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커가면서 정력이 넘쳐나면 어른들은 지쳐간다. 요즘 아내가 예전보다 힘들어한다. 그래서 주말에는 되도록 내가 애를 데리고 외출하고 아내 혼자만의 시간을 갖도록 이번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일요일, 나는 혼자서 유모차를 끌고 나와서 무작정 발 가는대로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가다보니 어느새 내 발에 익은 등교길에 들어서 있다. 평소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자전’거'(车, ju1)도 명색이 ‘차'(车, che1)라고 스쳤던 풍경들이 많았나 보다. 나름 익숙하다 생각했던 거리가 새삼스럽다.
어제는 사상 최강급의 19호 태풍 하기비스(海贝斯)가 지나간 터라 하늘은 아직 흐릿하고 땅에는 물웅뎅이들이 이리저리 널려있다. 교토 쪽은 태풍의 등륙지점과 진행경로와 조금 거리가 있어서 피해는 심하지 않은 편이나 그래도 우중충하다. 근데 집 부근의 중학교에서는 운동회가 예정대로 열리고 있었다. 조금 뒤의 얘기지만 좀 더 걸어가면 나오는 또다른 소학교에서도 운동회가 열렸다. 강한 태풍이 휩쓸고 간 뒤라 운동회는 무리가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얘기하고 싶은 점은, 이 운동회가 학교운동회가 아닌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운동회라는 점이다. 고향에 있을 때 향진이나 시, 주를 단위로 몇년에 한번씩 전민운동대회가 있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그런 성격의 운동회다. 그것도 주민들의 자발적 조직으로 해마다 진행된다.
소학교에서 열린 또다른 운동회
일본에는 정(町[ちょう])이라는 개념이 있다. 중국에서 말하는 가도(街道)라는 개념과 비슷하지만 정치적인 색은 많이 옅다. 또한 교육차원의 학구(学区)라는 개념도 존재한다. 중국에서 죽기살기로 좋은 학구에서 살고 집을 사려고 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말이다. 이 ‘정’과 ‘학구’가 결합된 주민구역들이 블록화 되어 지역운동회가 열리며, 지역별로 체육진흥회라는 민간조직이 있어 이러한 행사를 기획, 주최한다. 회장 축사, 작년 우승팀 깃발과 트로피 반환, 행사 당부말씀, 선수대표 선서, 단체 몸풀기 등 있을 절차는 다 있는 민간축제이다.
행사전 단체 몸풀기(중학교)
잠깐 서서 구경했는데, 지역내에서도 정별로 세분화되어 각자의 좌석배치와 장식이 따로 있고, 경기종목도 득점용과 놀이용으로 나뉘어져 있어 남녀노소가 부담없이 다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나와 같은 유모차 부대들도 많이 나와 구경하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은 보기에 편했다.
이어달리기
어릴적에는 몇년에 한번씩 진(镇)에서 운동대회를 한다고 하면 온 천지가 들썩들썩하는 것 같았는데, 조무래기끼리 무리지어 휩쓸려 놀고, 여러 촌과 마을에 있던 친척들도 자연스레 얼굴도 보고 추렴도 하는 잔치였다. 그래, 아마 이런 분위기였다.
다만, 정부에서 조직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는 철저히 민간의 자발적 조직에 의지하는 것 같았다. 봉사인원이나 준비물품을 봐도 그렇고, 서로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이나 말투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마 행사에서 어쩌다 보는 만남들이 아니고 평소 일상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 지내는 듯 했다. 금방 이사왔을 적에 우편함에 들어있던 정내회(町内会[ちょうないかい]) 회비 안내서가 잠깐 생각났다. 나는 뭔가 하고 그냥 무시했었지만, 일년 회비가 2000엔(인민폐 약 120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니까 그런 비용으로 이런 행사들이 운영되고 그만큼 사회의 각 지역 구석구석까지 인간관계망의 말초신경이 활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농촌의 공동체가 해체되어 가는 한편, 도시에서도 아파트 위주의 거주양식으로 변해가는 우리 고향은, 아니 중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민간관계가 어떠할까. 날로 차가워져가는 흐름을 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앞날을 제시해야 할까. 그러한 물음들이 오가는 인파 속을 맴도는 것을 바라보며 나는 유모차를 밀고 다시 길로 나왔다.
골목길을 동서로 조금만 걷다보면 남북으로 뻗은 다른 골목인 무로마치길(室町通り)과 사귄다. 천년의 수도로 일컬어지는 교토의 역사상, 권력다툼의 잦은 전쟁에 불살라지고 황폐해질 때도 유일하게 이 길만은 남북을 잇는 상업가로 맥이 끊기지 않았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업을 이어갈 수 있어서 이 길을 지킬 수 있었던 교토의 상인계층인 정인(町人[쵸우닌])들이 있었다. 교토의 상공업자들이 대거 진출하여 모여 산데가 바로 무로마치길이기 때문이다. 하여 여기에는 오늘까지도 많은 오래된 가게들이 남아있다.
