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부2처(一夫二妻)
해방전 아빠의 할어버지는 중약방을 하는 상인으로 그 당시 부유하게 잘 살았다. 욕심도 많고 베풀줄도 아는 똑똑한 상인이였다.
딸, 혹시 아래의 오랜 흑백 가족사진(全家福)을 본적이 있나 ? 맨 아래 가운데 분이 너의 증조할아버지시다! 양쪽의 두 할머니는 증조할어버지의 2명의 아내(妻子)이다. 1부2처(一夫二妻), 지금 시대에서는 불가능 했지만 해방전에는 가능했었다.

아빠는 두분을 달리 불렀다. 큰 할머니, 작은 할머니(친 할머니) …
아빠의 할아버지, 즉 너의 증조할아버지는 20대에 결혼했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가 난산으로 죽으면서 큰 할머니는 불임증이와서 그 뒤로 아이를 임신 할 수 없었다. 그때 당시는 의학도 발달하지 않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고 다시 결혼 해서 후대를 이어가는 가능 방법이였다고 하는데 … 그래서 인천에서 온 작은 할머니가 이 집안에 소개로 들어와서 1녀 4남을 낳았다.
작은 할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총각인줄 알고 시집왔는데, 첫 애를 낳은 어느날 화려한 한복을 입은 본댁이 불쑥 나타나서 후실로 속아서 들어온걸로 알았다고 하셨다.
같이 사는동안 두 할머니는 갈등도 많았겠지만, 그사이 많은 풍파고충을 거치면서 큰 할머니는 73세, 작은 할머니는 80세에 돌아가셨다.
아빠는 두 할머니중, 친할머니이신 작은 할머니를 제일 좋아 했다. 아이때 큰 할머니는 친 혈육이 아니라는걸 알아서인지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큰 할머니가 우리를 엄청 이뻐하고 항상 갈때마다 과자랑 사탕이랑 장농에서 꺼내줬던걸로 기억이 난다. 손군들이 맛있게 먹는걸 보면서 항상 눈물 떨구시던 큰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어렸을때 왜 그렇게 매정하게 큰 할머니 한테 안기지도 않았는지 지금 생각해봐도 가슴이 아프다.
해방전 일제강점시기, 작은 할머니는 한국 인천 논현동에 있는 이씨(李氏) 부자집 규슈였으며, 존함은 "이임순"이다. 김씨 집안에 소개받아 후실로 들어 온 건 두번째 혼인이라고 한다. 첫 혼인은 시집가서 아기를 두번 낳았는데, 두번 다 영아가 낳고 얼마 안 되어 죽어서 시집에서 쫒겨나서 간도(지금의 길림성)에 가게 되었다고한다.
후실로 들어온 후 어린 딸을 이끌고 임신한 몸으로 연길에서 인천까지 기차타고 친정집에 다녀 오시다가 비행기 폭격을 맞아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어 살아나셨다고한다.

작은 할머니는 해방이후 다시는 친정집에 가지 못하였으며, 형제도 친척도 친구도 없이 … 외롭게 자식들 뒷바라지 해 주다가 후생을 마쳤다.
「 1. 우리는 어디에서 왔나 ? 」
つづく

와… 사진부터가 역사네요
오오~~~잘 읽었습니다. 다음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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