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진단

    싸우는걸 포기한 후로 서서히 무릎통증이 찾아왔다. 

    B도시에서 살면서 온돌이 없는 방바닥에 애기매트와 약간 두툼한 매트리스를  깔고 그 우에서 온돌처럼 생활하고 자는것을 불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우에서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하는 생활을 어렵지 않게 받아들였다. 자주 이사를 하는 형편만 아니라면 마음에 맞는 침대를 장만할만도 한데 일이년에 한번씩 집주인이 집세를 올리면 가격이 맞는 세집으로 이사를 해야하는 우리한테는 침대의 큰 부피가 부담이 되였다. 분명 의자나 침대에서 앉았다 일어나는데 드는 힘에 비하면 몸의 여러 관절을 사용하며 다리를 구폈다 펴며 일어나는데는 여러가지로 힘이 더 많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게 정말로 힘든 일이여서 당장 바꾸어야겠다거나 절때 못살것 같다는 그런 마음은 한번도 없었던것 같다. 

    참 우습게도 의사는 량반다리가 무릎에는 최악의 자세라고 했다. 애젊은 의사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니 그러면 뭐 온돌에서 살며 량반다리를 하고 다리가 저릴때마다 코에 침을 바르며 가끔씩 다리를 쭉 펴며 오만상을 찌프리며 부커치기(카드놀이)와 마작판에 밤을 패던 남정네들, 상에 빙 둘러 앉아 다리를 토시고 밥을 먹던 우리 온 가족, 우리 고향의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무릎통증에 시달리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항상 량반다리를 하고 식사를 하고 나서 한국에 다니는 도매상들한테서 사들인 겨울이면 뜨끈뜨끈해지는 “임금님 매트”우에서 다리를 토시고 앉아서 일곱시 뉴스를 보며 “가서 물 떠오우”, “가서 재떨이 가져오우” 하며 어머니한테 심부름을 시키시던 아버지의 무릎은 엄마의 무릎보다도 더 멀쩡한데 …  

    내가 잘 수긍이 되여하지 않는 마음이 표정에 드러난 탓인지 의사는 약간의 전문성을 가하며 나한테 설명을 해주었다. 중년에 들어서면서 몸에 붙은 근육량은 서서히 떨어지면 걸을때 설때 앉을때 근육의 힘이 적어져 바른 자세가 흐트러지는데 그렇게 되면 관절에 무리한 힘이 가해져서 무릎통증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힘이 없다는 느낌은 근육량이 줄어들어서였고 관절이 아픈 원인은 없는 힘을 내느라고 무리를 한 원인이였다. 매트리스를 깐 방바닥에 어린 아이들을 재우고 기저귀를 갈고 눕히고 안고 하면서 아마 내 무릎은 많이도 시달렸을것이다.

    그 힘든 시절을 나는 어떻게 버텨냈던걸가? 그렇게 무리한 힘으로 내 무릎을 혹사하면서 나는 왜 가만히 있었던것일가? 나는 왜 내 몸을 위해 싸우지 않았을가? 바로 그 싸움을 포기하면서 내 무릎에는 무리가 오기 시작했을것이다. 나는 아픈 무릎을 감싸 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분명 남편이 곁에 있지만 나는 힘든 육아를 혼자서 감당한다는 느낌에 휩싸여 있었고 몇번 남편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남편은 웬지 몹시 억울해하는 분위기였다.  “거절과 같은 거절”은 분명한 거절이였는데도 나는 그 거절을 대면하지 않았기에 대항해 싸우지도 않았고 그 불쾌함의 정체는 무엇일가 하는 의문은 마음에 묻어둔채 어려운 육아와 가사를 혼자 감내하기는것을 견지했다. 

