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미국에 온지 만 10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조선족으로서 중국에서 학업을 시작하여 미국에서 마치고 IT회사에서 UX/UI 디자이너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정리해보려 한다. 나와 비슷한 꿈이 있거나 비슷한 길을 걸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이런 경험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꿈.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어릴적 소학교때의 일이다. "커서 뭐가 되겠습니까"라는 선생님들의 질문에 “과학자”, “의사”,, “대통령”…이라고들 많이 답했던거 같다. 세상을 갓 배우기 시작한 우리에게는 아마 교실과 복도의 벽에 걸려있는 위인들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아직 사회에는 어떤 회사와 직업들이 존재하는지 모르는채 주위에서 보고 들은 멋있는 것들이 곧 장래의 꿈이였다.

하지만 조금 성장하고 세상을 더 알게 된 중학교때에는 솔직히 꿈이 없었다. 학기말에 한번씩 진행되는 기말시험때문에 공부했다. 반급과 학년에서 공부를 좀 한다는 애들과 경쟁하면서 앞자리를 차지하려고 말이다. 그렇게 고중에 붙었고, 고중에서도 대부분의 시간은 같은 목적으로 공부 했었다. 다른 한가지 점이라면 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하여 공부했다. 

“커서 뭐가 되겠다”라는 꿈이 생기다. 내게 처음으로 커서 뭐가 돼야겠다고 확신이 생긴 시점은 공부가 제일 바쁜 고3때였다. 좋은 대학에 가려는 압력도 크고 공부에 치여 하루하루 바삐 보내던 고3때였지만 나의 일상 로선은 "학교-집-학교-집"만은 아니였다. 내가 다니던 로선에는 PC방(网吧)도 있었다. 여느 남자애들처럼 게임에 빠졌다. 방과후거나 대학시험에 연관되어 있지 않은 과목, 혹은 자습시간이 있는 오후에는 땡땡이를 치면서까지 게임을 하러 다녔다. 대학시험의 날자는 점점 다가오고 드디여 대학지망을 써야하는 시간이 되였다. 지금의 제도는 어떠한지 모르겠지만 우리때는 대학시험 성적이 나오기전 자신의 점수를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지망을 써야 했기에 잘 적어야만 했다. 나는 지망쓰기란 대학을 선택하기보다는 자기한테 맞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학을 졸업한후 취직할때의 방향이 내가 선택한 전공에 의하여 결정되고 또 연관 분야에서 일하게 될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망쓰기에 깊은 고민과 많은 생각을 하던 중 나에게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게임의 매력에 빠진 내가 선택한건 게임디자이너 혹은 게임개발자가 되겠다는 것이였다. 단순히 게임 하기만을 좋아해서가 아니고 진지하게 게임업계에 대하여 연구조사를 해보고난 뒤의 생각이였다. PC방에서 대학과 전공에 관한 자료를 찾는 한편,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업계와 게임회사들,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추세까지 조사해보았다. 그 당시 게임업계는 하나의 떠오르는 신생분야였고 미래의 발전 전망은 좋았으며 잠재력 또한 컸었다. 해마다 게임을 하는 사용자수가 늘어나고 있었고, 새로운 게임들도 많이 개발되고 있었다. 게임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는 확신이 생기고 나니까 전공을 선택하기는 쉬웠다. 내가 선택한것은 게임을 개발할수 있는 컴퓨터기술공학이였다. 더 중요한건 나의 가정형편이 좋은 건 아니지만 열심히 지원해주는 어머니 덕에 유학까지 고려하면서 지망을 적을수 있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하여 미국과 2+2 프로그램 (미국과 중국의 대학교가 합작관계가 있는 프로그램으로서 첫 2년은 중국에서, 그후 2년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다.)이 있는 중점 대학을 제1지망으로 썼고, 운이 좋게 그 대학에 합격하였다. 게임을 하다가 생긴 나의 꿈을 위하여 첫발을 내딛게 되는 순간이였다.

