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엔 박사논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1차 심사 전에 나는 주구장창 기도했다

하느님 저에게 이 논문을 완성할 수 있는 지혜를 선사해주십시오

하느님 저를 진리에 이끄는 길로 향하게 해주십시오

하느님 저를 이러한 작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부여해주십시오

신은 나의 요청을 진지하게 들었는지

논문을 완성하도록 지혜의 문을 열어주셨고

진리를 향한 길을 제시하였으며

버거움을 견뎌낼 수 있는 건강한 정신상태를 유지시켜주었다


2차 심사 전에 나는 여전히 기도한다.

하느님 심사위원분들께서 제 논문을 정직하게 지도해주시게끔 안내해주세요

하느님 심사위원분들께서 제 논문에 들어 있는 진리 추구의 계기들에 대해서는 알아봐주시도록 안내해주세요

하느님 제가 발표할 때 유창하고 명료하게 논문의 요지들을 전달할 수 있겠끔 명석한 사로를 제공해주십시오 

이번에도 신은 나의 요청을 그대로 들어주셨다

심사위원님들은 일말의 아낌 없이 나의 논문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털어 놓았다. 

심사위원님들은 내가 무엇을 기획하고 있고 결국 무엇을 의도하고자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빛나는 부분들이 논문에서 더욱 명료하게 전달 되지 않아서 아쉬워했다.

그러므로 아무리 발표를 유창하고 깔끔하게 진행하여도 논문을 통과해주시기엔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나의 기도들은 전부 실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졸업을 간절히 바라왔지만 단 한번도 '논문을 통과하게 해주십시오', '졸업하게 해주십시오'와 같은 목적지향적인 기도를 한적이 없다.

내가 드린 요청들은 오로지 지혜의 빛, 진리의 길, 몸과 마음의 에너지, 용기, 올바름, 정직함 따위의 것들이다.

만일 논문 통과가 신의 의지이자 기적이라면, 논문 미통과 또한 다름아닌 내가 신에게 요청드렸던 정직한 결과였던 것이다.


다만 나는 내가 충분히 총명하지 못하여 모든 심사위원님들의 기대를 부응할 만한 논문을 작성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 미안할 뿐이고

그토록 멍청한 두뇌로 단지 열정과 사랑으로만 이토록 어려운 학문을 추진시켜온 노고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조금 아주 조금, 슬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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