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버즈』——진정한 소통과 화해를 위한 디아스포라문학
―전춘화의 소설집 『야버즈』를 중심으로
리은실
들어가며
디아스포라(영어: diaspora)는 특정 민족이 자의적이나 타의적으로 기존에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집단을 형성하는 것, 또는 그러한 집단을 일컫는 말이다. ‘흩뿌리거나 퍼트리는 것’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διασπορά에서 유래하였다. 이산문학이라고도 불리는 디아스포라 문학은 민족국가의 영토를 벗어나 이주국에 거주하는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다른 문학을 뜻한다.
1992년, 중한수교 이후 중국 조선족들은 노무, 취업, 무역, 공부를 목적으로 한국에 대거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가리봉동, 대림동 등지를 중심으로 조선족 타운을 형성하고 상업활동을 하는가 하면 ‘재한동포문인협회’를 결성하여 문화활동도 이어나갔다. 적지 않은 재한 조선족 작가들은 신문, 잡지를 발간하기도 하고 문학작품집을 출판하기도 하며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중국내 우리말 문학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재한동포문학은 중국 조선족 문학에서 굵직한 한 갈래를 형성하였고 그에 따른 작품연구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김호웅(2020)에서는 “재한 조선족 작가들은……이방인의 고뇌와 슬픔, 자아 성찰과 반성, 그리고 주체의식의 변화를 통한 정체성의 재조정 과정을 예술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역사의 서기관’으로서의 사명을 수행했다. 따라서 현장성과 사실성 진정성은 중국내 조선족 소설과 다른 재한 조선족 소설의 강점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재한 조선족 문학 연구에서는 자연스럽게 ‘정체성 연구’라는 말이 뒤따라오곤 한다.
“나는 누구인가?” “국가가 우선인가?” “민족이 우선인가?” 이러한 질문들이야말로 재한 조선족의 정체성의 고민의 시작일 것이다. 그러나 돈을 목적으로 가짜 이혼, 밀항 등 갖가지 위험요소를 무릅쓰고 한국으로 진출한 중국 조선족들이 과연 정체성 고민이 우선이었고 주된 고민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떨칠 수가 없다. 그들에게 당면한 과제는 하루 빨리 돈을 벌어 중국 국내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는 일이었을 것이다.
초반에 재한 조선족들의 한국에서의 불공정한 처우와 그들의 불우함을 고발한 소설은 대부분 한국에 있지 않은 중국 국내의 출판사나, 작가협회 등 체제 내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는 식자층에 의해 씌어진 소설이 대부분인 것으로 보인다. 그 시기 재한 조선족 주제의 소설들은 대부분 주제의식을 앞세워 급급한 1차원적인 설정을 하고 소설의 구조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흔적이 보인다.
강호원, 구호준 등 작가들이 한국에서 노가다를 하면서 체험을 소설화하긴 했지만 그로써재한 동포의 삶의 전면모를 보여주었다고 하기에는 역시 부족함이 있다. 개인의 체험을 앞세우다보니 주의깊고 면밀하게 사회를 읽어내고 그것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지 못한 것에 유감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강호원은 본인의 작품집의 머리글에서 그 유감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였다.
“소설이 실화 같았고 실화가 소설 같기도 한 혼란을 겪었다…….기왕의 작품들을 살펴 보면 필자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이 객관성을 잃고 필자 본인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든가 진실과 허구의 자연스러운 조화가 어색하다든가 하는 등등의 허점들이 드러났다.”
그의 고백은 어쩌면 19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대부분의 재한 조선족 소설들 대부분이 안고 있는 문제점이었을 것이다.
수만 위안의 고리대를 꾸어가지고 향한 미지의 땅 한국, 밀항이라는 목숨 건 위태로운 ‘게임’을 감내하고 간 한국에서의 피 말리는 생활 속에서 모국이기는 하지만 엄연한 타국인 한국에서 겪는 그네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토로와, 울분이 그렇게 직접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시기 재한 조선족 소설은 1920년대 중반에 대두된 신경향파 소설을 방불케 하는 극단적인 설정들도 더러 보인다.
