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반성 시리즈: 조선족 편-제 11 화

구구해자: 아이를 구하라.


나는 아이들이 좋다. 아이들도 나를 따르는 것 같다.

2016년 중국에서 대학원 다닐 때 담당 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지방으로 내려가 회화 재료 수집도 하고 현장 写生 연습도 하였다. 

그 당시 연못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데 나의 옆에 아이들이 한두 명씩 앉아서 보더니 어느덧 한무리가 모여왔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저 멀리서 그림 그리는 친구를 불러 이 관경을 좀 찍어달라고 했다. 아이들은 내가 사진을 찍는 것을 알고 더 많이 몰려왔다. ㅎㅎㅎ 참…뭐 나한테 아기귀신이라도 붙었는지 너무 신기했다.

 아이들은 참 밝고 이뻤다.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온다.

2018년 말 쯤 나는 서울대학교에서 유학하고 있었던 한 친구로부터 중학교 미술 수업 프로그램 제안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 이 친구가 졸업 예정이라 사정상 프로그램을 계속하기 어려웠던 것 같았다. 나에겐 뜻 밖의 기회였다.  나는 이 프로그램 보다 그냥 아이들에게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한국어로 수업을 해야한다는 것에 나도 조금 걱정이 되었다. 글은 수정할 수 있지만 말은 날것인거니까. 그리고 더욱 당혹스러웠던 것은 수업할 대상이 남자 중학교 1 학년 학생인 것이다. 나는 남동생이 있어본 적이 없어서 남자애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몰랐다.  더군다나 이렇게 어린 친구들을 대상으로 어떤 강의를 준비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 수업은 미술교육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학생들이 보다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다문화 정체성을 갖춘 선생님이 직접 수업을 맡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수업 이름 또한  <세계시민교육> 이었다. 그 당시 이 수업을 위한 지정된 교재도 특정한 교육 지침도 없었다. 단지 이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는 담당 미술 선생님께서 나의 수업 전반에 대한 기록을 하여 그 결과에 대해 연구하려는 듯 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이런 부분들이 더욱 맘에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온전히 나의 방식으로 수업과정을 구성하여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학기 중간 쯤에 수업을 시작하게 되어서 이 전 주 수업의 내용을 담당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전 주에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영화를 보았다고 말했다. 나는 이 영화에 이어 중국의 소수민족에 관한 내용이 적절할 것 같아서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해 소개한 다음 내가 티벳에서 여행을 했던 자료들을 보여주며 아이들에게 티벳의 현황을 알려주었다. 아이들은 현재 티벳에서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기에서 만큼 처참하게 생활하고 있지 않는 것을 보고 위안을 얻었다.   

그 후 나는 본격적으로 세가지 노선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다. 하나는 '고정관념과 집단인식'이 어떻게 '차별'을 생성하고 있고 동시대 미술 작업에서 어떤 작업들이 이러한 현상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오늘날 아티스트들은 어떤 방식으로 이 문제들을 풀이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이야기 했다.  둘째로는  '미술'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미술 사유와 그 표현이 삶과 어떻게 연관하고 있으며 이러한 삶에 대한 이해로 작품을 만드는 새로운 접근법들을 직접 체험하게 하였다. 세번째는 이러한 수업을 통해 보다 넓은 범위에서 사유하는 능력을 키우고 자신의 생각을 담은 작품을 직접 만들어 보게 하였다. 

이와 같은 수업을 진행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잠깐 설명할 필요가 있다. 나는 처음 아이들의 미술교실에 들어왔을 때 아이들의 그림에서 한국과 북한의 분단 문제 또는 전쟁과 통일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충경을 받았다. 아이들의 상상속 세계마저 이토록 제한되어 있다니!!  나는 한국의 미술교육 제도가 중국 만큼이나 경직되어 있다는 것을 보고 아이들의 사유를 일단 활성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수업에서 여러분들을 아티스트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동등하게 소통하고 싶었다. 따라서 수업 내용을 이야기로 풀어 나아가는 과정에서 항상 아이들에게 왜 그랬을까? 너희라면 어떻할건데? 라는 질문을 던졌다. 처음엔 아이들이 매우 당황하고 대답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적응 하고나니 곧바로 자기 생각을 먼저 표현하려고 손을 들었다. 수업을 진행하는 도중에도 질문들이 끊이지 않았다. 두 번째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불안하게 나한테 찾아왔다. 

