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돌실이가 끝나고 나서 훈춘에 왔다. 

쟈쟈가 페인트 12t을 싣고 나진으로 가다가 시간이 늦어져 새차를 경신에 세워 두었는데 아버지가 결혼하고 할아버지 제사까지 끼워 그 차를 내가 나진에 몰아 내가기로 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쑈찌 차를 탔었다. 용평다리가 끊어 졌기에 도로서쪽 철도 옆의 편도로 에돌아 왔었는데 강을 다리가 없이 건너는 구간도 있어 12t의 페인트를 실은 차가 지나가기 말째다고 생각했고 선봉에서 비파도 쪽으로 갔다가 다시 관곡동으로 가는 고갯길이 더 편 할거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나진행 때 그쪽 길을 선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로따네는 로모가 병이 중하다는 소식을 접해 나보다 하루 먼저 귀국 했었다. 21일은 로얼의 생일이었다. 점심에 친척,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 나도 갔었다. 

아들애는 새로 붙은 학교에 마음이 없어 했고 습관되지 않아서 그런지 다시 유치원에 보내 달라고 칭얼대었다. 오후에 반나절 데리고 다니면서 구슬렸더니 학교를 잘 다니겠다고 약속을 해주었다. 학급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는데 이제 겨우 뒤를 보고 난 뒤 자기 절로 엉뎅이 닦는 걸 배워냈고 학급장을 맡아하고 있었지만 아직은 철부지였다. 

이튿날, 로따 부부와 함께 경신으로 가서 맡겨 두었던 새 트럭을 찾아 몰고 두만강 다리를 넘었다. 새 차는 겉모양이 일본의 미쯔비시나 한국의 현대 트럭과 똑 같았고 이제까지 운전해 보았던 중고차보다 동력 조향장치가 있어 핸들이 가벼웠고 승용차 운전보다 시야가 좋아 몰면 몰수록 신이 났다. 

장로다리는 이미 복구되었고 선봉 수금소 앞의 다리는 한창 복구 중이어서 그 옆의 강바닥을 핥으면서 지나가는 데로 조심스럽게 건너 왔다. 로따도 비파도 쪽으로 가는 것을 동의했기때문에 선봉에 도착한 후 바로 발전소 쪽으로 냅다 몰았다. 발전소에 쟈쟈와 함께 시멘트와 슬레이트도 여러번 실어다 주었고 부리는 장소였던 자재창고 뒤로 비파도에 가는 좁은 길 입구가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지만 오늘 처음 그 길로 가보게 된다. 

발전소 남쪽에 그리 높지 않은 산이 있는데 그 산 저쪽에 비파도가 있었고 오불꼬불하고 좁은 영 길을 꿰질러 가면 관곡동에 이를 수 있다고 들었었는데 끊어진 용평다리를 에도는 목적을 이룰 수 있다. 영길 입구부터 올리막이 시작된다. 조금 올라가니 길이 좁아지기 시작하고 겨우 승용차 두대가 지나갈 만한 폭이었으나 오래전에 포장을 했었던 흔적이 조금 남아 있어서 도로 상태를 걱정하던 나를 안심하게 해주었다. 

엔진의 출력이 130㎾여서 기어를 1단에 넣고 가파로운 영길을 톺을 수 있었다. 왼쪽 아래로 선봉항이 한눈에 안겨왔다. 잇달아 그림처럼 아름다운 선봉 앞바다가 무연이 펼쳐지고 멀리 알섬이 보였다. 여름철에 누군가가 보내준 갈매기 알을 먹어보았고 그 알이 알섬에서 주어온 것이라는 걸 알았을 뿐만아니라 비파도 쪽에서도 멀리 보이는 그 섬이 알섬이라는 것도 얼마 전에 알았었다. 

정상까지 한참동안 가까스로 톺았고 정상을 지나니 아름다운 비파도와 그 입구 쪽의 엠페러호텔이 눈에 안겨 들었다. 도로 옆의 소나무 사이로 커다란 비취 같이 보이는 비파도를 곁눈질 하면서 비파도 갈림길까지 천천히 내려갔다. 

여기서부터는 대반령과 저술령과 같이 길이 익숙하기에 빨리 몰아도 되었다. 다시 올리막이 시작되는 그 구간에서 태풍으로 파손된 흔적이 좀씩 보였으므로 차가 통과하는 데는 무난했으나 안전을 기하여 속도를 떨구었다. 저술령과 같이 다른 차를 별로 만나지 않는 운전이어서 어렵지 않게 다시 올리막을 다 올랐고 거기서 눈부시게 아름다운 비파도를 다시 한번 곁눈질 하고는 내리막에 들어섰다. 

내리막 중간 쯤부터는 산아래 석유정제공장과 관곡동이 훤히 내려다 보이고 조금만 더 가면 올해 새로 공사한 포장도로를 만나게 되기에 나진까지 도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로따는 나의 운전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지만 이모는 국경 다리를 지난 후부터 숨이 한줌만해서 말도 몇 마디 하지 않고 나진까지 갔었다. 

페인트는 철통으로 포장한 것인데 통마다 6키로의 페인트가 들어있고 색상은 여러 가지었다. 훈춘에서 도매가 21원에 2천통을 실었고 나진에서는 내화 천 원에 팔렸기에 당시 환율로 인민폐 38원 정도에 팔렸으니 모든 비용을 다 빼더라도 통당 마진이 15원정도 남게 되는 엄청나게 좋은 장사였다.

