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머무는 순간
전춘매
실수는 반복되는가?
한 사람이 신부님께 “왜 저는 자꾸 같은 잘못을 반복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신부님은 “그것이 바로 그대만의 나약함이고 부족함이며 그대 안에 악마가 머무는 순간입니다. 자신의 나약함과 싸우는 것이 정화의 길이기도 합니다. 반복하는 그 잘못의 차 수가 줄어든다면 그것은 자신을 극복하고 넘어선다는 뜻이겠지요.”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렇다 우리는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곤 한다. 우리는 마치 번마다 새로운 실수를 저지르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가 많다. 아마도 그것이 인간의 나약함인가 보다.
십여 년 전 2003년 우리는 사스를 경험했다.
그때 사스의 위험지역은 북경이었고 북경에 사는 나 역시 당시의 북경 시민들과 함께 불안함에 시달려야 했다.
마트는 곧 사재기 현상이 일어났다. 쌀이며 소금이며 생수며 라면이며 화장지며… 나도 덩달아 쌀과 기름 외에도 라면을 사두었고 생수도 몇 박스 사두었다.
직장에서는 재택근무를 권장했고 지하철이나 공공버스와 같은 공공장소는 매일 소독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드물었다. 나는 내가 세상을 알아서 처음으로 '난리났다'는 것을 느꼈었다. 매일 뉴스에서 몇 명이 감염되었고 몇 명이 호전되었으며 몇 명이 사망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 일과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만큼 열심히 뉴스를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도처에서 안부를 묻는 전화들이 걸려왔는데 마치 생사를 확인이라도 하려는듯 부모님은 매일 저녁 전화를 걸어왔다. 그때 나는 내 삶이 짊어진 무게가 단순히 나만의 삶이 아님을 절감했었다.
내가 사스에 걸릴 확률이 얼마인지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함과 두려움, 후에 한국에서 메르스가 돈다고 할 때 나는 또 한 번 북경의 사스를 되새기며 전염병으로 힘들어하는 지역의 공포를 자기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했다.
그런데 그러한 전염병의 공포는 잊을까 하면 또 생긴다. 사스와 같은 전염병에 대한 우리의 경각성이 느슨해질 무렵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전염병이 무한을 덮쳤고 전국으로 퍼졌다.
사스가 돌았을 때도 우리는 야생동물에서 전염되었다는 둥, 공공위생이 불결해서라는 둥, 의사들이 처음에 확진에 서툴러서였다는 둥, 전염성이 강한 병인 줄 모르고 환자를 실은 채 엠뷸런스가 이곳 저곳 옮겨다녀서라는 둥, 죽은 사람이 실제로 더 많다는 둥… 별별 흉흉한 소문이 사스보다 더 무섭게 나돌았었다.
그런데 지금 그때의 이 모든 것을 반복하고 있다. 다행히 사스를 경험한 적 있는 우리는 식량을 비축해야 한다는 그런 ‘마트사재기’는 없다. 다만 약방에 마스크와 소독제가 동강났을 뿐이다.
사스가 돌았을 때의 그 교훈을 잊지 않고 언제나 경각성을 높였더라면 이번의 전염병이 이렇게까지 심하지 퍼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천사와 악마
음력설을 쇤 이튿날, 즉 1월 26일에 부모님이 연변으로 돌아가셨는데 연길로 돌아간 엄마가 동네 상점에 갔다가 반갑게 인사하는 상점 주인에게 북경 딸집에 다녀왔다고 했더니 그토록 익숙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상점 주인이 대뜸 마스크를 끼더란다. 그때 연변에는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으나 북경에는 적잖게 나왔던지라 연변사람들에게 있어서 북경에서 온 사람은 '위험지역'에서 온 것이나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무한의 어떤 사람은 절망하였는지 칼을 들고 의사들에게 덮치려다 제지당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베이터 버튼에 침을 묻혀 10일 구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여성이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며 집집마다 손잡이에 침을 묻히는 장면이 아파트 카메라에 찍혔고 또 어떤 사람이 길가에 주차된 차의 손잡이마다 만지며 다니는 장면이 위챗에 돌아다녔다.
도시와 도시, 마을과 마을이 서로 길을 막았고 아파트 단지마다 출입증이나 신원을 확인하고 들여보냈다.
마을마다 내건 구호는 실로 가관이었으며 길을 막는 방법도 엽기적이었다. “올해는 세배하러 다니지 않으며 세배하러 다니는 사람은 적이고 적에게 문을 열어줘서는 안된다.”, “지금 손님을 청하는 것은 모두 홍문연이다.”, “오늘날 한입의 야생 맛은 내일의 지옥행.”, “집에 있는 것이 마스크를 절약하는 것이고 마스크를 절약한는 것이 곧 애국이다.”… 이런 구호와 함께 무한을 봉쇄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는 길을 찾아 봉쇄망을 뚫고 무한을 벗어났다는 '자랑스런' 호담(豪谈)도 버젓이 인터넷에 돌고 있다.
“무한 힘내라!”는 구호가 곳곳에서 울리지만 무한을 비롯한 호북성 사람들을 가까이 들이지 않겠다는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무한이란 위험한 지역으로 거슬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백의천사’들이었다. 연일 그들의 영웅적 사적이 도배했다. 방호복도 미처 보급되지 못한 그런 생사를 가르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끼니를 거르며 일신을 불태우는 그들은 참으로 ‘연기 없는 전장의 용사들’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북경조양병원의 탕의사는 무한으로 달려간 뒤 방호복이 미처 차례지지 않아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일선에서 싸웠는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우리 단톡방의 사람들은 억이 막힐 정도였고 그가 제일 눈부신 의사로 보였다. 악마가 머무는 자리에 천사가 보이는 법인가.
