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소확행이란 단어가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하는 집단의 누군가가 만들어낸 말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가 이런 단어와 스토리를 만들어내어 가난한 사람들의 사상을 지배하면서 그들로 하여금 현실에 만족하게 하려고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은 지난날에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버텼는지, 포기하고 싶은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이런 힘든 날들의 스토리를 얘기하기 좋아한다. 너희들도 청춘을 바쳐가면서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 우리들처럼 부자가 될수 있다고 말이다.  그들의 배경이나 이미 가지고 있었던 자원들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아마 대중들이 이런 고무적인 "나도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스토리를 더 듣기 좋아하기 때문일수도 있겠다. 부정적인것보다 励志한 스토리. 뭐, 당연히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는 부자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다. 세계 대부분 사회의 80%이상의 부가 20%도 안되는 사람들 손에 쥐어 있는걸 보면 말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구는 first class를 타고 세계 각지를 편하게 돌아다닌다. 그리고 누구는 평생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하고 인생을 마감한다. 누가 소확행의 “소”자를 정의할까? 왜 우리는 대확행으로 대대한 행복을 느끼면 안되는가? 아니면 대대한 행복을 느낄수가 없는 어느날 오후 빨래를 내다 걸고, 금방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데에 만족을 느끼면서 이것이 "확행"이라고 해야 하는가. 크지는 않지만 확실한것이니까 소라고 하면서.

뜻을 모르는거는 아니지만, 가끔씩 이렇게 소확행에 태클을 걸고 싶은 날들이 찾아온다. 중국어로는 压抑하다고 말할수 있는데 한글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미국에 살면서 이런 压抑한 감정이 드는 날들은 몇달에 한번씩 찾아 오는거 같다. 내가 잘하고 있는건지, 과연 이 먼곳에서 잘 살고 있는건지, 잘하고 있지만(믿고 있지만) 더 잘된 사람에 비교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시험에서 99점을 받고도, 99점보다는 왜 1점을 깎였는지, 그 1점에 집중했었다. 60명이 있는 한 반급에서 7등을 하고도 왜 3등안에 들지 못했는지에 집중했다. 53명이나 이겼다는 사실은 무시했었다. 사람이라서 그런거 같다. 왜냐면 사람들은 절대 자기보다 못한 사람엔 비교하지 않으니까. 소확행 이론대로라면 "와우, 53명이나 앞섰네. 99점이나 받았네”라고 하면서 많은 행복을 느낄수 있었을텐데.

이걸 보면 소확행은 “자신이 진짜 열심히 해도 따라갈수가 없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만 자기합리화를 시키려고” 소소한 행복이라고 주문을 외우는것 일수도 있겠다. 조금만 더 잘하면 100점을 받을수 있거나, 혹은 반에서 3등안에 들수 있는 희망이 보이면 노력하여 이런 일들을 해낼것이다. 그런데 몇번이나 노력했는데도 그냥 제자리 걸음이면, 그때에라야 아마 "53명을 이겼다는것도 잘한거야…" 라고 만족하면서 소확행을 대입하는건 아닌지. 

몇만원짜리의 (인민페) 산해진미를 차려서 먹을수 없으니, “그냥 내집에서 편안히 빵을 구워서 찢어 먹는것이 행복하다”라고 소확행을 대입하는건 아닌지.

다시 말하지만 "소확행" 뜻을 모르는건 아니다. 그냥 가끔씩, 아주 가끔씩 소확행에 태클을 걸고 싶은 날들이 찾아올 뿐이다. 더 분발할수 있는 동기로 전환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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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범이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들을 글로 적습니다. 때로는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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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끔은 별볼일없는 소확행을 다소 억지스럽게 생활에 대입할때가 많습니다. 자질구레하다 못해 나밖에 알수 없는 먼지같은 소소한 일상이라도, 그속에서 우울하지 않기위해 (분명 호화로운/자기가 원하는 삶/훨씬 동경하는 뭔가랑은 거리가 멀단 걸 알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꾸 자기를 비워내는 연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기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하고…분명 잘 하고 싶은거와 잘 할수 있는것 사이엔 확실한 내 자리가 있는거 같더라구요…(비록 노력으로 얼마간의 차이는 낼수 있겠지만) 나도 늘 소확행을 느끼는 동시에 태끌을 걸고 싶을때가 많습니다. 类似于不甘心,又只能妥协的瞬间…타고난 유전자, 가정배경, 성장환경…등 다양한 내가 선택가능치 않은 요소들이 이미 내 인생의 대부분을 사실 결정한단걸 너무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확행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긍정적인 생활태도에서 동력을 얻어야 할수 밖에 없는 , 时代的红利가 없는 시대에 태어난 80/90으로서, 현실을 기꺼이 힘껏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자신을 자기라도 소확행으로 보듬지 않으면 억울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생활은 늘 생각처럼 좋지 않지만 또 생각처럼 나쁘지도 않으니, 지금도 출근하기 싫지만!!!! 세수를 하러 갑니다~

