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기억했던 그 모든 순간이…슬픔이 되어 쏟아지는 것을…

그래서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나는 항상 비를 두려워했던 것 같다… 

시간을 돌릴수 있다면…

……

1.

그녀는 어쩌면 기억이 있을 때부터 모두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매일 하고 있었다.

시작은 땅거미가 어둑어둑 지기 시작하는 어느 가을날 저녁 낮잠에서 금방 깨어났을 때부터였다. 주위는 고요했고 열어둔 창문밖으로 후둑후둑 비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비가 오는 날 집에 혼자라는 것을 의식하자 곧 이유모를 슬픔이 그녀의 가슴 가득히 밀려들었다. 그녀는 한참 멍해있다가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느닷없이 터지는 울음소리에 엄마가 문밖에서 급히 뛰어들어왔다.

“지은아, 왜 울어. 꿈 꿨어? 이 식은땀 좀 봐.”

엄마는 시장에 다녀온 차림으로 채소바구니를 팔에 건 채 그녀를 품안에 끌어안았다. 엄마의 몸에는 시원한 가을의 비향기가 배여있었고, 어쩌면 그것이 그녀를 더 슬프게 하고 있었다.

“넌 무슨 애가 태어나서부터 비만 오면 꼭 울더라. 비가 오는게 뭐가 무섭다고 그러니. 참 이상한 습관이야.”

엄마는 땀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올렸다. 울음에 지친 그녀는 얼굴이 빨갛게 상기된 채로 엄마에게 맥없이 기댔고, 그런 그녀에게 엄마는 어쩔수 없다는듯 가볍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해 그녀는 고작 다섯살이였다. 그녀는 엄마와 단둘이 지냈고 가끔 옆집 애들과 어울려 놀았다. 옆집 애들이 “지은아, 너 아빠는?”하고 물어보면 그녀는 눈을 올롱하게 뜨고 “엄마가 멀리 여행갔다고 했어.”라고 대답했다. 그때면 그 애의 엄마는 항상 자기 집 아이를 호통쳤고 꾸민 듯 밝은 웃음을 지으며 “그래, 지은아…아빠가 이제 돈 많이 벌어 올거야.”라고 하면서 동정과 연민이 가득 담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군 했다. 그것이 그녀에게 있어서는 그리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였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녀는 엄마랑 둘이 지내는 것보다 완벽한 가족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엄마는 그녀에게 단 하나뿐인 소중한 가족이였고 엄마가 없는 세상은 그녀에게 있어서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였다.

그녀가 대학에 붙은 그해 가을, 이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역시 질척질척 비가 내리던 그 악몽과도 같은 가을밤, 친구들과 노느라 귀가가 늦은 그녀를 기다리느라 어스름한 아파트 골목안에서 서성이던 엄마는 정체 모를 한 괴한의 칼에 찍혀 유명을 달리했다. 그녀가 달려왔을 때까지 엄마는 눈을 채 감지 못했고 그녀는 두팔로 엄마의 껴안고 실성한 듯 소리를 질렀다. 사람들 속을 비집고 들어온 옆집 아줌마는 눈물을 훔치면서 혀아래로 중얼거렸다.

“자고로 미인은 박명이라고…”

엄마 장례식을 치른 며칠후 드디여 괴한이 잡혔다는 소식이 들렸다. 옆집 아줌마가 건너와서 이 얘기를 전할 때 그녀는 멍해 앉아있기만 했고 아줌마가 조심스럽게 재판에 대한 얘기를 꺼내자 그녀는 초점잃은 눈으로 묵묵히 아줌마를 쳐다보았다.

“재판요?”

“그래…죄를 저지른 놈은 응징을 받아야지.”

“해야죠. 재판…”

“시간은…”

“재판해야죠. 제가 죄를 지었으니까요.”

아줌마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후 뭔가 말할 듯 하다가 다시 말을 삼켜버렸고 그녀는 쓸쓸하게 웃으며 흐릿한 시선을 들었다.

“언제 한대요? 재판…빨리 하고 절 데려가라고 해주세요.”

