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기온이 40도를 넘나들고, 저녁에도 30도가 넘는 6월, 기훈은 베트남에서 주재원으로 일한지 5년도 더 되지만 여전히 이맘때 되면 짜증 지수가 확 올라간다. 간밤에 잠을 설치고 이른 아침 6시에 하노이에서 박닌으로 출근하는 오늘은 더 그렇다. 

사무실에 들어서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보니 더 기분이 가라앉는다. 터벅터벅 사무실을 가로질러 제자리에 가 앉은 기훈, 책상에 놓여진 아침 회의 자료를 펼치는데…… ‘드르륵, 드르륵’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린다.  누군지 보니 옆 공장 정부장이다. 잠깐 망설이다 전화를 들었다.

‘오, 정부장.’ 

‘드디어 전화를 받는구만. 어제 오후 경찰차가 우리 회사 앞을 지나가는데 안에 앉은 사람이 자네 같더라고. 무슨 일 있었어?’ 

‘나 맞아…… 내 일 때문은 아니고…… 나중에 얘기해. 지금 얘기하기 좀 곤란해.’ 

‘그래? 별일 아니지?’

‘나중에 얘기하자고, 우선 끊어.’

‘알았어, 수고하게.’

전화를 내려놓은 기훈의 마음이 편치 않다. 이런 일을 겪으면 누군들 편하겠는가? 

어제, 월요일, 이수석의 사망 소식을 막 접했을 때 기훈은 그저 황당하고 믿겨지지 않았다. 경찰의 안내로 법인장과 같이 시신 신원 확인을 할 때는 처음으로 보는 시신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며칠전까지만 해도 같이 일하고 식사하던 사람이 싸늘하게 식어있는 모습을 봤을때의 심정이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경찰 조사에 협조하며 단 한 장짜리 유서를 읽었을 때 기훈은 같은 중년으로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기훈은 그나마 단란한 가족이 함께 하고 있지만, 이수석은 얼마전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었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많이 힘드신가 라는 생각은 했지만, 지난 토요일에 기훈이가 무단 결근한 이수석에게 전화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전혀 이상한 점을 못 느꼈다. 그날 이수석은 하루 쉬겠다고 했고 기훈은 요즘 날씨에 지칠만도 하다 싶어 알았다고만 했다……

월요일 오후 1시, 베트남인 가사도우미가 청소하러 갔다가 옷장에 목을 맨 이수석을 발견했다. 시신은 더운 날씨 때문에 이미 부패가 진행됐고 옷장 옆 침대 위에 유서 한 장이 남겨졌다. 경찰이 아파트 CCTV를 확인한 결과 외부 침입자가 없었고 이수석은 금요일 저녁 퇴근해서 집에 들어간 이후로 외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은 자살로 추정했다.

오후 3시쯤 기훈은 법인장과 함께 회사에 들이 닥친 베트남 경찰을 따라 가서 시신 확인 하고, 원한 관계가 있는지,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떤지, 이수석이 회사에 입사하게 된 과정 등 이런 저런 조사를 받았다. 저녁 7시쯤엔 영사관 직원을 만나 장례, 시신 운송 등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중간중간에 한국에 있는 이수석의 가족과 연락을 시도했다. 성인이 된 두 자녀 모두 연락이 안 닿았고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쯤 이혼한 전 부인과 통화가 되어 이수석의 형과 어머님께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뒤 처리를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매우 늦은 시간, 저녁을 걸렀지만 기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땀 범벅이 된 옷을 벗어 던지고 기진맥진한 몸을 끌고 바로 샤워실로 들어갔다. 시원한 물줄기 밑에 벽을 짚고 선 기훈, 뇌리에는 이수석이 유언장에 남긴 말이 떠올랐다. 

‘…… 많이 힘든데, 기댈 곳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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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글쓰기 연습하는 두 아이의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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