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쨍쨍한 해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채소밭을 가꾸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함께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요즘은 ‘검질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지만 내게는 너무나 정겨운 말이다. 연변말로 ‘다듬다’, ‘청소하다’, ‘손질하다’ 등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 단어에는 어머니의 사랑과 손맛이 녹아들어 있다.

소학교 3학년 때였다. 외삼촌의 돈을 빌려 외삼촌 명의의 ‘우리집’이 생겼다. 그전까지 열한 번의 이사를 거치며 세집살이를 전전했으니 어머니에게도 그 집은 남다른 의미였으리라. (당시에는 뒷마당이 집채의 3배나 되는 196평방짜리 단층집을 2만원이면 구매할 수 있었다.) 입주하던 날 어머니는 이사짐을 부리우기 바쁘게 뒷마당부터 살피셨다. 옆집과는 무릎 정도 높이의 울바자로 분리된 마당, 마당 끝에는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어머니는 마당에 애정을 보이시며 나에게 말했다. “이제 여기메르(여기를) 싸악 검질해서 남새(채소)를 심그문(심으면) 일년내내 남새 아이 사 먹어두 덴다.”

파종기가 오기 무섭게 어머니는 쉴 틈이 없이 분주했다. 흙을 갈아엎고 밭이랑을 올리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었다. 그렇게 헝 하던 뒷마당은 채소밭으로 변해갔다. 서른 줄은 족히 되는 이랑에 까지(가지), 고치(고추), 토마토, 오이, 호박, 원디(완두), 장물열콩(강낭콩), 염지(부추), 쪽파, 불기(상추), 영채(갓) 등 갖은 채소를 알심 들여 심었다. 심기만 하고 알아서 자라면 좋으련만. 밭일은 손이 많이 가는 노동이었다. 주말 없이 일하셨던 어머니는 출근 전에 잠깐, 퇴근 후에 또 잠깐씩 밭을 검질했다. 곁순을 따주고, 지지대를 만들어주고, 기슴(김)을 매고, 고랑을 훑어 이랑을 두둑이 해주고, 물을 대고, 벌레가 꼈는지 확인했다. (당시에는 한 푼이라도 돈을 아끼려고 그러셨겠지만 덕분에 나는 맨날 유기농만 먹고 자라는 복을 누렸다.)

밭일은 내게 마냥 재밌어 보여 가까이에 가서 삐치개질(참견)을 했다. 어머니는 친절하게 요령을 알려주었고 나는 금방금방 따라했다. 까지(가지)는 어떻게 따고 불기는 또 어떻게 따야 하는지 일일이 알려주었다.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때면 어머니가 하던 대로 밭을 검질하고, 때가 된 오이나 호박은 쪽지를 따서 검질해 놓았다. 그러면 어머니는 동네방네 딸을 자랑하며 내가 거두어들인 채소들을 이웃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면 이웃집에서는 내게 좋아하는 과자나 삥골(冰棍儿)을 사주곤 했다. 그때가 참 좋아 잊혀지지 않는다.

어머니는 내게 "방으 좀 검질해라"는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옷이 너저분하게 바닥에 놓여있거나, 이불을 개이지 않았거나, 물건이 사척(사처)에 널려있는 꼴을 용납할 수 없다며 꼭 잔소리를 하셨다. 이런 건 스스로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덧붙이면서. 깔끔한 어머니 밑에서 귀가 쟁쟁하게 잔소리를 들은 덕분에 나는 정리 정돈에 능숙한, 청소를 온천하게 해내는 아이로 자랐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학교 다닐 때는 반주임(담임선생님)의 인정을 받아 위생위원(卫生委员)을 맡았고, 위생위원을 하다보니 삼호학생(三好学生)으로 뽑혔고 또 삼호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른이 된 후에는 잘 ‘검질하는’ 게 돈이 되진 않았지만, 깨끗하게 정리된 공간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에서 일상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다.

