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였습니다, 그 온돌 …
ㅡ “엄마의 온돌” 을 읽고서
김연
어느때부터 내렸는지 창밖에는 눈들의 춤사위가 한창이다. 난분분, 난분분 떨어지는 저 눈송이들을 바라보노라니 겨울은 결코 춥고 외롭지만은 않은 계절인것 같다. 펑펑 뚫린듯한 저 하늘에 누가 불을 지폈나? 어린시절 엄마가 부엌아궁이에 불을 피우면 온기가 따스하게 올라오던 온돌마냥 하늘은 지금 붉으스레한 빛으로 그윽히 바라보는 이 내 한 가슴을 녹여주고 있다.
눈물없이 볼수 없는 영화가 있다고 했다.
그리고 눈물없이 볼수 없는 드라마도 있다고 했다.
또 그리고 눈물없이 볼수 없는 책도 있다. 바로 얼마전에 완독한 김현철씨의 “엄마의 온돌”이라는 제목만 봐도 마음속에서 난류가 잔잔히 흐르기에 충분했던 책이다.
나보다 먼저 책을 받아 읽어본 사람들은 앞의 몇장만 읽어도 벌써 눈물이 나서 도저히 읽어 내려가지 못하겠다며 ‘하소연’ 하였다. 정말일가? 설마설마하며 나도 책을 펼쳤다. 그리고 내 눈에 안겨오는 첫 글귀가 ‘엄마는 오늘 가시지만 나는 엄마를 보낼 수 없다.’ … … 슬픔이 절절하게 묻어있는 이 한 줄이였다.
몇초동안 마음이 먹먹했었다. 그리고나서 스밀스밀 저려오기 시작하였다…
책을 다 읽고 나는 간간히 위쳇에서 사진으로만 보았던 현철씨를 떠올렸다. 엄마를 보낸지 일년이 넘은 시간이다. 아마 지금쯤은 그래도 엄마를 보낸 아픔속에서 많이 헤여져 나왔을테지? 그리고 이젠 엄마의 아들보다도 한 여자의 남편으로 한 아이의 아빠로 씩씩하게 매일매일을 맞이하고 있을테지? 엄마를 보내야만 하는 보낼수밖에 없었던 암담한 현실속에서, 아들로서도 어쩔수 없었던 그 막막한 나날들속에서도, 한글자 또 한글자 엄마와 함께 했던 지난 세월들과 차마 생각만으로도 가슴 허비는 아픔들을 써낸 현철씨… 탄복이 아니가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것은 엄마가 아팠던 그 시간들에 아들인 현철씨가 자신과 싸웠던 또 다른 아픔이였고 그렇게 치열하게 아팠기에 이 책은 지금 조금씩 나아갈수 있는 치유의 방법이였고 오직 현철씨만의 엄마에 대한 효도가 아닐가 생각한다.
한번도 뵌적이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현철씨 어머님이 떠오른다. 지극히 평범하고 또 평범한 엄마였다. 어렸을 적부터 풍요롭게 살아온적이 없었던 분, 가시는 날까지 모든 사랑을 깡그리 쏟아부으시고 한복차림으로 곱게 떠나셨다. 이럴땐 하늘이 참 불공평하다고 한마디 하고싶다. 어찌 이토록 착하시고 온 몸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가정을 사랑하고 어쩜 사랑밖에 없으신 마음 여린 이 분을 데려갈수 있는지? 어찌 아직도 이 생에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 그토록 많고 또 하고 싶은 일들도 그토록 많이 남은 이 분을 데려갈수 있는지… 엄마 나이 53세다. 살아온 날들에도 부끄럼 없이 희생적인 엄마였다면 이제는 이 세상의 향락을 누리며 복 받으며 살아가야 될 엄마를 하늘은 머가 그렇게 시샘이 나고 불만이였는지 무정하게 데려가고 말았다. 이제 이 세상엔 남편이 안해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과 아들이 엄마에 대한 가슴 절절한 보고픔만이 더해졌다. 그래도, 그래도 엄마가 반듯하게 훌륭하게 잘 키운 아들이 있어서 이렇게 따뜻한 온돌에 우리 모두를 청하여 소박하고 억척스럽게 살아간 한 여인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지만 이렇게 엄마의 한평생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수 있는 자식은 또 몇명이나 될가?
그래서 이 책을 통하여 비록 떠나셨지만 또 한분의 “엄마”란 이름으로 살아온 한 여인을 알게 되였다.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기꺼이 가냘픈 그 몸으로 모든 희생을 감당하시고 “암”이라는 악마와 박투하시면서도 끝까지 병상에서도 흐트럼없이 살아오신 강인한 엄마였다. 그 분은 한 여자로 살아오기전 가정의 평화를 위하여 묵묵히 쓰고 떫었던 모든것을 감내하고 삭이며 살아 온 소박하고 알뜰한 안해였다. 아들이 있으면서부터는 엄한 엄마이면서도 모성애가 각별하셨던 엄마였다. 또한 일년이 조금 더 되는 시간이였지만 최선을 다하여 사랑을 쏟아주신 할머니였고 며느리손에 물 한방울 묻히게 하지 않을만큼 며느리에 대한 사랑 또한 지극하셨던 시어머니였으며 자신 또한 80고령의 늙으신 시어머니의 가슴속 유일한 며느리였다. 한국에서 일하셨을때 함께 지냈던 동료들과 사장님이 다시다시 찾았던 우애가 돈톡했던 믿음직한 친구이자 직원이였고 친형제자매들에게도 혹 루가 되지 않을가 마음을 쓰며 살아오신 분이셨다. 이렇게 많고 많은 이야기와 엄마의 흔적들로 온돌은 조금씩 더 뜨거워나고 있다.
