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국해방 그리고 …
딸, 학교에서 중국근대사를 배웠듯이 … 1945년 일본이 투항하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중앙인민정부가 설립되었고, 할어버지가 사시는 농촌마을도 해방을 맞이 하게 되었다.

해방 전 할아버지는 한어(汉语)를 잘 하시고 인맥(人脉)이 넓으셔서 주변 농촌마을과 소도시의 한족(汉族), 만족(满族) 상인(商人)들과 지주(地主)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인맥을 사업에 이용을 하셨다. 중약방 사업외 지주(地主)농가에서 싼값으로 쌀을 사다가 쌀상점(米行)에 도매하는 사업도 하셨는데 번창하였다고한다.
도중 동냥하면서 사는 노숙자(乞丐) 小刘子를 양자로 받아들여 장가도 보내고 사업에 동참하게 하셨다고 한다. 양자 小刘子는 힘 좋고 일 잘하는 열혈 청년이였고 할아버지 사업에 많은 도움을 주는 한쪽 팔 역할을 하였다.

새 중국이 성립되면서 토지개혁(土地改革), 계급성분 나누고(划分阶级成份) 하면서 할어버지의 사업은 폐업하게 되었고, 모든 재산과 집기, 입을 만한 옷까지 전부 당시 인민정부의 공작원들에 압수 당하였다. 양자인 小刘子는 앞장서서 공작원들을 이끌고 할아버지 사옥과 가게를 털었으며, 할아버지를 끌어내서 비판대에 올려 세우고 목에 헌신발짝을 매서 걸어주고 비판(批斗)하고 구타 하기도 하였다. 무산계급인 본인을 데려다가 머슴처럼 부리면서 착취하였다는게 그 이유였다.

할아버지 일가에게는 "날벼락"이였다.
할아버지 일가는 계급성분(阶级成份)이 중농(中农)으로 구분(划分)되었고, 지주타도(斗地主) 대회 때 항상 함께 끌려나가 투쟁 맞군 했다. 인민정부는 할아버지 일가를 왕청대대(大队)에 편입하였으며, 할아버지는 농사일을 몰라 염소사양장(养殖场) 사양원(饲养员)으로 일 하게 하였고, 두 할머니는 생산대 11대에서 채소농사 하게 되었다. 그 뒤로 인민정부는 계급성분(阶级成份)이 잘못 구분(划分)이 되었다고 판정하고 다시 중농(中农)으로 재 구분(划分) 해 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계급성분(阶级成份)은 90년대초 까지 호구부와 학교에서 제출하는 "도표"에 가족성분(家庭成分), 가족출신(家庭出身)이라는 다른 단어로 계속 등장하였으며, 우리가족은 거기에 다른 가족보다 다르게 중농(中农)으로 표기 해 넣어야 했다.
지금의 유행어로 표현한다면, 할아버지의 해방전은 "잘 나가는 시절"이였다.
잘 나가는 시절에 한어(汉语)를 모르는 두 할머니는 주변 조선족분들을 잘 대해주고 허물없이 보내는 사이여서 투쟁 맞을때에는 끌려나가지 않았다. 압수당한 옷(하얀한복)들은 주변 조선족분들이 나눠 가졌지만 미안해서 까만색으로 염색해서 입었다고 한다.
해방을 맞으면서 할아버지 일가의 악운(噩运)은 시작되었다.
つづく

다음회를 기대합니다 👍
한편의 소설을 보는듯 합니다.
해방으로 갈리는 가족의 운명..
단숨에 3회까지 읽었습니다. 다음 회도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