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상’이라는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했다.어쩌면 한국에서 ‘댄서의순정’이후로 오래만에 결혼이주 조선족여성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라고 할수 있겠다.개봉한지 한달이 조금 지난 이 시점에 공식적인 관객수는 18만으로집계됐다.한화 98억원의 제작비를 감안하면 결과는 ‘폭망’수준이다.인터넷의 관객리뷰나 평론가들의 평점에서 짐작해보건대 이런 결과는 단순히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서 기인한것이라 보여진다.주연배우들의 대사전달 문제나,스토리 전개의 불친절, 중국 출신 캐릭터들의 사투리 해독 불가 등 문제점이 주된 이유로 거론됐다.하지만 영화적인 문법들을 다 떠나서 영화를 보고 나온 나의 기분은 찜찜하고 불쾌했다.
그때의 기분은 2000년대 초반 즈음, ‘X맨’이나 ‘연애편지’ 같은 한국예능이 본격적으로 중국에 수출되기 시작할때 X맨에 나왔던 한장면을 봤을때와 같았다.가수 이수영이 개그랍시고 조선시대에나 입었을법한 한복을 입고 머리에는 꽃을 꽂고 미친년 널뛰듯이 해괴한 몸짓으로 우습꽝스러운 모습을 연출한 장면,정체불명의 억양으로 연변사투리라고 지껄이는 말에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똑같다며 박수를 치고 낄낄거렸다.한국사람들한테 조선족은 이런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구나 싶었다.그때부터 한국에 나가있는 부모님과 친척들이 어떤 취급을 받고 살고있을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그 장면은 그후로도 꽤 오래동안 머리속에 남아있었다.
한국의 주류미디어가 중국출신 조선족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 ‘중국색시’(허련순 작가의 장편소설)단계에 머물러 있다.두 캐릭터의 공통점은 두 여자주인공 모두 한국국적을 얻기 위해 한국남자와 결혼하는 방식을 택했다는것이다.또한 모두 사기결혼을 당해서 한국에 오게됐다.(‘중국색시’속의 남자는 한쪽다리가 없는걸 속였고 우상속 시아버지는 아들이 아이를 낳을수 없는 몸인것을 속였다.정신지체라는 사실까지 숨겼는지는 영화속에서 명확히 표현되지 않는다.시아버지는 처음부터 자기 사심을 채우기 위해 ‘련화’ 와 아들의 ‘결혼’을 계획했다.)다른점이라면 중국색시의 주인공은 나름 ‘해피엔딩’을 맞는다.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어찌 됐든 남자의 아이까지 낳았고 결혼생활도 계속 이어간다.하지만 ‘우상’속 련화는 결국 혼자만 파멸을 맞는다.
영화 개봉후 ‘련화’의 캐릭터설정의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수진감독이 내놓은 대답은 이렇다.
‘조선족뿐만 아니라 이주민 모두를 통털어서 얘기하고 싶었다.련화는 한국에서는 가장 낮은 계급이다. 이용 당하고, 또다시 버림받는, 사기 당하는 모습이다. 련화라는 캐릭터는 그런 성장 과정, 환경에서 그런 식으로 무섭게 변모되지 않았을까. 련화가 무서운 여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것도 그런 이유이다. 한국도 다문화사회가 되면서 가슴 아픈 사건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 얼마나 힘들었을까. 외로웠을까, 무서웠을까. 그래서, 련화라는 캐릭터는 가장 낮지만, 가장 무서운 존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당하기만 하는것보다는 그래도 최소한의 복수라도 하는것으로 그려지는게 좀나은건가?이야기의 배경이 2019년인것을 감안하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수 없다.감독의 머리속에 새겨진 조선족여성은 아직도 ‘매매혼’의 대명사인가보다.
2016년에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에게 충격을 안긴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한국국회에서 열린 저출산대책회의에서 당시 집권여당의 당대표인 김무성 국회의원이 인구절벽의 해결책으로 ‘조선족의 대거 이주’를 제시한것과년말 정부에서 ‘가임기여성지도’(한국 가임여성의 수자와 분포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제작한것이다.그러니까 김씨의 발언은 조선족여성을 비혼주의가 만연한 한국여성들의 대체 ‘씨받이’로 들이라는 망발이다.심지어 일부 지방이나 농촌에서는 정부가 세금으로 ‘매매혼’을 장려하고 지원한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만혼과 독신주의가 젊은 사람들사이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는건가?
