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에 앞서,

질문 하나 하겠습니다. 당신은 우리말로 된 문학작품을 읽어보신지 얼마나 되셨는지요? 혹시 고중 조선어문 교과서를 마지막으로 문학작품도 함께 졸업하신건 아닌지요? <연변문학>이란 잡지 읽어 보셨습니까? 아니면 이런 잡지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분들도 꽤나 되실지도요.

"문학"하면 지루하고 고리타분하고 잉크냄새 풍기는 이미지로 떠올려지는 경우도 많을텐데, 사실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 중요성을 왜 이처럼 당당하게 서슴없이 우렁차게 막힘없이 정색하여 큰소리로 웨쳐야 마땅한지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이름이 한국어가 됐든 조선어가 됐든 사투리가 됐든 표준어가 됐든 시사하고자 하는 바는 다 같은 의미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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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tvN 채널 프로그램 <비밀독서단> 8회에서 방송된 내용입니다.

세월 지나면서 먼지가 묻어가고 낡아가고 빛이 바래져가는 말들을 먼지를 털고 닦아내어 빛보게 하는 것이 좋은 문학이고, 그 작업을 하는 이들이 작가인 것 같습니다. 

말, 즉 언어는 우리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그래서 언어를 다듬고 세련되게 하는 문학이 그처럼 중요한 거구요. 근대의 사상의 흐름을 봐도 언어학에서 호학(符号学, Semiotics)이 탄생하고 그것이 구조주의(结构主义, Structuralism)로 표현이 되고 한걸음 더 나아가 포스트구조주의(后结构主义, Poststructuralism) 혹은 해체주의(解构主义, Deconstructivism)로 발전이 됩니다. 

여성의 인권을 강조하는 페미니즘(女权主义, Feminism)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파도를 타게 되는거고, 오늘날 어떤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 중의 하나인 포스트모더니즘(后现代主义, Postmodernism)으로 구체적인 여러 분야에서 표출이 되는거지요. 이처럼 언어 속에는 우리의 생각의 도구와 틀들의 뿌리가 되는 본 모습들이 담겨있어서 역사, 정치, 경제, 문화와 예술들의 수많은 실마리들이 엉켜있는 창고가 됩니다.

우리 조선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소 중국어와 한국어, 지어는 서너가지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무리로서 여러 언어의 "영역"에서 드나듬으로 인해서 오는 사고방식의 우세가 바로 실생활에서 많이 거론되는 성격적, 문화적 우세로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단점으로 거론되는 쟁개비 정신, 부평초 성격, 얕은 인맥과 옅은 문화적 이해 등등 역시 이러한 여러가지 언어능력의 깊이의 부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조선어문을 한국/조선 표준으로 배우는 것도 아니요, 중국어를 한족 표준으로 배우는 것도 아닌데서 드러나는 저력의 부족이 더 깊은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돌아와서,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왜 한글로 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왜 고문으로 된 문학을 읽어야 하는지, 왜 당당하게 서슴없이 우렁차게 막힘없이 정색하여 큰소리로 웨쳐야 마땅한지를 이야기한다면 더 공감이 되실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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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문학과 작가에 대한 멋진 표현을 했던 이동진 씨는 한국의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책이야기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으로 더 유명하기도 하지요. "iTunes"나 "Podcast" 아니면 "팟빵"과 같은 안드로이드 어플에서 검색하면 찾아 들으실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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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문학에 관한 영화 중의 클래식으로 꼽히는 영화 한편을 소개 드리자면, 1989년 상영된 미국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死亡诗社, Dead Poets Society)로서 제62회 오스카 최우수 각본상을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훌륭한 어문(영어) 선생님 키팅과 한 무리의 젊은 학생들이 오랜 명문 아카데미의 낡은 보수적인 틀을 깨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이야기로서, 파격적인 교수방식시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사상을 열어가는 영화입니다. 키티 선생님은 "너 또한 한편의 시가 될 수 있다"고 인생을 가르칩니다.

학교와 부모들의 속박을 못이겨 학생 닐이 자살하며 그 책임의 덤터기를 쓰고 키팅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바로 그때 시동아리를 조직했던 멤버들은 용감하게 책상위에 올라서서 "오, 캡틴! 나의 캡틴!"이라는 고백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 장면은 다시 봐도 짜릿하게 벅차오르지요. 그 느낌을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2016.09.19
재고: 2019.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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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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