"성생님, 다음 수업에도 나오나요?"  

"응~!?" 

학생은 그제야 마음이 놓인지 뛰어나갔다.

——

내가 수업하던 그 시기에 한국 여론에서 한 아이의 사건이 터지게 되었다.  그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쇼미더머니777>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래퍼 디아크다. 

이 당시 아이들은 디아크와 같은 나이었다. 귀엽고 활발한 동갑 아이들과 달리 디아크에 관한 모든 여론과 비난들은 다크함 그 자체였다. 

그 시기 한국 여론에서  "조선족"에 대한 온갓 욕설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때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그것은 아이와 어른 사이의 간극에 관해서이다. 조선족이고 뭐고 다 떠나서 나는 이 사건에서 어른들이 한 아이의 실수에 대한 여지없는 태도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당신은 조선족이기 때문에 법죄자입니다." 와 마찬가지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조선족'은 디아크 때문에 또 다시 욕을 먹게 되고, 디아크는 '조선족' 때문에 폭력적으로 욕을 먹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론 속의 어른들은 오히려 자신이 믿고 있는 고정관념을 더욱 고착시키고 확산시키고 있었다.  나도 어른이지만, 어른들이 한 아이를 이와 같이 말살시키려고 드는 광기에 부끄러웠다. 마치 사드를 반대하는 우리의 광기를 보는 듯이 말이다.

나는 곧바로 나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이 아이들 속에도 디아크 팬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만약에 이러한 사건 속에서 어른들의 거침없는 차별과 욕설을 보게 된다면… 또는 한 아이의 실수에 대한 어른들의 인정사정 없음을 보게 된다면… 아이들은 어른들의 자비없음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그러한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차별을 이어 받는 것은 아닐까?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수업에서 디아크의 말을 꺼내게 되었다. 그랬더니 몇 몇 친구들은 눈치를 힐끔 힐끔 보았다. 나는 디아크가 이 나이에 이러한 사건에 휘말린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본다는 것과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었고,  동시에 나도 어른으로서 어른들이 한 아이의 실수에 대해 모든 죄목을 뒤덥는 이러한 태도가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 시기 학교에서 상영한  <아들에게 가는 길>이라는 독립 영화를 보면서 디아크를 떠올렸다.   

사건이 지난 후에도 나는 이 아이가 잘못 된 길로 가게 될까봐 걱정 되었다. 

그런데 요새 피네이션에들어간 소식을 듣고 싸이가 참 대단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어른 다운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

마지막 수업에서 나는 아이들을 커다란 원형으로 앉혔다. 

그리고 아이들은 한명식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였다.  

아이들의 작업이 참으로 좋았다. 특히 황꼬마의 작품이 인상 깊었다. 

아래는 이 친구의 작업과 이 작업에 대한 나의 감상평이다. 

이것은 몇 주간 맡아왔던 수업에서 한 중1 학생이 만든 기말 작품이다.  그는 일회용 나무 젓가락, 일회용 종의컵, 일회용 물티슈를 빨간색 받침대에 고정시키고 위에는 빨간색 물감으로 칠해 두었다. 그는 차별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처지를 '일회용'(마구 쓰고 버려도 되는)성질을 소유한 오브제들로 표현해냈다. 그는 빨간 색이 노동자들이 받은 상처를 뜻한다고 말했다. 한 친구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왜 나와 있는 단 한장의 물티슈에만 빨간색을 칠했냐고. 그는 답했다. 나머지 물티슈는 '일회용'을 기다리고 있는 잠재적인 노동자들을 뜻하는 것이라고. (2018~2019)

수업 후기:

한국어를 말할 땐 아직도 시원치 않은 부분이 많아서, 매번 작성해온 자료들을 거의 읽는 듯이 수업을 진행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이해 해보려고 열심히 듣고 질문하고 변론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기특했다. 

처음엔 내가 외국인이라서 배려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아이들의 말과 생각을 들어보니 그들은 놀랍게도 내가 했던 모든 말을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고민했었던 것이다.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아이들도 참 특히한 수업이라고 말했다.

나는 단지 제도에서 벗어난 정체 불명의 수업을 제도 안에서 진행 했었던 것이고, 지식과 공부를 되도록 멀리하는 경험의 장을 만들어주고 싶었을 뿐이 였다.

아이들이 편안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즐거웠다.

어느새 정이 많이 들었구나. (2019)

——

루쉰은 <광인일기>에서 말한다. "구구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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