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다니던 시절, 한때 중국의 페이스북이라 불리웠던 Renren (人人网, 옛 이름은 校内网)을 지금의 위챗처럼 사용했었다.
1일 n포스팅을 했다는 게 과장되지 않은 정도로 상태메시지, 사진, 글을 많이 올렸었기에 다시 들어가서 오글거리는 추억을 회상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현재 Renren에는 아이디/비밀번호 찾기 공능이 사라졌다.
앱도 2년전 쯤 업그레이드를 했었던 것 같은데 다시 찾아보려 하니 지금은 앱스토어에서 검색이 되지 않는다.

이렇게 또 한번 싸이월드(중국버전)의 아픔을 겪게 되는군.
몇년 전에 한번 Renren에 들어가 이것 저것 확인하다 사진 몇 장을 찍은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라 핸드폰을 열심히 뒤적였다. (그땐 비밀번호 찾기가 가능했는데 그 공능이 사라질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기에 미처 계정정보를 따로 저장을 하지 않았다.)
다행이다, 위챗 모멘트를 뒤지다가 Renren 상태메시지를 찍은 사진 몇 장을 발견했다. 스크린샷 말고 컴퓨터 화면을 직접 찍은 거라 화질은 애매하지만, 그래도 나의 10대 마지막 발자국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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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 4일,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당신의 꿈이 허황하다고 비웃는 자가 있으면,
그 꿈을 이룬 후의 당신의 모습과,
예전에 당신을 비웃었던 사람의 표정을 상상하라.
그 짜릿함이 없다면 그건 꿈이 아닌 평범한 일상인거다.
그 짜릿함을 위해 노력을 계속한다면, 어느 날 당신은 그 꿈 근처에.
누가 내 꿈을 비웃었지? 그때 나의 꿈은 뭐였을까? 전혀 기억이 안 난다. 시간으로 대략 짐작을 해보면, 난 한국유학을 잠깐 고민했었거나, 혹은 바로 취직을 할 계획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의 난 현재 남자친구와 나름 행복하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비록 같은 해에 헤어졌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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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24일, 이른 저녁부터 무슨 고민이 있었나 보다.

99%의 现象이 1%의 자기암시 때문에 단순한 表象으로 될 수도 있다?
그게 主动적인 자기암시라면 좋으련만 被动적, 무의식의 强迫에 끌려가는 것이다 보니 적응이 안 된다.
마지막 胜负는 어떻게 될지 뻔하지만 잠깐 머리를 복잡하게 할 필요성도 있는 듯.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가 이렇게 두가지 언어를 섞으면서 뭔가를 썼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역시 뭘 생각하며 썼는지 기억이 안 난다. 2011년 여름이라면 내가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인데 굳이 금방 시작한 언어공부 때문에 저렇게 “심각한” 글을 쓴 것 같지는 않고. 댓글이 7개 달린 상태메시지라 무슨 내용이 담겨있는지 궁금하지만 도무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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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0일, 감성이 폭발하는 새벽이다.
흙길을 걸었든 눈길을 걸었든,
가만히 누워 있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든
굴러다니던 돌멩이 하나에 발을 헛디디든
그 과정들이 없었더라면
내가 어느만큼 잘 걷느냐를 알리가 없겠지.
기숙사에서 핸드폰으로 쓴 건지, 아니면 방학이라 북경을 떠났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 시간대에 난 아마 KSC를 그만두면서 슬슬 조선족 모임에 참가하지 않게 되었고, 또한 역대급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짧은 연애를 그만두는 과정에 다시는 조선족 남자를 안 만나겠다는 결심을 했었던 것 같다 (그 편견은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결국 지금은 “자신의 뺨을 때린 격으로” 조선족과 아주 행복하게 잘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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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7일. 역시 생각이 많아지는 늦은 밤이다.

해석이 귀찮을 때 우리는 타협을 한다.
그러나 타협을 하게 되면, 내 마음 속 상대방의 비중은 천길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괜찮다.
해석과 타협 사이에는 침묵이라는 어중간한 지역이 있으니.
멸망하든 폭팔하든 난 이제 해석 따윈 질렸으니까.
알 사람은 알고 모를 사람은 알 가치 조차 없고
분명한 건 6시간 뒤에 기상해야 할 내 운명.
Wifi만 끄면 쥐 죽은 듯 고요해지는 밤이 나는 좋다.
또 뭐가 억울해서 이런 상태메시지를 올렸던 것일까? 생일이 안 지났으니 아마 19살 막바지 파티생활(?)을 즐기고 있었을 거고, 한국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다들 너무 좋은 분이셔서 행복하게 일을 했던 좋은 기억만 남았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는걸 보아하니 또 나 홀로 속에 억울함을 묻어뒀다가 잠에서 깨는 순간 깡그리 잊어버리는 짓을 했겠지.
상태메시지 몇 개를 다시 읽었을 뿐인데 거의 망각됐던 추억들이 다시 살아난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글이면 뭐 어때, 이렇게 추억을 회상하면서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자료는 많이 남겨두는게 좋은 거니까.
2032년의 난 위챗, 인스타그램, 그리고 우리나무를 뒤적이고 있을 것 같다.

