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을 걱정하며 썼던 글이 벌써 3주 전이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는 확진자가 몇 명 안됐었고 불안에 떠는 목소리는 컸지만 지금 수준은 아니었다. 이제는 대구가 두 번째 우한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는 서울이지만 딸아이 유치원은 닫았고 남편도 재택근무다. 언제까지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요즘 뉴스를 보노라면 박근혜 탄핵 시기 뉴스들이 떠오른다. 최순실 관련 기사들이 뜨면서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도 없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 뉴스들도, 댓글들도 만만치 않다. 사태가 이렇게 된 건 사이비 신천지 탓이라는 여론에, 중국인 입국금지를 초기부터 하지 않아 방역이 뚫렸다는 정부 탓에, 야당은 여당 탓하기 바쁘고, 대통력 탄해해야 된다는 국민청원에, 대통력 지지한다는 국민청원에… 거기에 전라도와 경상도가 서로 욕하는 지역감정에, 코로나로 인한 동양인 혐오까지… 여하튼 가관이다. 타이틀도 선정적이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팩트를 말하기보다는 여론몰이에 정신이 없다. 하긴 4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이런 이런 위기 상황이니 그럴 수밖에. 

댓글들도 가관이다.  정말 말도 안되는 댓글들이 대부분이다. 오죽했으면 "댓글 수준"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상대해서 싸울 필요가 없는 이유는 댓글의 목소리가 한국국민들의 목소리를 대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볼테르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난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당신이 주장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

대구/경북 지역에 대한 "봉쇄 조치"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이 사과를 하고 사퇴했다는 뉴스를 이틀 전에 위챗에 공유했었다. 거기에 대학교 동창이 달았던 댓글이 있었다. "民主国家的人都太矫情了。真的,大灾难面前还得中国体制。"솔직히 적잖게 충격적이었다. 그 친구도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말은 피해자가 아닌 이상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건가? 우한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비상이면 정부가 도시 하나를 희생시켜도 되는건가?누구 맘대로? 정부 관리하기 편하라고? 그게 효율 있게 잘한 건가? 다른 나라 정부는 봉쇄하는 게 편한 줄 몰라서 안 하는 걸까? 

물론 북경에 있었던 그 친구가 느낀 코로나의 무게와 우한에 있는 사람들이 느낀 무게는 다를 것이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에게는 고작 집콕해야 하는 불편함 정도 일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생명이 죽어나가고 가족을 잃어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비통함이고 무기력함이니 말이다. 

사스의 피해자들을 우리는 기억하는가? 누구인지도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잊고 지나갔고,우리에게는 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들에게는 그 피해가 그림자처럼 평생을 따라다닌다. 그런 피해가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는가? 오늘의 우한이 내일의 베이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근거 없는 걸까. 그러니 비상일수록, 가장 힘없는 약자를 지켜줄 수 있는 체제가 가장 인간적인 체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은 타인이 걸린 암보다 자기가 걸린 감기가 더 중하다고 생각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오른다. 결국에는 공감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는 가끔 눈 앞에서 보고 듣는 이야기에도 공감하기 힘들어 한다. 대개 부부들이 싸우는 이유가 아닐까?그러니 직접적인 경험이 아니면 공감하기는 더욱 힘들어 한다.육체적인 존재라서 그럴수 밖에 없는걸까.

감명깊게 본 소설이나 영화는 누구라도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심지어 실존 하지도 않는 캐릭터들 때문에 울고 웃는다. 공감을 했다는 증거이다. 우리는 어떻게 공감을 할 수 있었는가? 우리는 작가의 디테일한 언어적인 묘사를 통하여, 감독의 제스처 하나, 스쳐지나가는 눈빛 하나까지 캐치한  스크린을 통하여, 행복해하고 고통스러워 하는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표정을 보고 듣고 느꼈기 때문이다. 단지 선과 악으로 맞고 틀리고로 분석할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마치 우리 자신을 보는 듯한, 복잡한 감정을 가진 입체적인 인간임을. 스토리 텔링의 힘이다. 한낱 쓰잘데기 없는 이야기에 불과한 것 같지만, 문학의 의미가 공감에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야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섬과도 같은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우한이 더 안타까운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모른다. 숫자에 불과한 통계로 나오는게 전부다. 그 통계마저도 진실인지 우리는 알수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의 빛을 보게 하려고 시도하는 자들은 종적을 감추고 없던 일이 된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들만의 이야기로, 진실도 그대로 같이 묻힐까 두렵다. 

코로나가 펜데믹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공포의 목소리가 커지면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보는 가짜들이 판을 치게 되어 있다. 부디 평안이 없는 이 시기에, 공감하는 마음과 냉정한 시각으로 평정심을 유지하며, 모든 이들이 안녕하기를 빌어본다. 익숙했던 소중한 일상으로 하루 빨리 돌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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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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