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빠졌수다—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리뷰
“착한 끝은 있어야지”—그것은 보통 사람들의 신앙이었다.
몸보다 마음이 바빴던 지난 한 달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폭싹 속았수다』라는 드라마가 있어서 바쁜 마음을 가끔 뉘일 수 있었다. 2018년에 나온 『미스터션샤인』 이후로 진득하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정주행한 드라마가 거의 없다.

장편소설을 읽을 때처럼 십여 부가 되는 드라마 하나를 제대로 보자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어야 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는데 늘 그게 제대로 안 되어 국내 哔哩哔哩 어플이나 유튜브 어플에서 15분 요약 버전으로 긴 드라마 보기를 대체했다. 그것도 일단 1회 요약본을 10분쯤 보고 계속 더 볼지 말지를 결정해 버리곤 했다.
드라마 작가도 소설작가도 아니지만 어쨌거나 창작자로서 그것에 대한 죄책감은 늘 있어 왔다. 내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인내심 갖고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내 독자에게 내 글을 읽어 주길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서론이 길었다. (이러니 독자들이 달아나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의 이야기는 1960년대 제주도에서부터 시작된다. 10살에 양친 부모를 다 잃은 주인공 애순이는 새아빠네 집과 작은아빠네 집을 전전하며 근근히 공부를 한다.
예의 한국 드라마 속 가난한 집 여주인공들을 보자면 착하고 예쁘고(중요한 포인트이다) 성실하며 한없이 물러터진 게 특징이라면 주인공 애순이는 심성은 착하나 당돌하고 여시 같은 데가 있으며(관식이 엄마가 부산으로 관식이와 애순이 찾으러 갔을 때 사람 찾는 공고에 애순이의 인상착의를 적으며 여시 같다고 적은 바 있음) 요망진 구석이 있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여성상이다. 1회부터 16회까지 어느 한 회 눈물 마를 회 없었던 묵직한 서사의 드라마에 요망진 여주인공이 있어서 훨씬 생기가 돌았다.
남 주인공 관식이는 자나깨나 애오라지 애순 바라기다. 고부갈등 따위 생길 일이 없이 오로지 애순 편이다. 노년이 된 관식 엄마의 대사에서도 나온다.
“한일전 심판을 안중근 후손이 봤대도 너처럼 편파적이진 않아. (개가 나아 개가~후렴구)”

흔한 흥행 드라마의 공식처럼 남자 주인공이 재벌이 아니라고 일부 시청자들은 현실적이라고들 하지만 ‘안중근 후손’보다도 대쪽 같은 마음으로 자기 여자 편만 들어 줄 남자도 현실에는 잘 없다. 그런 남자 역시 재벌집 아들처럼 귀하디 귀하다.
10대의 관식이는 서울 남자에게, 적어도 ‘노스탤지어’는 아는 남자에게 시집가겠다 노래를 부르는 애순이 옆에서 애순이 양배추를 팔아 주며 묵묵히 있어 준다.
서울 출신은 못되더라도 서울에 사는 남자는 될 수 있겠다 싶어 수영을 배우러 서울로 가기도 하고, ‘노스탤지어’를 알기 위해 유치환의 시 <깃발>을 외워 읊기도 한다. 고중 때 축구부였던 남동창이 내게 시를 지어 준 적이 있다. 그 중 두 구절이 생각난다. “은실이가 슬퍼하면 赵本山이 되어 웃겨 주고 누가 은실이를 괴롭히면 타이슨이 되어 귀를 물어 주리라.”
백일장에 참가한 애순이를 따라가서 “바람은 왱왱왱, 내 마음은 윙윙윙”이라는 시를 적은 관식이를 보며 그 편지가 느닷없이 생각났다. 량수 고향집 어느 구석에 있을 것도 같다.
이상 수요 없는 공급, 쓸데없는 TMI였다. 그러나 드라마나 소설 감상하기에서 제일 중요한 게 원래 감정 이입 아닌가?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많은 시청자들도 극 중 애순이에 빙의하였을 것이다.
먼 데서 보면 희극적이나,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적인 온갖 파란만장한 에피소드를 겪으며 애순이와 관식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행복한 고생을 하며 살아간다.
관식이는 선장, 애순이는 계장이 되어 제주 도동리에서는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지만 잘난 딸 금명이가 서울대에 떡하니 입학하는 바람에 그들은 다시 또 바빠진다. 비싼 등록금과 하숙비 마련을 위해 관식이는 여전히 하루 다섯 끼 먹으며 오징어 배를 타고 “양배추 달아요.” 한마디를 못했던 새침데기 애순이는 좌판을 깔고 생선을 판다.
