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벽을 바라보다가 전등을 바라보다가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다가 갑작스레숨이꽉막혀왔다. 어느사이에가슴을껴안은팔이미세하게경련을일으키고있었다. 몸이안으로오그라들고있었다. 몸의겉면은그대로멀쩡한데몸속에서피들이응고되고살들이수축되고뼈들이압축되면서딱딱하게굳어지는것같았다. 숨쉬기가가빠져왔다. 몸을이완시키며몇번심호흡을했다.
왜서였을가? 어떤 아픔들이 제대로 풀리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차라리 아픔이 가지를 뻗고 무성하게 잎을 피우도록 해주었다면, 그러다가 어느 날에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며 아픔이 락엽처럼 지도록 해주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아픔이 생기면 우리는 마음껏 앓아야 한다.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 아픔이 지닌 독기나 한기, 습기 같은 것을 심장에서 빼버려야 한다. 아픔은 외면하고 미뤄두고 묻어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응고된 것은 녹여야 하고 막힌 것은 뚫어야 하고 갇힌 것은 풀어줘야 한다.
인간은 왜 아플가? 바람이나 비나 서리나 눈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일가? 무엇이 아픔이 되는 것일가? 세상의 온갖 것이 아픔의 원인이 될 수 있을가? 인간은 누구나 다 아플가? 자기 몫의 밥을 챙겨먹듯이 자기 몫의 아픔이 차례지는 것일가? 아픔을 극복할 수 있을가? 아픔의 크기는 어느 만큼이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극한은 어디일가? 아픔은 실체가 있을가? 분명 눈에 보일듯, 손으로 만져질듯 실체감을 느끼는 것은 아픔이 관념만이 아니기 때문일가? 아픔을 건너뛸 수 있는 방도는 무엇일가? 아픔을 잊으려고 인간들은 몸을 혹사시키거나 어떤 자극을 극진히 찾아가는 것일가? 아픔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가? 비 온 뒤에 무지개가 비끼듯이 찬란한 행복이 피여나는 것일가?아니라면 무엇일가?… 물음만 끝없이 이어지고 나는 답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매일 열심히 일하여 밥을 마련해 먹으며 조용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려 한다.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빛나려고, 더 강해지려고, 더 높아지려고 욕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듯 소박한 바람을 가진 사람들에게마저 아픔은 느닷없이 그리고 자주 생겨난다. 우리는 약하기에 아픈 것이 아니다. 충분히 강하더라도 아프다. 아픔을 초월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삶은 간단하지 않고 어렵고 날카롭고 견고한만큼 우리는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실패나 상실은 아픔이다. 외로움이나 두려움은 아픔이다. 불의나 불안은 아픔이다. 가난이나 질병은 아픔이다. 공허나 방황은 아픔이다. 그리움도 기다림도 아픔이다. 때론 웃음이 가장 큰 아픔을 숨기기도 한다. 이러한 수많은 아픔에는 타인이 내게 주는 상처도 있고 내가 타인의 상처를 만지는 아픔도 있다. 스스로 주는 아픔과 아픈 스스로를 어쩌지 못하는 무가내의 아픔도 있다. 게다가 아무런 개연성도 없이 밀려오는 아픔은 또 얼마인가? 때로는 단어 하나가, 해빛 한오리가, 옷의 얼룩 한점이… 여지없이 강타해오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타인에게는 론리가 없어보일지라도 아픔은 그렇게 오기도 한다. 그것은 우리가 악하거나 거짓되이 살아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생명이 그러할 뿐이다.