잠이 부족한 날들에 격해진 정서로 남편과 얼굴을 붉히지 않은것은 아니다. 험한 표정, 거친 말투로 좀 애들 보라고, 당신은 설거지도 못하냐고 잔소리를 하다가 언성을 높였지만 그것은 내보기에도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의미있는 싸움은 아니였다. 격렬한 충돌은 소요되는 에너지도 많았기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저도 모르게 잔소리식의 넉두리로 내 불만을 풀기 시작했고 그런 하소연식의 배경음악이 깔려 있는 모든 발언은 이미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지 상황을 개변시키는 조치가 아니니 역시 진정한 싸움은 아니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격한 감정으로 대한것에 대해 인차 후회를 했고 자책을 했고 과한 언성에 사과를 했고 밖에 나가 일하는 남편한테 스트레스를 주는것 같아서 미안해했다. 이런 싸움을 거쳐 상황이 약간 개선이 될가하는것은 잠간에 불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일상은 원래대로 반복이 되였고 산처럼 쌓인 육아와 가사노동에 파묻혀서 나는 나의 엄마와 이모들, 고모들 할머니들을 드디어 리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사실 싸움에서 이길 승산이 없었다. 연세가 들면서 더 심하게 휜 0형 다리에 허리가 구부정해서 성미가 불같으신 할아버지 눈치를 보시며 밥을 차려주시던 내 할머니도, 가마목에 누워서 눈을 붙이며 쉬시다가도 아버지가 “가서 물 떠오우” 하시면 음산한 앓음소리를 내면서 물을 떠서 아버지께 가져다 드리던 내 어머니도… 나는 그녀들의 수많은 원망과 그리고 싸움의 실패를 보아왔다. 그래서 나는 체념을 했고 부부사이에 서로한테 변화를 요구하지 말라던 누군가의 경험담에 격하게 공감을 했다. 그런 공감은 부부사이의 모순을 정면으로 대면하기보다는 약간 쉬웠던것일가? 변화를 요구하면 더 자잘한 일들에 아마 더 싸웠을것이 분명한데… 내 나름대로 평화로운 삶을 위한 선택이였다. 자존심을 누르며 남편과 아이를 품는 평범함을 선택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현처량모”로 만든 너그러움과 선함은 도대체 정체가 무엇일가?

    익숙함 때문이였다. 집에 침대가 아닌 매트리스를 깔면서 온돌과 같은 생활을 순순히 받아들이는것과 같은 그 익숙함! 어릴때부터 보아온 남정네들과 녀인네들의 그 익숙한 대화방식과 몸짓이 나한테는 이미 자연스러워 졌기에 나는 크게 이상하다 여기지 않았고 몸은 수없이 힘들었지만 머리는 그것에 적응이 되여 있어 그것을 바로잡을 생각을 결코 하지 않았던것 같다. 그리고 더욱 큰 원인이라면 집안의 무형으로 짜여진 그 판을 뒤엎으면 웬지 큰일이 날것 같았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어험~하는 호랑이와 같은 포효소리가 순간 내 귓가에 들렸고 또 그것을 두려워하고 순종하는것을 미덕이라고 엄마의 몸짓에서 배운듯했다. 평등한 질서와는 상관이 없는 녀인네들의 다망함을 부지런함이라고 또 다소곳함이라고 찬양하던 그 누군가의 굵은 목청에 나도 동조를 했다. 그럼에도 암암리에는 절때 엄마처럼 살지 않는다고 속으로 맹세를 곱씹던 나는 또한 다르게 살아가는 방법을 또한 몰랐고 비슷한 상황에서 저도 모르게 나는 나의 엄마가 되여있었다. 

     예전에 내 눈에는 아버지는 항상 량반다리를 하고 웃방에 앉아 호강하는 지위였고 엄마는 수발을 드는 지위였다. 지금은 남정네들의 량반다리 자세를 호강하는 자세라고 하면 그것은 정확한 표현인지 다시 의문을 제기할줄 알게 되였다. 남정네들의 그 호강은 진정으로 그들에게 유익한것이였을가? 어릴적부터 공정함과 공평함을 몸으로 제대로 체험해 보지 못하고 배워보지 못한 그들 역시 피해자는 아닐가?  그런 호강은 정말로 부럽지 않고  또 그런 량반다리자세가 아직도 어디가 어째서 안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그들의 무릎도 량반다리 자세로 고정되여 있는 동안 많이 비틀렸을가? 남자가 아닌 여자 몸이니 나는 추측밖에 할수 없고 깊은 곳까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여자의 삶으로 내가 직접 겪은 경험으로는 꿇어 앉으면 제일 무리가 가는 부분은 무릎임이 확실했다. 온돌과 같은곳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가사로동을 하다 보면 무릎을 꿇거나 굽힐 일이 많은것도 사실이다.  