서울대에 간 잘난 딸 금명이는 저처럼 귀하고 잘난 남자 영범이를 만나 연애를 한다.
착하고 금명이 밖에 모르는 영범이에게서 시청자들은 관식이의 그림자를 찾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영범이는 시청자들의 기대를 저버린다.
아버지가 법무부 차관 후보라는 것으로 보아 영범이는 금수저로 보인다. 금수저 영범이는 엄마의 극심한 반대에 관식이처럼 맞서지 못한다. 그는 착한 아들이었고 착한 남자친구였지만 한 쪽에만 착하기 위해 다른 한 쪽을 포기해야 하는 단호함을 보여주진 못한 나약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비겁하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관식이는 열 살부터 집에서 생선을 팔았다. 그는 어린 나이 때부터 당당히 ‘제밥벌이’를 한 남자다. 애순이가 친정으로 옥수수 다섯 개를 빼돌렸다고 어머니에게서 지청구를 듣자 관식이는 덤덤히 오늘 잡은 옥돔으로 퉁치자고 말한다.
부모님의 후원으로 미국 유학을 다녀오고, 학교 근처에 전셋집을 얻어 사는 영범이가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 개인의 비겁함이나 나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태생적인 환경의 문제이고 ‘제밥벌이’를 못하는 남자의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많은 여자들은 관식이의 가난은 싫지만 덮어놓고 내 편이 되어줄 ‘편파성’을 원하고 영범이의 우유부단함은 싫지만 여유 있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넉넉한 경제력은 원한다. 말하자면 영범이의 경제력과 관식이의 대쪽 같은 편파적인 태도를 원하는데 그것이야말로 한 나무에 사과도 키위도 귤도 다 달리길 원하는 모순적인 욕심일 것이다. 작가는 아마 그것을 꼬집으려는 게 아니었나 싶다.
작품에는 정말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남편이고 아들이고 다 해도 개가 최고인 애순이 시어머니 권계옥, 언제나 애순이의 든든한 뒷심이 되어 주는 해녀 3인방, 빌런 부상길(학씨), 께끼를 ‘니 개’만 사오긴 했지만 어쨌거나 도의적인 나민옥, 한량 새아빠 염병철, 젊은 나이에 남편 잃고 한량 새 남편을 만나 고생만 하는, 독만 바짝 오른 애순이 엄마 전광례, 드라마의 두 번째 빌런 작은아빠 오한무, 찔러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할 말 못하면 죽는 병이 걸린 영범이 엄마…

많은 인물들 중에 영범이 엄마 빼고 실질적 악역은 없다. 손녀는 집안 밑천이라고 잠녀를 시키려 했던 시어머니도, 온갖 유흥으로 가정에 불성실했던 부상길도 그저 그 시대의 보통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드라마가 끝난 후의 한 인터뷰에서 드라마 감독은 “이 드라마의 악역은 시대”라고 말한다. 보통 사람에게 어떠한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시대의 문제일 것이다.
돌과 바람과 더불어 과부가 많다는 제주에서 ‘남존여비’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었을 것이다. 없는 형편에 장남의 죽음으로 어머님 봉양까지 떠안게 된 작은아빠가 불친절했던 것 역시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법을 보고 배우지 못한 부상길 역시 짠하긴 매한가지다. 누가 뭐래도 그는 돈을 벌어 가족 일용한 양식을 가져다 준 것으로만 보자면 성실한 가장이었다. 스스로도 늘 하는 말이 있다. “다 내 덕분에 쌀밥 먹었어.”
박영란이 겪은 마음 고생이야 극심하지만 그녀는 애순이처럼 추운 겨울 좌판을 펴지 않아도 되었고 시장통에서 언 손으로 생선 손질을 안해도 되었다. 그것은 누가 뭐래도 학씨 덕분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사회구성원 모두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리고 극 중에서 통합을 이뤄냈다. 88올림픽 개최 전야의 제주도 해녀 3인방은 “이역만리 미국인들 눈에 보기 좋자고 좌판을 다 엎어야 하냐”며 국가 정책에 강하게 반기를 들었지만 2002년 월드컵 때는 인터뷰에도 응하며 적극적인 자세로 나온다. 애순이의 대사에도 나온다. “이모들도 국가랑 화해했어.”
영원한 대립이 어디 있을까, 모두는 그저 가족의 세 끼 식사가 중한, 시대에 순응하며 사는 보통의 착한 서민일 뿐이다.