학교 적응기 1.0. 같은 중국이지만 대학생활은 연변에서 학교 다닐때랑은 달랐고 새로운 경험이였다. 한글로 수업을 듣고 시험을 보던 내가 중국어로 해야만 했고 매일매일 중국어속에 묻혀 살았다. 하지만 이런 낯선 새로운 환경도 잠시, 나는 인차 주위의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고 학교의 체육활동이나 문예활동에 적극 참가했다. 중국어가 많이 익숙해지고 능력도 올라갈쯔음 되니까 벌써 2년이 지났고 미국으로 갈지를 결정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입학초기에는 거의 모두 미국에 가기로 계획했지만 결정의 시간이 되니까 고민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미국 유학을 꿈꿔왔던 나로서는 미국에 가기로 결정을 하였다. 지난 2년동안 영어 토플시험 준비도 하고, 영어 듣기, 읽기, 쓰기는 방학동안 북경에 있는 新东方 학교에 가서 배우기까지 했었다. 

짧은 2년동안의 중국 대학생활이였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잊지 못할 추억들도 많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이 부분에 대하여 더 많이 적어보도록 하겠다.

학교 적응기 2.0. 그리고 그리던 미국에 도착하였고 미국에서의 학교생활이 시작되였다. 첫 학기에 선택한 과목은 모두 4개밖에 되지 않았다. 4개"밖에"라고 하는 이유는 중국에서는 한 학기에 7,8개의 과목들을 선택하여 들었기때문이다. 하지만 더 적은 수량의 과목들 때문에 거의 날마다 밤을 새야만 했다.  매개 과목에 해당하는 임무, 팀 프로젝트, 퀴즈/시험 때문에, 그리고 영어에 아직 100%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열심히 해야만 했다. 기중시험이 어떻게 다가오고 기말시험이 어떻게 다가왔는지도 모를 지경으로 바삐 보냈다. 이런 새로운 학습환경 외에도 집을 세맡고 밥을 해먹고 하는 등 일상 생활의 문제도 많았다. 유학생활이 처음이였고 낯선 곳이였으며, 모든게 새로운 도전이였다. 

젊었을때의 고생은 돈을 주고서라도 못산다고 했던가. 학업과 생활에서 마주치는 어려운 상황들은 나를 단련시켜 주었다. 나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영향을 미친 깨달음도 이때에 직접 경험하면서 터득하였던거 같다. 그것은 바로 상황이 아무리 힘들고 불가능할것 같아 보여도 절대 미리 포기하지 않는것이다. "참고 견디며 부딪혀라, 1년만 지나고나면 지금 이 상황을 이겨냈음에 자신한테 감사할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본 경험에 의하면 모든 시련이나 난관이 나의 한계를 넘어서서 감당할수 없을 정도로 과하게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아주 힘들어 보이고 감당할수 없을만큼 커보이는 것들도 1년, 2년 뒤에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니였음을 깨닫게 될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도 나한테 큰 울림을 주었다.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럼 당신은 정말로 잃을게 없다". 지금 내 눈앞의 상황이 어렵거나 창피하거나 혹은 남들의 비웃음을 살수 있을 때마다 나는 이 명언을 떠올리면서 부정적인 생각들을 긍정적인 생각들로 바꾸어 버렸다. 나 자신을 공제할수 있는 이런 생각과 능력을 빨리 깨달은 것에 감사하다. 지금까지 내가 낯선 미국땅에서 디자이너로 발 붙이고 살수 있는데 큰 도움이 되였던거 같다. 사람마다 이렇게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면서 깨닫고 자기것으로 만들어 버릴 때라야만 명언이나 좋은 생각들도 그 효과를 100% 발휘하여 한사람의 인생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거 같다. 모두가 직접 겪고나서 진심으로 느끼는 자기만의 명언들을 꼭 만들기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대학 본과 졸업, 그리고 인생의 선택. 인생에서 가끔씩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타이밍이 찾아온다. 그것도 두가지가 모두 좋은 선택항에서 딱 하나만 골라야 하는 그런 상황말이다. 두가지를 다 가질수는 없다. 그리고 한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한가지를 가지지 못한데 대하여 후회하지 말고, 대신 가진것에 감사하고 만족하며 끝까지 그 길로 걸어 나가야 한다. 대학을 졸업한 시점에 나에게 두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게임 개발에 연관된 연구생을 계속하여 할것인지, 아니면 취직을 위하여 게임보다 수요가 많은 웹(网页)개발쪽으로 방향을 바꿀지. 나이가 들면서 아는것도 많아지다 보면 자신의 꿈을 잊은채 더 안정적인 선택을 하는것 같다. 나도 신중한 고민 끝에 후자를 선택하였다. 게임개발의 꿈에서 웹개발로, 먼저 미국 땅에서 발을 붙이려고 취직률이 높은 업계를 선택한 것이다. 꿈에서 현실로의 선택이였다. 

