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위챗 모멘트를 봤더니 여기저기 불난 영상이 올라와있다. 

아직 눈이 채 풀리지 않은 상태기도 하고, 강 건너 불구경이란 속담은 오늘날도 유효한가보다. 나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다시 눈을 감았다.

조금 늦게야 나는 아까 불타던 물체가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이라는 것을 알았다. 

말이 안된다. 21세기에, 국제도시 파리에서, 성당이 고층건물도 아니고. 화재진압에 대한 상식이 없는 나로서는, 첨탑이 무너질때까지 아무런 손도 쓸수 없을만큼의 충분한 이유는 있을수 없다고 생각됐다.

조금 있으니 각 위챗계정에서 노트르담에 관한 다양한 각도의 글들을 쏟아냈다. 100년전에 불탄 원명원을 언급하며 역사와 오늘을 대조하는 이들도 있고, 단순히 노트르담의 비운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음, 오늘 하루의 모멘트는 아마도 3갈래로 나뉘겠구나. 유고의 소설인 “노트르담 드 파리”를 읽은 독자파, 나 저기 가봤소+인증샷파,  나 아직 못가봤는데파. 

이 파별의 첫번째 파에 속하고 싶으나, 부끄럽게도 아직 그 대작을 읽은 적은 없다. 그래도 높이 매달려 불타는 앙상한 첨탑의 모습이 내 마음에 약간의 통증을 일으킬수 있음은 단순히 내가 제2파에 속하기 때문이다. 

가봤다는 쉬운 얘기를 뭘 이렇게 어렵게나.

어제 불에 탄 그 첨탑. 

낮에 그때 함께 갔던 사촌동생과 얘기하다가 그날을 떠올리다보니, 노트르담에 대한 나의 얄팍한 기억이나마 기록해놓고 싶다. 

파리에는 겨울과 여름에 두번 갔었다.  노트르담에도 두번 갔었다. 

겨울나무에 가려진 노트르담 (사진을 찍을때 주요대상이 무언가에 살짝 가려지게 찍는걸 좋아하는 몹쓸 취향이 있다)

처음에 갈때는 남편과 같이 조카를 데리고 갔고 아이를 데리고 하는 외출에 서투른 나는 조카를 달래는데 온 정신이 팔려 대충 성당앞에서 사진 한장을 찍고, 어두운 성당안에서 아이를 잃어버릴가봐 손을 꼭 잡고 있느라고 뭘 본건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들어갔어도 그건 안간거나 마찬가지인거다.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몹시 흔들린 초점은 그날 나의 정신상태를 대변한다)

정작 내 기억에 남는건 이튿날이었다. 전날의 외출로 남편도 지쳤는지 하루 숙소에서 쉬고 싶다기에 나는 혼자서 집을 나섰다. 

나의 목적지는 유명한 고서점인 “Shakespear and Company(셰익스피어와 친구들)”. 

당시는 아이폰도 보급전이었고, 우리 집엔 아이터치라는 소형가전은 있었으나, 그때의 아이터치는 와이파이가 없는 곳에선(3G 이런게 없었던걸로 기억하는 2010년이었다) 단말기도 아니고 카메라도 아닌 암튼 그 무엇도 아닌 것이었다. 그러므로 구글지도는 사용 불가능했고, 난 그저 손에 지도 한장을 들었을 뿐이었다.

고서점은 노트르담 옆에 있다고 들었다. 어찌어찌 해서 지하철을 타고 노트르담까지 갔으나, 일단 성당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을때는 고서점은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들고 걷기 시작했다. 

성당 왼쪽을 돌아서 걷고 오른쪽으로 꺽고 또 걷고 지도를 보다가 이게 아닌데 하고. 하필이면 그와중에 오랜 고질병인 편두통이 오셔서 눈앞이 흐릿해지고 지도위의 글자들이 보이지도 않는다. 

아, 눈앞이 희미하면 집에는 어떻게 가지. (편두통을 앓아보신 분들은 내 말이 엄살이 아님을 알것이다) 이렇게 낭만적으로 파리 한복판에서 길을 잃는건가.

겨울이라서 춥기까지 하다.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해지려고 애쓴다. 내 경우에 편두통은 한잠 자고 나면 괜찮아진다. 그러나 길바닥에 누울수는 없다. 눈을 감아본다. 부디 몸이 내가 자는 줄 알고 회복모드를 가동하길 바래본다. 

그게 생물학적으로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음, 나는 문과생이다.

감았다 떴다를 약 일분 간격으로 반복하다 보니 한참 후 감사하게도 눈앞이 다시 밝아진다. 머리는 더 아프나 일단 눈은 보이니 최악의 상황은 면한 거다. 이제 나는 얼른 그놈의 고서점에 발도장을 찍고 집에 가야 한다. 

지도따위는 구겨넣고 길을 묻기 시작했다. 오분도 안돼서 내 앞에 초록색 가게 Shakespeare and Company가 나타났다. 

company가 “회사”라는 뜻만 있는 줄로 알다가 이 서점때문에 “친구”라는 아름다운 뜻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성당에서 좌측을 바라보고 30도 쯤 되는 위치였다. 그걸 거의 한바퀴를 에돌아서 찾은거다. 이제 나는 드디어 이 안으로 입장할 것이다. 

고서점 얘기는 나중에 기회가 있으면 하고, 다시 노트르담으로.

두번째 방문은 이듬해에 내가 사는 도시에 놀러온 동생과 사촌동생과 함께 파리에 왔을때였다. 

오전에 이미 루브르박물관에서 미술공부를 세시간이나 한 뒤라 우리는 어느정도 지쳐있었다. 걸으며 놀며 도착한 성당앞에서 우리는 인파속에 끼어 성당을 올려다보며 다시 새로움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이때 어떤 외국여자 두명이 다가오더니 뭐라 뭐라 적혀진 종이를 내밀며 거기에 싸인하라고 하는거다. 오, 말로만 듣던 파리 사기꾼?안한다고 했더니 여자는 신경질적인 말투로 그냥 싸인만 하면 된다고 강요한다. 

기어이 안했더니 결국 여자중 한명에게서 F로 시작되는 욕을 듣기도 했다. 당시에는 욱했으나 시간이 지나니 별게 다 추억이다.

이런거 말고 좀 더 또렷하고 그럴듯한 기억을 적고 싶으나, 성당에서 찍은 사진조차 얼마 없는걸 봐서는 지쳤던지 배가 고팠던지, 기억에 남는게 별로 없다. 

성당 앞마당에 상주하는 비둘기 떼와 관광객들. 한창 파란색을 찍기를 좋아할 때인지라 한 프레임에 들어온 두개의 파란색을 찍은걸로 추정함.

거창한 사건을 빌어 글을 시작하고, 끝은 이렇게 시시해졌다. 노트르담이 내 마음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나도록 하려면 유고의 대작을 읽는 것만이 길인듯 하다. 

2019.4.17本文首发于个人公众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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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당시 기억으로는 암튼 돈에 관련된 거였습니다. 방금 구글로 검색해본데 따르면, 애매모호한 주제의 탄원서 같은건데 일단 싸인하면 돈을 요구한다네요. 비슷한 수법으로는 팔찌같은거 끼워주는거 들어본적 있는데 저는 그 경우는 만나지 못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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