요즘의 한국은 노소갈등, 좌우갈등, 남녀갈등으로 무척 시끄러운 모양새다. 그 모두를 화해시는 데 이 드라마가 일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드라마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관통하는 대사가 있다.
“착한 끝은 있어야지.”
착하고 성실하게 산 애순 관식은 나중으로 갈수록 사업이 번성하고 자식들도 출세한다. 그리고 가족에게 무심했던 부상길은 외톨이로 남겨진다. 악역은 없다면서도 작가는 불성실했던 부상길 같은 인물에 조금의 벌은 안기고 싶었던가 보다.
“착한 끝은 있어야지”란 어쩌면 보통 사람의 신앙이 아닌가 싶다. 현실에서라면 누구보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지만 늙기도 전에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다. 현실이라면 돈 많은 상길이는 외톨이로 남겨지지 않고 두 번째, 세 번째 장가를 꾸준히도 들며, 그래도 돈이 최고라며 반성 따위 안했을 것이다.
착하고 성실하게 살았다고 서울대 입학으로 부모 어깨 으쓱하게 해 주고, 사업 성공하여 효도하는 딸을 하늘이 주지도 않을 것이니 이 드라마는 어른의 ‘동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좋다. 이 적나라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서 우리는 꿈을 꾸어야 한다. 그리고 허황할지 몰라도 저마다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착한 끝은 있어야 한다” 같은 신앙 말이다.
오로지 저를 위해 고향에서 애면글면해온 부모님께 마구 퍼부어대는 금명이를 보며 “저, 저 싸가지” 하며 혀를 끌끌 찼지만 돌이켜 보니 그것은 내 모습이었다.
이 드라마가 좋았던 것은 완전한 악역도 완벽한 인물도 없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사랑으로 똘똘 뭉쳐 가진 사랑을 자식에게 펑펑 퍼부었지만 그 사이에도 편애는 있고 ‘편파 판정’은 있어서 둘째 은명이는 늘 인정과 사랑에 허기를 느끼며 큰다. 그렇다고 그것이 애순이의 탓이겠는가. 모두가 보통 사람일 뿐이다.
해녀 이모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들 컸져.”
나이를 먹어도 우리에겐 온갖 처음 투성이인 일들이다. 처음으로 부모가 되고 처음으로 자식을 결혼시켜 보고 처음으로 손자를 보고… 우린 모두가 덜 큰 어른들일 뿐이다.
그렇게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랑만 있다면 먼 길을 돌아돌아서라도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금명이처럼, 은명이처럼…
종교가 없는 보통 사람인 내가 믿는 신앙은 ‘사랑’이다. 선함과 사랑이 있다면 풍진 세상 헤쳐 살아낼 힘이 생긴다. 극중 애순이가 관식이에게 말한다.
“당신 만나 힘들 때는 있었어도 외롭지는 않았다”고. 외롭지 않게 사랑을 주는 남편이라면 함께 손 잡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비할 데 없는 믿음직한 사랑을 주는 관식이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랑을 사랑으로 받는 결 고운 애순이의 심성 덕분이기도 하다. 자기가 가진 보석을 보지 못하고 왜 부상길이처럼 많은 돈 못 가져오냐 푸념하는 여자였더라면 애순이처럼 행복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식으로서의 나, 부모로서의 나, 연인으로서의 나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게 하는 드라마였다.
지금까지 두 번을 봤으니 앞으로 따악 열 번만 더 봐야겠다.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디테일에 유난히 신경을 썼다는 감독은 소품으로 등장하는 책 하나, 인물 뒤에 배경으로 잠깐 비추는 tv 화면에서도 그 당시를 복원시키기 위해 유난히 신경을 썼다고 한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1960년도쯤으로 추정되는 해, 새아빠 염병철이 문학소녀 애순이에게 대학에 가고 싶냐,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같은 시인이 되고 싶으냐 묻는다. 윤동주가 1960년대에 한국에 알려진 인물인가에 대한 내 궁금증은 그러니까 드라마 전개와는 하등 쓸데없는 나 혼자만의 의문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 아는 분 계시면 시원한 해답을 바란다. 다른 드라마 속 옥에 티해 대해서는 앞으로 10번을 더 보면서 캐 보려 한다.


이 글로 저는 드라마 본걸로 ㅎㅎ덤으로 조본산과 타이슨 겟. 잘 읽었어요.
타이슨 겟 ? 그건 누구예요? ㅎㅎㅎ 드라마 꼭 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