 나는 차마 다시 자전거를 타고 진령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뻐스를 택했다. 그리고 서안으로 향하는 그 뻐스 속에서 많은 것들을 떠올렸고 특히는 판방자진의 추억을 많이 돌이켜봤다.

진령속에서 보냈던 그 두날은 잊지 못할 추억이다. 특히 첫날의 경험(Vol.3)은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가끔 어려운 도전과 난관에 부딪쳤을 때 난 진령속에서의 첫 날을 돌이켜 본다. 그 때 나는 무슨 생각으로 판방자진까지 견지할 수 있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뚜렷한 목표의식, 그 목표에 대한 열망 그리고 破釜沉舟의 결심이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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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란

하고싶은 대로 하다가 다행히 살고싶은 대로 살게된 인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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