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1일 오전 6시 42분(북경시간). 이 시각은 중국에서 기념할 만한 시각이다.  

훈춘의 삼림산(森林山) 정상이 이 시각에 새 세기의 첫 햇빛을 중국 판도에서 제일 먼저 보게 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TV방송국에서는 전 날 저녁부터 생방송을 했고 세기가 교체되는 그 밤과 새벽을 나는 뜬눈으로 새웠다.  

아침의 그 시각이 오자 중국의 중앙TV방송국에서도 약 5분간 생방송을 중계했었다. 구름 층 때문에 햇빛이 약 2분 후 인 6시 44분에 삼림산을 비추기 시작했다. 땅이 넓은 중국은 자체 내에서 네시간의 시차가 있지만 전지역에서 북경시간을 표준시간으로 쓴다. 평소 이 시각 제일 서쪽의 지역은 아직도 새벽 굳잠에 빠져 있을 때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생방송을 시청했다고 훗날 보도되었다.

연변은 사실상  평양이나 서울,  도쿄와 같은 시간대에 놓여 있기 때문에 정확한 시간으로는 아침 7시 44분이 되는 시각이었다.  지난해처럼 큰 눈이 내리지 않았고 지어 작은 눈도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을 드러낸 새 세기의 첫 날은 가슴이 설레이게 해준다.

올해는 어떻게 보내야 할지 이미 계획이 선 상태다. 연길에 갔다 오고 나서 기본상 결정되었다. 약을 둘러싸고 연길 아니면 북경 두 곳 중에서 한 곳을 선택하고 나진은 자연히 떠나게 되어있다. 홍사장은 가이드들을 통해 연길에서 파는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페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아직 미개발인 북경 시장을 직접 개척 해 보려 계획했다. 북경의 옛날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놓은 터였다.

이제 남은 것은 로따를 설득하여 이 장사에 개입시키는 것이다. 이제까지 줄곧 환전 때문에 골치 아파했던 일이 잘 풀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선에서 내화로 약을 사고 중국에서 판매하면 외화가 생기는데 시간적으로 어느 정도 지체 될 뿐 외화전환은 자연적으로 이루러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경에 가면 다시 가이드 노릇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나 친구들 도움이면 약장사를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나진에서 뭔가 잡아 보려던 일이 풀릴 수도 있었기에 요즘은 기분이 둥둥 떠 있었다.  

황기사는 이미 해고 된 뒤였다. 연말 총화로 로따 내외를 제외한 식구들이 다 모였을 때 참가하기는 했지만 새해부터는 쓰지 않기로 했었다. 쟈쟈를 찾았지만 여자 친구 만나러 멀리 내몽골에 가서 연락조차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내가 85호를 운전하기로 했다. 요즘 늄창 주문이 새롭게 들어 와서 재료를 한 차 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권하 통상구의 새 청사는 새해부터 사용에 교부되었다. 이제는 교두 쪽의 두 나라에서 다 새 청사에서 일을 보게 되었고 중국 쪽은 도로가 훨씬 좋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건설 되었으므로 국경 무역이 조금은 틀이 잡혀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원정에서 무난히 수속을 마치고 나서 올리막을 올라갈 때 오늘 꽃제비들이 나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 애들이 설쇠러 갔나 부다 하고 생각하다가 불현듯 지난해의 첫 운행으로 눈길에 러시아 유조차를 따라 이틀에 걸쳐 나진까지 겨우 갔던 일을 기억해냈다.  

억수로 내린 눈 때문에 1월 중순이 되어서야 베쨔가 12t급을 몰고 훈춘에 왔다. 견인차는 카마스였는데 유라도 함께 왔다. 오전에 장령자 통상구에 도착한다던 유조차가 오후 두시가 조금 지난 후에야 국경을 넘어섰다. 권하 교두에는 점심 휴식시간이 있었지만 장령자는 점심 시간에도 통과가 가능했고 그 대신 저녁 퇴근시간이 조금 빨라져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중국시간보다 세시간 빠른 시간을 통용하고 있어 그 시간에 맞추어야 했었는데 가까스로 퇴근 전에 들어선 것이다.