그러므로 그 시기의 조선족 소설을 ‘정체성’ 담론으로 접근하는 것은 조금 급급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체성’ 담론의 진정한 시작
2010년대 후반에 들어서, 1970년대 후반에 태어난 몇몇 조선족 소설가들에 의해 재한 조선족 작가 작품들에 비춰진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1978년 생 조선족 소설가 김경화의 소설 「굿바이, 토요일」에 비춰진 한국인 반사장의 이미지는 한국인, 고용주 등 많은 수식을 떼버린 진솔한 한 인간의 모습이다. 재한 조선족 작가가 한국인을 소설화함에 있어서 국가, 민족,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 자체에 집중한 소설로서는 매우 드물다고 보여진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평정심을 가지고 한국인을 대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국인과의, 또 한국사회와의 소통의 시작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가 전춘화는 1989년 생으로 중국 연변에서 태어나 연변대학에서 문학학사 학위를 따고 한국 중앙대학교 문창과에서 석사학위를 딴 조선족 소설가이다. 그는 2017년부터 간간히 소설을 중국내 우리말 잡지에 발표하다가 2023년, 그동안 쓴 소설을 모아 단편소설집 『야버즈』를 출간하였다.

단편소설 「야버즈」 속 경희는 한국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한국의 한 명문대학 연구실에서 역사연구원으로 있는 용주와 동거 중이다. 용주는 학자적 기질을 가진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그는 역사 연구자란 “옳소, 아니오 칼 같이 판단하는 자리가 아니라(그럴 때도 있지만) 더 신중하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두고 확신이 설 때까지 시간의 편에 서서 인내하는 자리”라고 믿는 사람이다.
어쩌면 우리의 소설 창작이, 문학작품 연구가 그렇게 진행되어야 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옳다, 그르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의 이분법적인 판단을 보류하고 섬세하게 그려서 보여주는 작업이 우선이 되어야 했을 것이다.
용주의 어머니는 용주와는 다른 성격의 급진적인 인물이다. 역사에서 볼 수 없는 소인물들의 흔적을 안타까워 하는 용주와 달리 용주의 어머니는 “조선족 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주류에 속하지 않는 작은 물줄기 같은 존재들이 있지. 시간이 흐르면 결국 다 큰 물줄기에 흘러들어 함께 바다로 가지 않겠니?” “아들, 한족들 틈에서 주류로 살아. 식탁 위에 메인 메뉴 같은 인생을 살아야지.”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뱃속에 잉태한 쌍둥이의 미래를 생각하다 경희는 부득이하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이 아이가 학교 가는 나이가 되면 한국에서 키울까, 중국에서 키울까 고민하던 것을 경희도 이제 하게 된 것이다.
고민이 깊어지다 “한족화가 되든 귀화하든 줄 잘 서야 될 것 같은데.”라고 했던 전남자친구의 말까지 떠올라 경희를 고뇌하게 만든다.
경희와 그녀의 친구들은 대림에 있는 ‘야버즈’ 가게에서 야버즈를 사다 발라 먹으며 “야, 하다못해 마라탕과 양꼬치도 한국에서 정착을 했는데 우린 이게 뭐니.”라고 한탄한다.
경희는 마라탕이나 양꼬치처럼 이질감 없이 어느 한쪽에 스며들어 잘 살고 있는 것 같은 박씨나 쑈리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차이나타운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 같은 야버즈를 오래오래 씹었다. 단단한 뼈를 떠난 쫀득한 질감과 짭짜름한 맛이 경희의 혀에 오늘따라 더 친숙하게 달라붙었다.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중국이냐, 한국이냐 명확하게 줄을 서라고 한다면 머뭇댈 수밖에 없지만, 어느 한쪽에 이질감 없이 스며든 ‘마라탕’이나 ‘양꼬치’가 될 수도 없겠지만 굳이 조선족의 정체성을 묻는다면 자극적이어서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지지는 못했지만 차이나타운에서 굳건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야버즈’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중국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한다. 경희와 용주는 그 윗세대의 재한동포처럼 생존의 핍박에 내몰리지도 않았고 한국행 또한 그렇게 처절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난한 생활을 이어가며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인정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을까에 집중한다.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보여 주었다. 첫 단계는 생리적 욕구이고 둘째 단계는 안전의 욕구, 셋째 단계는 애정 소속의 욕구, 사회 귀속 욕구, 넷째 단계는 인정 욕구, 다섯째 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한다.
