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석 님이 주연한 드라마를 보면서 아저씨가 말합니다: “여자들 많겠다”
“결혼했다. 거미랑”
“거미랑 결혼해? 거미는 런닝맨에 나온거 봤다”
“오”
“근데 거미가 그렇게 이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재나”
“그렇지”
“여자 보는 눈이 특이하다. 내랑 비슷하네”
살을 꼬집으러 올라오는 내 손을 막으며 꺼이꺼이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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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은 미녀만 고르는 동생에게 ‘너의 결혼을 바라며’ 라는 제목으로 엽서를 보냈습니다.
‘美’자는 ‘羊’과 ‘大’의 会意로서 양이 크다는 뜻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큼직한 양을 보고 느낀 감정을 그렇게 나타낸 것이다. 그 고기를 먹고 그 털을 입는 양은 당시의 물질적생활의 기본이었으며, 양이 커서 생활이 풍족해질때의 그 푼푼한 마음이 곧 미였고 아름다움이었다. 이처럼 모든 미는 생활의 표현이며 구체적 현실의 정서적 정돈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바깥에서 미를 찾을 수는 없다. 더우기 생활의 임자인 인간의 미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용모나 각선 등 조형상의 구도만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판단할 수 없음은 마치 공간을 피해서 달아나거나 시간을 떠나 존재하거나, 쉽게 말해서 밑바닥이 없는 구두를 생각할 수 없음과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너는 먼저 그녀의 생활목표의 소재를 확인하고 그 생활의 자세를 관찰하며 나아가 너의 그것들과 비교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랑이란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이다.
미는 또한 신선미 즉 미의 지속성을 그 본질로 한다. 花无十日红이란 말이 있거니와 부단히 자기를 갱신하지 않는한 미는 지속되지 않는다. 정체성은 미의 반어이며 권태의 동의어이다.
사실이지 사람이란 사과와 같은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의 반려이며 생활을 통하여 동화, 형성되어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면밀한 선택으로부터 좀 대범해져도 좋을 것이다. ‘부모나 형제를 선택하여 출생하는가’라는 贤问앞에서는 답변이 없어진다.
너는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하겠지만 요즘 세상에는 같은 가격이면 그 염색료만큼 천이 나쁜 치마이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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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이 사람이다’ 하고 고르기만 하면 저절로 백년해로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면서 서로 닮아가고 끈끈한 사이가 이루어진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겉모습만 보지 말고, 친절한 아줌마, 자비로운 할머니처럼 긍정적인 미래로 열려있는지도 보라고 합니다.
생활목표가 비슷한지, 바람직한 생활의 자세를 가졌는지 눈여겨보라고 합니다.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로 끝나는게 아니라 왕자와 공주가 하루하루 사소한 일상을 살면서 왕과 왕비가 되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될테니까요.
다른 한장의 엽서에서는 이런 얘기도 합니다.
형님의 결혼에 대하여 네가 몇가지 객관적 조건에 있어서 불만을 가지고 있는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인간을 어떤 기성의 형태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이 이룩해놓은 객관적 달성 보다는 주관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지향을 더 높히 사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 하면 너도 알고 있듯이 인간이란 부단히 성장하는 책임귀속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간관계는 상대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일종의 동태관계(dynamic relation)인만큼 이제부터는 그것의 醇化를 위하여 네쪽에서 긍정적인 노력을 경주해야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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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는 상대적 성격이 강한 동태적 관계라고 합니다. 원활한 인간관계를 위해 긍정적인 노력을 경주하라고 합니다. 진해현(陈海贤 ) 심리학자가 쓴 <행복수업(幸福课)>에서도 비슷한 뜻의 문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 말이 있지요. 주여,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런데 그 지혜란 대체 무엇일가요. 컴퓨터에 두 사람의 데이터를 집어넣으면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가요? “5천년 이내의 수백개 나라의 혼인상황에 대한 빅데이터분석에 따르면 당신과 그분이 백년해로할 확률은 49%로 리스크가 비교적 큰 감정으로 분류됩니다. 50%미만인 경우 조속히 헤여지실 것을 권장합니다”
이런 정확한 예측과 리성적인 판단의 지혜는 어딘가 터무니없어 보이지요? 뭐가 부족해서 그럴가요?
