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우중충한 그날 나는 도쿄 지하철 환승역에서 30분간 헤맸다.  숨 가쁘게 달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똑같은 경로를 3번이나 오고 갔다. 말 그대로 멘붕이였다. 믿었던 구글 맵이 환승역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길바닥에서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환승을 내가 못한다고? 미로에 빠진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 등에 식은땀이 잔뜩 나있었다. 

   석사과정 논문 심사를 마치고 난 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촌 언니도 보고 머리도 쉴 겸 도쿄로 가기로 했다. 일본은 나에겐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고, 재학생 신분으로 비자가 쉽게 나온다는 소문에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 급히 계획한 9박 11일 여행이었다. 나는 혼자 떠나는 여행에 마냥 신나고 들떠 있었다. 왠지 도쿄 거리에서 혼자 걸어 다니면 스스로가  멋있을 것 같았다.

   도쿄에 도착해서 언니랑 디즈니도 가고 온천도 했으니 언니는 하루 쉬라고 했다. 나 혼자 여행해 보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표이기도 하니 오늘 하루는 혼자 다녀 보겠다고 했다. 목적지는 국립 신 미술관이다. 지하철 타고 노기자카(乃木坂) 역까지만 가면 바로 앞에 있으니 아무 문제 없을 거라 장담했었다.

환승을 하기 위해 찍은
2018년의 흔적

   출발역은 하무라(羽村)이고 신주쿠(新宿)와 요요기하치만(代代木八幡)에서 환승하고 노기자카(乃木坂)에서 내리면 목적지인 국립 신미술관에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첫 번째 환승구인 신주쿠(新宿)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환승을 했는데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었다. 방향을 잘못 잡은 줄 알고,  신주쿠(新宿)로 돌아와  다시  선로를 탔지만  또다시 집으로 가는 것이다. 또 다시 원점 신주쿠(新宿)로 돌아왔다. 당황한 나머지 혼자 역에서 표지판만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언어를 모르니 아무리 보아도 답이 없다. 카드를 찍는 환승구로 돌아가 보았다. 내가 가는 길의 표시들을 찍어 보고, 물을 벌컥 벌컥 마셔 보았다. 이렇게라도 하면 더 기억이 날것 같았다. 빨간색 라인에서 파란색 라인으로 갈아 타는 것이 맞는데 어디가 잘못된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열차가 다시 들어왔고. 긴가 민가 하면서 옆 사람한테 물어 보고 싶은데 일본어를 모르니… 아니 그럴 분위기가 아닌 것 같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왠지 차가워 보였다.  차에 탑승하고 뚫어져라 구글 맵만 쳐다 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맞게 환승했다. 

인터넷 사진

국립 신미술관 입구콘크리트 위에서 보는 미술관 내부 환경

   역에서 내리면 신미술관 입구가 바로 보일 줄 알았다. 하지만 으리으리한 미술관 같은 건물만 보이고 입구가 안 보인다. 다행히 구글 맵이 있어 따라가면 되니 너무 당황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기다리던 국립 신미술관에 도착했다.  사진에서만 보던 거대한 콘크리트 모형이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듯이 서있고, 체육장 만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웅장하고 멋있었으며  마치 커 다란 숲에 들어온 기분이였다. 콘크리트 모형 위에는 카페도 있고, 쉴 수 있는 휴식 공간들이 많았다. 이곳은 구로카와 기쇼(黑川纪章)이라는 건축가의 작품이다.  구로카와 기쇼(黑川纪章)는 건축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신진대사를 하는 거이어야 하고 생명체인 인간을 닮아 인간과 유기체처럼 하나가 된 듯 여겨져야 한다고 말한다. 건축가가 머릿속으로 구상해낸 결과물에 의해  사람들이 이곳에 몰려 들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오늘 유난히 건축가가 멋있어 보인다. 유리를 통해 쏟아지는 햇빛 아래 잠시 앉아 쉬어 보며 대학 입시 때 건축 디자인에 진학 하짐 못해 아쉬웠던 기억을 떠올린다. 인터넷 사진, 미술관 내부 환경

   전시장에는 유로 전시와 무료 전시가 있었다. 무료 전시 중 사회에 진출하려는 대학 졸업생들의 작품 전시가 기억에 남아 있다. 이 사회에는 어떤 문제점들이 있고, 그 문제점들을 청년들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었다.  조각 작품, 회화 작품, 행위 예술 등 여러 가지 작품들이 있었다. 행위 예술이 기억에 남는다.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이 거리에서 일본인에게 자신과 옷을 바꿔 입을 수 있냐고 물어 보고, 허락해 주는 사람은 그 자리 천막 안에서 옷을 갈아입고 사진을 남긴다. 이런 행위를 기록함으로써 일본 사회의 문화 다양성에 대한 포용과 배척을 표현한 것이었다.