누구나 다 한 번 왔다 가는 이 세상이다. 올때는 선착순위가 있었지만 갈때는 예고도 없이 떠나는 길이기도 하다. 그 길에 서서 떠나가는 사람을 배웅하는것이란 또한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영별 ! 언제 들어도 가슴 섬뜩한 단어이고 가슴이 지지리 아픈 단어이다. 나는 이 책을 읽을면서 나젊은 엄마가 투병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지만 매일 그 모습을 보면서도 어떻게 하면 엄마를 살릴수 있을가, 더 편하게 고통없이 아픔이 없이 해드릴수 있을가 생각하며 수많은 낮과 밤을 태웠을 현철씨가 안타까워 더 많이 운것 같다. 나도 자식이니깐! 부모마음 똑같듯이 자식 마음 또한 똑같지 않을가?
어찌 보내드렸으랴…
아~ 어찌, 어찌 보내드렸으랴…
온 몸의 힘을 다해 창문에 기대여 아들의 뒷모습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며 잘 가라는 한마디를 겨우겨우 말씀하시는 불쌍한 엄마를 어찌 보내드렸으랴…
곧 운명하시면서 애써 눈을 뜨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을 그토록 응시하며 가슴에 새기고 가는 엄마를 어찌 보내드렸으랴…
아직도 온기가 있어 꼭 살아계실것 같은데 찬바람 매섭게 불어대는 음침한 차거운 복도에 홀로 두고온 엄마를 어찌 보내드렸으랴…
그 얼마나, 그 얼마나 가슴이 찢어지고 아프고 또 아팠을가…
내 부모님이 떠나실제 나는 또 어떻게 보내드릴수가 있을가? 이렇게 말하면 불효자식이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나는 아니 생각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생전이신 부모님께 나는 지금 잘해드리고 있는지 다시다시 생각해본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올리사랑은 없는 법이라했다. 잘하고 있노라 하지만 태없이 부족함을 알고 있다. 하지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부모님 가시는길에 하나라도 덜 후회하려고 나는 애쓰는중이다. 결국 효도란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일인것 같다. 부모님 령전앞에서 땅을 치며 통곡하노니 살아계실때 하나라도 소소한것이라도 잘하자…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어느새 이런 나이가 되여가는구나 하는 섭섭함도 없지않아서 말이다.
ㅡ 현철씨, 현철씨 엄마의 온돌에서 많은것을 가슴에 담고 갑니다. 현철씨의 어머님은 훌륭하신 분이셨고 그 손끝에서 자란 현철씨 또한 훌륭한 분이라고 믿습니다. 산을 좋아하시고 들을 좋아하시고 꽃과 풀마저 사랑하셨던 현철씨 어머님은 아마 또 어딘가에 훨훨 나르셔서 한송이 이름없는 꽃으로 조용히 향기를 피여 올리고 있을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 또 하나의 언덕을 넘어서고 한구비 또 한구비의 인생길을 지나다보면 꼭 그 꽃을 만날것입니다.
ㅡ 현철씨, 현철씨 엄마의 온돌은 참으로 따뜻하였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눈은 아직도 내리고 있다. 쉬임없이 , 쉬임없이… 더불어 하늘의 온돌은 여전히 따뜻하게 피여오르고 있다.
2019년 12월의 어느 눈 내리던 밤…
작품도, 작품평도 정말 文如其人이란 말이 딱 들어맞습니다. 잔잔하게 스며드는 아름다운 필치로 씌여진 감동적인 작품평 잘 읽었습니다.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아는 언니가 산 책을 첫페지만 읽었는데도 눈물이 나서, 아직 감히 읽지 못하였습니다. 작가님의 서평도 읽지 못하겠습니다. 한살 더 먹으면 용기가 날까요? 엄마란 우리 모두에게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이런 진정성 듬뿍 감상평이라니. 잘 읽고 갑니다
내가 죽으면 누가 어머니를 기억할 것인가?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돌아갈수록 어머니는 점점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는 것일까? 어머니를 세상으로부터 떼어놓는다는 애도의 잔인함. 어머니를 과거 속으로 쓸려 내려보내야 하는 비통. 나는 어머니가 망각 속으로 끌려들어가 이 세상에 원래 없었던 사람인양 되어버리는 것을 그냥 냅둘 수가 없다. .
내가 어머니 이야기를 글로 써서 그것이 책으로 남는다면, 내가 죽는다 해도 적어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는 동안에는 이 책도 함께 기억될 것이고, 이 책이 기억되는 동안에는 어머니도 함께 기억될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를 위한, 아니, 나만을 위한 책을 한권을 쓰기로 했다. 상실의 슬픔은 나만의 고유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