    무릎은 나한테 아픔으로 호소를 하고 있었다. 더 이상 꿇지 말라고…  

      

     2.치유 

     의사는 나한테 “코어 트레이닝(核心训练)” 을 받을것을 건의를 해주었다. 즉 사람은 힘의 핵심이 되는 부분인 코어의 힘을 키우면 이러저리 몸이 비틀리는 일이 없으니 무릎에 무리가 가지 않아 통증이 좋아질것이라고 했다. 

    코어 트레이닝에서 기본으로 되는것은 깊은 호흡을 연습하는것이였다. 내가 습관된 호흡은 그야말로 그냥 죽지 않기 위해 살만큼 새가슴처럼 숨을 쉬는 얕은 호흡이였고 내가 연습해야 되는 호흡은 횡경막을 동원하고 갈비뼈가 새의 날개처럼 부푸르며 최대한 많은 산소를 들이쉬어 코어에 힘을 주면서 산소를 몸의 깊은곳에 힘있게 보내는 호흡이였다. 나는 이 연습을 하며 죽지 않기 위한 호흡과 살기 위한 호흡은 깊이가 다른것이라고 이해를 했다. 생존을 위한것과 삶을 위한것은 깊이가 다른것이였다. 

     나는 삶을 위한 삶이 아닌 생존을 위한 삶을 여직껏 보아왔고 거기에 익숙했고 또 그런 삶을 살아왔다. 자부할것도 부끄러울것도 없는 농경문화속에서 힘을 쓰며 생계를 책임지는 남정네가 큰 소리를 떵 치면 집안팍의 잔일들을 하며 수발을 드는 아낙네가 숨을 죽이며 눈치를 보는 그 삶속에서 호흡은 수시로 가빳을것이고 그 호흡은 그지없이 옅었을것이다. 그 옅은 호흡만큼이나 가벼워진 존재를 나는 그들의 손을 잡으며, 그들을 바라보며 함께 놀라고 무서워하며 자연스럽게 배워갔고 몸에 익혀간것일가? 그 누구도 교편을 두드리며, 책을 펼치며 알려주지 않았지고 언어로 조차 표현이 어렸웠던 그 수많은 상황들속에서 내 피부가 느끼고 곁눈질로 보며, 말로 할수 없는 그 무겁고 무거운 그 어떤 불편함을 무의식으로 고심하며 느껴오며 내 한부분이 되여진 아낙네들의 그 가볍고 가벼운 삶… 

    하지만 내 인생이 “생존”이 아닌 “삶”이라면 그것은 어떻게 되는것인가? 

    나는 한숨을 쉬면서 가슴과 어깨를 덧없이 들썩였다. 종래로 깊은 호흡을 해본적 없는 나에게는 그 느낌을 찾아가는게 너무나 어려웠다. 트레이너는 나한테 호탕하게 웃을때 배에서 단단해지는 근육이 바로 그 깊은 호흡을 할때 사용하는 근육이라고 해석을 해주었다. 나에게는 정말로 후천적인 훈련을 거듭해야만 얻어지는 호흡법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렇게 탐이 났다. 아니 난 꼭 깊은 숨을 들이쉬며 내 가벼워진 삶의 무게를 되찾아 오리라… 호탕한 웃음의 그 배짱과 그 즐거움을 갖고 나는 살아가리라. 

나한테 무서운 존재로 다가왔던 아버지와 같이 두려움을 앞세워 지켜지는 사회질서, 나는 그것에 굴복하여 그들이 내주는 답안을 표준답안이라고 인정을 하고 그게 맞는지 그른지 판단할 엄두도 못낸채 무작정 거기에 맞추려고 그리도 노력하고 그리도 조심스러워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그속에서 잃어버린 그 누구도 별로 개의치 않은 그 하나, 다른 그 누구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오직 나한테만 중요한 그것, 그것은 바로 나의 기쁨, 내가 느끼는 기쁨이였다. 그것을 원하고 있으면 쉽사리 “이기적”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지며 질타를 받을가 노심초사해야 되고 그래서 중요하지 않은척을 하며 고상한 “희생과 헌신”을 흉내 내며 그토록 억눌린 나의 기쁨, 오로지 나한테 속한것… 나한테는 그토록 중요한데…  

