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시작된 건 2019년 12월 31일. 일출을 보기 위해 동해 정동진 바다로 떠나던 날. 바닷가보다는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훨씬 더 기억에 남았던 여행. 예쁜 바다를 상상했지만 거센 추위에 파도가 무섭게도 보였던 그때. 따끈한 순두부로 아쉬움을 달래고, 그렇게 서툰 우리의 첫 여행이 끝났다.

그 이후론 여행 계획을 보다 구체적으로 짜고, 계절에 어울리는 코스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 맛볼 수 있는 음식, 남길 수 있는 추억을 좀 더 고심하게 되었다.

2021년 6월 12일 드디어 자력으로 제주도에 도착했다. 졸업 논문은 아직 심사 중이었고, 첫 직장 수습기간에 치이면서도 여행은 미룰 수 없었다. “왜 그리도 무모했을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많이 힘들고 많이 지치고 많이 서툴고 그래서 더 많이 소중하기도 한 나의 스물 넷이다. 논문 심사날이라는 핑게로 반차를 내고 늦은 오후에는 놀이공원도 갔다. 내일을 생각하면 걱정과 불안이 밀려왔지만, 저질러버린 일탈에 후회는 없다.

2021년 7월 1일 드디어 첫 사직서를 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선택이다. 물론 그후 여러 번 면접을 보면서 후회도 많았다. 하지만 나의 적성에 맞는 길을 찾기 위해 실패해보는 것도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된다.

8월에는 나도 예상치 못했던 연예부 기자일을 마주하게 됐다. 야간 당직은 힘들기도 했지만 자유롭게 휴가 계획을 짤 수 있어서 이곳저곳 여행을 다닐 수 있었다. 8월 말에는 부산에 가서 타임캡슐을 넣어놨는데, 올해 여름에 드디어 찾으러 간다.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말을 남겼을까?

10월 전주 여행에서는 한복 체험을 했고, 이듬해 2021년 12월 31일 인천 영종도에서 우리는 두 번째 일출을 맞이했다. 2월 남이섬의 고즈넉한 겨울 풍경은 장작에 구워먹는 마시멜로, 포근한 조명, 따듯한 차가 함께했다. 작년 2022년 4월 다시 방문한 제주도. 산산한 봄 바람과 푸릇한 녹차밭, 시원한 바다로 봄의 끝자락을 마음껏 즐겼다.

7월 우리는 1000일 기념으로 속초를 여행했고, 설악산은 케이블카로 올랐다. 교통 수단이 불편해 산과 바다를 오가기가 힘겹기도 했지만 많이 걷고 많이 덥고 많이 구경했다. 욕심을 줄이고 힐링을 더해야 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9월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고, 여름의 채 식지 않은 열기와 꽤나 아름다웠던 야경과 같은 해 막 개장한 롯데월드를 체험했다. 11월에는 가평으로 다녀와, 곧바로 지인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해봤다. 갓 이직했을 때라 밤샘 야근 후 이른 새벽 서울로 올라와, 메이크업도 받아보고 꽤나 진기한 경험이었다.

2022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의 아침, 세 번째 일출을 동해에서 마주했다. 일출은 자연스레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만의 특별한 방식이 되었다. 조금은 더 바빠질 새해더라도,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을 서두른 오늘의 작은 의지 하나로 좀 더 바지런하고 충실하게 매일을 무사히 지나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겨울 여행은 다른 계절에 비하면 무채색에 가까워서 지루할 때가 많다. 대신에 서로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고요함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올해 2월에는 담양 대나무숲에 다녀왔다. 처음 사본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아직 장수를 채우지 못해 현상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올해 안에 다 채울수 있을지 의문이다. 3월 벌써 세 번째 제주도다. 이번엔 만개할 봄꽃 시기에 맞춰 여행 일정을 정했고, 보란듯이 유채꽃-벚꽃-튤립 등등 꽃 구경을 제대로 하고 왔다. 오는 길에 남은 휴가가 아쉬워 에버랜드에 들렀다. 놀이공원은 갈때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아찔한 상상과 긴장감을 버릴수가 없다.

늘상 그렇듯 여행은 몸이 힘들어도 마음만은 즐겁다. 그 모든 순간에서 오롯이 나와 우리가 주인공이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지만 돌이켜본 여행길은 해결하지 못한 고민들과 늘 함께였다. 바쁜 나날이라 그 틈의 여행이 더욱 소중하다는 걸 안다. 충실히 보내온 어제이기에 오늘의 여유를 부릴 수 있게 됐다. 무작정 시작하는 것도, 욕심을 지나치게 부리는 것도 자제할 수 있게 됐지만, 한없이 철없어지고 해맑아지는 여행이라서 더 좋다.

모두 Bon voyage!

썸네일 by MOMENT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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