표구사(表具師[装裱])라는 전통업을 하는 작은 가게
글씨나 그림을 비단이나 고급종이로 장식하는 일
일본은 7세기부터 왕권이 강화되면서 왕조사회가 시작되며, 강한 정권은 국가행정과 귀족생활에 필요한 많은 물품들을 필요로 하게 되는데, 이에 부응한 상공업자들의 굴기가 있었다. 이들은 지금의 산업노조(行会) 비슷한 “좌(座)”를 형성하여 뭉치게 되며 국가에 납품하는 형태로 존재하였다. 12세기에 무인들이 실권을 장악하면서 귀족정치는 약화되며 “좌”라는 형태 역시 새로 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면서 서로 모여서 장사하는 거리를 중심으로 다시 집결하게 되면서 지연을 중시하는 “정(町)”이라는 단위가 나오는게 14세기이다. 그러다가 상품경제가 꽃을 피우는 17세기 에도시대부터는 아예 정인(쵸우닌)이 하나의 사회계층으로까지 탈바꿈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아이를 유모차로 밀고 찾아간 곳이 바로 무로마치길에 있는 경과자자료관(京菓子資料館)이다. 이 자료관은 바로 옆의 1755년 개업한 일식과자 와가시(和菓子) 집인 ’타와라야 요시토미’(俵屋吉富)에서 운영하는 시설로서 일본의 와가시 역사에 관한 문헌과 물품들 및 와가시 재료로 만든 공예작품을 상설전시하는 곳이자, 말차 세트와 함께 직접 만들어 먹는 체험도 가능한 곳이다. 좌에서 정을 거친 민간형태와 인간관계 전통의 연장선 위에 오늘까지 서있는 것이다.
자료관 정문, 내부는 촬영불가
俵屋吉富 본점
건물도 기술도 오래된 이 가게는 NHK 다큐드라마 <교토사람의 남모르는 즐거움>(京都人の密かな愉しみ)의 촬영지이자 주인공의 활동무대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다큐드라마 이미지
와가시 집을 천천히 걸어 지나다 보니 맞은켠에 작은 중고서점이 눈에 띄였다. 100엔에 한권씩이라고 밖에 내놓은 책들이 있어 잠시 서서 훑어 보다가, 평소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은 학자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라고 일본의 제일 오래된 시집 만엽집(万葉集)의 연구자로 이름을 알린 이다. 항간에서는 이번 새 천황의 연호인 “令和”(레이와)를 제안한 이라고 소문이 무성하다. 만엽집의 연구에서 도래인(渡来人) 즉 고대에 대륙과 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이 땅의 건설과 문화에 영향준 그룹의 요소를 여러번 언급한 이로써 흥미를 끌었었는데 오늘 마침 발견했으니 작은 보물 하나 찾은 기분이다.
동네를 한둘레 거닐어 보고 돌아오는 길에는 또다른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자전거 타고 지날 때는 외관이 좀 느낌있다 정도로 생각하고 구체적으로 뭐하는 곳인지는 들여다 볼 겨를이 없었는데, 유모차 밀고 걸어 지나다 보니 더 많은 정보들이 보였다.
일단 간판 비슷한 곳에는 스튜디오라고 써있는데 그 옆의 내용은 스튜디오와는 좀 이질적인 것이었다. “배움터 gaku”(学びのところ gaku)를 검색해 보세요 라고 적혀 있어서 포털사이터에서 찾아 봤더나 바로 홈페이지가 뜬다. ‘교토 동네(町家) 어른들이 공부하는 컬쳐스쿨’ 이라고 소개하는 이 곳은 개성적인 강좌와 강의가 이루어지는 동네 문화공간이었다. 백년이 넘은 정인(町人)양식 건물에서 현대와 전통이 만나는 장이 숨쉬고 있는 것이었다.
사이트 캡쳐화면
강좌 정보를 클릭해보니, “계절을 즐기고 오감을 다듬는 중국차”, “내츄럴 프랑스 가정요리”, “유기농 야채로 몸과 마음의 행복을 찾는 이탈리아”, “철에 따른 국 하나 반찬 하나”, “기의 흐름 태극권”, “아름다운 허브”, “처음 쳐보는 우쿠렐레”, “백사장의 속삭임 보사노바” 등으로 삶의 방식을 둘러싼 다양한 테마들이 있었다. 일년 잡고 진행되는 여러가지 강의 코스들도 들어 있었다. 저 자그마한 공간에 이런 움직임과 흐름들이 차있을 줄은 정말 몰랐는데… 이 거리 이 동네는 전통을 지키는 고집쟁이 만은 아닌가 보다. 시대의 새로운 것들을 그 속에 끌여들여 자기 삶에 맞게 배우고 앉혀가고 있다. 옛것과의 끈을 끊지도 않고 다가오는 바람 역시 가슴으로 안아들여 균형을 유지하려는 자세들이, 지금에 그리고 여기에 그 한 세포로서의 신진대사를 생중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집에 거의 도착할 때 쯤 집 옆의 중학교에서는 운동회가 끝나고 흩어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손에 기념품인지 상품인지를 자그맣게 들고 서로 인사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로 정(情)이 보인다.
좁은 인행도를 유모차를 밀고 지나는 나에게 마주오는 사람들이 목례를 보낸다. 나도 미소로 답한다.
“자탄풍”과 “유민풍”이군요. ㅋㅋㅋㅋ
줄이니까 먼가 느낌있는데요..? ㅎㅎ
아내에게 시간을 주려고 자발적으로 유모차를 밀고 시내에 나오고 또 그게 글로 만들어지고, 멋있는 가장입니다.
그런 선순환이 되었으면 ㅎㅎ 아직 첫주라서 견지하는게 제일 중요한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