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들의 귀환

빨간방이 열렸다


1

모든 사람은 상실을 경험한다.

그렇게 상실한 것의 소중함을 간직한다.

모든 사람은 시련을 경험한다.

그렇게 자신이 이해하지 못했던 타인이 되어본다.

그래서 나에게 소중한 것은 참으로 많다.

그리고 내 속엔 타인의 인격이 겹겹이 축적되어 있다.  

따라서 타인을 볼 때

마치 나 자신을 보듯

공감이 앞서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엔 여전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아주 많이 남아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살짝 염려된다.

이해할 수 없는 것

심지어 혐오하고 있는 것들이 

나의 미래에 들어와

곧 나의 다음 숙제가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2

카페가 좋다

카페에서 들리는 재즈가 좋다

음악에 심취해 있으면

낭만이 차오른다

나는 이러한 나의 낭만이 좋다

한 때 낭만은 나의 대명사였다

그리고 낭만을 잃었을 때

나는 정처없이 내 몸을 찾아다녔다

상실한 것은 

바로  낭만 속에 있는 나의 시간들이다

낭만이란 무엇인가?

도취인가?

탈피인가?

사랑인가?

투쟁인가!


3

우울에 침몰한 자는 투쟁의 힘을 얻지 못한다

우리 사회는 우울을 조성한다

코로나 블루

지나가기만 바라지만 

청산 없이는

또 하나의 현재 진행형 

아니

지속적인 미래가 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되돌아보고 마주할 용기가 없다

우울은 우리의 마지막 에너지까지 앗아갔기 때문이다

청산은 지혜로운 자들의 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우리 시대는 그럴만한 성자들이 힘을 쓰지 못한다

우리는 용감한 자를 저주한다


4

<트윈픽스> 드라마에는 빨간색 막으로 둘러 싼 방이 있다.

아주 초현실적이다.

방에는 꼽추 난쟁이가 능청스럽게 춤을 추고 있다. 

난쟁이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주인공 쿠퍼는 가끔 꿈이나 환각에서 그 방에 들어선다.

그의 지성이 빨간방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외피는 평행세계에서 각각 바보와 악마라는 두 분신에 점령 당한다.

빨간방에 갇힌 쿠퍼는 참을 볼 수 있지만

지성을 잃은 자신의 몸을 인도할 수도 

악행을 저지르는 자신의 몸을 저지할 수도 없게 된다.

쿠퍼는 용감하고 신사답고 똑똑하고 정직하고 정의로운 FBI 요원이다.

그러나 성자의 몸과 정신이 분리되면서

인격은 분열되고

구세주나 영웅이 아닌 가여운 인간상으로 전락한다.

우리와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너무 닮아 있어서

나는 이 드라마를 애정한다.


5

내가 빨간방에 갇혀 있었을 때

 몸을 돌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낭만은 지혜와 함께 숨쉬고 있었다 

몸을 되찾으려고 빨간방을 제쳐두니

세상의 우울 속에 침몰되어 

거짓을 구분하는 눈도 

참을 이행하는 에너지도 

 상실하고 말았다.

하나의 감금 속에서 또 하나의 고통으로 빠져들었던 것이다.

절벽의 변두리에서 터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은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무한하게 펼쳐진 '비상사태'다.

밸런스

그것은 안일함 속의 애매모호(模棱两可)한 태도가 아니라 

낭만적 폭풍과 암울의 바다를 넘나드는 동시에 빠져들지 않도록 유지할 수 있는

매 순간 긴장 속에서 스스로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성찰의 힘이다.


6

빨간방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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