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이 말라 버린 지 오래다. 평강선생의 거듭된 재촉으로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며 끝내지 못한 자전거 려행기를 다시 써내려 간다. 몇달 전 진령(秦岭)에서의 추억들을 두 편으로 나눠 펴냈었다. (Vol.3 중국의 남과 북이 바뀌는 시간&Vol.4 진령(秦嶺)의 세례를 받아본 적이 있는가?)
이번 편에서는 진령을 넘어 그 후의 이야기를 다뤄보고자 한다. 2017년의 자전거 려행과 2014년의 자전거 려행은 방향만 다를 뿐 로선은 비슷하니 두 번의 려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함께 다뤄 보자고 한다.
1 화로(火爐)속으로
찐득찐득하게 무더운 중경을 떠나 북상하여 진령을 넘었다. (3&4편에서 말한바와 같이) 그리고 수분기가 없이 뜨거운 서안으로 들어섰다. 서안일대는 물이 메마른 사우나라고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뻐스를 타고 서안에 도착했다. 해질녘, 자전거를 타고 역에서 나와 서안 시내를 지나며 예전에 서안 왔을 때의 추억을 되새겨 봤다. 그리고 서안 동쪽 성벽 부근에 있는 어느 한 호텔에 짐을 풀었다.
그러고 보니 서안을 많이 와봤었다.
3년전(2014년7월), 운남으로 향하는 자전거 려행중에 서안을 지났었고, 2015년쯤에 전 여친이 서안사람이라 들러 본적이 있다. 2017년의 이 려행까지 하면 세번 와본 셈이다. 하지만 병마용 같은 유적지는 가보지 못했었다. 그저 성벽이나 종루(钟楼)쪽이나 돌아보는 것에 그쳤다. 서안과의 인연이 거기까지 인가보다. 서안하면 병마용이 떠오르는 건 사실이지만 정작 내 피부에 와 닿는 건 서안의 무더위였다.
이튿날, 아침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숨이 막히게 텁텁한 공기가 목을 조여왔다. 3년전 자전거 려행할 때와 똑같이, 이번에도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이다. 뙤약볕 아래 힘겹게 페달을 밟아 댔다. '여기에는 나의 친구가 없소'라는 김학철 선생의 말처럼 나도 뭔가 견결함을 품고 서안을 빠져나왔다.
‘여기에는 내가 머무를 리유가 없소’
3년전이나 이번이나 마찬가지로 정오를 지나며 기온이 37도를 찍었다. 오후 2-3시가 되여서는 숨이 할딱할딱. 기온이 36도를 넘어설 때부터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불속에 던져진 쟁반같이 뜨거운 아스팔트를 달리다 보니 몸속 수분은 쭉쭉 빠져나가고 일찌감치 육포가 된 듯싶다. 들숨마다 코가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얼굴로 ‘스리 살살’ 불어오는 바람, 1도 시원하지가 않다. 딱 드라이기에서 불어오는 바람 같았다.
[뭐 이 정도 기온]
그러한 상황에서 더위 먹는 건 뭐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기온이 36도를 찍은 뒤로는 몸과 마음이 모두 너덜너덜해져 하는 수없이 반시간마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로수 그늘을 찾아 정신 혼미한 상태로 쉬게 된다. 물론 그 그늘들도 결코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그러하 듯 목구멍으로 들이킨 물은 땀구멍으로 곧바로 빠져 나왔다. 하루 종일 ‘물먹는 하마’ 같았 어도 오줌 한번 제대로 지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번 지렸다 하면 뭐 오렌지 주스 정도? 뇨도가 타 들어 가지 않은 게 신기할 따름.
그렇게 서안을 떠나 무더위를 이겨내며 이틀정도 달려 황하를 건너 산서성으로 들어섰다.
2 황하
섬서성(陕西省)과 산서성(山西省)은 황하를 경계로 한다. 둘을 잇는 다리는 그리 많지가 않다. 2017년에도 그저 지도에서 주는 로선을 따라 달려 황하변에 이르렀다.
그 드넓고 파도치는 물결에, 百舸가 爭流하는,
중화의 력사와 함께 한 황하.
‘아! 황하, 어머니 강!’
…이라고 상상했다면 큰 오산인 것이다.
7월의 황하, 적어도 내가 건넜던 그 날, 그 곳의 황하는 젖줄이 말라 군데군데 바닥이 들어 난 별 볼일 없는 강이었다. 강변에는 뭇 려인(旅人)들이 차를 세워 두고 강으로 들어가 발을 담그고 있었다. 배다리(浮橋)를 건너 산서성 경내로 들어섰다. 그리고 강변에 박아 둔 ‘黃河水深无底禁止下河戏水’라는 팻말을 보고 빵 터짐.