한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열에 아홉은 듣는 질문이 있다.
‘한국이랑 중국이 축구하면 어디를 응원할거야?’
조금이라도 망설인다 싶으면 바로 ‘역시 중국이구나’라고 질문자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
질문의 의도를 알지만 그것과 별개로 대답한다면 ‘관심 없다.’축구팬들한텐 욕먹을 발언이지만 나는 4년에 한번씩 하는 월드컵도 안 본다.스포츠와 국가위상간의 연관성에 대해서 회의적이다.스포츠가 한 나라의 국력과 협상진행과정에서 어떤 작용을 발휘하는지도 의문이다.한 나라가 국제경기의 어떤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면 그 의미는 ‘이 나라 국가대표선수들의 기량이 뛰여나구나.’그이상도 이하도 아니다.스포츠선수들은 프로다.국가대표선수들의 실력이 그 나라의 평균수준을 대변하는것도 아니고 실력과 선호도가 꼭 정비례하는것도 아니다.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이 나라 사람들이 이 스포츠를 좋아하는가보다.’정도다.
그 질문 받고 나도 한가지 질문하자.
‘한국이 동포를 동포로 대한적이 있소?잘 살면 교포고 못 살면은 외국인이 아이요?’(영화 강철비에서 ‘선생님도 우리 동포잖습니까?’라고 묻는 한국외교안보수석의 질문에 조선족외교관인 리선생이 한 대사이다.참고로 ‘리선생’은 한국영화에서 유일한, ‘멀쩡’한 조선족 캐릭터다.)
1999에 제정된 ‘재외동포법’은 여러번의 수정을 거치며 점차 보완되였지만 중국과 옛 쏘련지역의 동포들은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출신 동포들에 비해 비자발급 등 방면에서 여전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다.예를 들어 1922년이전에 중국이나 러시아로 이주하여 조선시대의 호적을 보유하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동포자격을 부여 받지 못한다.때문에 조선족들이나 고려인들은 자연스럽게 이 제도에서 배제된다.가령 비자발급 조건을 만족하더라도 국가이익이나 경제수준,필요의 유무에 의해 발급하는 비자종류도 다르다.이것도 동포단체의 오랜 시간 이어진 항의와 의견피력으로 겨우 얻어낸 결과다. 영주권 취득비율도 상대적으로 낮다.
무지는 편견과 두려움을 낳는다.
입사초기에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일할때 친절하고 매너도 좋던 50대중반의 한국인 상사가 점심시간에 사무실 사람들이 모두 모인 식탁에서깨잎장아찌 한장을 집어서 내 얼굴앞까지 가져오더니 해맑은 표정으로 ‘이런거 먹을줄 알어?’하는것이였다.나는 뭔가에 머리를 얻어맞은것 같았다.이걸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구구절절 설명하는것도 웃기는 짓인것 같아서 그냥 ‘네,식당에 가면 많더라구요.’그러고 말았다.
방송,언론,영화 등 주류미디어는 여론이나 이미지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미디어에 비춰지는 이미지는 의식,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된다.실제로 ‘청년경찰’상영후 대림동엔 한동안 한국인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우리한텐 고향음식 생각날때 들르는 곳이 현지인들한테 ‘슬럼가’로 인식된것이였다.급기야 동네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방범대’를 조직하여 지역치안유지에 나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사실 문화시장의 작동원리는 간단하다.
‘잘팔리면 장땡이다.’
드라마에는 악역이 필요하다.그런데 그게 왜 하필 만만한 조선족이여야 할까?아마 한 네티즌이 남긴 ‘악녀’의관람평이 답이 될것 같다.
‘어우야,한국 여자가 저러면 무서워서 어떻게 사냐?’
‘악녀’이후 주인공이 조선족출신 범죄자로 설정된 영화들이 줄줄이 상영됐다.’청년경찰’ , ‘범죄도시’ ’독전’ ‘극한직업’등 영화들에서 조선족들은 조폭 아니면 마약범으로 등장한다. ‘범죄도시’는 흥행에 힘입어 속편제작을 공식발표했고 조선족여성 킬러가 주인공인 ‘악녀’는 미국에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악녀’ 와 ‘우상’은 칸과 베를린영화제에 공식초청되기까지 했다.불행하게도 왜곡된 이미지는 해외에까지 ‘수출’됐다.