“지은아…너…충격이 컸구나. 그러지 말고 아줌마랑 병원 가자.”

“제가 왜 병원에 가요? 법원에 가야죠.”

“지은아.”

“제가 엄마를 죽였어요.”

“…”

“…비를 무서워한다구요. 그리고 그날 밤 하필이면 비가 왔어요. 골목은 어스름했고…엄마는 내가 겁나할까봐 골목에 내려와 날 기다린거라구요.”

“지은아…”

아줌마는 돌아서서 눈굽을 찍었고 그녀의 우멍한 눈에서도 기어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니 절 재판해야죠. 지금까지 제가 엄마한테 해준 게 뭐가 있어요? 엄마는 아빠 없이 혼자 버티면서 절 대학까지 보냈는데, 전 친구들과 밤중까지 노느라 엄마를 죽게 내버려뒀다구요…비오는 그 날…골목에 쓰러진 채로…그렇게 피를 흘리면서…엄마는 얼마나 날 기다렸을까요…얼마나 내가 원망스러웠을까요…”

“지은아, 이러지 마. 내가 괜한 소리 해서…”

“그러니 그 사람 재판하느라 하지 마요. 절 재판하면 되는 거에요. 엄마에게 죄를 지은…이 못난 딸이 응징 받아야 하는 거라구요…”

아줌마는 허둥지둥 문밖으로 나서자 곧 어디론가 달려갔고 한참 지나자 아줌마의 딸이자 그녀와 한 대학에 붙은 홍수연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그녀는 침대 가장자리에 무릎을 껴안고 앉아 있었고 수연은 그녀의 앞에 다가와 눈물을 머금고 조심스럽게 불렀다.

“지은아…”

“…”

“윤지은, 울고싶으면 울어. 큰소리로 울어. 하늘이 무너지도록 울고…그담엔 모든걸 털고 일어나.”

“그래서 엄마가 되살아날까.”

“니가 이런다고 엄마가 되살아나냐?”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당장 숨막혀 죽을 것만 같어. 시간을 돌릴수만 있다면…내가 대신 죽어주고 싶어. 엄마…우리 엄만 나 하나만 보고 살았는데…”

“지금 이러고 있어도 멀지 않았어.”

수연은 이를 악물더니 쭈크리고 앉아서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니가 지금 몇날째 이러고 있는지 알어? 무쇠로 만든 몸이라도 버티지 못할거야. 니 엄마…아줌마가 니가 이러는 걸 알면 얼마나 속상해 하실까.”

“…”

“아줌마는…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도 눈을 감지 못하셨어. 바로 니가 걱정되어서 그러셨을 거야. 지금 니가 이러고 있다는 걸 아신다면 얼마나 슬퍼하실까…아줌마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편하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 아줌마 그리 만든 놈이 어떤 응징을 받는지 보고싶지도 않아? 니가 그러고도 딸이야?”

“홍수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굴러떨어졌고 수연은 탄식을 하며 그녀를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러니까 정신 차려. 재판이 내일이야. 가서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자. 대체 누가 왜! 아줌마를 그리 만들었는지…”

그녀의 눈물이 흥건히 흘러내려 수연의 옷 앞섶을 적셨다. 창밖에도 하염없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

대학 2학년때 어떤 낯선 아저씨가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서점에 찾아왔다. 서점까지 동행한 수연이가 “지은아, 손님 찾아오셨어.”라고 불렀고 그녀는 한가득 무져놓은 서책너머로 자신을 찾아온 사람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 몇일 후 아저씨는 자신의 서재에서 지은에게 이렇게 말했다.

“첫인상이 외로워보였어. 정말 너무 가여운 아이구나…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절 선택하셨어요?”

“와이프가 조용한 타입을 좋아해. 그것도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지.”

아저씨에게는 이제 막 고중에 입학한 아들이 있었고,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아저씨는 그런 아들에게 어느날 문득 제대로 된 가정교사를 찾아주고 싶었다고 한다.

“선생님한테서 너네 학과에선 네가 성적이 제일 좋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내일부터 시작할수 있겠지?”

“네.”

“왜 하필 사학과를 선택했지?”