가장 전형적으로 나를 시달리게 했던것은 “현처량모”라는 단어였다. 사회와 가정이 인정해주지만 그것을 위해 내 삶을 깎아 맞추어야 하는 이 단어, 내가 철 모르고 그토록 추구했던 그 단어가 이제 중년이 되니 참으로 혐오스러워 진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깎아맞추며 “현처양모”의 역할을 감당하는것은 아닐테지만, 어린 시절 가부장적인 문화에서 자란 나한테는 “현처양모”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하는 노력은 나를 깎아 맞추는 과정이였다. 사회와 가정이 인정해주는 기쁨도 기쁨이고, 나의 희생과 섬김으로 커가는 아이들과 남편의 성취를 보며 느끼는 기쁨도 기쁨이지만, 나만의 특별한, 아니 특별하지 않을수도 있는 기쁨, 오직 “나”라는 존재가 느끼는 기쁨은 왜 다른이들의 기쁨에 눌려야만 하는것일가? 나도 다른이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존재인데… 

3. 성장

“지금의 모든 자세는 몸 본체가 외부와 적응을 하면서 만들어진것이지요. 지금은 그 상호관계를 다시 바로 잡으면서 사용하지 않던 근육도 사용하도록 하게 할것입니다.” 트레이너는 내가 서있는 자세를 바로 잡아주었다. 

    발 뒤꿈치와 새끼발가락, 엄지발가락밑의 근육으로 땅을 느껴보라고 했다. 발에 무리한 힘을 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든든히 땅을 밟고 배를 너무 내밀지 말고 가슴도 너무 돋우지도 말며 척추 원래의 구불구불한 형태를 생각하며 목의 힘을 빼고 코어에 힘을 주며 하늘을 향해 성장하는 식물과 같이 목을 우로 뻗는다는 느낌으로 자연스럽게 서있으라고 했다.

    내 발은 습관적으로 땅을 밟았지만 진정으로 땅을 느낀적은 없는듯 했다. 나는 거기서 엄마가 아버지한테 억눌리면서도 또 많이 의지해 살아갔던것처럼 한없이 남편한테 의지했던 내 모습을 보게 되였다. 마치 내 발이 진정으로 땅을 느낀적이 없듯 나한테는 현실적이지 않는 생각들이 꽤 많았고 나는 집의 경제수입을 다 책임지고 있는 남편한테 의지를 많이 하고 있었다. 그의 성취와 그의 기쁨에 속없이 함께 기뻐하는 내 모습이 다 나쁜것은 아니지만 그중에서 내가 살아내고 감당해야 할 부분을 혼동하는 면이 분명 있었다. 내가 억눌리는것인지 내가 희생하는것인지 아니면 두 사람의 협력인지 일상의 자잘한 상황중에서 나는 수없이 헷갈려했다. 

    어머니는 나한테 원래 집에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큰소리를 치며 살게 되여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은 적어도 우리집 상황에는 그른데가 없었고 그 역시 사람인지라 그런 우세를 턱대고 꽤 으시대며 나한테 이것저것 시키는 모습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의 그런 모습을 아주 예민하게 경계하며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생태평형을 유지하듯 조심스럽게 가정의 평형을 맞추어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분명한것은 우리가 지켜가는것이 평화가 아닌 평형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많았다.

    남편이 밖에서 일을 하며 경제적인 수입을 책임지고 내가 집안에서 가사와 육아에 정성을 많이 쏟는것은 사실 합리한 분공일수도 있다. 이것이 둘이 평화롭게 상의가 잘되어서 이루어진 분공이라면 언제든지 대화와 토론을 통해 영활성이 있게 조절이 가능한것이지만, 상대방의 역할에 대한 고정적인 기대치를 가지고 “그렇게 해야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만들어진 평형을 위한 분공이라면 그것은 다분히 기계적이였고 이것을 조절하는것은 정말로 난제가 겹겹했다. 