지난 세기 90년대, 2000년대 초반의, 불법체류로 전전하는 재한 조선족에게 안전의 욕구는 늘 위협받는 요소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애정 소속 욕구나 사회 귀속의 욕구는 먼 이상에 불과했을지 모른다.
공부도 많이 했고 나름의 반듯한 직장도 가진 경희와 용주는 그 전세대와는 달리 애정 소속의 욕구 사회 귀속 욕구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 “민족과 국가 어느 쪽에 더 완전한 소속감을 가지는가?” 그리고 어디에 속했을 때 나에게 더 큰 이익이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명확한 해답이 있을 리는 없을 것이고 해답이 있다고 하더라도 각자 모두 다를 것이다. 그러나 문제제기 자체만으로 의미는 충분하다.
인간의 고유함에 대한 면밀한 관찰
전춘화의 또 다른 단편소설 「블링블링 오 여사」는 별 욕심 없이 연길 서시장에서 김치장사를 하다가 뒤늦게 한국에 온 ‘오 여사’가 간병인 일을 하면서 만나는 제각각의 한국인을 오 여사의 딸인 ‘나’의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오 여사의 첫 간병인 환자는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가 마비된 열여섯 살 소녀였다. 소녀의 엄마는 한국 모 은행의 과장으로 능수능란하게 사람을 다루는 여자이다. 그녀는 가끔은 딸애가 ‘오 여사님’을 따른다며 가족처럼 지내 보자며 살갑게 굴다가도 월급 5만 원을 올려 달라는 말에는 “우리 서영이 예뻐하지 않는 거예요?” 하면서 정서적 압박을 가한다. 그러나 오 여사는 몇십 년을 살면서 중국에서는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오 여사’라는 호칭에 어쩔 바를 몰라 하며 감격한다.
오 여사는 사람에 대해 편견이 없는 순박한 중년 여성이다. 친구인 월순 이모가 “한국 사람들 밖에서 보면 친절하고 사근사근해도 발밑에서 굴릴 때는 사정없단다”라는 귀띔도 그녀는 흘려들으며 맡은 한국인 환자들을 극진히 보살핀다. 오히려 그녀는 한국인들이 불쌍하다며 동정하기도 한다.
그러다 ‘오 여사’는 말이 많다고 누구도 기피하는 한 음악가의 간병을 맡게 된다. 알고 보니 그 환자가 말이 많은 건, 1번 곡을 틀어주세요, 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을 굳이 “1번 곡 슈만의 <시인의 사랑> 중 <아름다운 5월에>를 틀어 주세요. 저는 슈만의 곡이 그렇게 아름답더라고요.”라는 식으로 표현하기 때문이었다.
‘오 여사’가 연주곡의 제목을 외우기가 벅차 왜 번호만 알려줘도 될 것을 굳이 제목을 다 말하는지를 물어보니 김동리라는 환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여사님, 사물도 고유의 이름이 있는 법입니다. 번호로 부르면 그것이 갖고 있을 모든 의미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 같아 저는 이름을 부른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잠깐 볼 사이지만 서로 이름을 부릅시다.”
그는 사물을, 세계를 카테고리로 인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유성으로 인식하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오 여사는 김동리의 말에 깊이 생각하게 되고 또 가끔 놀라기도 하고 또 아주 가끔은 잔잔하게 흔들리기도 한다. 그 이후 오 여사는 새로 태어난 듯 활기차게 변모한 모습을 보여준다.
딸인 나는 엄마의 입으로 김동리 환자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대학원 시절의 교수님을 떠올린다. 대사관 직원이었던 아버지와 발레리나였던 어머니의 로맨틱한 1960년대 사랑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먹어 봤다는 낯선 음식들을 소개해주던 분이었다.
그분이 의도치 않게 건넸던 괴리감과 낯섦에 대해 한동안 열심히 되새김질하다 얻은 나만의 결론이 있었다.
“생존을 위해 살면 본능적으로 달리게 되어있어. 쫓기듯이 목표를 향해 뛰게 된다고. 달리는 사람은 많은 것을 관찰하고 구체적으로 깊이 알고 즐길 여유가 없어. 엄마가 그렇게 신봉하는 김동리 씨는 처음부터 생존을 위해 태어난 팔자가 아니었다고. 그는 산책하러 나온 사람인 거야.”