[황하 량안을 잇는 배다리 위에서]
[黄河水深无底 禁止下河戏水]
3년 전인 2014년, 운남으로 향하는 려행에서 본 황하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그 때는 길을 좀 돌아 룡문(龍門) 혹은 우문구(禹门口)라고 불리는 곳을 거쳐갔다. 그 곳이 바로 속담 ‘鯉魚躍龍門’의 출처로 유명한 곳이다. 상류의 좁은 협곡을 비집고 파도 치던 물결이 광활한 평야를 만나는 곳이 바로 룡문이다. 그 곳을 지나던 당시 다리에 서서 오른쪽을 볼라 치면 흉흉한 파도가 협곡을 갈기며 흐르다가 또 왼쪽을 볼라 치면 잔잔한 강물이 해빛에 반짝이며 저 지평선까지 이어진다. 당시 서있었던 다리 아래가 바로 룡문인 것이다. 잔잔한 물결을 따라 헤엄쳐 올라오던 물고기가 물살이 거센 룡문을 넘어가면 룡이 된다는 뭐 그런 속담이겠다.
[禹门口 | 2014년, 앞에 보이는 대교는 건설 중, 당시에는 멀리 보이는 작은 다리로 통행.]
3 贾樟柯의 영화속으로
황하를 지나 동쪽으로 전형적인 황토고원인 산서성 경내에 들어온 셈이다. 혹시 산서성으로 가 본적이 있는가? 태원(太原)이나 진중(晋中) 같은 도시, 혹은 평요(平遥)나 기현(祁县) 같은 려행지로 가본 이는 많을 것이다. 나도 대학교 때 친구들과 함께 평요와 기현으로 려행 가 본 적이 있다. 짝사랑하던 동학과 그리고 친구 여럿이 함께 떠났던 그때 그 시절의 려행, 좋은 추억이었다.
하지만 자전거 려행으로 다녀본 산서성은 무척이나 달랐다. 비행기를 타고 점 찍는 식의 려행에 비해 자전거 려행은 이런 점에서 더 좋은 것 같다 — 즉 자기 눈으로 구석구석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
물론 평요 같은 려행지도 좋지만, 내가 즐기는 건 국도(国道)나 성도(省道, 일부분은 현도[县道]나 향도[乡道])를 따라 가며 곳곳에서 마주치는 촌부락과 향진을 관찰하고 그 곳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엿보는 것이다.
자전거 려행을 하며 느껴본 산서성은 멈춰버린 시간 속에 있는 것 같다. 비약적인 경제발전에 힘입어 우리의 삶은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농촌지역을 지나다 보면 뭔가 옛적의 익숙함이 있다. 분명 길도 좋아졌고 치안도 좋아졌고 모든 것이 다 쇄신된 듯했지만 때때로 10여년 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산서성의 향촌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산서성 하면 석탄이 떠오른다.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석탄을 실어 나르는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다닌다. 그 덕에 누런 먼지와 석탄가루들이 흩날리며 주위의 모든 것들을 덮쳐 건물들은 모두 숱에 그을린 듯하다. 그래서 인가, 지나가는 곳마다 90년대로 돌아간 것 같았고 시야의 모든 것들이 생기를 잃어버리고 억압받는 것 같았다. 뭇 향진을 지날 때마다 贾樟柯의 영화속으로 들어간 느낌이었다. 뭔가 낡고 누렇게 색 바랜 필름 영화속으로 들어간 듯한, 그리고 역동적인 것들이 가려진 것 같다는 그런 느낌.
[贾樟柯 감독 영화 《小武》의 한 장면]
4 식당에서의 담화, 支教도 결국 나를 위한 것
산서성의 어느 한 향진에서 있었던 식당 아주머니와의 담화가 생각난다. 때는 2014년 북경에서 운남으로 支教하러 가던 자전거 려행중이었다. 그날 하북성에서 출발해 태항산(太行山)을 넘어 산서성으로 들어갔다. 참으로 힘든 로정이었다. 길에서 있었던 일들은 다음 편에서 펴내기로 하고, 아무튼 해질녘이 되어 산서성의 어느 한 향진에 도착을 했다.
[산서성 경내의 G108 국도에서]
도로 옆 편의점에서 음료 두 병을 사 옆에 있는 촌민위원회 대문 앞에 웅크리고 앉아 마시며 쉬고 있었다. 부근에서 뛰놀던 애들이 하나 둘 모여왔다. 말을 거는 이는 없었고 그저 신기한 듯 자전거랑 나를 번갈아 가며 쳐다볼 뿐이었다. 그젠 그러한 눈길에 이미 습관된 터라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휴대전화로 얼굴을 비춰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온통 흙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흙이라고 하기보다는 석탄가루라고 하는게 맞을 것이다. ‘웃프다’라는 신조어가 딱 내 심정이었다.
[산서성 경내에서는 기본적으로 석탄먼지를 뒤집어 쓰고 다녀야 함.]
밤에 밟을 로정을 다시 확인하고 부근에 있는 한 자그마한 식당에 들어갔다. 그 향진의 이름은 잊은 지 오래다. 하지만 길옆으로 옹기종기 모여 앉았던 집들은 어렴풋이 기억난다. 석탄을 나르는 트럭들이 줄지어 다니는 지라, 벽과 창문과 간판들은 온통 숱에 그을린 생기가 없는 모습이었다.