    이런 기계적인 분공에서 약간 하위에 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 사람은 대부분 나였던것 같다)이 그 평형을 다시 조절할려고 시도를 하게  되면 제일 먼저 건드리게 되는것은 남편과 내가 살아온 세월동안 겪었던 그와 나의 부모가 만들어놓은 가정문화였고 거기에는 본인들의 부모에 대한 트라우마까지 겹쳐서 약간이라도 불똥이 잘못 튀여 대방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불효”의 자책이나 높은 “자존심”으로 포장된 깊은 “자비감”을 건드리게 되면 그날은 그야말로 “청산별곡”을 읊으며 밤을 하얗게 지새야만 했다.

“어듸라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돌코,  믜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그럴때마다 나는 “멀위랑 다래랑” 먹으며 속세(?)를 떠나 청산에 사는게 훨씬 낫다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불효의 자책의 정체는 무엇이였을가? 그 높은 부모님의 기대치를 만족시키느라고 그리도 버둥대야만 했던 모지름, 어쩌면 그게 자녀를 통한 웃세대들의 허영심 만족을 위한것일수도 있다는 불편한 사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은 아니였을가? 그 불똥은 어찌하여 부부사이에 튀여 이렇게 서로간에 주고받는것일가?  

자비감은 또 어찌하여 그 드높은 자존심으로 위장이 되여 본인을 괴롭히다 못해 주변을 초토화 시키면서도 항상 본인이 힘들다는 생각만 들게 하여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살게 만드는것일가? 그 초토화된 주변인물의 배역은 나와 남편이 엇갈아 맡으며 그리도 서로의 목을 조였다.

싱싱한 꽃 화분처럼 잘 자라는 두 딸을 생각하면서 참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면 나의 나약함 때문이지 내 아이들은 핑계인 경우가 많았다. 물론 아이들을 위해 내 생명도 바칠수 있지만 나의 이런 고상한 모성을 발휘하기엔 하루 24시간, 일년365일은 정말로 모든 고상함과 아름다운것을 그냥 잡다함과 피곤함으로 희석시키에 충분했다. 더구나 남편의 육아에 대한 참여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오는 그 상대적인 불평둥은 나를 더욱 괴롭혔던것 같다. 남편은 남편대로 밖에서 수고하며 일하는 사람으로서 집안의 모든 일을 정말 시름없이 나한테 맡기며 월급이 들어있는 카드로 모든 나의 수고를 위로하려는 불편한 계산을 했고 그러면 나는 억눌린다는 느낌으로 자그마한 일에도 진지한 논리를 펼쳐가며 과장을 보태가며 바가지를 긁었고 남편은 그럴때마다 억울해 했고 그것을 안해가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태도라고 하면서 자존심이 상해했다. 

이런 상황을 몇번 겪은후 우리 가정의 “가사분공”으로 인한 집안의 모순은 대개 남편이 처신하는 일들이 불편해도 나는 “현처양모”라는 다소곳한 꼬리치마로 무장하고 조심스레 나의 자존심을 고수했고 남편은 많이 시무룩해졌고 집안에서도 등을 많이 보였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은 나의 헌신이 “대단하다”고 칭찬을 했고 나는 그것에서 약간, 아주 약간의 위로를 느끼고 뒤돌아서 서면 마음속으로는 많이 씁쓸했다. 그게 어쩔수 없는 대응방식이였던것 같다. 물론 우리 가정의 평화가 지금까지 지켜진 이상  남편도 나처럼 조심스레 자존심을 지켜가며 많이 참고 있기는 마찬가지일것이다.

어영부영 “현처량모”라는 명목은 남편이나 또 친지들이나 친구들이나 내 부모들, 시부모들에게도 설득이 될지는 모르지만 어쩌다 잠을 설치는 깊은 밤이면 유독 나는 나한테 할말이 없었다. 참고 지나갔던 수많은 순간들이 억울해지며 나는 내 삶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고심했다. 내 앞의 내 몫으로 되여진 삶은, 남편한테 내 스스로 얹어놓은건지 아니면 어찌어찌하다가 가정이라는 명목으로 저당잡힌건지 모르는 그 내 삶은…언제 찾아올수 있는것일가? 