소설 속 다양한 인물에 대해 전춘화는 국가나 민족, 이데올로기 등의 프레임을 씌우지 않고 고유한 인간으로 그려낸다. 바로 소설 속 김동리 환자처럼. 바로 그녀의 소설 속 독백처럼 어쩌면 1980년 후반 태생의 그녀는 생존에 쫓기는 타국 생활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전 세대보다 많은 것을 구체적으로 깊이 관찰하고 알아 볼 여유가 있어서 보다 내밀하고 섬세하게 인물들을, 한국사회를 그려냈을 것이다.
그리고 편견을 버리고, 평정심을 가지고 주의깊고 섬세하게 사람을 고유의 존재로 대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과 화합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나오며
중한수교 이후, 한국과의 접촉이 조선족의 삶과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듯이 엄청난 규모로 이루어지는 조선족 이차 이산 역시 조선족 전체의 삶과 의식을 변화시키고 그들의 문학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켰다. 재한 조선족 소설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는 한국에서 겪는 생활고로 인한 고통과 한국인의 차별에 따른 서러움 등이었다. 한시기 재한 조선족 소설의 주제는 지극히 단일화된 양상을 보여 주었다. 또한 빈약한 상상, 구조의 단순성 등 문제점도 여과없이 드러냈다.
현장성, 사실성, 진정성이 재한 조선족소설의 강점으로 인정받지만 그것만으로는 한국인과 한국사회를 전면적으로 깊이있게 보여주기에 역부족이다.
그리고 문학의 효용성 측면에서 볼 때 문학은 종국적으로 아름다움이어야 하고 조화로움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추악함을 고발하고 울분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위한 것일 것이다.
우리의 재한 조선족의 문학 창작 역시 반목과 갈등을 그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종국적으로 화합과 소통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어떤 판단을 함부로 내리지 않고 면밀히 주의깊게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작가라면 전춘화의 소설 속 ‘용주’의 말처럼 “옳소, 아니오 칼같이 판단”할 것이 아니라 면밀하고 주의깊게 관찰한 뒤 섬세하게 그려내야 할 것이다.
편견없이 인간 심리의 내밀한 층위를 그려내려면 역시 성급한 판단을 보류한 섬세한 관찰이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와 상대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소통을 시도할 수 있다. 한 인간에게서 프레임을 벗기고 그의 고유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진정한 소통이 시작될 것이다.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란 어쩌면 나를 제대로 잘 알기 위해 깊숙이 스스로를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에 대한 심층적이고 다층차적인 요해와 분석을 통하여서만이 세상을 편견없이 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춘화의 말처럼 어쩌면 “사람은 생존을 위해 살면 본능적으로 달리게 되”고 “쫓기듯이 목표를 향해 뛰”다 보면 “사람은 많은 것을 관찰하고 구체적으로 깊이 알고 즐길 여유가 없”어서 섬세한 관찰을 못할 수도 있다.
물론 허구의 예술 작품을 창작자가 처한 현실적 문제와 연계지어 생각하는 것은 과학적이지 못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접근법이다. 작가라면 개인이 처한 현실적 문제를 초월하여 범민족적, 범국가적, 범사회적인 차원의 안목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 창작된 중국 조선족 소설들이 개인적 체험을 지나치게 앞세우거나 또는 구조를 단순화한 허점들을 노출하는 것으로 보아 창작자 개인의 상황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제 ‘스스로를 깊숙이 들여다 보기’와 주의 깊은 관찰, 섬세한 그리기는 생존의 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청년세대 작가에게 기대해 봐야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한 양국이 갈등을 딛고 진정환 소통과 화합에로 나가는 길에서 조선족 청년 작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참고문헌
전춘화. 야버즈. 서울: 호밀밭, 2023
김호웅⋅전은주. 2000년대 이후 재한 조선족 소설 연구. 국어국문학(190), 2020.3
최병우. 한중수교가 중국조선족 소설에 미친 영향 연구. 국어국문학(151), 2009.5
최병우. 중국조선족 소설에 나타난 한국의 이미지 연구. 한중인문학연구(30), 2009

전춘화 작가의 소설들은 기존 조선족 작가 작품들과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국 화법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주류의 화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젊은 세대의 화법처럼 느껴지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