이 며칠 우리 나라에서 그 기세가 주춤하던 코로나19는 한국으로 넘어가 한국에 '두 번째 무한'이 나오고 있다.
무한에서 병상이 부족하여 병원 밖의 죽음이 나오듯 한국의 대구에서도 그런 죽음이 나오기 시작했고 초기 무한에서 의료일꾼이 부족하고 방호복과 마스크가 부족하듯이 한국의 대구도 마찬가지 혼란을 겪고 있다.
위험지역을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있나 하면 무한행과 마찬가지로 위험지역으로 뛰어드는 의사들이 있었으며 확진자가 호송 중에 호송일꾼에게 침을 뱉는 한심한 일도 있었다.
전염병에 국경이 없듯이 관건적인 시각에 사람의 추태도 국적을 가리지 않는가 보다.
이처럼 악마와 천사가 동시에 비교되면서 뚜렷이 나타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일상에서는 소소하게 옳고 그름으로 나누어지지만 이런 ‘난리’에는 너무나 선명하다.
여기저기 기부의 행렬이 이어지고 나 역시 가슴이 뜨거워져 내 월급수준에 좀 과하다할 정도로 기부했다. 그것이 무한에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나 이런 기특한 내면에 악마는 순간순간 머물고 있었다.
‘내’ 속에 자리한 악마
여기저기 기부의 행렬이 이어지고 나 역시 가슴이 뜨거워져 내 월급수준에 좀 과하다할 정도로 기부했다. 그것이 무한에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러나 이런 기특한 내면에 악마는 순간순간 머물고 있었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즘즉해졌지만 아직도 호북성 사람을 꺼리는 현상은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어떤 마을에서 현대화적인 공중화장실이 필요하여 하나 새로 지어야 했는데 모두들 대찬성하면서도 자기 집 앞에 짓는 것은 안된다고 했다. 그리하여 결국 그 마을에서는 새 화장실을 짓지 못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호북성을, 무한을 응원하고 심지어 거액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내 아파트 단지에 호북성 사람이나 무한 사람을 들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무한 사람’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우리는 할 수 없다.
17세기 60년대 영국에 흑사병이 돌아 근 8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흑사병은 영국 중부에 위치한 인구 344명 밖에 안되는 이얌(Eyam)이라는 작은 마을에도 전파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북쪽으로 피신 가자고 했는데 마을의 윌리엄이라는 성직자가 마을사람들을 모여놓고 상의한 결과 모두들 비장한 결의를 다졌다. 그들은 흑사병을 더 이상 북쪽으로 옮기지 말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북쪽으로 통하는 길에 돌로 성벽을 쌓아 봉쇄하고 마을의 사면팔방에 대리석 비석으로 경계를 두었다. 그들은 미리 묘비명을 남겨놓고 스스로 마을에 격리되었던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사람들은 하나 둘 감염되어 세상을 떠났는데 나중에 16세 이하의 33명 미성년자를 포함하여 겨우 70명이 살아남았다. 그들의 ‘위대한 희생’으로 북쪽에는 흑사병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았다고 한다.
후에 이 마을은 영국에서 ‘선량함을 남겨놓은’ ‘역병의 마을’로 유명해졌다.
타의든 자의든 오늘날 ‘무한의 희생’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무거운 삶을 마련해 주는지 모르겠다.
오늘(3월 1일) 수치로 전국의 확진자가 79,972명이며 사망자가 2,873명인데 이중 무한의 확진자는 49,122명이고 사망자가 2,195명이다. 무한의 확진자가 전국의 약 61.4%인데 비하면 사망자는 약 76.4%에 달한다.
인구 천만 명 정도에 달하는 도시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큰 타격이다. 그러나 이 수치가 아직도 늘 것이라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이번의 코로나19로 이미 사망된 사람들에게 있어서 감염 확율이나 치사율 등 비율을 따지는 것이 얼마나 미안하고 잔인한 일인지 모르겠다.
전염병 일선에서 싸우는 영웅들도 기록해야겠지만 이번 전염병으로 명을 달리한 그들의 죽음에 대하여서도 우린 마음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전염병은 늘 인간을 위협해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위협할 것이다.
전염병을 잊을 쯤이면 또다시 ‘흑사병’이요 ‘사스’요 ‘메르스’요 ‘코로나’요 하면서, 아니 어쩌면 또 이름도 없는 새로운 전염병이 돌지도 모른다. 북경 혹은 무한 아니면 또 어디에선가…
그때면 사람들은 ‘아차’ 하고 새삼스레 놀라듯 마스크를 산다 소독제를 산다 난리를 피울 것이며 그때면 또 비슷비슷한 소문들이 전염병보다 더 빨리 더 널리 확산되겠지. 그러면 또 ‘백의천사’들이 나타날 것이고 사람들은 똑같이 ‘영웅’을 칭송하겠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인간의 존엄과 본능 사이에서 악마가 머무는 순간순간을 타협과 반항으로 몸부림치겠지.
늘 그렇게 반복하면서…
<시선> 2020-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