런런이 아직도 살아 있다니~~아이디랑 비번이 기억나지 안는다는
분명히 2년전까지는 핸드폰 번호로 들어가는게 가능했던 것 같은데 너무 아쉽 ㅠㅠ
아… 런런에 수혀니처럼 추억이 많지… 난 아쉽게 비번이랑 아이디 까묵어서 영원히 그대로 봉쇄됐다는 ㅠㅠ
일년전인가 우연히 한번 로그인해서 글들만 일부 복제해서 남겼다는, 오그라드는 글도 적지 않았지만 그래도 통째로 날린 라이에 비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
정말 괴롭음다… 대학교 모든 추억이 담긴 곳인데… 나름 허접하지만 꽤 끄적인 글도 많고 사진도 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 휴
네 예전에 핸드폰 번호로 계정 비밀번호 찾기랑 가능했었는데 왜 이젠 안되는지 모르겠네요…
언젠가 다시 핸드폰 번호로 계정/비밀번호 찾기가 가능하길 바랄 수 밖에… ㅠㅠ
그 꽤 오래 지속된 편견의 실체가 뭐얐던지 궁금함다 ㅎㅎ
그냥 우리끼리 흔히 얘기하는 연변 남자들을 만나면 스트레스 받는 이유들과 큰 차이가 없었던것 같슴다ㅋㅋ 나중에 그건 정말 “케바케 사바사”라는 걸 알아가면서 자연스레 편견을 깨버렸구요 ㅎㅎ
그 우리끼리에 남성들은 속하지 않는거 같아가지구, 어떤 것들이 ‘흔히 얘기되고’ 있는지 ㅎㅎ
대남자주의/双标, 술담배를 즐기고 술모임을 좋아하는? ㅋㅋㅋㅋ 정확한 이유가 기억은 안 나지만 한때는 내 인생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되겠다 라고 생각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후에 돌이켜보니 다른 사람 문제가 아니고 제가 바랐던 만큼 우수한 사람을 끌어당길 능력이 없었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자신에 대입해서 반성해 봤슴다 ㅎㅎ 확실히 조선족은 여자분들이 더 우수하고 생존력도 높고 그렇다고 생각함다. 수현이는 충분히 우수하지므.
어제 글보구 로그인 시도하다가 아이디랑 비번 도저히 생각 안나서 못 들어갔다는 ㅠㅠ
저도 지금은 다시 들어갈 수가 없어 많이 아쉽습니다, 그때 사진이라도 더 많이 찍어뒀을걸 하면서. 아직 회사는 망하지 않은 것 같으니 나중에 기회가 다시 생기면 제대로 훑으면서 저장할 예정입니다 😀
오글거리니까 청춘입니다. 기록이 있는게 어딘가요. 불 지르고 야반도주한 중국 싸이월드가 생각나네요.
런런회사가 망하지 않길 바라면서 가끔씩 앱스토어에도 들어가서 검색해봐야겠습니다 ㅠㅠ
수현님 이렇게 또 저의 흑역사를 소환시키는군요, 싸이월드에 올렸던 저의 사진들이 스쳐지나감다 … 앞머리 텁숙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찍었던 🤳🏻 왜 그래구 다녔는지 모르겠슴다 😂 메신저 상태메세지며, 노트에 적었던 감성글이며 … 소름끼침다 🥲 추억으로 묻어두겠어요 …
중2스러운 흑역사가 없다면 완전한 10대 생활을 보냈다고 말하기 어렵지요 ㅋㅋㅋㅋ 싸이월드 사진들… 저도 그런 포즈로 사진 꽤나 찍었던거 같슴다😂😂 혹시 몇십년후에 그런 느낌 사진들이 다시 트렌드가 될지 모르니까 찾을수만 있다면 저장합시다 🤣
오~ 10년전에 Renren을 무슨 인스타처럼 사용하고 있었군요. ㅋㅋㅋㅋ
사진도 글도 참 많이 올렸었던 기억이 납니다 ㅋㅋㅋ 그땐 Renren이 탑이었죠 ㅋㅋㅋㅋ
나는 예전에 런런자료들 다 지웟었던것 같애. 몇년후에 다시 보면 너무 창피할것 같애서 ㅋㅋㅋㅋ. 저때 런런을 통해서 수현을 알게 됐었는데.😀
서로의 흑역사를 실시간으로 봤었지요 ㅋㅋㅋㅋ
우리때는 校内网이라고 했는데 ㅋㅋ 글보구 다시 생각나서 들어갈려구 하니까 여기(미국)에서는 사이트가 안열리네요…
네 2009-2010년 사이에 이름이 바뀌어진것 같습니다 ㅎㅎ 중국에선 아직까지 사이트가 열리긴 하지만 계정 되찾을 방법이 없으니 안 열리는것보다 더 답답하군요😭
아이디랑 비밀번호힌트를 다 적어놓는 이상한 습관이 있어서 찾긴했지만 안들어가지니 답답하긴 마찬가지예요 😀
와… 제가 대신 로그인해주고 싶… ㅋㅋㅋㅋㅋㅋ
그런방법두 있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