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라산을 처음 올랐다. 큰눈이 내린 직후의 겨울 한라산은 가장 쉬운 코스로 알려진 윗세오름조차 등산 초보인 나에게는 만만치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장장 일곱 시간의 수고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경험이었다. 적설의 절경, 투명하다 못해 날카롭게 느껴지는 맑은 공기, 그리고 영실(灵室)이라는 입구의 이름처럼 신령한 기운이 산행 내내 눈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그득 채웠다.
산을 오르는 길에 한라산 서식 생물종에 대한 안내판이 드문드문 보였다. 그중 유독 여러 번 반복되어 눈에 들어오는 문구가 있었다.
“…백두산과 한라산에서만 관찰되는…”
그 글귀를 보며 자연스럽게 장백산(‘백두산‘의 중국 내 명칭)의 기억이 떠올랐다. 
백두산에는 여러 번 다녀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20여 년 전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백두산을 찾은 일이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이었고 우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어느 날, 연변대 앞의 식당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던 중에 한 명이 불쑥 말을 꺼냈다.
“내일 아침 해돋이는 장백산 천지에서 보자.”
지금 생각하면 다소 무모한 제안이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그런 돌발 제안을 주저 없이 받아들일 만큼 젊었고 혈기가 넘쳤다. 우리는 수저를 놓자마자 차를 빌려 길을 떠났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때였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가 탄 차는 허허벌판에서 길을 잃었다. 그때 일행 중 한 명이 차에서 내려 밤하늘과 주변 식물을 번갈아 살피며 방향을 가늠했다. 학부에서 계측을 전공했던 그는 그렇게 자연에서 단서를 찾았고 드디어 옳은 방향을 찾아냈다.
나는 그 경험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지도도 도로 표지판도 없는 산길에서 인간이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별자리나 식물의 형태 같은 자연의 질서뿐이었다.
내게 백두산은 민족적 상징이기 이전에, 그렇게 청춘의 낭만과 기억이 깃든 장소였다.
한편, 한라산은 한국에 온 뒤에야 아예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실제로 한라산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내게 익숙했던 구 표현이 있었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혹은 ‘한라에서 백두까지’
신동엽 시인의 시 “껍데기는 가라“에, 이런저런 노래말에, 또 우리 민족 관련 서사에서 관용구처럼 반복되는 이 말 덕분에, 한라산은 나에게는 실제 경험 이전에 언어로 먼저 존재했다. 그것은 꼭 마치 ‘하늘과 땅‘, ‘머리부터 발끝까지‘처럼 한반도의 시작과 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래서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말이 나에게는 자연의 순리이기보다 문학적 수사처럼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한라산에서 마주한 서식 생물에 관한 안내판은 내게는 새로운 발견이었다. 20여 년 전, 백두산에 가는 길에서 우리가 별을 보고 길을 찾은 것처럼, 나는 한라산의 안내판에서 백두로 이어지는 길을 찾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 안내판에서 생물종을 공유하는 백두와 한라에 대한 이야기는 문학적 상징이 아닌 객관적 사실에 관한 것이었다. 산의 고도와 기후 등 생태 조건이라는 객관적 지표, 그리고 그 결과로서의 생물종의 공동 존재 사실을 증명하는 진술이었다. 어떤 생물에게 백두와 한라는 공통적인 ‘생존의 환경‘이었던 것이다.
곰곰 생각해 보니 백두와 한라가 일부 생물종을 공유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빙하기의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이 두 산은 지금보다 북방계 고산 식물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피난처 역할을 했을 것이고, 지금보다 훨씬 연속적인 생태 조건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크다. 오랜 세월이 흘러 기온이 오르며 서로 멀리 떨어져 고립되었지만, 그들은 각자의 정상에서 한때 생물적 공동체였음을 증명하며 여전히 우뚝 서 있다.
이 지점에서 나는 백두와 한라를 잇는 또 다른 실체적 연결을 떠올리게 된다. 바로 장백 기슭의 연변과 한라가 있는 제주의 ‘말(言)’이다.
우리말 공동체라는 관점에서는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지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공간이지만, 이 두 지역에서 서로 비슷한 말을 찾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 가달(다리), 가랍다(가렵다), 과줄(조청 과자), 해질까리(해질녘), 훌(훌쩍 떠나다), 헷소리(잠꼬대)…
이 말들은 연변과 제주 방언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물론 이것이 두 지역에만 한정된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표준어에서는 쓰지 않는 말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두 지역이 한반도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변화를 피해 비교적 보수적인 형태를 유지해 온 결과로 해석될 수 있다.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일수록 오래된 낱말의 형태가 잔존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방언 연구에서 낯설지 않은 관점이다. 다시 말해 서로 멀리 떨어진 지역의 말이 닮아 있다면, 그것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라기보다 각자 오래된 옛말 형태를 묵묵히 지켜온 결과라는 것이다.
생물종의 분포가 현재라는 평면 위에 그려진 ‘공간의 지도‘라면, 공통 방언의 잔존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지층‘이다. 백두와 한라는 바로 그 공간의 분포와 시간의 잔존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하나로 강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백두에서 한라까지’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는 것, 그것은 지리적 환경, 생태적 기억, 언어적 경험, 그리고 공동체적 상상이 교차하며 쌓아 올린 견고한 진실이라는 뒤늦은 깨달음을 얻었다.

백두에서 한라로~우린 하나의 겨레. 운전할 때 가끔 듣는 곡인데 웅장이 가슴해지곤 해요. ㅎㅎㅎ
6.14 공동선언 기념 음반에 수록된 곡. 그 여름 남북 이산 가족의 상봉 장면이 같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나는… ㅠ
잘 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 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여 소리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백두산과 한라산에만 존재하는 식물이 있다는 점, 놀랍네요. 위도상으로는 많이 떨어져있는데.
근데 이점이 방언의 존재와 흡사하다는 점은 참 흥미있습니다.
네, 저는 한반도에서 백두와 한라에만 존재하는 식물이 있다는 점이 특히 놀라웠어요.
전에 성악판 쪽 길이 완만하다고 해서 가 본 적이 있는데 겨우 힘들게 올랐더니 하산하라는 방송이 나와서 허탈했던 기억이 있네요.
그러셨군요. 제일 쉬운 코스가 제가 오른 윗세오름이고 다음이 성악판 코스라고 들었습니다. 한라산은 11시까지만 입산 가능한 제한이 있어서 저희도 첫날은 입구에까지만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이튿날 하산하면서 보니 왜 시간 제약을 엄격히 두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춥고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성악판 쪽은 사전 예약도 해야 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