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전에 탈북작가 김유경의 소설 ‘청춘연가’를 읽고 썼던 독후감을 올려봅니다. (스포 有:독후감인지라 책의 줄거리가 대량 포함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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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가 언젠가는 언니들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기회가 된다면 어려서 제대로 알지 못했던 그녀들의 말을 다시 듣고 조금 더 언니들을 알고 싶었다. 그런 바램에도 불구하고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끔 하던중 북한 작가 김유경이 한국에서 발표한 첫 소설인 『청춘연가』를 읽게 되었고, 펼쳐든 이야기속에는 온통 언니들이었다.
소설은 정선화라는 여자를 주인공 자리에 두고 그들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국가적 규모의 재난을 피해가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앓아 누운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선화는 중국에 팔려가고 그 곳에서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으며 치욕적인 날들을 보내던 중 딸을 출산하나, 간신히 홀몸으로 탈출하여 한국에 온다. 하나원에서 만난 동기들인 복녀와 경옥과 자매 못지 않은 정을 나누며 한국생활에 적응해가고 이제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보려고 하던 찰나에, 삶은 선화를 또 하나의 막다른 골목으로 내던진다.
내던져진 자리
하나원으로 가기 전, 조사기관의 담당자가 묻는 탈북 동기에 선화는 말문이 막힌다. 선화를 엘리트라고 지칭하며 체제에 대한 환멸이나 자유에 대한 갈구를 탈북이유로 묻는 담당자 앞에서 선화는 아스라한 벽을 느낀다. “저도 제 인생이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잘 모르겠어요.” 혼잣말 같은 주인공의 대답에서 많은 탈북민들의 처지가 대변된다. 그들은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삶이 내던진 자리에서 이리저리 앞으로 떠밀려 갔다.
북한에서 대학 교수인 아버지와 알뜰한 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곱게 자라 중학교 수학교사가 된 정선화는 어느날 갑자기 떨어진 ‘고난의 행군’의 날벼락을 맞는다. 인생에 자기가 만든 계획이란게 있을 수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나 그 중에서도 유난히 잇속을 차릴줄 모르는 이 가족은 그럴 필요조차 애써 외면한채 늘 해왔던 듯이 그저 묵묵히 국가의 수습을 기다리다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스러져간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큰 고생을 모르고 자란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어느 방향으로 던져질지 알지 못했다. 바보같이 고지식하고 수선화같이 고운 이 여자가 잘못한게 있다면 북에서 태어난 것이다. 아픈 어머니를 위해 팔려간 것마저 어찌보면 선택은 아니었다. 가만히 있으면 어머니도 자신도 모두 굶어죽을 판이었으니, 선택 아닌 체념을 한 셈이다.
사는 외양이 어떠하든, 신념하는 바가 무엇이든, 운명 앞에서 인간의 처지는 대개 바람 앞에 놓여진 촛불과 같이 어쩔 수가 없다. 북한에 비하면 자유의 땅인 중국에서도 선화의 처지는 자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중국남자에게 팔려 가고,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끊임없는 수모의 날들이 이어졌다. 운명에 머리를 숙이는 척이라도 하면 그래도 조금은 나를 선대해줄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자신의 형에게 선화를 내어준 중국남자는 그녀를 물건으로 취급했고, 아비를 알 수 없는 딸이 태어난다. ‘임신이 행복한 것은 임신의 요인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행복의 근원일 때 가능하다.’고 선화가 훗날 기억했듯이, 어느것 하나 선택한 것이 없었고 원치 않았지만 입덧을 들키고 결국 딸을 출산한다.
탈북민들의 사연에는 가장 기구하다는 것이 없다. 더 기구한 사연만 있을 뿐이다. 하나원 동기인 경옥과 복녀는 또 어떤가. 그저 천성이 유쾌하고 선화만큼 민감하지 않아서 자신의 과거를 때론 농담처럼 또 어떨 때는 남말하듯이 훌훌 입밖으로 낸다 하여 그것이 그녀들이 선택한 삶은 아니었다. 스무살도 안돼 노래방에 팔려 세상보다 먼저 남자를 알게 되고, 팔려간 곳에서 도망해봤자 그곳에서 또 팔려가는 비극이다 못해 참극인 경옥과 복녀의 과거, 그녀들 또한 그저 북에서 왔다는 이유로, 마치 날때부터 그런 취급을 받아도 되는 사람들처럼, 내던져지고 짓밟혔다.