대반령을 오르다가 중간쯤에서 세우고 말았다. 트럭 한 대가 길옆의 눈 속에 빠져 들어가면서 길에 가로 놓였기 때문이다. 그 차가 겨우 빠져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서산 쪽에 가물가물 넘어가고 있었다. 베쨔의 카마스는 12t의 연유를 실은 탱크를 올리막에서 끌지 못 한다. 30분 넘어 역사질 했지만 끝내 올리막을 오르지 못 하는 것이었다.

길옆의 눈을 파헤치고 팔 수 있는 만큼의 흙을 인제는 거의 다 파내고 더 얻으려 해도 기진맥진해 버렸다. 언 땅을 파기보다도 눈길을 걷는 것이 더 힘들었던 것이다. 베쨔는 나이 50이 넘은 기사로 운전기능이 괜찮다 싶었는데 오늘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다.  

나중에 유랴가 운전석에 올라 탔다. 베쨔처럼 악셀을 힘껏 밟지 않고 적당히 밟아주었고 바퀴가 제자리에서 공회전 해도 침착하게 원래의 자세 그대로 악셀을 밟았다. 공회전 할 때 악셀을 힘있게 밟을수록 차는 앞으로 가지 않고 바퀴만 그 자리에서  돌뿐이다. 베짜가 공회전을 거듭한 그 자리에서 타이어가 타면서 연기가 나고 눈이 녹아 수증기도 한참 피여 올랐을 때 차가 약간 움직였다.

그러기를 몇 번 거듭하여 마침내 수백 미터를 나갈 수 있었고 변속을 하면서부터 또 공회전을 했다. 다시 기어를 떨구고 공회전을 여러 번 하고 나서 차가 다시 움직였고 이번에는 변속을 하지 않고 정상까지 톱았다. 오불꼬불한 눈 덮힌 영길에서 유조차를 후진시킨다는 것은 운전기능이 아무리 높다 해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올리막 길에서 앞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힘든 판국에 더우기 눈길을 후진하다가 길옆에 쓸어 넣으면 차가 통째로 골짜기에 처박힐 수 도 있었기에 앞으로 밖에 몰아 부칠 수밖에 없었다.  

내리막의 눈길이 더 험하다. 중국속담에 올리막을 오르기 쉬워도 내리막을 내려가기 더 힘들다는 말이 실감이 날 정도로 힘들게 내려갔다. 180도로 꺾는 커브가 여러 개 되는 위치에서 보통 트럭보다 더 육중하고 거대한 유조차는 도로의 제일 바깥 쪽에 붙어서 돌아야 한다. 두 커브에서 마주 오는 차를 만나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차가 통째로 7-8미터 정도 미끄러져 내려간다.  

마지막 제일 급한 커브에서 속도 조절이 안 되고 길이 좁았기 때문에 끝내 길옆의 배수구 쪽에 처박히고 말았다. 불도저가 승용차 두 대가 겨우 비집고 나갈 만큼의 길을 빼 주었는데 배수구 쪽에는 길에서 나온 눈을 쌓아 두고 있었다. 세 사람이 엇갈아가면서 약 20분간을 작업해서야 카마스 앞의 작은 산 모양의 눈을  말끔히 쳐 내였다. 그나마 왼쪽으로 꺾인 커브이고 오른쪽의 비스듬한 곳에 처박힌 것도 다행이다. 길 왼쪽은 깊은 낭떠러지였다.  

