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꼬박 드라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요. 오징어 다리처럼 흐물거리며 심란하게 하던 잡생각들이 추욱 잦아들면서 뚜껑이 닫히고 봉인 된듯  흠뻑 힐링 받았습니다. 

드라마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뇌 손상으로 하마트면 죽을번하다 수술 받고 다리는 조금씩 움직이나 한쪽 팔에 아직 감각이 없는 환자를 회진하면서 의사가 잘 회복하고 있다고 응원합니다. 환자 가족은 고맙다고 하는데 환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팔도 못 쓰는데 이제 어떻게 살아요, 이럴거면 왜 살리셨어요.

의사가 부드럽게 말합니다: 최선이였습니다. 이미 손상된 부분이라 아직은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고 재활치료를 하면서 지켜봐야 합니다. 

회전을 마친 후 의사 조수가 얘기해요. 너무 하시네요, 선생님이 살린건데.

의사가 잠간 생각에 잠기더니 말합니다: 니가 가서 환자 보호자를 만나고 와. 나는 괜찮으니까 재활치료에 관해서 언제든지 전화하라고 해. 내가 말하면 불편해할 수 있으니 니가 가서 말씀 드려.

 '그러게 말이야,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라고 상대를 원망하거나, '자주 있는 일이야, 세상이 원래 그래'라고 한탄하거나, '의사로서 할 수 있는건 다 했는데뭐'라고 선을 긋는 대신, 온전히 환자를 어떻게 도울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었죠. 자신에 대한 환자의 공격 따윈 귀등으로 흘려보내고.

심리학자 리송위(李松蔚)의 책 <모든 것이 내탓일가(难道一切都是我的错吗)>에 나오는 '령역(课题分离)'에 관한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너의 과제는 네가, 나의 과제는 내가 해결한다는 것이 대체 어떤 뜻인지, 겉으로 선을 긋고 령역을 분명히 하는 것과 진정 과제를 분리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지 설명하는데요. 

책 내용을 소개하기 전에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한 장면을 끼우겠습니다. 

아기가 태여난 처음 몇달은 산모가 가장 취약하고 허약한 시기이기도 하고 아기 아빠가 남학생 특유의 게으름을 피울 수 없는 시기이기도 하지요. 아기 아빠가 머리도 제대로 빗지 못한 산모에게 말합니다: 나는 이렇게 사는게 행복하지 않아. 내 행복을 찾아 떠나야 겠어. 

산모가 울먹입니다. 그럼 내 행복은?

아기 아빠가 말합니다. 네 행복을 왜 나한테 물어?

머리가 띵 했습니다. 가족은 함께 있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각자 행복한 사람들이 모여서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거라고 알고 있는데, 직감적으로 그 자리에서 대갈통을 부숴도 시원치 않을 파렴치한 아기 아빠의 말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그러다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지요. 겉으로 선을 긋는 것과 진정 령역을 분리하는 것이 다르다고 합니다. 진정 령역을 분리하여 '네 행복은 네 몫, 내 행복은 내 몫'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 선을 긋고 한걸음 물러서는데 급급한게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굳이 선을 긋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고 직접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 어떻게 상대를 도울것인지에 집중합니다.

<멜로가 체질>에서 아기 아빠는 각자 령역을 분명하게 나누지 못했기때문에 '내 탓 아니야', '그건 네 일이야, 나랑 상관 없어' 라고 더 황급히 더 단호히 선을 그으려 했지요. 령역을 구분하느라  흙탕물에 주저 앉아 흙물을 사방에 튕기는 것 같습니다.

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 의사는 '내 령역은 수술일뿐, 나머지는 너와 신의 령역이라 내가 어쩔수 없다'고 물러난 것이 아니라, 각자 령역은 이미 분명해서 티끌만치도 고민할 필요 없으니 우선 방법을 찾으려 하고 또한 상대가 도움을 청하는 것을 주춤할가봐 의사 조수에게 부탁해 전달하는 배려도 합니다. 흙탕물에는 손톱끝도 안넣어요. 

후자가 건강하고 성숙한 인간이겠지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다섯명 주인공의 공통점이 바로 이런 '건강'과 '성숙'이라고 봅니다. 

