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둘째 아이의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아이가 “해야 할 공부가 너무 많아서 선생님이 미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평소 해맑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우리 꼬맹이는, 만만한 아빠 말고는 누군가를 대놓고 “미워”하거나 “싫다”고 말할 아이가 아닌데… 알고 보니, 선생님께서 “공부가 많은 게 싫으면, 그렇게 시킨 선생님이 밉겠네?”라고 묻자, 그에 대한 답으로 밉다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우선 아이가 예의 없이 굴었다면 정말 죄송하다고 정중히 사과드렸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아이가 싫은 건 공부가 많은 상황일 텐데, 그런 유도 질문은 싫은 감정을 선생님에 대한 미움으로 전가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호탕하게 웃으셨다.
“아유, 미워할 수도 있죠. 몇십 년을 아이들과 지내다 보면, 아이들의 솔직한 말에 상처받지 않아요.”
그리고는 예전 어떤 아이가 일기장에 선생님 욕을 한 페이지 가득 써온 일을 들려주셨다. 그때도 선생님은, “그런 감정을 느끼게 한 건 내 의도는 아니지만,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라고 말해주셨다고 한다.
선생님은 그날 우리 아이와의 대화를 반 전체로 확장해, 공부의 적정량에 대한 토론 시간을 가졌다고 하셨다.
“주우는 친구들과 잡지를 만드는 걸 참 즐기는 아이인데, 요즘엔 쉬는 시간마저 과제를 하느라 갑갑했나 봐요.”
그러면서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수학자를 떠올리셨다.
“허준이도 학교 생활에서 가장 즐거운 기억이 수업 끝나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길이었다더군요. 아이들을 성장하게 하는 게 어쩌면 꼭 많은 공부만은 아닐 수도 있지요.”
그리고는 통화 내용은 아이에겐 모르는 일로 해달라며 조심스레 당부하셨다. 그러면서 아이가 감정이나 생각을 마음에 쌓아두지 않고, 그때그때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가정에서도 편안한 분위기를 함께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날 저녁, 아이는 입이 귀에 걸려 집에 들어왔다.
“학교에서 별일 없었어?”
“별일은 없었는데… 우리 반에 이번 달부터 공부 안 하고 간식 먹고, 장기자랑 하는 날이 생겼어요. 친구들이랑 개그를 짜기로 해서 너무 재밌어요.”
아이의 얼굴에서 밝은 에너지가 넘쳐났다. 그 모습을 보는 나는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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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는 4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친구들과 ‘잡지사 활동’을 하고 있다. “잡-지”(‘잡’은 길게 발음해야 한다고 함.)라는 이름의 잡지는 네 명의 전담 편집진이 있고, 공개일에 맞춰 배포된다. 잡지사 직원들은 각자 잡지를 계속해서 만들어 간다. 필통 안엔 손바닥 반만 한 잡지사 사원증까지 들어 있다.
잡지는 ‘직원’만이 미리 읽을 수 있고, 그 외에는 공개일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미리 볼 수 있는 특전을 누리는데(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에 더해 엄마, 아빠에게 육성으로 읽어 주기까지도 한다. 실제로 괴발개발에, 깨알같은 글씨와 ‘암호 같은 편집’ 덕분에 아이가 읽어 주지 않으면 내용을 알 수 없는 페이지도 적지 않다.
아이가 만든 잡지를 손꼽아 기다리는 애독자도 있다고 한다. 유치원 때부터 친구였던 쌍둥이 자매 중 동생, 그리고 또 누군가는 잡지를 미리 보자고 자꾸 졸라서 난감할 때도 있다고 한다. 아이는 잡지 제작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발행일에는 유난히 들떠 있었다.

아이가 작년 가을학기에 만든 크리스마스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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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놀이란 단순한 ‘쉬는 시간’이 아니다. 친구들과의 웃음 속에서 관계를 배우고, 자기 마음을 표현하며, 세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시간이자, 스스로 성장하는 놀라운 과정이다.
놀이는 아이의 ‘자기표현’이며 ‘주도성’이다. 이는 비고츠키(Vygotsky), 피아제(Piaget) 등의 주요 발달심리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활동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세상을 구성하고 소통하는 방식이라는 얘기이다. 우리 아이는 잡지를 만들며 말하고, 듣고, 쓰고, 읽고, 친구들과 생각을 나누며 ‘자율적 배움’의 중심에 서 있는 것이다.
아이들의 놀이의 가치를 아시고,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귀 기울여주시며 그것을 학급 전체의 성장의 기회로 삼아주신 선생님, 아이의 마음뿐 아니라 엄마의 마음까지 보듬어주신 그 너그러움이 참으로 고맙고, 존경스러웠다.
우리 아이가 이런 선생님을 만난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부보다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 스승 한 명이, 아이의 학교를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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