전시 중인 작품

전시 중인 작품

   전시를 보고 나니 배가 고팠다. 전시장 3층에는 미슐랭이 인정한 프랑스 식당이 있지만 가난한 학생인 나에게는 브랜드 코스 요리는 사치이니 밖에서 먹기로 했다. 나는 지하철로 가는 길에 있는 라멘집에서 나가사키를 주문해 먹었다. 

꿀맛^^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바로 근처에 지하철역이 보일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역이 안 보인다.한국이나 중국에서는 멀리서 봐도 지하철역인 건축 표시들이 한눈에 보이는데 일본에는 그렇지 않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지하철역을 물어보았다. 일본어로 해주는 답에 하나도 못 알아 들었다. 다른 사람한테 또다시 물어 보고 그분이 가는 길이라며 데려다주었다. 정말 눈에 띄지 않을 정도여서 코앞에 도착해서 알았다. 역이라는 것을.

   이번에도 환승역이 겁이 났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지하철엔 사람들이 꽉 차있었고, 나는 입구 쪽에 있는 기둥을 붇잡고 다음 역에 도착할 때까지 뚫어져라 핸드폰만 쳐다보았다. 역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그 파도에 나도 밀쳐 나갔다. 나를 밀어내는 그 남자가 불쾌했다. 말을 하지, 말을 하면 내가 비켜 줄 텐데…

    돌아오는 길에 갈 때 길을 잃었던 신주쿠(新宿) 역에서 내려 미술용품을 파는 세카이도(世纪堂)로 향했다. 코픽(copic )마카펜을 사고 싶었다. 가는 길에 노을이 살짝 붉어 졌다. 문구점 세카이도(世纪堂)에 도착해 마카펜이 있는지 물어보니 없다고 답해 주었고, 신주쿠(新宿) 역 6층에 가면 파는 곳이 있다고 친절하게 가이드 해주었다. 일본어와 영어가 섞인 종업원의 설명을 나는 단번에 알아 들었다. 신가하고 뿌듯했다. 종업원이 가리킨 곳에서 코픽(copic)마카펜을 만났다. 좋아하는 색으로만 골라 사들고 집으로 향했다. 

   언니네 집하고 가까운 하무라(羽村) 역에서 내렸을 땐 이미 캄캄한 밤이었다. 집으로 걸아 가는 짧은 길에 전등이 어두웠고, 길옆에 있는 몇몇 주택들의 불빛이 보였다. 가는 길에 사람 보이니  알 수 없는 불안감들로 심장 박수가 점점 올라갔다. 모르는 사람을 보아도 인사를 해야 하고 좌측보행을 해야 한다고 언니가 알려주었다. 보행규칙을 지키며 길을 내주고, 뻘쭘하게 고개를 숙여 본다. 시골이어서 그런지 이 동네는 너무나 조용했다. 집 앞에 담배를 피는 남자가 왠지 따라올 것 같아 빨리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 사람이 나를 해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는데 내가 그냥 무서워 뛰었다. 모름이 가져다준 불안과 오해이다. 

   집에 도착하니 언니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먹으며 언니한테 지하철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밀쳤다고 말했다. 말을 하면 되는데 내가 귀먹은 것도 아니고, 예의 바르기로 유명한 일본 사람이 왜 나를 밀치냐고 투덜거렸다.

  언니가 답한다. '니가 알아서 비켰어야지!'

  '아… 그렇구나.'

  혼자 여행을 한다는 것, 폼 잡고 도쿄의 길거리를 자유롭게 누비고 다닐 줄 알았지만,  사실은 문제투성이였고,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일들로 예민해져 있었다. 나는 여행자고 외국인이니 당연히 배려를 해 주어야 한다는 나의 오만 스러운 태도에 민망해 졌다. 그래도 도전해 볼 만한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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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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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좌충우돌 지하철 모험,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독일 쾰른 근처에서. 아마 세번쯤 갈아타고 예정보다 1시간 늦게 뒤셀도르프에 잡은 호텔에 도착했다지요ㅎㅎ 그땐 폰에 배터리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 티는 안 내려고 했지만 속으로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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