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를 하다보면 거친 또는 딱딱한 표현 때문에 섬짓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하고 대화할 때면 느끼곤 한다.
– "집이야?", "예", "근데 왜 전화 안 받아?"
-"집이야?", "예", "너 뭐하는데 전화 안 받아?"
이 두 건의 통화는 모두 다 최근 친척 어른과의 통화 내용이다. 저런 질문을 받을 때면 다짜고짜 따진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취조하려는 뜻이 아니었고, 단지 억양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서 말 할 수 있겠지.
"오늘 바빴는 매구나, 전화를 안 받던데".
거친 또는 저런 식의 딱딱함은 단순히 특정 억양을 지닌 방언을 사용하는 화자의 언어적 표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다. 거친 언어가 담고 있는 거친 사고와 태도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이다.
당연히 바쁘니까, 사정이 있으니까 받지 못했겠지라는 배려가 있다면 저런 식의 질문을 통화 초반에 하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돌이켜 보면 자라 온 환경이 예쁜 언어, 아름다운 말, 그리고 부드러운 표현을 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하거나, 거친 말 또는 딱딱한 표현을 자제하려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심지어 거친 말을 쓰면서 괜히 힘을 과시하는 친구들이나 어른들의 모습을 더 많이 보아왔다.
이렇게 길러진 언어관습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가꾸어 나가는 데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간관계, 또는 그렇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점잖은 인간관계를 만들기는 어렵다.
혹자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솔직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표현이라서 좋은 것이라고 한다. 동의하는 바이다. 굳이 미사려구를 사용해서 오버할 필요는 없다. 담백한 것이 좋다. 그러나 담백하다고 해서 아무런 다듬이질도 거치지 않은 까칠한 표현인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담백하면서도 점잖게 말 할 수 있다.

사실 연변말도 얼마든지 점잖게 말할 수 있고, 서울말도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들릴 때가 있는데 말입니다. 결국은 말하는 사람 문제인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