서바이벌, 먼저 살아 남고 봐야 꿈도 있는것이 아닐가? 만약 내가 게임개발쪽으로 연구생을 했더라면 더 잘되였을수도 있고, 아니면 반대로 취직이 힘들어 중국으로 돌아가야 했을수도 있다. 걸어 보지 못한 길이기에 되돌려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난 내가 한 선택에 만족하고, 지금 돌이켜 보면 잘한 선택이였다. 그리고 그 길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달려왔다. 인생에 찾아오는 선택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으로 선택한 답을 보다 훌륭하게 만들수는 있다. 

취업. 우에서 언급한것처럼 미리 포기하지 않는 생각이 그 이후로도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줬다. 열심히 준비하고 두려움 없이 도전하다 보니까 길도 보이고 운도 따라 주었다. 운도 충분히 준비하고 또 준비한 사람에게만 내려지는 보상인거 같다. 첫번째 직장을 찾기 위해서 나는 이력서를 50곳 넘게 보냈다. 대부분 회사의 요구사항에는 최소 3년 경력의 사원을 모집한다고 나와 있었지만 그 당시의 나로서는 이런걸 가려서 지원할 처지가 아니였다. 금방 졸업한 사람이 어떻게 경력이 있을수 있겠는가고 혼자서 원망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부딪히다 보니까 타이밍도 운도 나의 편이 되어 주었다. 행운스럽게 취직되였고, 감사하게도 나의 첫 회사에서 나의 취업비자까지 해결해 주었다. 지금까지도 첫 회사를 잊지 못하고 연관된 모든 사람에게 감사드린다.

취업률을 놓고 볼때 문과보다는 리과가 유리한거 같다. 물론 영어를 잘하고 문과쪽으로 잘 된 사람도 많다. 하지만 외국인으로서 컴퓨터 엔지니어/개발자, 수학, 과학 등 STEM쪽으로 취직이 잘되고 있는것은 사실이다. 

직장생활. 2013년 첫 회사에 취직하였고 지금까지 3개의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경력을 쌓았다. 또한 5년이란 시간동안 웹 개발자에서, UX/UI 디자이너로 직무를 바꾸었고 지금은 더 좋은 사용자 경험을 창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꿈이 생겼다. 기술과 디자인 등 여러분야에서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에서 많이 보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더 많은 경력을 쌓고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회사를 차리는것이다.

언젠가 꼭 이룰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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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범이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들을 글로 적습니다. 때로는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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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하는 이 구절을 읽는데 왜 좀 맘이 뭉클하죠! 북경생활 10년, 미국 생활초짜~ 고중이후로 서른이 되기까지 외지/타향에서 많이 살고 새로운걸 경험하고 있는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적 있는가? 글쎄, 글로 뭔가를 기록하고 전하겠다고는 늘 생각했으나 고향건설에 책임감을 가지고 동참해보려던 적은 있었는가? 싶네요. 아무쪼록 꿈을 응원하고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는 마인드는 좋은거 같네요.

  2. 댓글에 괄호를 넣으면 발신된 뒤 마법처럼 사라지네요 ~ 몇번을 경험했지만 자꾸 까먹고 그 부호를 쓰네요 ㅋㅋㅋ ㅠㅠㅠ 감명깊었던 그 구절은 마지막 말 , 많이 보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경력을 쌓고 언젠가 고향에 가서 창업할것이고 그 꿈이 꼭 이뤄지기 바라는 그 구절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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