선화의 삶을 읽는 많은 대목에서 나는 종종 ㄱ언니를 떠올렸다. 머릿속에 각인된 ㄱ언니의 첫인상은 날씨가 쨍하게 개인 어느 늦은 오후, 남의 나라의 작은 마을의 오래 된 2층집 앞 잔디에 누워있는 모습이다. 그녀가 코리안이라는 집주인의 소개에 남한에서 온 줄로만 알았는데 며칠 후의 대화를 통해 뜻밖에도 북에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에서 나서 자란 조선족인 나는 그녀에게 마음이 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고 재빨리 그녀와 친해지게 되었다. 구김없어 보이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나와 같은 민족의 서른 남짓한 여성이 그토록 많은 일을 겪을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탈출, 중국에서의 삶, 또다시 탈출. 그런데 어찌하여 한국에 안가고 이곳에 오게 되었냐는 나의 질문에 ㄱ언니는 자신이 이 나라를 선택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주어진 선택의 권리
운명에 내동댕이쳐진 인간에게도 신은 보편적인 배려를 주었으니 그것이 바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였다. 그저 운명의 꼭두각시가 아닌, 그래서 가끔은 나의 삶을 내가 좌우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을 주는 것, 그것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였다. 청춘을 저당잡히고 수년의 고달픈 인내 끝에, 첩첩관문을 뚫은 자에게 내려진 상처럼 그녀들에게 그런 권리가 주어졌다. 내가 만났던 ㄱ언니는 터널같은 어두움의 연속을 거쳐 그 권리를 가지게 되었고 자기가 살아갈 나라로 자유의 나라를 선택하였다.
선택한 그 나라에서 ㄱ언니는 매일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하루에는 아르바이트, 학교수업, 숙제가 있었으며 차가 없는 나를 태우고 한인마트에 장보러 다녀오는가 하면, 북에서 온 대학생의 운전연수를 도우러 한시간 거리의 타 도시에 다녀오기도 했다. 공부를 열심히 하여 나중에 민족을 위한 일을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 모습들은 선화나 복녀의 모습과 겹친다. 둘은 너무 일찍 모진 세파에 부대낀 경옥을 핏줄을 나눈 자매처럼 아꼈고 경옥의 일에 마음을 썼다. 몰라서 무서운 세상에서, 얼른 자신의 것을 쌓고 싶어 마음이 급한 경옥이 외딴 길로 들어서자 둘은 경옥 걱정에 애가 끓는다. 주어진 자유 앞에서 내 살기에만 급급한게 아니라 이타적인 태도를 선택하는 그녀들은, 오히려 남을 향해 베푸는 사랑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는 듯 보인다. 줄 수 있는 자유, 그럴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것은 상처투성이인 마음에서 새살이 난다는 것이니까.
소설에서 읽었던 그들의 선택의 몸짓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일을 찾아야 했을 때 선화는 밥벌이를 위한 일보다 기쁨이 되고 활력이 되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행복이 탐이 났다.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 어디엔가 그런 기회가 숨어있을 것 같았다.” 생의 막바지에 선화는 죽어도 떠올리기 싫던 중국땅에 두고온 딸을 그리워하고 온전히 스스로의 선택으로 중국땅을 다시 밟는다. 또 새로운 삶의 터전인 한국에서 묵묵히 옛 사랑인 선화에게 순정을 바칠 것을 선택한 성철, 작정하고 떠났다가 선화가 아프다는 소식에 돌아온 경옥, 그리고 자신에게 의리를 지켰던 중국남편을 한국에 데려와 여생을 함께 하겠다고 하는 신영애도 있다. 그리고 복녀, 중국남편의 집에서 탈출하면서도 그녀는 거기서 낳은 딸을 데리고 온다. 딸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위해 딸에게 새로운 출신을 부여하기로 선택할 때, 그녀의 말은 처연하면서도 결연하다. “그때 우리 청이를 둘러업고 도망칠 때 그 집에 대구 침을 탁 뱉구 돌아서구 나니까, 그동안 겪은 일이랑, 그 새끼 얼굴이랑 싹 잊어집데. 그렇채이쿠, 그 새끼는 절대로 우리 청이 애비가 아니짐.”
