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감각적으로 멋지게 잘 입어보겠다는 욕심을 안 가져본 게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그 욕심은 늘 있었던 것 같은데 그저 그쪽으로 센스라는 것을 타고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자기가 그쪽 감각이 둔한 것을 불현듯 깨닫고 말았다. 그걸 깨달은 스무살의 내가 취할 수 있었던 제스처는 옷 잘입기를 바라본 적이 없다는, 나는 그저 내 멋대로 입을 뿐이라는, 가장한 시니컬함이었다. 

대학때는 자주 희한한 복장을 하고 나서서 한 기숙사 사우(舍友)들을 놀래켰다. 자칭 우리 기숙사 코디네이터 주국장이, 우크라이나 여전사들이나 신을법한 녹색 가죽 장화를 신고, 무릎까지 내려오는 커피색 코트에 굵은 빨강과 흰 털실로 짜여진 목수건을 하고 나서는 나를 놀랍게 바라보고는 

"은실아, 진짜 그렇게 입고 나가게?" 하고 걱정스럽게 말하고는 했다. 

나는 너무 만족스러워하며 老地下에서 산 스웨터도 배(裴) 사우는 "장족들 옷 같다"며 나지막히 팩트폭격을 가했다. (장족들 옷도 멋지다. 다만 그 옷은 아마 이도 저도 아닌 것이 이상했던가 보다.)

그런 20대를 지나, 나는 조금은 다른 사람의 시선도 신경쓰는 세련된 사람이 되고 싶었다. 패션이란 나만 좋아서 되는 게 아니지 않는가. 다른 사람의 안구와 정신 건강도 염두에 두는 게 사회인으로서의 예의일 것 같았다. 

그래서 자주 옷 잘 입는 후배나 친구들에게 자문을 구하고는 했다. 

그녀들은 모두 다른 도시에 있었으므로  사진을 찍어 보내서 자문을 구했다. 

-언니, 지금 코디는 4선도시의 소학교 음악선생 같아요. 

어디가 어떻다고 명확히 말한 것은 아니었으나 바로 그 느낌을 알 것 같았다. (4선도시의 음악선생에게는 미안한 일이다.)

-언니, 여기에 메달 같은 목걸이를 해봐요. 바로 깡패 여자친구 같은 느낌이 생길 거예요. 

깡패 여자친구가, 어떻더라? 음… 대개 힙한 이미지였던 것 같다. 살면서 촌스러운 일진 여친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친구는 또

-그 옷은 뒀다 환갑 때 꺼내 입어. 

-지금 코디는 너무 힘을 줘서 이상해. 

라고도 했다. 

힘을 줬는데 준 게 알리면 또 어때? 라고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쪽 학문은 깊고 아득해 보였다. 

최근에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예쁜 후배 동생 하나와 패션? 코디? 그쪽 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팔에 곤색 줄 간 아디다스 운동복에, 곤색 모자, 삼선 아디다스 운동화를 매치하면 어떠냐, 내 주제에 넌지시 건의라는 것을 했더니 이 예쁜이가 하는 말이 "너무 맞춘 티가 나면 재미없다"는 것이었다. 아니 나는 맞추기 위해 20년 가까이를 노력했는데 또 너무 맞추는 건 재미가 없다니.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춘다는 말인가. 

그리고 또 "너무 힘을 준 것 같으면 영사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언젠가 어디에서 들어본 것도 같은 "무심하게 시크하게"의 다른 버전인 듯 싶다. 

힘을 분명 줬지만 남들은 그걸 몰라야 한다는 이 오묘한 세계는 알면 알수록 현학적인 것 같다. 

또 "진한 색상 둘 사이에 그들의 경계를 그어줄 연한 색을 맥스"해야 한다는 어리둥절해지는 말도 했다. 

다 모르겠으나 일단 내가 조금은 아는 문학언어로 바꿔서 이해해보면 어떨까 한다. 

"너무 맞추는 건 재미없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서두와 결말이 너무 조응되게 쓰려고 한 티가 난 글은 답답하고 촌스럽다는 말이랑 통하겠다. 

"너무 힘을 준 것 같으면 영사하다"라는 말은 그러니까 소설에서의 기승전결을 너무 까근하게 계산하고 그 계산한 티가 독자에게까지 전해지면 패필이라는 그런 소리일 테다. 

"진한 색상 둘 사이에 그들의 경계를 그어줄 연한 색"이란 문장의 흐름이 원활할 수 있도록 비약하지 않고 과도구를 넣어주는 그런 섬세한 기술일 테다. 

음… 몽롱하지만 뭔가 좀 알리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이가 한마디 거든다. "한 몇년 전 사진 보면서 내 패션은 언제나 정확했다 이래두 재미없재?"

음. 언제나 나는 완벽한 글만을 써왔다 하는 것처럼 재미없다는 뜻일까? (재미 따위 없어도 되니 그런 글만을 썼으면 좋았겠다.)

돌아보면 두부모에 빠디하고 싶거나, 거미줄에 목매달고 싶었던 글들이 있다. 그런 글들을 나는 한쪽눈을 감고 빠르게 페이지를 넘긴다. "아니야, 내가 쓴 거 아닐 거야."

시간이 좀 지나서는 그랬던 나도 용서하려 한다. 저랬던 시절을 거쳐서 새끼손톱만큼 성장해서 지금에 이른 것이니 부끄러워하지 말자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런 의미로 패션테러를 과감히 저질렀던 옛날 사진을 소환한다. (재미는 좀 있는데 그저 좀 현타가 온다.)

대학 3학년 때였다. 내나이 방년 21세였다(어리면 봐줄 것 같아서)

저 오리가 너무 귀여워 보였었다.

한때는 손석희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가 이런 체크무늬 자켓을 입었길래 나도 입고 싶어서 샀는데 옷이 너무 컸다. 그랬지만 그와 커플이고 싶어서, 손아나를 좋아하는 마음을 기어코 표현하고 싶어서 입었다. 

마무리를 또, 앞으로는 코디도, 글도 세련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쓰려다가, 코디를 너무 맞추려고 애쓴 티가 역력하면 재미없다던 예쁜이의 말을 상기하며 이쯤에서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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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s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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