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심리학을 가르치는 한 선생님이 우리더러 자신의 지금까지의 생활을 돌이켜보며 나이대를횡축으로 하고 종축에는 슬픔과 행복을 0점을 기준점으로 ‘–‘와‘+’로 점수를 적어넣은 감정그라프를 그리라고 했다. 나는 행복에 속하는 종축의 어느 한 중간 쯤에서 시작하여 횡축에 하나의 평행선을 쭉 그었다.
다른 사람들을 보니 빼곡이 나이대를 표시해가며, 행복과 슬픔을 넘나들며 아주 진지하게 그라프를 그리고 있었다. 휙 한획을 긋고 나서 할 일 없던 나는 다른 사람들이 곡선을 그리는 모습을 시큰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파동이 심한 그들의 곡선을 바라보다가 문득 하나의 기복이 심한 심전도를 떠올렸다. 언제는 저렇게 심장이 터질듯 아프거나 행복하였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살아서 펄떡이는 심장의 박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웬지 더는 무료하지도 시시하지도 않아졌다.
내가 그은 하나의 직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심전도로 말하면 사람의 심장박동이 더는 없을 때의 그라프다. 즉 시체의 심전도다. 그럼 여태 살아오면서 내 심장은 슬픔이나 행복에 별 느낌이 없었던 것일가? 아니면 큰 슬픔과 큰 행복이 없었던 것일가? 큰 슬픔도 더 슬퍼지지 않게, 큰 행복도 요란하지 않게 느끼려고 애썼다는 뜻일가? 애쓰지 않아도 될 만큼 무시했거나 담담했다는 뜻일가? 슬픔과 행복이 서로 상쇄되였다는 뜻일가?
감정들을 외면하고 사는 것이 내가 피해를 입지 않고 평온하게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분노해도 내 분노로 개변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고통스러워도 내 고통으로 지켜낼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목청 다해 웨쳐도 내 웨침으로 깨울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처절하게 울어도 그 울음으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기쁨이나 행복같은 것도 너무 사소하거나 평범해서 과장된 표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거나 이내 사그라드는 별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혹은 그 뒤에 슬픔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치부해버렸다. 그래서 차라리 멀리에 있었고 바라보기만 했고 무시해버렸고 피해갔고 미리 막아버렸다. 자신의 감정을 몰라도 살아지니까. 어쩌면 그것이 가장 편한 삶의 방식이라고 여겼을가? 자신을 잃은 것인줄 몰랐을가? 혹시 알면서도 그랬을가? 그래도 살아지는거니까.
흔들림 하나 없이 고집스레 뻗어간 직선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세상에 대한 감각의 주파수 하나 없는 것이 내 삶의 영상이였다. 밀려오는 감정들을 자꾸 억압하면서 점차 감정의 빛갈과 온기를 감지하지 못하게 되였고 내 심장은 그 기능이 훼손되여 있었다. 감정이 죽어버린다는 것은 결국은 생명이 죽어버린다는 게 아닐가 하는 섬찍함이 순간적으로 갈마들었다.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정말 가슴 미여질듯이 행복했던 적도 살점 도려내듯 고통스러웠던 적도 없었을가? 아니다. 분명 미소 하나, 눈빛 하나, 말 한마디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 뒤에 숨겨진 감정도 응시하며 행복의 전률을 느꼈던 적이 있다. 또 스쳐가는 작은 표정이나 행동 하나에도 비참해져 몸마저 아파가며 끔찍이도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 내게도 환희나 행복이나 또는 외로움이나 두려움, 절망이나 증오같은 감정들이 있었다. 그런데 왜 하나의 직선을 그었을가? 그 감정들은 배출구를 찾지 못한채 죽어갔으니까. 왜 그런 감정들을 똑바르게 바라보려고도 표현하려고도 하지 않았을가? 그런 감정을 내가 아닌 남이 되여 바라보았던 것이다. 나는 왜 나에게마저도 남이였을가?
스스로 껍질을 만들고 그 속으로 온몸을 옴츠려 들이고 그 협소한 공간에 틀여박혀 상상 속에서만 괴로움이나 즐거움을 느껴왔다. 세상에 넘치는 다양하고 그윽한 것들을 생생하게 겪고 즐기지 못했다. 어떤 상처나 공포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껍질은 나 자신마저도 철저히 남으로 밀어냈고 이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남게 했다. 껍질 속에서 살려는 욕망을 잃어버린 나는 세상에 나를 던져 고통과 행복으로 넘치는 삶을 정열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를 지키는 참된 도리임을 몰랐다. 나를 보호하려던 노력이 실상은 나를 파괴하는 가장 날카로운 짓거리였다.
행복의 종축에 그어진 하나의 직선을 바라본다. 그 행복을 만들어주었던 많은 사람들과 시간들이 떠올랐다. 딸애가 보드라운 숨결을 날리며 나를 바라본 순간이, 누군가 ‘나도’라며 내 가슴에 따뜻한 소용돌이를 만들어주던 순간이, 내 기쁨을 함께 기뻐해주며 사랑받는다는 환희를 알게 해주던 시간이, 따뜻한 해살을 온 얼굴로 받으며 시간을 잊은 채 나른해지던 시간이, 아무 것도 아닌 말에 왁자그르 웃어버리며 자신을 부끄럼 없이 꺼내 떠들었던 것이…
아름다운 시간이였다. 그런 시간들을 무감각하게 지내온 것이 나를 아프게 한다. 이제부터 하나하나의 섬세한 감정들을 아끼고 느끼리라. 평범하고 사소하고 가볍더라도 내부에서 피빛 같은 걸 머금고 피여오르는 감정을 민감한 촉수로 느끼고 소중하게 살아낼 것이다. 자신의 감정에 쭈볏쭈볏 다가가고 훔쳐보듯 바라보면서 희미하게 느끼는 것과 뜨거운 열정을 다해 껴안는 것의 차이를 배울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이여야 하며 얼마의 량이여야 하는지를 따지지 않으며 그것을 어느 만큼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를 따지지 않고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을 것이다.
심장이 뛰여야 했음을 알았다. 세상의 바람을 맞고 향기를 맡고 부름에 대답할 것이다.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 나를 살아가는 일임을알 것이다. 상상된 감정보다는 실제로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을 원할 것이다. 그리고 몰입할 것이다. 어떠한 감정이든 모두 깊이 있고 진실되게 표현하며 살아낼 것이다. 온몸과 맘을 열어 생생한 것에 감동할 것이다. 더는 모호하지 않게 미적지근하지 않게 제대로 슬퍼지고 제대로 행복해질 것이다. 그것만이 삶의 의미를 가지고 진정으로 살아있는 모습이라고 여기고 싶다.
어쩌면 감각의 촉수를 예리하게 만든다는 것은 아픔도 훨씬 더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그런 걱정을 내려놓고 기꺼이 세상에 나를 던져 나를 살아낼 것이다. 그게 우리가 자신을 사랑할 준비이다. 또 그게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자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