우리는 삶의 비극성까지 깨달으며 아픈 사람에게 감히 아픔은 과정이라거나 그깟 아픔이라며 잊어버리라고 쉬이 말하지 못한다. 너무 잔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짚어 아픔의 크기는 느끼는 자의 몫임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타인이 내지르는 비명이나 떨림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렇게 누구의 아픔이 몸 속으로 조용히 밀고 들어오는 것이다. 아픔의 원인이나 깊이는 다를지 몰라도 아픔을 느끼고 리해하는 마음의 결은 서로 닮아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따뜻한 피와 숨결로 타인의 아픔을 느낀다. 어쩌면 타인의 아픔에 굳이 ‘내’가 아프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괜한 수고이니까. 그러나 우리는 흔히 함께 아파한다.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진지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냥 아파한다. 이럴 때면 아픔이 인간이 살아가는 자격이 아닐가하는 생각이 들군 한다.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이 고운 살결과 뜨거운 피와 단단한 뼈를 바쳐가는 일이듯이 아픔도 바쳐야 하는 것 같다. 아픔은 살아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온갖 힘을 다 내여 세상과 련계를 갖고 있으며 자기 생의 중심에 있다는 뜻이다.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버리면 아프지도 않을 것이다. 아픔과의 결별은 기실 자신과의 결별이고 세상과의 결별이다. 삶에 지극히 열정적일 때 아픔도 생겨난다. 아픔은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마음이며 싸우려는 의지이다. 현실이 주는 괴로움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흔들어주는 대로 시달리다가 만만하게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지이다. 아픔은 흔히 파괴와 고통을 동반하지만 또한 자아에 대한 리해와 인간적인 량심과 생명의 의지와 미래에 대한 믿음을 동반하기도 한다. 그것을 깨달으며 살아가고 있다면 비로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픔이 커다란 성공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각 분야의 많은 거장들의 이야기를 보면 대부분 처참한 아픔을 딛고 높고 빛나는 자리에 도달했다고 한다. 나는 소름 끼치는 아픔이 내게 주어지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를 알며 고마워한다. 만약 내게 그런 아픔이 엄습하더라도 나는 잘 감당해내고 어떤 성취를 당겨올 자신이 없다. 나는 그냥 아픔을 딛고 추락하지 않으며 아픔을 견디는 힘으로 살아가려 한다. 아픔 너머로 번쩍거리거나 달콤한 것을 꿈꾸지 않는다. 아픔을 넘어서면 또다른 아픔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픔과 공존할 줄 아는 지혜와 힘이 나를 살아남게 해준다고 믿는다. 이 땅 우에 살아남아있다는 것, 그것이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이 아닌가?
나는 이런저런 아픔들을 지나왔고 지금도 통과하고 있다. 아픔은 계속될 것이고 나는 계속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아픔의 도래에는 언제나 무력하고 무능할 것이다. 그러나 미리 겁먹지도, 랭소하지도, 불평하지도, 탄식하지도 않으려 한다. 차분한 마음으로 맞이하고 겸손하게 대하려 한다. 몸이 아픈 날이면 나는 몸 구석구석을 살폈고 병원을 찾아 각종 검사를 받으며 건강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깨닫군 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음이 아픈 날, 어쩌면 나는 지나온 걸음을 돌아보고 추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자아에 대해 고민하고 사색하며 작은 행복에 감사해할 줄도, 행복을 지킬 줄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아픔이 가진 내밀한 의미나 가치가 삶을 의미나 가치를 만들어줄 것이다. 아픔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아픔과 우리는 공존하며 희망을 향해 함께 간다. 아픔과 함께 살아가는 한 감히 나에게 아픔이 될 수 있는 것을 알아보았으면 좋겠다. 하찮은 것에 일일이 다 아파하기에는 시간도 아깝고 자신도 아깝다. 나를 다스리고 나를 찾아가며 온전한 나를 살아가게 하는 아픔이여야 한다고 고집하고 싶다.
어느날 갑자기 혼자의 힘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아픔도 닥쳐올 것이다. 그러나 “네가 아프면 내가 열배는 더 아프다”는 사람도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이 아플가봐 사무치는 아픔에도 무심한 척할 것이다. 우리는 아픔이 무엇인지 아는 마음을 간직한 사람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결코 환상이 아니다.
먼 후날, 세상을 마감할 때가 된다면 아픔도 내려놓고 자신도 내려놓고 따뜻한 자궁에 깃들었을 때의 고요와 평화로 돌아가 아름다운 꿈을 꾸려 한다. 어쩌면 꿈속에는 여전히 아픔이 있을 것이고 내 곁에 함께 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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