몰상식한 미디어들한테 묻고싶다.도대체 댁들이‘혐한’으로 먹고 사는 일본 우익세력들과 뭐가다른가?
X맨 이수영 그 장면, 제 뇌리속에도 각인되어 있습니다. 한국 미디어에 나오는 소위 “연변사투리”는 볼 때마다 코웃음치지만, 굉장히 정치적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북괴”의 담론 하에서 조선족을 인식해버리고는 지나치는, 잠재의식 속의 “적”이란 대상에 밀어내는 그런 정치적인것…
댄서의 순정에 문근영은 연변까지 와서 말을 배우고 연예프로에서도 연변말을 제대로 구사하는 편이었는데, 최근 해투인가 어디서 영화찍기 위해 연변에 “유학”갔다고 기사까지 나고 개인기(??)로 내놓는단 어떤 여배우는 그냥 북한말… 유학을 놀러간것인지, 아님 미디어 입맛에 맞추느라 일부러 북한말이랍시고 한것인지.. 후자면 더 끔찍합니다만..
간만에 좋은 사고가 든 글 읽고 갑니다. 건필하세요!
가끔 한국 포털의 댓글들을 보면 소름 끼칩니다.어떤 분이 기고한 글을 읽었는데 한 한국 젊은이가 연변에 간다니까 친구들이 미쳤냐고 그러더래요.그때가 ‘황해’ 가 개봉한후라 한국 사람들 머리속 연변은 영화에 비춰지는 모습이였대요.그런데 연변에 와보고 너무 깨끗하고 안전해서 오히려 놀라더래요.
작가님도 건필하시길 바랍니다!
친추하고 한 문장씩 Clear 하고 있는중입니다. 무려 3년전에 쓰신 글이군요 …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야 이렇게 좋은 사이트를 찾았다니.. ㅠ
저는 한국인 아내를 둔 조선족입니다. 어느날 아내와 처제들이랑 같이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먹고 있는데,. 와이프가 “혹시 연변에 있을 때 아이스크림 먹어봤어?” 하고 물어보더라구요.. ㅎㅎ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방망이 얻어 맏는 기분이 들면서 너무 당황했는데, 후에 아내가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생각을 해보니 정말로 궁금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님 글 읽으니깐 잊어 버렸던 이 에피소드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끄적여 봤습니다. 생각난 김에 오늘 저녁에 집에 가서 와이프한테 물어봐야곘네요. 그떄 무슨 생각으로 그리 물어봤는지? ㅎㅎ
오늘 금요일 저녁인데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10년전 한국에 있을때 한국인들한테 글에서처럼 뭐라 대꾸해야 좋을지 모를 질문들을 종종 받곤 했습니다. 아직도 그런 질문들을 던지는지…무지던 무의식이던 이해의 부재는 당하는 입장에선 상처가 되죠.이방인으로 살려면 강철멘탈을 탑재해야 하나 봅니다.
대답 들으시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궁금하네요 ㅎㅎ
네네~ . 와이프한테 물어보니, 와이프는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봤던 거라고 하네요. 서로 사랑하는 부부사이에서 나쁜 의도를 가지고 물어보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저도 하지만, 그래도 그런 종류의 질문을 받은 저도 기분이 나빠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ㅎㅎ
한국에서 생활한지 10년이 넘었고, 와이프랑은 결혼한지 2년이 넘었네요.
예전에 2000년대 초반에 다음 조선족 대모임까페와 한열사 까페 사이에서 벌어진 한국인들과 조선족들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소모적인 논쟁에 회의감을 느겼고, 그 후 개인적으로 신앙 안에서 나름 해답과 마음의 안정을 찾아서 일부러 이 문제를 피하며 살아 왔는데요. 그런데 점점 늘어나는 조선족에 대한 혐오기사와 댓글들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사색의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기분이고, 요즘에 그래서 좀 우울하네요. 와이프한테 이런 이야기 하면 와이프는 내가 미안해~ㅜㅜ 하면서 대신 사과 하려고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네요. ㅠ
기억하고 답글 달아줘서 감사합니다. 인터넷 댓글 논쟁은 맥락이 짤려서 소모적일 수 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챗지피티도 안다는 전후 맥락을…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