나는 도대체 어디에 쫓기우며 누구한테 보여줄려고 이리도 착한척을 하면서 살아야만 했던것일가? 나는 착할려고 노력했고 그러다 가닿지 못하면 어쩔수 없이 위선으로 되였을 내안의 수많은 불일치, 이 억울함, 이 눈물겨운 헛된 노력들… 

환경의 억눌림 때문일가, 두려움에 약한 나의 천성 때문일가… 

엄마는 아버지한테 억눌려 살아왔고, 내가 자라오면서 본 많은 엄마와 안해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도 아버지들한테 억눌려 살았고, 또 용감해야 했던 아버지들은 그 시대에 억눌려 살았고, 또 그들이 살아온 시대는 또 어디에 억눌려 있었던것일가? 나는 오늘날도 이 부분을 생각하면 아주 무겁다. 그니까 나의 그 억눌리는 느낌은 착각이나 피해의식에서 나온 부분만은 결코 아닐것이다. 나는 이 억눌림의 진원지를 보면 아직도 거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군 한다. 그 진원지가 싸워야 할 상대일가? 아니면 우리를 거대하게 덮고 있는 두려움이 싸워야 할 상대일가? 나에게 속한 싸움은 어느것일가? 나는 아직도 고심하며 찾아가는 길에 있다. 

이러한 억눌림으로 나는 내가 당연히 갖고 살아가야 할 꽃 피는듯한 기쁨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산 나날은 참으로 너무나 유감스럽다. 하지만  분명 내가 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나는 나의 두발로 힘있게 땅을 든든하게 밝고 서지 못한 나약함이 있기에 그 억눌림에 더 많이 휘둘렸을것이다. 

이렇게 우와 아래의 힘을 연결해주는 코어의 힘을 뱃힘이라고 리해하면 적절한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는 내 나름대로 “코어”의 힘을 찾아 모아 든든하게 땅을 밟고 선다. 내가 든든하게 거뜬하게 발로 밟을수 있는 이 잡다하고 거대한 일상이 내 땅이고 나는 거기서 충분한 자양분을 섭취하며 마음껏 높은곳을 향해 자라리라…  

4. 어우러진 삶 

이렇게 나만의 기쁨에서 나오는 열정과 사랑을 회복한다면 나의 것과 꼭 같이 소중하고 귀한 다른이의 그 기쁨과 열정도 보아내고 사랑해줄수 있지 않을가! “현처량모”가 아니더라도 칭찬을 받지 못하더라고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허술하면 허술한대로 그냥 내 남편과 아이들을 인간적으로 자연스럽게 사랑해주고 또 사랑을 받으며 그 멋에 살수 있지 않을가? 

   트레이닝 센터에서 집으로 가는길, 어두운 지하철 유리에 비낀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리에 힘을 주고 의연하게 서있는 나의 자태를 다시 보며 내심 미소를 지었다.  남편이 어려운 살림에 가격이 만만치 않는 트레이닝을 받을수 있게 해준게 새삼스럽게 감사해졌다. 아마 또 내가 남편한테 당신 덕분에 정말로 한결 나아지고 있다고 말을 하면 어깨가 하늘에 가 붙을듯 으시대며 오늘 저녁메뉴를 나한테 당당하게 요구해올것이다.  

인간의 모든 아름다운 감정을 희석시킬수 있는 잡다하고 번잡하고 고단한 결혼생활을 사랑의 무덤이라고 생각하며 실망하고 절망하였던 그 나날에 내 무릎은 그리도 아팠다. 하지만 그것은 성장통이였을가? 나의 일상, 나의 무릎, 어쩌면 연약한것, 어쩌면 소중한것, 어쩌면 그래서 더욱 사랑할수밖에 없는것…굽혔다 펴졌다하며 또 뒤틀리기도 했던 무릎, 가장 연약해 보이는 이 무릎의 아픔을 보았을때에야 거기서 나는 모든 뒤틀림을 바로 잡아주는 힘을 낼수 있었다. 억누르는 힘은 여전히 있고 이 땅에서 든든하게 발을 붙이고 살아가야만 하는 과제도 역시 쉽지는 않다. 