그 중 두명이 각자 중요한 선택 앞에서 선택의 기준을 동일하게 '시간이 아깝다'로 하는데요. 

한명은, 안해가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여 헤여지자고 하자 처음에는 창피하게 느끼지만 어느 순간 '시간이 아깝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어떻게 볼가, 안해가 어떻게 배신 때리냐 고민하느니 그 시간을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에 쓰고 내 인생을 살겠다고요.

다른 한명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제법 큰 회사를 물려 받으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살면서 회장님 소리 한번 듣는 것도 나쁘지 않지, 회사를 경영해 보다가 싫으면 다시 의사 하는것도 괜찮지 않냐'는 친구의 말에 '시간이 아깝다'고 말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쓰고 싶다고요.

누가 보기에 창피한 일도, 누군가는 부러워하는 일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따라 별일 아닐 수 있다는거죠. 정해진게 아니라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이라. 

***

회사 물려 받을지 말지는 외계인의 고민 같지만 헤여질지 말지는 흔한 고민입니다. 리송위 책과 강의에서 구슬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혼인도 지키지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받으면 어떡해, 혼인이 파렬되면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가, 그래도 애써 유지해야 하나, 쉽게 들 수 있는 생각인데요, 조금 달리 생각해봅니다. 

오늘날의 혼인은 수십년 전과 많이 다릅니다. 예전에는 가족끼리 힘을 합쳐야 살 수 있는 상황이라 얼굴 한번 안보고 부모가 맺어 주면 혼인하기도 했고 헤여질 리유가 없으면, 심지어 헤어질 리유가 충분해도 참고 혼인을 유지하기도 했습니다. 참는게 능력이였습니다. 

지금은 혼자서도 잘 살수 있는 세월이라 마음이 간절해야 결혼하고 굳이 같이 살 리유가 없으면 헤어지기도 합니다. 참는 능력이 아니라 혼자 잘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감히 헤어질 수 있다는거죠. 

돈 많은 사람을 떠났다면 경제능력이 약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선망하는 사람을 떠났다면 외부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나에게 의존하는 사람을 떠났다면 누구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말이고, 나를 통제하는 사람을 떠났다면 독립적으로 문제 해결할 용기를 가졌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왜 헤여져야 하는지 물었다면 지금은 왜 같이 살아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좋은 만남도 중요하지만 좋은 헤여짐도 중요하다고 해요(好聚好散). 

그리고 결혼한 사람보다 혼자 사는 것이 생활에 대한 통제감이 높고, 평균수명과 건강지수를 보면 싱글 여성이 결혼한 여성보다 건강하다는 통계가 있다고 합니다. 헤여지라는 말이 아니고요, 혼자가 되는 것, 자유롭게 사는 것을 두려워 말고 현명하게 선택을 하자는 겁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되니까요.

어리석인 판단이라 함은  '헤여질 마음이 없지만 상대가 먼저 헤여지자고 하면 상처 받을가봐 두려워 서둘러 끝내자고 말하거나, 그만두고 싶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나 욕망으로 꾹 참는 것' 등을 말합니다.

'아이는 어떡해' 할수 있는데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리혼은 누가 나쁜 사람이라서 하는게 아니야, 그리고 각자 더 좋은 가능성을 가지지, 애는 서로 협력하여 키울 수 있어'. 저는 누가 나쁜 사람이라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는 말에 가슴에서 돌을 내린듯 홀가분했습니다. 

싸우면, 내가 못난 사람인가, 내가 나쁜 사람인가, 아니지, 상대가 나쁘고 상대가 잘못했지 하면서 저도 몰래 상대의 잘못을 찾기에 급급합니다. 상대를 미워할 필요도, 잘잘못을 따질 필요도 없다고 하니 어떻게 더 잘살가에 집중하면 되잖아요.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아이를 두번 류산한 임산부가 의사에게, 선생님은 이런 환자들을 자주 보시니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다고 속상해해요. 의사는, 류산이 무슨 병이에요, 자책할 필요 없어요. 이제 무슨 원인인지 알았으니 이번에는 같이 노력해서 지켜내자고 합니다.

같은 맥락이지요? 헤여지는거, 혼자 아이를 키우는거 병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닙니다. 자책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어요. 이제 어떻게 잘 살가 생각하면 되지요. 시간이 아까우니.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에너지와 시간을 어디에 쓰는지 잘 보입니다. 