대반령의 내리막 끝에 당도해서야 안도의 숨이 나갔다. 유라가 알아듣지 못할 러시아 방송을 틀어 놓았고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세 사람은 땀 벌창이 된 얼굴들을 서로 마주 보면서 웃어댔다. 영 위에서는 폭이 좀 넓게 눈을 밀어냈지만 영을 지난 다음에는 트럭 한 대가 지나갈 만한 길밖에 트여지지 않았다. 그때는 우리 식구들이 나진에서 패치기로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었고 나는 신정 후 두번째로 나진에 나가는 길이였다. 마주 오는 차를 피해 길옆의 눈을 밀면서 차가 경신에 겨우 도착했다. 저녁 일곱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다.

길옆의 여관에 주차시키고 나서 저녁밥을 시켰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러시아어는 몇 마디 정도밖에 몰랐고 알고있는 영어 몇 마디로 유라와 의사소통이 겨우 되었었다. 중국에 많이 다녀 간 유라는 중국어와 우리말을 조금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다행이라 할까. 하여튼 그 들 둘이 좋아하는 요리들을 적당히 시켜놓고 밥을 먹기 시작했고 매제에게 전화를 걸어 러시아 통역을 구해 달라고 했다. 여관 주인한테서 경신에 러시아어를 잘 하는 영감이 있다고 들었던 것이다.  

토마토를 썰어 올린 것은 소금에 찍어 먹고 메돼지 고기와 함께 푹 삶은 통감자 그리고 돼지갈비에다 김치와 밥까지 나와 주어 허기진 배를 달래고 나서 통역영감을 통해 유라와 얘기했다.

세관규정에 의하면 유조차는 당일에 세관을 넘어야 한다. 즉 두만강을 건너 나진에 가야 한다. 국경을 넘지 못하면 훈춘의 보세창고에 되돌아갔다가 다음날 다시 국경을 넘도록 되어있다. 세관규정을 어기면 벌금이 나오거나 차가 억류될 수 있다. 그런데 눈 때문에 되돌아갈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경신에서 하루 밤 묵어야 한다.  

대소한 기간의 추운 날씨여서 다음날 시동 걸기 힘들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유라가 아침 일찍 더운물로 라디에이터에 넣을 수 있게 물을 끓여 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 아침 첫 시간에 국경을 통과하면 오전 중으로 나진에 도착할 수 있다는 내 말을 듣고는 베쨔와 함께 방 하나를 잡고 이내 자기 시작했다.  

다음날, 권하 교두까지의 11키로를 고생하지 않고 20분만에 통과했다. 그런데 교두에서 마지막 검사고리인 변방대대에서 통과시켜주지 않아 싱갱이질 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초창기 때부터 유조차가 여러 번 다녀서 그 특이한 유조차와 러시아인들이 교두의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길 수 있었고 만날 때마다 반가운 인사를 던져주곤 했었다. 또한 Z무역회사가 대리수속 해 주는 화물이 통과 못 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다른 부문은 다 통과되었는데 새로 온 처장이란 사람이 틀고 보내주지 않는 거다. 변방대대의 처장은 지난해 통과시킨 것은 다 규정을 어기고 통과시킨 것이라면서 자기는 통과시키지 못 한다면서 딱 잡아 떼였다. 나진으로 다니는 중국인들은 벌써부터 새로 온 처장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받고 있었는데 그 일은 나진행으로 분주한 기사들한테서 얻어들은 터이다. 훈춘 세관과 장춘 세관의 비준을 얻어 어렵게 나마 연유판매를 추진시켜왔는데 장춘의 군부대 동의를 지난해에 받은 뒤 새해에 받아 놓았는지는 나도 모르고 있었다.

처장은 장춘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나서 다시 보자는 한 마디를 던져주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Z회사의 업무원도 교섭하러 갔는지 모이지 않았고 나는 유라와 같이 교두에서 두시간이나 기다렸으나 감감 무소식이었다. 유라는 첫 시각부터 짜증내기 시작 했는데 시가도 열대 가까이 태우고 있었다.  