육아를 하는 여인들한테 별로 우호적이지 않는 사회환경, 어린시절부터 수많은 여성들의 수그린 삶을 보아오며 내 삶의 곳곳에 스며든 가정주부의 피해의식, 또한 남편의 뼈속에 분명 잔재해 있는 남존녀비 경향, 대남자주의를 쏙 빼 닮은 그 남자의 우월감, 거기서 파생된  가부장적인 문화, 이러한 피부로 느끼는 불평등에 너무나 적응이 된 나머지 속으로는 수시로 진저리를 치면서도 눈에는 절때 보이지 않는척 해야 하는 이 나라 이 땅의 계급과 질서, 그리고 거기에 수시로 말려드는 나, 그 와중에서 또 나와 남편의 타고난 개성과 미숙함 이런 복합적인 요소들까지 겹쳐져서 우리는 지지고 볶으며 서로 휘둘리고 서로 휘두르며 네 탓이요 내 탓이요 하며 일상은 계속 된다. 

달리는 지하철속에 나는 그냥 서있지만 열차는 그런 나를 싣고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지하철 창문에 비껴 희미해졌다 또렸해졌다를 반복하는 내 그림자를 보며 또 나의 그림자 곁에 함께 모여있는 다른 이들의 그림자들도 함께 바라 보게 되였다. 

약간 짠한 마음이 들었다. 

    내 삶을 그들의 삶으로 물들이고, 대단할것 없는 일상적인 대화와 마주보는 눈빛과 표정 그리고 몸짓으로 가장 진실한 세상을 가르쳐주고, 말할수 없는 한탄과 삶의 모순으로 내 삶에 숙제를  내여주고 떠난 “현처량모”들에게 오늘에는 안부를 묻고 싶다. 찬 겨울날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던 온돌, 거기에는 따뜻함도 있었지만 또 그 우에서 생활하며 무거운 가사로동에 수없이 꿇어지고 꺾여졌을 수많은 “현처량모” 들의 무릎, 그 무릎은 그때 정말 괜찮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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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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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몇번 육아와 가사노동에 관한 유려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체념하지 않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근원을 찾고 이해하려 하는 모습에 감명 받았어요. 사실 가부장적인 가정형태에서, 더 정확히 말하면 한사람이 대부분의 가사노동을 하는 가정형태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남방에는 남편이 밥도 하고 집안일도 다 하는 집도 많다지요. 그것 역시 저는 여자지만 부럽지는 않습니다.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배우자의 어려움을 공감할수 없는 것, 육체는 편할지라도 그것은 분명한 부족이라도 생각합니다. 많은 조선족 남성이 그리고 여성이 지금까지도 그런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보고 자란 분위기 탓이 아닌가 합니다. 아 제가 여기저기서 많이 들은 남편들의 공동멘트: 당신이 일하는 요령이 없어서 그래요. 정녕 다들 그리 생각하는가 봅니다. 남녀 편갈라서 싸우자는게 아닙니다. 남자들도 사회생활 힘든거 압니다. 근데 가사노동은 가족의 이해 없이는 정말 사람을 소모하는 일입니다. 누구 말마따나 가사노동하는 로봇이 나와야 이 지난한 싸움이 끝날려는지요. 마지막으로 유려님, 운동 많이 하시고, 가사일은 대수가이(!) 하세요.

      1. 워딩은 달라도 그런 요지로 말하는 남자 많더군요. 무슨 할일이 그리 많은가 하메. 그저 안해봐서 모른다고 생각해야지요 ㅎㅎ 글구 사실 여자들도 반성해야 해요. 아무도 그리 잘하라고 요구를 안했는데 혼자서 너무 열심히 할 필요 없죠.🤓

    1. 협력이 참 어려운것 같아요~~협력을 하려고 노력하려고 보면 남존여비의 전통과 또 내안의 가정주부의 피해의식을 대면해야 되더라구요 ~~ 남편도 나도 다 이걸 부모님한테서 유산처럼 물려받았죠.. 두 딸을 바라보면서 이런 질서를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노력하고 있어요 ㅋㅋ 운동도 열심히 해야겠네요~ 진심이 담긴 긴 댓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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