    1. 네. 맞슴다. 그래도 나쁜 날보다는 좋은 날들이 더 많기에, 우울한 날보다는 행복한 날들이 더 많기에, 힘든 날보다는 즐길수 있는 날들이 더 많기에, 소확행에 태클을 걸고 싶은 날보다는 소확행을 느끼는 날들이 더 많기에 더 긍정적으로 열심히 잘 살아가고 있는거 같슴다. 매일매일 화이팅입니다 👏

  2. 세상이 참 1등만 기억해주는 더럽고 치사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ㅋㅋㅋ 하지만 나 자신이 평범한 인간인것이 틀림없으니 평범한 삶을 통해 좀더 즐겁게 살아야지 않을 가요. 한번 사는 인생 최대한 즐기면서^^ 글 잘 읽었습니다. 하핫

  3. 村上春树 팬들때문에 유명해진 단어지만, 역시 가볍게 소비하기 딱좋은 말인거 같슴다. SNS에 사진 한장에 단어 하나로 올리기 딱좋은. 저는 한때 正能量이란 말이 엄청 싫었던 적이 있습니다, 너무 범람해서 ㅋㅋ

    외국에 살면서 压抑한 느낌, 알거 같습니다. 갑갑을 떠나서 아주 깝깝해져 온다고나 할까. 이런 태클의 필요성, 아주 공감합니다.

  4. 만약에 치열한 경쟁속에서 삶의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세상의 모든 것(고난도 포함)을 감사하고 ‘살아 있음’ 에 대한 진정한 기쁨을 만끽하는 이런 마음도 ‘소확행’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러한 마음을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측하건대, 작가님께서 태클을 걸고 싶은 것은 더욱 정확하게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소소한 행복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행복하다고 받아드려야만’ 하는 사회(있는자들)가 조작해낸 강요적 분위기와 사회의 거대 억압 속에서 무력감을 느낀 사람들이 더이상의 분발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현재에 머무르며 그것을 합리화 하는 ‘소확행’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에 제가 추측한 것이 맞았다면, 본 편은 상당히 날카로운 통찰이라고 생각됩니다.

    1. 하하 매우 좋게 분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정하기 조금 싫지만 (?) 그 정도까지의 통찰은 아닌거 같슴니다. 하지만 또 그런부분 없지 않아 있는거 같기도 합니다. 너무 많은 소확행을 만들지 말고, 소확행에 너무 만족하지도 말고 계속 발전하자라는 그런.
      결국 모든게 다 사람의 마음가짐에 있는데 누군가는 소소하게 살면서도 진심으로 많은 행복을 느끼고 누군가는 가진거는 많지만 그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자신의 영혼을 괴롭히면서 살아가고 있고… 어떠한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지 그 境界가 결정할 일인거 같슴다.

  5. “소확행”이 잘못했네요 , 하하. 평강님이 위에서 쩡넝량 언급하셨던데, 쩡넝량은 예나 지금이나 구호같아서 별로 안좋아했네요.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잘 쓰지는 않지만, 저에게 주는 느낌은, “무언가를 할수 없기에, 무언가를 안하는걸 선택하고, 그 나머지 소소한 일들에서 행복을 찾는” 그런 느낌입니다. 자기가 좋으면 그만 아닌가요? 그리고 서민들이 소확행에 심취하면 오히려 자본가들이 더 긴장해할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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