마침 변방부대의 한 병사가 러시아어를 할 줄 알았다. 병사와 유라사이에 한참 말이 오간 뒤 내가 물으니 자기는 수속에 대해 일절 모르고 있고 유라는 지금 화가 나도 어지간한 정도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업무원이 처장과 함께 나타났다. 처장은 나를 보더니 장춘에 확인해 본 결과 통과시키지 못하겠다고 한 마디 해 주었다. 한족인데 우리말을 제법 잘 했다. 내가 지난해 여러 번 통과 한 일에다가 사정까지 곁들여 말하는데도 도리머리만 저었다. 다른 출국인들과 십여 분쯤 말하고 있다가 나와 유라가 있는 쪽으로 오더니  

“훈춘시시장과 통화해 보오. 시장이 동의하면 통과시켜 주겠소.”  

하고 통쾌한 말을 해 주었다. 이때는 열한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카드전화기 한 대가 있었는데 그걸로 시장사무실에 전화를 했고 걸리긴 걸렸는데 받는 사람이 없었다. 다시 시장 댁 전화를 알아 내여 걸었으나 거기도 받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에야 토요일인걸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처장을 찾아 시장과 통화하지 못 한 것을 알렸다. 토요일 날은 휴무여서 장춘에 확인 전화를 해 보았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한참 궁리하는 것 같더니 다리 건너 원정통행검사소의 소장 싸인이 있는 쪽지를 받아 오라는 것이었다. 이건 에누리 없는 마구잡이였고 생억지였다. 처장이 왜서 그 날 나한테 무던히도 애를 먹였는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기겠다.  

통과해도 된다는 쪽지를 써 주면서 원정 통검소장은  

“지랄하다 못해 별 지랄 다 한다.”  

하고 쓰거운 말 한 마디 내뱉는 거였다.  

교두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중국 측 문제이지 다리를 건는 다음 조선에서 통과시키는 것과는 아예 상관이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장춘 부대, 훈춘 시장까지 들먹이고 나중에 어처구니 없게도 원정 통검소장의 신세를 지게 하는 심보는 과연 무엇때문이였을가?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교두 옆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후 한시 반까지 기다려서야 통과했다. 하루새에 세 번 두만강을 건느고 원정에서 모든 수속을 한 다음 마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영철이와 합류했다. 영철이는 어제 오후에도 한번 왔고 오늘은 점심밥도 굶은 채로 라며 투덜거렸다. 집에 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달래고 나서 원정 올리막을 올라오지 못하는 유조차를 그때 당시 성능이 좋았던 86호로 끌어올리고 나진에 갔었다.  

지난해의 유조차 운행을 두고 옆에 앉은 로얼과 한담하다가 어느덧 나진에 도착했다. 실었던 것을 다 부리우고 나서 밤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에 출발하여 저술령을 넘어서는 데까지는 괜찮았다. 청학초소를 지나고 약 100미터 더 가면 철도 교차로가 나진다. 나진으로 분주히 다니면서도 이 갈림목에서 기차를 만난 적이 단 한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내가 나진을 영영 떠나는 그 날 한번만 보았을 뿐이다.

말하자면 충돌사고를 피면 하기 위해 차단봉을 내려서 길을 막는 현상을 단 한번밖에 본 적이 없다.  지난해에 쟈쟈와 함께 지나다가 차단봉이 내려져서 기차를 만나는가 싶었는데 몇 번을 경험한 적 있는 쟈쟈가 차를 약간씩 후진시키다가 차단봉이 올라가자마자 급가속으로 지나쳐 버렸었다. 차단봉 옆에서는 배낭을 멘 몇 몇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욕을 해 대고 있었다. 차단봉을 내리는 것은 원정 쪽으로 다니는 사람들이 차잡이를 하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오늘은 두 번째로 차단봉이 내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군대 두 명이 잽사게 적재함에 오르는 것을 백미러로 볼 수 있었다. 차단봉이 올라가고 갈림 목을 지나 약 200미터 간 다음 청학기차역 옆에 차를 세웠다. 갈림 목을 지나면서 커브를 돌게 되고 청학초소는 커브 옆의 언덕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로얼과 내가 군대를 쫓다 못 해 끝내 손 들고 말았다. 20분간이나 손찌검이 날가말가 할 정도로 욕지거리도 오갔지만 적재함에 탄 군대 두 명은 끝내 내리지 않았다. 갖고 있던 배낭을 두 번이나 내리 던졌는데 그 중 하나가 다시 들고 올라오기를 거듭했고 기차역 주변의 민가에서도 사람들이 쓸어 나와 구경하고 있었다.  