아저씨의 질문에 그녀는 한참 지나서야 대답했다.

“엄마가 역사를 좋아하셨어요.”

“그래?…”

아저씨는 미안한 빛이 가득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선생님한테서 니 얘기 들었어. 괜한 걸 물어봐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그녀는 조용히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서재 책장을 바라보았다.

“책이…굉장히 많네요.”

“나빼곤 보는 사람이 없어. 책 좋아하면 얼마든지 가져다 봐.”

“그냥 여기 올때마다 읽을께요. 고마워요.”

그녀는 살짝 머리를 숙여보이고 아저씨의 집을 빠져나왔다. 집문을 나오는 순간 한 여인과 정면으로 마주쳤고 그녀는 몸을 바로 한 후 조용히 한쪽으로 비켜섰다. 여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샅샅이 참빗질했고 그녀는 눈을 들어 담담히 여인의 얼굴을 주시했다. 미모의 여인이었다.

“죄송합니다.”

“지금 저희 집에서 나오는 건가요?“

“네.”

그녀는 최대한 짧게 대답했고 여인의 눈은 잠시 의혹의 빛이 스쳤다.

“무슨 일로…”

“아드님 가정교사로 내일부터 오라고 연락 받았습니다.”

“아…”

여인은 알았다는 듯 가벼운 눈웃음을 지었다. 웃을 때 훨씬 더 예뻐보이는 여인이였다. 그녀도 의례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요.”

여인이 그녀를 불러세웠고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학생 성씨가?”

“윤씨입니다. 윤지은이라 합니다.”

여인의 얼굴이 순간 새파랗게 질리더니 곧 애써 진정하면서 표정을 가다듬는 게 보였다. 그녀는 또 한번 머리를 숙여보인 후 의혹을 품고 그 호화로운 주택가를 빠져나왔다.

후에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때 그녀는 아저씨의 그 청을 물리칠수도 있었다. 아들에게 역사 가정교사를 찾아준다는 아저씨의 핑계도 허점이 많았고 그녀로 놓고 말하면 오로지 아르바이트 일감이 하나 더 생겼다는 유혹보다는 아저씨의 자상한 얼굴과 아저씨네 집 책이 빼곡한 그 책장이 핑곗거리가 되었던 것 같았다. 그 핑계와 구실은 옷차림이 단정한 그 여인의 거부의 태도를 무시할만큼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였고 그후에도 그런 핑계와 구실은 새로운 변명을 더해가면서 그녀와 그 집의 인연을 끈끈히 이어놓고 있었다.

아들의 역사성적이 안좋아서, 그녀가 방학을 하고 시간이 많아서, 아들이 곧 대학입시를 보게 되어서, 그녀가 반년만 있으면 졸업을 하게 되어서…이런 변명들로 그녀는 그 집에서 3년을 지냈고 그동안 아저씨는 아버지 이상으로 그녀의 생활을 보살펴주었다.

“내가 해마다 자선사업에도 기부를 하고 있거든. 내가 도와준 사람들중 대학생들도 많았어. 그러니까 내가 좋은 일을 할수 있게 니가 날 도와주는 거야.”

“고마워요. 아저씨…항상 페이도 배로 쳐주시면서.”

아저씨는 사람 좋게 웃어보였고 그녀도 가볍게 따라 웃었다. 아저씨의 아들은 착하고 반듯해서 가르치기 좋았고 아저씨는 분명 역사 가정교사에게 분에 넘치는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집사람한텐 티내지 마. 여자들이란 돈에 무섭잖냐.”

아저씨는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 때마다 항상 시무룩히 웃었고 그녀도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번도, 단 한번도 그녀는 아저씨가 자신에 대한 호의를 왜곡하거나 의심한 적이 없었다. 

“3년이야. 언제까지 이 집에 죽치고 눌러있을거야.”

아저씨의 와이프가 냉랭한 얼굴로 이 한마디를 물어왔을 때, 그녀는 세상 일은 자기가 생각하던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고 녹록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쩌면 그해 가을 엄마를 잃었을 때부터, 아니면 거슬러올라가서 동년의 기억이 있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모두를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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