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서른, 뻔하지 않은 서른

순간 순간의 결정에 따르며 느껴지는 행복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다 보면 결국 그게 행복의 지름길이 되었고 최고의 선택으로 남았다.


그녀는 회사 중요한 부서에 있기에 눈치 볼 것 없이 패션쇼에 참가하듯 늘 다른 분위기로 화려하게 출근을 했고 나는 고객사에서 프로젝트를 하는 입장이기에 안경을 쓰고 세미나 발표를 하듯 항상 비슷한 느낌으로 깔끔하게 출근을 했다. 

그녀는 웬만한 몸에 좋은 보양식은 직접 해 먹을 수 있는 요리실력을 갖추고 있고 나는 김치찌개가 먹고싶을 때 물에 김치를 넣고 끓여 먹어도 되는 의문의 입맛을 갖고 있다. 

그녀는 술 마시는 곳보다는 마음껏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노래방이나 클럽을 선호했고 나는 왁자지껄한 노래방이나 클럽 대신 분위기 좋고 조용하게 술을 음미할 수 있는 바를 좋아했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친해진 계기가 무엇인 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만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양궁 연습, 점심, 오후 쇼핑 혹은 커피숍 이런 패턴으로 수많은 토요일을 보냈다. 

5년 전, 곧 생일을 맞이하는 그녀는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서른의 문턱을 넘어 서는 그 순간에는 오히려 담담하게 평범한 느낌이라고 했다. 

졸업을 하고, 고작 두 회사에서 몇 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서른이라고, 아직 승진도 못하고 연애도 제대로 못 했는데 벌써 서른이라고 했다.
호구도 없고, 당연히 집도 없고, 남자친구는 아예 안 생길 것 같고 여기에서 살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많지만 커리어는 절대 포기 못하겠고, 딱히 가고 싶은 곳도 없다고 했다. 

그 토요일, 우리는 양궁 연습은 대충 끝내고 왕징에서 일식을 먹은 뒤 청년로에서 낮술을 마셨다. 그녀는 달콤한 맥주, 나는 위스키. 갓 30대에 들어 선 그녀의 취향은 예전과 다를바 없었고 오히려 아직도 20대 중반이었던 내 취향이 더 30대 같았다.
“결국 숫자가 변할 뿐,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네. 괜히 기대하면서도 걱정했잖아.” 

1년 뒤,
멋쟁이 커리어우먼인 그녀는 예상대로 팀리더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승진 전 트레이닝도 열심히 받는다고 했다. 연애는 글렀다던 그녀는 예상과 달리 10년전 대학교 친구와 진지하게 만나려고 했다. 같은 도시도 아닌데 말이다. 

2년 뒤,
그녀는 회사를 그만두고 남자친구의 고향, 북방에 있는 작은 도시에 정착했다. 그녀는 나를 결혼식 伴娘으로 초대했다. 성인이 된 후 참가한 첫 결혼식, 아직까지도 유일한 결혼식이다. 

3년 뒤,
외국여행이 불가능한 코로나 시국, 크리스마스 여행으로 그녀가 사는 곳을 선택했다. 옛 회사 커리어는 포기했지만 대신 가게를 운영하고 있던 그녀는 유난히 행복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다 이렇겠지. 

5년 뒤,
현재 35살인 그녀는 어느덧 4개월짜리 애기의 엄마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또 다른 행복을 누리고 있다. 

 

서른의 문턱, 이제 내 차례가 왔다. 

그녀가 그 문턱을 넘어섰던 5년 전, 스물 다섯 나도 내 미래를 그려봤었다. 

나는 나의 서른이 그 누구보다 더 특별하길 바랐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릴 준비를 하며 집을 사거나,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그런 서른이고 싶지 않았었다.
나라와 지역 구속을 받지 않고 세계 여기 저기 출장 혹은 아예 이직을 하며, 연애 “따위”에 손발이 묶이지 않고 새로운 친구들과 소통하며 내가 모르는 세상을 탐색하는 글로벌 시티즌으로 되길 바라왔었다.   

그녀가 급격히 변하고 있던 1-2년 사이, 나는 내 상상 속 서른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승진도 하고 사직도 하고, 직장 찾을 겸 여행할 겸 외국 여행도 꽤 다녔고, 회사 계약 이유로 상해에 잠깐 발을 붙이기로 했다.
그 와중에 폭풍우를 뚫고 날아가 힘들게 참가했던 그녀의 결혼식, 부케를 뿌릴 대신 바로 나에게 건네주며 축복하는 그녀의 돌발행동에 당황하기도 했고. 

그녀가 점차 작은 도시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을 때, 내 삶에 큰 변화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일단 상해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외국에서 직장을 찾으려는 동력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회사와 집이 가까워 퇴근 후 가족통화를 하며 번화한 거리를 걷다 집에 도착하는 일상이 행복으로 느껴졌고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연애까지 시작했다,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이유도 없이 마음 속에 벼락을 맞은 듯한 느낌때문에.
그것도 그녀처럼 10년전 대학교 “친구”와 말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의 나는 도심이 아닌 교외에서, 혼자가 아닌 남자친구와 함께 신혼 같은 생활을 보내고 있다. 벌써 2년도 넘게.
Covid19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고 있는 2022년의 상해. 3월부터 거의 집 밖에 나갈 수도, 나갈 데도 별로 없는 상황에 오히려 적응을 해 가고 있는 상황이다. 

술을 끊은 지도 어느덧 2년 7개월이 되어가고 있다.
피자 햄버거에는 수제맥주, 스테이크나 치즈에는 와인, 견과류에는 양주가 필요하다고
혼자 먹든 친구들과 모이든 당연히 마셨던 술이 더이상 끌리지 않는다.

심지어 습관처럼 하던 이직준비마저 멈춘 지 몇개월이 된다.
난이도 따위는 전혀 없는 지금의 회사 업무가 내 커리어에 악영향을 끼친다 생각되어 벗어나려 애를 쓰던 것도 다 옛 얘기. 지금은 오히려 여유시간이 넘치면서도 승진/급여인상 보장이 어느정도 되는 편인 이 곳이 신의 직장이라고 생각을 한다. 

결국 나는 예상과 어긋나게, 점차 “평범”해지며 서른을 맞이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릴 준비를 마치고,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며 소소한 행복에 만족하는 그런 서른을 맞이하고 있다.
세계 출장이나 이직은 거의 생각지 않고, 연애에 손발이 묶이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친구들과의 소통이 현저히 줄어들며, 글로벌 시티즌 대신 방구석 “현지인”이 되어가고 있다. 

“이게 내가 원하는 서른이 맞나?”
5년전의 나는 절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5년전의 나에게는 발언권이 없다.
지금의 나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엔 난 너무 행복하다. 

어떻게 살겠다고 계획을 하는 건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순간 순간의 결정에 따르며 느껴지는 행복의 흐름에 몸과 마음을 맡기다 보면 결국 그게 행복의 지름길이 되었고 최고의 선택으로 남았다. 

뻔한 서른, 뻔하지 않은 서른. 

5년 전, 그리스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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