저는 지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나는 믿는다’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는지에 따라 당신이 둘 사이를 어떻게 보는지,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정해집니다. 이는 다시 돌아와 둘 사이의 관계에 영향을 주게 되고요.
당신이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하면 상대방은 당신의 선의를 느끼게 돼요. 당신이 포기하려 하면 상대방이 더욱 불안해져서 둘 사이에 모순과 싸움이 더 커질 것이고, 그러면 당신은 포기하려는 마음을 더 굳히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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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많이 타는 우리는, 각자 바다에 둥둥 떠가는 나무통에 간신히 매달려 안착할 곳을 찾고 있었습니다. 섬을 찾아 내리면 좋았을텐데 불행하게도 같은 처지에 있는 서로에게 끌리고 말았지요. 그때의 우리에게는 섬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었습니다.
나무통이 부딪쳤고 우리는 허우적대면서 왜 이럴가, 어떻게 해야 할가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떠다니는 나무통만 찾으면 더 이상 불안하지 않을거라는 내 예상이 잘못됐음을 깨달았고, 내가 나무통에 동동 매달려 있는한 달라질게 없음을 인지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섬이 되기로 했습니다.
너는 왜 너밖에 모르니, 나를 좀 돌봐다오 –> 너는 너를 돌보아라, 나는 나를 돌보겠다
너는 왜 내가 원하는대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니 –> 너는 너의 삶을 살아라, 활짝 피거라
너는 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어주지 않니 –> 나는 내가 원하는대로 살련다
그렇게 각자 자그마한 섬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 섬이 조금씩 넓어지고 든든해졌습니다. 내가 의지하려고 하면 오히려 더 멀리 튀더니, 든든히 자리를 잡자 내 섬에 기웃거립니다. 그렇게 어른이 되여 서로의 삶을 나눕니다.
섬을 만들고 가꾸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압니다. 서로 경험을 나누고 응원합니다.
이제는 ‘너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살면서도 함께 할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너는 너답게, 나는 나답게 살아야 함께 더 오래 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사랑은 아끼는 것임을, 상대를 아끼려면 내가 더 든든해야 함을 압니다. 내가 자신을 잘 돌보고 사지를 쫙 펴고 원하는대로 살아야, 상대를 아낄 기운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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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오래된 매력적인 가수입니다. 그러기 위해 매일 갈고 닦았을 것이고 지금도 그러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미는 아름답습니다. 미는 지속성을 본질로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칭찬으로 들었습니다. 거저 얻어지는건 없습니다. 닦은만큼 빛이 납니다.
받은 칭찬은 돌려줘야지요. 소설을 또 한권 다 읽었다고, 다른 책을 시작할거라고 합니다. 놀랍습니다. 가끔 권하는 책만 마지못해 읽다가 어느새 나보다 더 빨리 읽더니, 지금은 책이 끊길세라 알아서 척척 사서 읽습니다. ‘푸른 과실이 해빛을 마시고 제 속의 쓰고 신 물을 달고 향기로운 즙으로 만들듯이’ 맛있게 익어가고 있습니다.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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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신영복의 엽서>
陈海贤 《幸福课》

첫 부분에서 빵터졌습니다 ㅋㅋㅋ
묘돌입니다
“ 너는 너를 돌보아라, 나는 나를 돌보겠다”. 뭔가 좀 나는 떡을 썰테니 나는 글씨를 쓰거라 하는 석봉이 어머이 같우러하기두 하구 매짜보임다.. ㅎㅎ
신기하네, 이런 글을 써냈다는게. 그때의 나만이 쓸수 있는 글이였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