 ***

가끔 중요한 선택도 있지만 인생은 대부분 소소한 일상이지요. 건강하고 성숙한 사람들의 일상을 살펴 봅니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중 세 오빠 밑에서 자라 식탐이 매우 강한 의사가 나옵니다. 늘 같이 밥을 먹는 친구들은 게걸스레 먹는다고 야단을 치지 않아요. 대신 밥 먹기 전에 주문을 외우라고 귀띰합니다. "이건 다 내꺼다. 누구도 빼앗아 먹지 않는다"고. 

도시락이나 병원 식당밥을 먹을 때에는 주문이 효험 있어요. 하지만 맛나는 불고기를 먹을 때는 어림도 없지요. 이때 친구들은 주문을 외우라 하지 않고 불고기가 다 준비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게 해요. 같이 준비하면 준비가 끝나기 전에 다 먹어버릴테니. 슬기롭지요?

너무 급히 많이 먹어, 하지만 이건 네 과제이고 내 잘못이 아니니 야단칠 필요 없지, 어떻게 하면 천천히 먹게 할가, 어떻게 하면 나눠 먹을가. 

배워보기로 합니다. 

아이가 물을 잘 마시지 않네, 이건 아이 과제이고 내 잘못이 아니니 왜 물을 안마셔 야단 칠 필요 없지, 어떻게 하면 물을 마시게 도울가. 

아이가 이를 잘 닦지 않네, 이건 아이 과제이고 내 잘못이 아니니 왜 이를 안닦니 야단칠 필요 없지, 어떻게 하면 이를 닦게 도울가. 

일을 할 때에는 어떠냐고요? 

환자가 살기 싫다고 약을 먹지 않을 때, '나는 분명히 말했어, 약을 안먹으면 이러이러한 결과를 초래한다고, 그럼에도 약을 안 먹는건 네 선택'이라고 으름장만 놓고 가는 의사(물론 주인공 아님)가 있는가 하면, 당신이 잘못되면 내가 짤리니 부탁이라고 무릎 꿇는 의사도 있고, 잔잔히 본인 이야기를 곁들면서 설득하는 의사도 있습니다. 

선만 긋는 의사, 선을 긋지 않지만 착하고 우직한 의사, 선을 긋지도 않고 슬기롭기까지 한 의사, 보이시죠? 어렵지만 배우기로 합니다.

'나는 분명히 리스크가 있다고 말했어, 그럼에도 너가 선택했잖니'가 아니라, '이런 리스크을 해소하려면 이런이런 방법이 있고 이런이런 주의 사항이 있어, 같이 논의해보자'가 좋겠지요. 무엇보다 '내 탓 아니야'에서 벗어나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지' 고민합니다. 내가 고집하는 리상적인 최선이 아니라, 여러 관계자들의 리익과 립장을 반영한, 현단계에서 실행 가능한 가장 적절한 방법을 말입니다. 

***

한 사람이 하나의 작은 세계라, 누구를 완전히 리해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다들 고독한 작은 별이고 혹간 다른 작은 별이 내뿜는 빛을 보고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하루종일 밥도 못먹고 토론하고 론쟁하면서 언성을 높이고 목소리가 떨리면서까지 '열심히' 일한 날, 피곤하고 기운 빠진 내게 공감해주고 좋은 드라마 추천해준 지인 덕분에 흙탕물에서 나와 깨끗이 목욕까지 하였습니다.

드라마에서 제가 좋아하는 아줌마가 말했습니다. "머리에서 생각 한 것을 가슴까지 내려오게 하지 말고 입으로 뱉어.저는 목과 어깨와 팔과 손을 통해 글로 썼습니다.

*

책 难道一切都是我的错吗  李松蔚

강의 李松蔚亲密关系24讲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 멜로가 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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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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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 참 잘 읽었습니다~ 멜체나 슬의생도 다 잘 챙겨봤습니다~ 마지막에 다들 고독한 작은 별이고 한 사람은 한 세계라 누구를 완전히 이해할수 없다는 말 너무 공감합니다~ 적당한 선 긋기에서 지혜를 찾아가며 살아보도록 노력해볼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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