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로 여행을 갔다.

 

여행은 자기에서 익숙한 마당을 벗어나 다른 낯선 마당에 들어가는 시간이며, 자기집 마당을 담너머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낯선 자리에서 낯선 눈빛으로 "나"의 익숙함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다.

 

동시에 귀로만 듣던 것을 확인하는 것 또한 여행의 재미가 된다. 머리속에 알고 그렸던 익숙함을 눈으로 "낯설게" 익히는 것이다. 이번 여행은 이러한 "낯설음"과 "익숙함"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생각들을 만난게 수확 중 하나라고 하겠다.

 

[익숙함의 낯선 모습]

1. 말라카해협

말라카해협(马六甲, Malacca)은 말라이 반도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사이에 동남-서북 방향으로 기다랗게 뻗어있는 해협으로서 전체 길이는 1080km, 서북부 제일 넓은 지역은 370km에 달하고 동남부 제일 좁은 지역은 37km 밖에 안된다. 인도양과 태평양을 잇는 국제해상수로이며 중국, 일본, 한국 등 지역의 "해상생명선"으로 불릴만큼 중요한 교통중추이다.

 

 

지리 교과서에서 이렇게 배웠었다. 헌데 싱가폴에서 항공편을 환승하면서 하늘에서 내려다 본 말라카해협의 제일 좁은 구역은 생각보다 굉장히 좁았다. 이 좁은 수로로 해마다 5만 척 이상의 배들이 통과하고 하루에 1100만 배럴(2003년 수치)의 석유가 운송되며 그중 85% 이상이 중국을 향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37km", "동서양의 십자로"라는 표현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이었다.

 

2. 싱가포르

싱가포르는 말라이반도 맨끝, 말라카해협 동쪽 끝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로서 말라카해협 중에서도 멱살에 해당하는 요충지이다. 비행기에서 굽어본 싱가포르의 바다는 뽕나무 잎 같은 좁은 수로 위에 몰려든 누에떼처럼 길죽한 컨테이너 운반선들이 꾸역꾸역 지평선 너머에까지 길게 뻗어있는 장관이었다.

 

비행기 이착륙 시 전자설비를 꺼야 해서, 인터넷 상의 이미지로 대체

 

이런 지리적 위치에 있으면 도시가 발전하지 않을래야 발전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지원도 뒷받침 되어야 하지만 말이다. "동북아의 금삼각지"로 불리는 훈춘이 생각났다. 그리고 지정학적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다시금 떠올렸다.

 

3. 천도의 나라(千島之國)

천도의 나라, 세계에서 제일 많은 섬을 거느리고 있는 군도의 나라. 지리 교과서에서 인도네시아를 그렇게 배웠다. 짧디짧은 싱가포르해협을 날아 지나는 동안 그 사실이 정면으로 와닿았다.

 

싱가폴과 마주한 인도네시아 리아우 군도(Riau, 廖内)

인터넷 이미지

 

공식적인 통계로 인도네시아는 17,508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책에 나와있다. 짧은 십여분 동안의 비행 상승 구간에서 내려다 본 작은 화면 만으로도 인도네시아가 얼마나 큰 섬들의 나라인지 실감이 났다.

 

군도의 나라는 당장 섬과 섬 사이의 교통과 연계부터가 뭍의 나라와 다를 것이다. 그리고 그건 필연코 이 나라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먹거리, 시간의 인식 등 문화에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끝없는 상상들을 해보았다.

 

 

[낯설음의 익숙한 느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었다. 생판 모르는 낯선 곳이라 걱정되어 오기 전 미리 셰청(Ctrip, 携程)에서 현지 중국어 운전수의 공항픽업 서비스를 예약했었다. 그래서 만난 이가 황씨 성을 가진 인도네시아 화인(华人)이었다.

 

호텔로 이동하는 차량 중에서 이야기를 조금 나누어 보았다.  그는 남양에 이민한 중국인의 제4세대 후예였다. 증조부는 귀주 사람이었는데 일찍 인도네시아 수마트라(苏门答腊, Sumatra) 섬에 이주하여 정착하여 살았으며 중의사였다고 한다. 아들이 넷 있었는데 누구도 중의를 가업으로 잇기를 원하지 않아서 맥이 끊겼으며 모두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고 하였다.

 

현지 화인 운전수 황씨

 

황씨도 한어(漢語)를 몰랐다. 하지만 중국인 유람객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한달 사이에 다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제야 그가 사전에 위챗에서 교류할 당시 음성문자로만 이야기했던 것이 조금 이해가 갔다. 그는 타자에 아직 서툴렀다. 어휘량도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빠르게 중국어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 중에 있었다.

 

조선족 교육이 계속적으로 문제시 되고있다. 특히 관내로 진출한 비집거지에 태어난 조선족 아이들은 우리 말과 글을 배우기가 굉장히 어려운 여건 속에서 대부분이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그게 현실이다.

 

글쓴이는 중국으로 이민 온 조선족 4세대이다. 동시에 조선족 관내 진출 1세대라고 자신을 정의한다. 소수자로 경계인으로 살면서, 집거지인 고향에서도 비집거지인 관내 대도시에서도 정체성과 교육에 대한 고민은 계속 이어져 왔다.

 

현 시점과 시각으로 바라보면 위기론이 대두되는 것이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좀 더 긴 시간과 흐름을 본다면 이것 또한 한 단면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글쓴이의 대학교 동문들 중에는 대도시에서 태어나 우리 말과 글을 모르고 자란 조선족들도 적지 않다. 그중 일부는 학부 시절에도 그런 상태로 있다가 한국에 유학을 다녀 오면서 오히려 우리보다더 더 표준적인 "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례로 여럿 있다.

 

어쩌면 우리는 문화 혹은 민족이라는 그 끈의 끈질김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동아시아에서 조선반도의 존재는 몇천년 동안 소위 중화문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곁에서 독립성을 잃지 않고 존속되어 온 몇 안되는 사례이다. 그만큼 이 문화의 저력이 실제로 살아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요즘에도 그것은 반도문제라는 국제정치적 이슈와 한류라는 소프트 파워로 계속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리고 정체성이 소실되었나 싶던 조선족들도 알게 모르게 그 끈을 다시 부여잡고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유람객 "덕"에 자신의 뿌리를 다시 더듬게 된 인도네시아 화인 운전수 황씨, 그에게서 엿보아지는 낯설게 익숙한 우리 모습의 조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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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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