어머니는 요리할 때에도 ‘검질하다’를 쓰셨다. 어머니는 비리비리한 걸 좋아하는 딸을 둔 ‘덕’에 생선 요리를 자주 하셨는데, 특히 어미니가 고등어로 해준 탕추빠위(糖醋鲅鱼)가 최고로 맛있었다. 내가 고등어 타령을 할 때면 어머니는 퇴근길에 장마당(시장)에 들러 고등어를 사오셨다. “고등어르 인차(이내) 검질해서 저녁 맛있게 해주께.” 그러면 나는 숙제를 하다 말고 어머니에게로 쪼르르 다가가 어떻게 요리하는지 눈으로 어머니의 손을 따라갔다. 그렇게 뚝딱 만든 요리는 일품이었다. 가끔은 그 맛이 그리워 직접 고등어를 검질하기도 했다. 눈동냥으로 익힌 대로 어머니처럼 임내(흉내)를 내면 신기하게 얼추 맛이 비슷하여 만족스러운 도전이었다.

채소밭을 잘 ‘검질하며’ 가꾸던 어머니를 닮고 싶어 올봄은 베란다에 스티로폼 상자 몇 개를 놓고 작은 텃밭을 꾸몄다. 가지 두 모, 고추 여덟 모, 방울토마토 네 모, 상추 열 모를 사와 옮겨 심었다. 그러나 상추를 빼고 다 잘 안 큰다. 고추잎은 듬(진디물)이 껴서 열매가 잘 달리지 않았고, 방울토마토는 키만 크고 열매가 달릴 념을 하지 않고, 까지(가지)는 또 잎만 크고 한송이의 꽃도 피우지 못했다. 호기롭게 시작했던 나는 이내 자신감을 잃고 말았다. "고추가 너무 많이 달리면 어쩌지, 빨갛게 익혀서 쏠아서 말려뒀다가 겨울에 닦아(볶아) 먹어야지” 하며 기대 섞인 상상을 하면서 김치국을 들이킨 셈이다.

베란다의 작은 텃밭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게으름을 부리며 청소를 미루고 싶어질 때면, 어머니의 생선 요리가 먹고 싶어질 때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깔끔하게 다듬어 내 삶을 가꾸고, 작은 틈새까지 세심히 돌아보는 마음가짐으로 계속해서 손을 뻗어야 비로소 열매를 맺는다는 어머니의 잔소리. 그 잔소리가 육성으로 들리는 듯해 작은 텃밭과 일상을 다시 차근차근 “싸악 검질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PS:

사전에서는 ‘검질하다’의 변이형인 ‘검쥴하다’에 대해 아래와 같이 풀이하였다.
출처: ≪두만강 유역의 조선어 방언 사전≫(곽충구, 2019: 196-197)

검쥴하다:
1) 채소나 나물 따위에 붙어 있는 불필요한 것들을 다듬어 없애다.
파이나 배채느 검쥴하지.(파나 배추는 다듬지. 남평)
뎌 아매 어제두 검쥴해애서 앵두 가져왓소.(저 할머니가 어제도 앵두를 깨끗이 다듬어서 가져왔소. 월청)
2) 탈곡한 곡식에 섞인 검불이나 티끌 따위를 없애다.
3) 널브러진 것을 정리하거나 깨끗이 치우고 닦다.
오래르 검줄해라.(빗자루 따위를 가지고 집 주위를 청소해라. 용문)
마당두 검쥴해서 채수르 시무구.(마당도 잘 치우고 가꾸어서 채소를 심고. 월청)
4) 옷 따위를 깨끗이 하거나 수선하다.
옷에 흙으 묻헤 이래 매쟤기르 해 딜에와서 어뜨기 다 검쥴해주갰냐!(옷에 흙을 묻혀 이렇게 더럽혀 들여와서 어떻게 다 깨끗하게 해서 주겠냐. 월청)
5) 아이나 거동이 불편한 늙은 부모를 뒷바라지하다.
6)죽은 사람의 몸을 씻긴 뒤에 옷을 입히고 염포로 묶다.


썸네일 BY 소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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