“군대를 좀 실어다 주구려.”  

“멀지도 않은 걸 조금 타고 가면 머 하냐?”  

그 중 일부는 웅성대기 시작했다. 곤난을 겪고 있는 군대를 도와주는 것은 인민들의 신성한 의무이다. 도와주어야 할 때 못 본체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마 죄로 다스리는가 부다. 그네들의 얼굴에 그렇게 씌여져 있다. 나도 이와 비슷이 들어 왔었다.  

조선사람은 중국 차를 타지 못한다. 군대는 더욱 안되었다. 타고 가는 것은 괜찮지만 만에 하나라도 실수를 저질러 사고를 내면 그때는 면허증이 없는 나에게 모든 책임이 덮씌워진다. 군대가 생명이라도 잃게 되면 더 야단이다. 그 때문에 절대로 태울 수 없었다. 살갗이 조금 벗겨지면 들먹이지 않겠지만 큰 사고라면 나는 조선의 법률에 의해 영창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야, 니 어느 군부대에 있니?”  

“강원도 최전방임다.”  

“고향이 어디야?”

“원정임다.”  

“등급이 머니?”  

“상사.”  

“상사란 사람이 규정을 어기고 무지막지하게 놀아서 되나? 너 이름 뭔데?”  

“이름을 알아서 머 함까?”  

“…내가 지금 쪽지 하나를 쓰겠는데 니가 중국 차를 타고 원정까지 갔다는 걸 써서 나진 보위부에 보내자구 그런다.”  

“예─?”

“강원도 최전방에 나가 있는, 집이 원정에 있는 군대가 몇 명이나 될가? 조사를 해도 몇 명 안 되는 사람 중에서 인차(금방) 밝혀지게 될텐데, 그래도 타겠니?”  

“…”  

침묵하고 있는 군대상사에게 내가 한 수 더 떴다.  

“그럼 가까운 데로 간다, 타고 있어!”  

기차역 앞의 도로로 쑥 들이 몰았다. 머리를 돌려 멀지 않은 청학초소에 넘겨버리겠다고 기세 사납게 소리 친 뒤였다. 기어를 후진에 넣으려는데 상사가 기겁한 얼굴을 하고 뛰어내렸다. 이내 운전석 쪽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  

“예, 타지 않겠음다. 빨리 가 보쇼! ”  

“죽어두 타겠다 했잖아, 빨리 타, 임마! 시간이 급하다!”  

“예? 임마?? 야-아, 야-아. 내가 그래……야-아, 임마처럼 생겼음까? 허!”  

“임마보다 더 고약타! 어디 타바라!”  

“더러바서 안타겠다! 그 잘난 차를 가지구. 개새끼들이 중국에서는 어쩌지 못 하는게 여기 와서는……”  

“뭐가 어째? 한 번 더 씹어바! 더 씹어보란 말이야! 내가 너의 철천지 원쑤라도 되는 거야? 너 중국에 가 밨구나?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다 알고 있는 네 놈이야말로 나라를 배반한 원쑤로구나! 임마!”