어쩔수 없었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맘먹기에 달렸고 하루하루를 행복해질 선택을 할 수 있다고 그들은 속으로 되뇌이지 않았을까. 어찌보면 지난 날의 지옥같은 기억을 잊기 위해 그렇게라도 서둘러 스스로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어쩔수 없는 일이었을지라도, 선택의 권리라는 힘있는 이름을 붙여봐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경계인의 역할
책을 읽고나서 조금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윤재호 감독의 영화 『뷰티풀 데이즈』를 찾아보았다. 탈북여성인 주인공의 심리가 궁금해서 본 영화에서, 의도치 않게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조선족이었다. 영화에는 조선족 사내 두 명이 나온다. 한명은 그녀를 끝없는 고통으로 밀어넣고, 또 다른 한명은 상처받은 그녀를 보듬는다.
그간 탈북민에 관한 많은 화제에는 조선족이 빠짐없이 등장해왔다. 뉴스에서도 그렇고 대중매체에서도 그러하다. 탈북민들의 증언에서도 그렇다. 그들이 말하는 조선족 중에는 가해자의 얼굴을 한 사람들도, 베푸는 손을 내민 사람들도, 수수방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의 체제를 탈출하여 다른 세상으로 건너온 탈북민들에게 사회주의를 내세우는 중국은 아마 그렇게 어렵지 않은 곳으로 생각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내던져진 중국은, 그 곳에 사는 같은 핏줄인 조선족들은 이미 경계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조선어도 쓰고 중국어도 쓰는 경계인, 사회주의도 배웠으나 자본주의에도 노출된 경계인이었다.
『청춘연가』에서 많이 언급되지 않았으나, 그들의 탈출과 중국생활 그리고 한국에 오기까지의 과정에도 분명히 조선족이 어떤 역할로든 개입을 했을 것이다. 그들을 팔아넘긴 브로커일 수도 있고, 돈을 주고 그들을 산 사람들일 수도 있다. 이런 경계인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나 스스로도 조선족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니들’이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20여년 전의 중국에서 내가 만났던 또 다른 ㄴ언니가 있었다. 나는 언니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던 것 같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건넸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ㄴ언니는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언니에게 나는 어떤 역할이었을까.
그래서 ㄱ언니를 만난 곳이 중국이었다면, 나는 그녀에게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생각을 해본다. 한국인도 아니고 북한인도 아닌, 중국에서 태어난 조선족인 내가 ㄱ언니와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곳이 우리 모두가 이방인인 다른 나라였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청춘이라는 연가
『청춘연가』의 정선화는 외모와 지성의 출중함과 돋보이는 인품을 갖춘 여성이다. 그런 그녀는 보편적인가. 정선화라는 주인공의 특별함이 살아 있는 원형을 모델로 작가가 부각한 것인지, 아니면 쉬이 감동하지 못하는 현대인을 향한 배려적 장치인지는 알길이 없다. 특별하고 소중하지 않은 인생이 없겠으나, 우리는 종종 아름다운 것의 추락에 더욱 마음을 쓰게 되니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정선화의 특별함 그리고 그녀의 ‘청춘연가’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그땅의 생명을 대표한다. 타인의 눈에 특별할게 없을지라도, ‘내’게만은 소중한 ‘나’의 가족, ‘나’의 청춘 그리고 추억이다. 모래가 씹히는 삶 속에서도 가늘게 행복은 자취를 남기며, 삶은 누구의 평가나 상대적인 비교가 중요한게 아닌 ‘나’에 의한 풀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정선화는 동시에 경옥이며,복녀며 또한 내가 만났던 ㄱ언니고 ㄴ언니다.
ㄱ언니는 자신이 선택한 나라에서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ㄴ언니가 어찌 되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선화의 길을 갔을지, 경옥의 길을 갔을지 아니면 복녀의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들은 바가 없다. 이 책을 통해 ㄴ언니가 살았을 수많은 가능성들을 상상해볼 뿐이다.
약 십년 전에 한국에서, 잘 만들어진 북한 관련 영화를 보고난 탈북민의 감상이 수년이 지나도록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가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아줘서 감사해요.” 내던져진 자리에서 일어나 선택하는 삶을 사는 그들, 아무도 그들을 웃을 자격이 없다.
2020.10

뷰티풀 데이즈 저도 봤었습니다.
내던져진 자리에서 일어나 선택하는 삶을 사는 그들, 아무도 그들을 웃을 자격이 없다-인상적입니다.
저는 이 책 읽고나서 뷰티플데이즈 봤어요. 책 읽고 영화보고나니, 한 일주일동안 저분들이랑 함께 산 느낌. 오래된 글에 공감해줘서 고마워요 여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