마른 낙지 한 차를 중국에 실어 가면 차 당 마진이 인민폐 2천이 좀 더 된다고 한다. 동태는 많아야 천 원 꼴이다. 내가 인수원을 하면서부터 차 당 마진을 따져보는 습관이 생겨 났는데 우리 화물을 볼 때 언제나 적어서 7천 원이었다. 러시아 휘발유는 만원을 웃돌고 있었다. 총적으로 로따는 차당 마진이 7천이상 되는 장사를 기본으로 해왔으므로 장사가 잘 되어도 어지간히 잘 되는 장사가 아니었다. 특히 이번의 페인트 한차는 저그만치 3만을 웃도는 마진을 남길 수 있으므로 다른 화물보다 3배이상 더 버는 셈으로 장사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장사라 할 수도 있었다. 

늘 이런 장사에만 매달려 마진이 적은 시시한 장사에는 곁눈 하나 팔지 않았다. 게다가 운수 수단인 트럭도 자기 차였으니 거기서도 적지 않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고 더없이 편리하게 되었다. 

나진에 나온 후 장마당에서 소라를 사다가 먹은 적이 있는 데 술을 마시지 못하는 나만 가벼운 중독 증세를 보였다. 소라를 통채로 사다가 삶은 후 고기를 뽑아먹은 것이었는데 다른 수산물과 같이 먹을 때 술을 같이 마시면 가벼운 중독 증세 따위는 스스로 물러간다고 들었었다. 외국인 숙소의 의료센터에 가서 《덱사》 주사를 맞고 돌아 와서 초저녁부터 이튿날 오전까지 늘어지게 자고나니 증세가 사라졌다. 

여름철에 식당에 가서 먹을 때는 중독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집에서 해 먹으면 중독증세가 보일까 하는 현상이 있어 그 후부터는 아예 소라를 먹지 않았고 휘발유 냄새를 맡아도 현훈증이 일고 메슥메슥해났기에 10월 달부터는 휘발유에 관련된 일에 아예 손대지 않으려고 마음 먹었다. 

《덱사》 주사를 맞고도 약간의 후유증으로 앓던 며칠 동안에 있은 일이다. 이날 아침 식사때 새벽에 도둑 잡이 한 일이 있은 것을 로따와 위홍이가 흥미진진하게 말했었다. 이런 일이었다. 

새벽 잠이 없는 위홍이는 아직 날이 밝지 않았을 때 수리소 쪽으로 가려다가 이상한 그림자가 대기실 서쪽에서 묵직한 마대를 우리 숙소 뒤쪽으로부터 날라 내오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사무실 2층 창가에 서서 내려다 보면서 바로 뒷집의 창고에서 내오는 것이라는 걸 확인했고 그 마대는 시멘트 포장이라는 것도 보아냈다. 

로따를 깨워서 함께 보고 있다가 뒷집 창고 앞에 감쪽같이 나타나 덜미를 잡게 되었다. 봄철에 우리가 건설용으로 실어내온 시멘트와 똑같은 포장이었고 보나마나 우리 건설 현장에서 훔쳐서 뒷집 창고에 잠시 보관해둔 거였다. 창고에 수십 마대나 쌓여 있었다. 

그 그림자들은 다름아닌 청진의 23건설사업소 종업원들이고 우리 대기실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당장에서 잡히게 되었고 물증이 똑똑하게 나온 마당에 부인하려 해도 안되는 노릇이라 몇명의 건설자들은 얼굴이 서리 맞은 시래기 꼴이 되어 있었다. 

아침 식사가 끝난 뒤. 

23건설사업소 나진현장 책임자인 부기사장이 그 몇 명을 데리고 와서 사과하는 거였다. 그 몇 명에게 당장에서 이불짐을 싸 메고 청진에 돌아갈 것을 명령하고 한 사람씩 사과 말씀을 드리게 한 뒤 본인도 재삼 사과하는 거였다. 시멘트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모른다. 원래 그 시멘트를 나진의 각 건설 사업소에 헐 값으로 넘기려고 했고 넘기는 날 새벽에 자리를 옮기다가 잡히게 된 것이다. 

여러 건설사업소의 사람들이 위홍이한테 시멘트를 팔려던 청진 사람들에게서 2톤이 넘어되는 시멘트를 헐 값에 흥정하고 사주기로 했다는 말을 한 후 사건이 더 명백하게 되었다. 바로 뒷집 창고에 쌓아두었던 것은 우리 시멘트였고 위홍이가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감쪽 같이 잃어진 그 시멘트를 전혀 모를번했었다. 건설용으로 내왔던 시멘트가 부족했던 다른 한 원인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1주일후 도둑 중의 한사람이 뇌출혈에 걸려 임시 숙소에서 죽었다는 소문을 얻어 듣게 되었다. 한달 생활비로 7백을 받아서는 쓰지 않고 모아 두고 평소의 술담배 소비는 전부 도둑질로 해결한다고 대기실 건설현장을 책임진 반장 아바이가 실토정을 한 것은 그 후에 있은 일이다. 배터리 충전기가 고장났을 때 그 반장아바이가 수리해 주었는데 청진으로 돌아 가려는 그 몇 명을 눌러 앉힌 것도 그 아바이고 뇌출혈에 걸린 그 도둑은 바로 반장아바이 옆에서 급작스레 죽었다고 한다. 

요즘은 생각 잖은 중독후유증으로 아침에 늘 늦잠을 잤다. 일어난 후에는 머리가 천근같이 무겁고 온몸이 쑤셔나서 실로 고생을 사서 하는 격이었다.  벌써 이틀째로 승용차를 몰고 나가 운행증을 나누어 주었다. 

장마당 정류소에서 차장 반장인 김성옥에게 주면 성옥이가 다시 차장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수리소 쪽에 있을 때는 검차 뒤에 바로 주었지만 요즘은 버스가 주유하러 아침에 내려 온 그 시간에 주유소 바로 옆에서 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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