상사는 삽시간에 기가 다 죽어 있었다. 농장원들이 다가와서 상사의 멱살을 잡고 있는 내 손을 떼여냈다. 주먹치기 할 생각은 조금 만치도 없었다. 무식한 사람들과 싸움하면 내 품위만 떨어 질 뿐이다.따끈하게 몇 마디 해 주는 게 원칙이다. 후진기어를 넣으면서 창밖에 대고 한 마디 던졌다.  

“상사동무, 우리를 대신 해 조국을 잘 보위하시오! 그리고 우리들을 좀 친절하게 대해 주시오!”  

모여있던 사람들이 꿀 먹은 벙어리 모습을 하는 것을 보면서 역 마을을 벗어났다.

운전실에서 우리 둘은 한바탕 웃음을 제꼈다. 차를 잡아타려는 사람들을 싣지 않았고 실었다 해도 청학초소를 이용하여 내리게 만든 것은 이번뿐이 아니었다.  

한번은 쑈찌와 함께 집에 돌아갈 때 선봉 수금소에서 숱한 여자들이 적재함에 올라 탔었다. 수금소 사람들은 못 본체하고 있었지만 쑈찌는 노발대발하면서 적재함에 올라가 배낭들을 닥치는 대로 차밖에 뿌려 던졌다. 잘 번지지 못하는 우리말을 해 대면서 10여명의 악착스런 아낙들을 쫓았지만 팔 힘만 빼고 헛수고만 하고 말았다.

운전수에게 모든 사고 책임이 돌아간다는 걸 나도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청학초소에 도착하면 자동적으로 내리게 할 수 있다고 알려주자 그제야 잡았던 배낭을 놓고 운전석으로 내려 와 앉았다.  

그 날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장면을 목격했었다. 적재함에 탔던 군대 몇 명이 벌써 자취를 감추었는데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청학초소 앞 길가운 데에 트럭을 세워 놓았을 때도 여자들은 태연하게 앉아 있었다.  

“1분간 시간을 줄테니 잔말 말고 다 내려라!”  

내가 적재함에 대고 소리 친 다음 조수석에 도로 앉았다. 이왕에는 차가 서자마자 내리느라고 법석이겠는데 그 날만은 모두들 요지부동이었고 초소의 검열원도 내리라는 손시늉에 호르래기를 불고 있는데도 다들 눈 한번 깜박이지 않는다. 나는 승산이 있었기에 쑈찌보고 좀 기다리자고 느긋한 말투로 말했다. 쑈찌는 아예 발동을 꺼버렸다. 길이 막혔으니 겸열원이 가만있지 않을 거고 여자들은 내리게 되어있다. 5분쯤 지나서야 여자들 중 나이 지긋한 아낙이 혼자 내렸다.

초소 쪽으로 여자의 뒤를 따라 나도 갔다. 여자는 공민증 대신 담배 두 갑을 내 놓으면서 앉아가게 해 달라고 사정하기 시작했는데 그 말투는 아냥도 아니고 의논도 아닌 협박 비슷한 거였다. 보나마나 뒤를 봐 주는 사람이 있어 장사를 무난히 하는 거간군이다.  

“이 쌍 빌어먹을! 내리라면 내릴 거지 무슨 개소리 그리 많냐? 야, 야! 다 내려라, 내려!”  

창에 달린 쪽문을 열고 검열원이 소리쳐도 차 위의 사람들은 역시 요지부동이다.  

“이 개간나들을 거저 씨! 나가서 저 간나들을 다 내리라고 해라. 초소장을 불러 오든지 해야겠니?”  
장사군 아낙이 싫은 걸음으로 차 옆에 갔고 여자들이 하나 둘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여자가 내리는 걸 보고 검열원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나서 차에 탔었다. 로얼과 나는 노상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원정에 도착했고 집에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이제 85호는 잠시 내 차가 되었다. 로얼이 말하기를 며칠 후 쟈쟈가 오면 운전시키겠다고 하는 거였다.

이 글을 공유하기:

동방영도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1
응원합니다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