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에 해보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그것은 생소한 언어를 구사하는 낯선 나라에서 한동안 살면서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몸으로 배워보는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이 된 지금 그런 꿈들은 자연스레 诗和远方이 되어 아득해졌다.

일본은 나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였다.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웠지만 일본어도, 일본 문화도 생소했다. 유일한 연결고리는 애니메이션이었다. 아득하게 먼 옛날에 봤던 (지금도 가끔씩 찾아서 보는) 란마 1/2부터 최애 작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与千寻)과 Hunter ×Hunter는 나에게 애니메이션 그 이상의 신세계 었다.

 애니메이션을 자막없이 보고 싶은 마음에 일본어  배우기를 여러번 시도 했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지금까지도 히라가나도 제대로 마스터 못했다. 아마도 듣기에 사운드는 귀엽지만, 무슨 문자 시스템이 이렇게 깔끔하지 못하냐는 나의 편견 때문인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일본은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흥미로운 곳이었다. 왠지 일본이라는 나라가 육아를 하기에 여러모로 적합할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었다. 어차피 애 데리고 멀리도 갈수 없으니 일본은 가깝다는 이유로 우리 가족의 여행 일순위로 되어버렸다.

추적추적 비 오는 동경거리도,  나고야에 있는 레고 랜드도, 200년 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다는 작은 오타루 기차역도 나에겐 그저 낭만이었다. 길거리의 작은 라멘 가게 하나도, 일본 지하철도, 심지어 그들의 영어발음마저도 나는 그저 신기했다. 아마 내가 못 알아듣는 언어를 구사하는 외국이라는 느낌이 물씬 들어서였나 보다.

최근에 동경 출장이 잡힌 아빠 따라 다시 한번 동경으로 오게 된 딸아이는 디스니랜드에 갈 수 있어서 그저 신났고, 나는 대학동창을 만나서 밤까지 수다를 떨수 있어서 좋았다. 일본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그 친구는 일본에 온지도 8년이 넘는다고 했다. 일본이 육아를 하기에 편하다고 했지만 그녀는 의외로 아이가 좀 더 크면 일본을 떠나고 싶다고 했다. 좀 더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네 살 된 아들 또래 일본 아이들은 이삼십 분 넘게도 조용히 줄을 서있는 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은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적어도 "왜 줄을 서야 하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했다. 오! 이삼십 분을 네다섯 살 아이들이 진정 조용히 기다릴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교육으로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그저 신기해 하는 나를 보고 그녀는 엄마들이 어떻게 교육했으면 애들이 그러겠냐며 혀를 찼다. 일본사회에는 보이지 않는 틀이 너무 많다고 했다. 이런 말은 여러 사람한테서 익히 들었으나 나는 살아본 적이 없으니, 그저 작은 땅덩어리에 많은 인간이 서로 편하고 페를 안 끼칠려면 그럴수 밖에 없었나 하는 와일드한 추측 뿐이었다.

디스니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든, 음식을 사 먹든 긴 줄을 서야 하는 광경을 보면서 "일본인들이 줄 서는 것을 참 좋아하는구나" 라는 생각은 했었다. 우리는 긴 줄은 포기하고 디스니에서만 볼 수 있는 퍼레이드와 캐릭터 공연을 메인으로 보러 다녔다. 놀이기구는 어디든 탈 수 있으니 말이다.

또 한 번은 디스니랜드에서 울고 징징거리고, 심지어 엄마를 때리면서 투정 부리는 일본  아이들을 보았다. "아이들은 어디든 다 똑같네" 그냥 그런 생각에 별 주목을 안 했다. 그때 남편이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일본 엄마" 라고 한마디 했다. 나는 그제야 그 엄마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아이의 떼는 점점 업그레이드 되고, 소리도 더 높아지고, 갑자기 엄마의 팔을 때리기 시작했다. 언니가 울어서인지 옆에 있던 동생도 같이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마 두 자매가 사소한 걸로 의견이 맞지 않은 모양이였다. 하지만 그 일본 엄마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웃는 얼굴로 변함없는 톤을 유지했다. 무슨 얘기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화를 내지 않은 건 확실했다. 오! 우리 아이가 저러고 있었다면  주변에 사람도 많은데 나는 저렇게 평온할 수 있었을까. "일본 엄마"들의 육아법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박삼일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려고 호텔 앞에 있는 셔틀버스 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순간  옆에서 들리는 일본어에 뒤를 돌아보니 짐을 버스에 넣어주는 호텔 직원이었다. 딸아이가 한국어를 하는 걸 듣더니 한국어로 "한국에서 오셨어요?" 하면서 엄청 밝은 톤으로 반겨줬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너무 반가워하는 얼굴이라 "한국인은 아니지만"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네." 하고 있는데 그녀는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면서 자리를 뜰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한국으로 가셔서 너무 좋으시겠어요."라고 했다.나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러더니 그녀는 딸아이의 키를 보고는 역시 한국 아이들이 일본 아이들보다 키가 훨씬 더 크다며 일본 아이들은 엄청 작게 태어난다고 했다. 나는 대화보다는 그저 예의상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시간이 되어 승차를 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그녀는 또 뜬금없이 한마디를 던졌다. "여기서 살아보시면 느끼실거예요. 일본인들의 가식…" 이러면서 얼굴에 탈을 쓴 손짓을 하고 있었다. 나는 또 한 번 당황스러웠지만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이 눈에 띄었다. 그녀는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였다. "아마 호텔에서 일본인 직원과 뭔 일이 있었나 보다" 하고 나는 속으로 짐작을 하면서 "아, 그래요?" 라고 공감 아닌 공감을 표했다. 얼마나 속상했으면 초면인 나에게 저런 얘기를 할까 그저 그녀가 안쓰러웠다. 위로해주고 싶었지만 딱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팁을 주는 문화권도 아니었으니. 그렇다고 안아줄 수도 없는 일이지 않은가. 나는 만나서 반가웠고 안내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우리는 버스에 올랐다.

공항 가는 길 내내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디든 정착하려면 쉽지 않지." 남편도 그녀가 안타깝다는 듯이 나지막이 한마디 했다. 나는 텅 빈 셔틀 버스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莫文蔚 노래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外面的世界很精彩,
外面的世界很无奈。

고향을 떠나 어딘가에 정착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우리는 언제까지 호기심 가득 찬 두 눈으로 바깥세상을 바라 볼 수 있을까. 그 대가는 정녕 지독한 외로움일까.

이륙하는 비행기안에서 멀어지는 동경의 전망을 보았다. 화려했지만 여전히 낯설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건 소중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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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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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일본도쿄에 20일정도 머물면서 여행한적이 있는데 너무 예의가 바르고 줄 잘 서고 지하철에서도 낮게 얘기하는 모습에 참 문명하구나 느꼇어요~ 근데, 일본에 적장 살고 있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결코 정착이란 쉽지 않더라구요~ 관광객의 마음은 언제나 좋아보이는 부분이 많나바용^^히히히힛 지금도 다시 가고싶은 나라 하면 일본이 꼭 있는건 변함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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