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홍콩계 미국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지미 오양(Jimmy O Yang)에 푹 빠져있다. 기분이 울적하거나 꿀꿀할때 그의 쇼를 보면서 배꼽 빠질 정도로 웃고 나면 스트레스도 한방에 날라간다.  스탠드 업(Stand Up)은 구글에 "the act of standing alone in front of an audience and performing comedy or telling jokes"라고 나와 있다. 말하자면 대륙에서 요즘 인기 많은 脱口秀같은 것이다. 우리말로 옮기려니 애매하다. 토크 쇼인듯 하지만 토크 쇼는 아니고, 그러니까 소품도 아니고, 만담(相声)도 아니고, 개크콘서트 같은 형식도 아닌 일인 토크 쇼라고 해두자.

13세에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지미는  영어도, 문화도 생소했다. 누군가에겐 입에 담기 껄끄러운 인종 차별 얘기일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잊히지 않는 학교 시절 괴롭힘일수도 있었지만, 결코 잘 생긴 얼굴은 아닌 그의 외모에 대한 평가도, 전형적인 아시안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스트레스도 그의 입에서는 전부 폭소를 자아내는 이야기로 바뀌었다. 인종을 물론하고 백인도,흑인도,아시아인도 거침없는 그의 자폭 이야기에 한껏 웃었다. 지미는 이야기꾼이었다. 쇼가 끝나면 그는 사람들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지미의 가족은 상해 출신이었다. 홍콩에서 사람들은 그를 상하이 보이라고 불렀고, 미국에서는 국적을 취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인(American)이기 전에 아시아인(Asian)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어울리지(fit in)못하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건 딱히 그를 건드리거나 성가시게 하지 않았다. 그는 랩 음악을 좋아했고 랩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영어와 문화를 배웠다고 한다. 부모님의 기대가 있기에 경제학 전공을 했지만, 결국 꿈을 좇으면 거지가 될거라는 아버지의 망언 같은 조언을 뒤로하고 코미디언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를 몇 년간 실망시켜드리는 것이 자신을 한평생 실망시키는 것보다 나은 편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지미는 "How to American: An Immigrant's Guide to Disppointing your Parent" 이라는 책까지 출판하고 여러 토크쇼의 초대를 받았다. 코미디언이어서 그런지 책 제목부터 장난기가 다분하다.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는 가이드라니. 구글 토크에서 그와 같은 출신인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그의 책을 보면서 많은 공감을 받았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오래된 고민들을 그에게 질문으로 던졌다. 질의응답 타임에 그가 한 대답들은 신선했다. 

한 명은 자신은 이민 2세대로서 늘 자신을 건드렸던 질문중에 하나가 <어디서 왔냐?>라는 질문이라고 하면서 그런 질문에 지미는 어떻게 상대하냐고 물었다. 지미는 누가 물어보냐에 따라서 답은 달라진다고 하면서 진지하지만 가볍게 시작했다.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우버 택시 기사가 그런 질문을 하면 로스앤젤레스라고 한마디로 던진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거나 좀 더 관계를 깊게 맺을 사람이라면 자신의 긴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더 궁금해 하면 이렇게 책을 써서 팔면 된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어떤 이는 그것도 아빠가 꽂아줘서 유명한 펀드 회사에서 인턴까지 했는데, 그런 기회를 버리고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아보이는 코미디언을 선택한다는건 지극히 쉽지 않은 선택이라고 하면서, 현실 때문에 꿈을 좇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냐고 물었다. 지미는 현실적인 직장을 버리고 꿈을 좇는 일은 두려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그냥 2~3년의 기회비용을 던지는 일이라고 했다.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면 그냥 해보라고.해보고 안되면 늘 다시 안전빵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실패해 봤자 당신은 괜찮을 거라고. 정 안되면 자신이 그냥 몇 년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고. 사람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게다. 뭐가 그렇게 심각한가. 뭐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사람들은 또 그에게 할리우드 영화도 찍었고 지금은 유명해졌지만 인지도가 없을 때는 오디션을 보면서 아시아계라서 떨어지는 차별 대우를 받은 적이 없냐고 물었다. 어찌 보면 민감한 문제였다. 지미는 그런 경우도 있었겠지만 딱히 인종 때문에 떨어졌다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그냥 다음에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왜냐하면 설령 차별 대우를 받아서 떨어졌다고해도, 그렇게 생각하는 자체가 자신한테 그 어떤 유익도 가져다줄 수 없다고 했다(It doesn’t benefit you). 심플하지만 파워풀했다. 그 어떤 민감하고 심각해보이는 질문도 그의 답을 듣고나면 그냥 별거 아닌 일이 되는 듯했다. 

십 여년전에 대학교 시절 수업에서 교수님이 해주셨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때 60대셨지만 교수님은 소녀와도 같은 명랑함을 지니셨다. 스스로를 비웃을 수 있는 자(自嘲)는 큰 지혜를 가진 자라고 하시면서 살면서 늘 자신의 모난 모습에도 웃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라고 하셨다. 인종,외모,성별,나이,키… 생각을 해보면 바꿀 수는 없지만 불평할 수 있는게 너무 많을지도 모른다. 지미는 비극보다는 희극을 택했고, 울기 보다는 웃는 쪽을 택했고, 바꿀 수 없는 것을 탓하는 대신 바꿀 수 있는 쪽을 택했을 뿐이다. 

가끔은 무지막지하게 심각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어쩌면 그저 그렇게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웃어 넘기고 한걸음 더 나아갈지 , 아니면 불평하면서 제자리 걸음 할지는 과연 내 선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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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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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도 지미 엄청 좋아합니다. 한동안 스탠드코미디 쇼에 엄청 빠져서 안되는 영어를 꾸역꾸역 번역해가며 본적 있습니다. 지미의 심플하지만 파워풀한 대답은 곧 그의 매력잇는 가치관인거 같습니다. 같은 하늘아래 모두 인간이고, 넓은 가슴으로 살아가는 멋진 모습이랄까 … 별거 아니라고 세상 시시하게 보는 순간 우린 진짜 단단해지는 법도 익히는 거 같습니다.

  2. 오~ 쭈앙님, 오랜만입니다. ㅋㅋ 글은 여전히 좋고. 읽고 싶은 글을 써주어서 감사합니다. “가끔은 무지막지하게 심각해 보이는 그런 것들이 어쩌면 그저 그렇게 별거 아닐지도 모른다. 웃어 넘기고 한걸음 더 나아”가면 될거 같습니다. 짧은 인생 하루하루 즐겁게, BUT 하루하루 앞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가면서.

  3.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사람마다 ‘심각 모드’를 유발하는 터치라인, 비등점이 다를 수 있겠지만, 일단 어떤 계기를 통해 심각하게 반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그만큼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게 자신의 신조나 원칙이든, 아니면 자신도 의식하지 못했던 잠재된 그 어떠한 ‘욕망’이나 ‘욕구’ 등 무의식의 영역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나쁜 건, 자신의 언행으로 인해 상대방이 당황하거나 심각모드인데, ‘별거 아닌거 같고 심각하네하네, 괜히 진지빠네’ 류의 태도겠습니다.

    좋은 글을 통해 잠깐의 성찰과 자아반성을 하며, 그 누구와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과의 좋은 관계맺기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고 갑니다.

    1. 아하하하하~ 맞습니다~”별거 아닌 마인드”는 어디까지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입니다. 제가 “심각 모드” 유발이 좀 쉽게 되는 타입이라 저도 반성하는 차원에서 글을 적어봤습니다. “별거 아닌거 같고 심각하네”에 빵 터졌습니다. ^^ 상처주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 꼭 있지요.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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