식당에 들어가 자리잡고 손 씻을 곳을 알려 달라고 하니 문 옆에 있는 대야를 가리켰다. 어릴 적 학교에서 보아오던 그런 양식이다 — 철근을 우그려 만든 받침대, 그 위에 꽃무늬가 새겨진 흰색의 대야, 그리고 대야 옆 철근에 걸쳐 놓은 조금은 얼룩진 수건 한 장. 얼굴이랑 손을 씻고 보니 물이 온통 검게 변했다. 조금 있다 알게 된 일인데, 그 향진에는 수도시설이 없어 물을 직접 길어서 써야했다. 주인 아주머니한테 참 미안했다.
뭘 먹었던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볶음밥이었을 것이다. 기억나는 건 주인이랑의 대화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음식을 올리고 바로 식탁 맞은 켠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맨 앞에 던져지는 건 뻔한 "어디로 가느냐, 왜 가느냐, 어디서 왔냐, 왜 왔냐"는 식의 질문들이었다.
너무 많이 받아봤던 질문이라 어떤 때에는 그냥 두리뭉실하게 답하는 경우가 있다. 그 날은, 주인 아주머니의 진지하고 상냥한 모습에 나는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 북경에서 갓 졸업하고 이제 운남으로 支教하는 길이라고 말이다. 支教란 무엇인지도, 그리고 기타 질문에도 성실히 답했다. 그리고 주인 아주머니가 넌지시 말해왔다. 支教할 거라면 그냥 여기서 해라고. 이 진도 편벽한 곳이라고. 이 진에도 교사가 부족하다고… 그냥 무심코 던지는 말이 아닌 걸로 보였다. 주인 아주머니는 진지하고 진솔하게 그것도 여러 번이고 곱씹어 말했다. 주인 아주머니의 말에 난 그냥 얼버무리며 그 화제를 넘겼다.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자원봉사 한다고 떠나는 支教가 꼭 운남일 리유는 없었다. 십분 순수하게 봉사를 한다면 나의 호악(好恶)과는 무관하게 가장 필요한 곳에서 가장 필요한 이들을 돕는 게 맞을 것이다. 꼭 운남이었어야 하는 리유는 운남쪽에 있는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있었다.
내가 원했던 건 결국 순수한 봉사, 순수한 支教, 순수하게 남을 돕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랑만주의적인 상상 속 운남과 그 곳에서의 支教생활 및 그로 인해 얻어질 자아만족 그리고 도덕적인 우월감을 더 원했던 게 아닌가 싶다. 부끄러워 질 일이다.
운남 가기 전 나 자신의 支教 동기에 대해 자아성찰의 시간을 안 가져본 건 아니다. 단지 그 식당에서의 담화 때처럼 적라라하게 자기 생각을 해부해 본 적이 없었다. 도덕적 자아만족을 위한 리기적인 생각이 몇 퍼센트를 차지했을까…
그렇다고 나 자신을 필요이상으로 매도할 생각은 없다. 결코 沽名钓誉하러 운남행을 택했다는 건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支教라는 길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을 하게 된 것에는 아주 리기적인 내면적 리유가 있었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뿐이다.
아마 식당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계기가 되었을까? 그 뒤로 크고 작은 결정을 하거나 사회이슈에 대한 나의 관점을 돌이켜 볼 때마다 난 자아성찰을 해본다. 그리고 번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결코 체면적이지는 못한 리기적인 생각을 찾게 된다.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때가 많다.
어떠한 결정을 하거나 어떠한 관점을 피력할 때 표면적으로 이러저러한 冠冕堂皇한 근거를 제시할 수는 있으나 그 내면에는 리기적인 것들이 많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그 리기적인 생각들을 소멸할 필요는 없다. 克己复礼를 행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저 마음 깊숙한 곳을 만져보고 자기자신을 알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뿐이다. 그러한 생각들이 인성의 일부분임을 알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뿌리칠 수 없는 그러한 생각들을 짊어지고, 또한 부끄럽지만은 않은 길을 택할 필요가 있고 그러면서 인생을 살아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2016년 봄, 支教하러 갔던 茂兰镇의 학생들과 함께]

재밌게 읽었습니다. ^^대학때 支教신청하고 싶었지만, 조건에 부합되지 않아서 못했습니다. 그런 아쉬움이 조금은 있습니다. 支教라는 단어 앞에서 목적이 순수하지 안으면 自私한것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그곳에서 봉사를 한 업적에 비해 자신이 얻은것이 더 많다고 느껴서가 아닐까 싶기도합니다만, 얻은것이 많다는건, 그만큼 진지하게 시간을 보내고, 일에 성실히 임했다는 증거 아닐까십습니다. 멋지십니다.
맞습니다. 준 것보다 얻어가는 것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난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 가르치는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착오를 범한 것 같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고, 또 아쉬움 때문에 그 支教 경력을 더욱 잊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황하 표말 부분에서 터짐
단숨에 1-5편 읽었습니다. 해보지 못한 자전거여행이라 흥미진진합니다. 쉬운 일이 아니네요. / 그리고 자전거가 산서에서 멈췄네요. 뒷이야기도 궁금한데, 버텨보겠습니다.
어째 재촉을 받았다는데 다음편은 아직 안 올라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