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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녀는 걸음을 멈추었다.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 지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파오고 목에서 겨불내가 확확 났다. 복녀는 머리꼭대기에 인 주머니를 내려 놓고 등에 진 것도 벗어 메쳤다. 머리를 누르고 등을 조이고 있던 것을 벗어 메치고 나니 살 것 같았다. 길을 잃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복녀는 입술을 깨물며 가볍게 한숨을 쉬였다. 아까 처음에는 금방 길을 찾을 것 같아서 해를 올려다보면서 사력을 다해 동쪽이라고 짐작되는 방향으로 걸어 나갔었다. 헌데 가면 갈수록 깊은 골로 들어서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의 인적이 닿은적 없는 듯한 수림이 그러했고 점점 키가 크고 울창해지는 쑥대며 새풀이 그러했다. 복녀는 돌따서서 다시 방향을 가늠했다. 큰길쪽이 동쪽이던가 서쪽이던가 아니면 남? 북?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어수선해 도저히 아무 생각도 나지를 않았다. 복녀는 행운을 바라며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걸었다. 꽤 먼 거리를 걸은 것 같은데 수림속 어디에도 사람이 스쳐 지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복녀는 애가 타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들었다. 지금 여기는 어데쯤인건가. 나는 지금 이 산 어데쯤에 있는 걸가. 수림사이로 해는 이제 거의 넘어가고 있었다. 복녀는 가슴이 황황해나 연신 혀를 내밀어 아랫입술을 적시며 불안한 마음을 달랬다.
길을 찾느라 얼마나 다급하게 헤맸는지 다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해가 지면서 찌는 듯이 무덥던 더위가 빠르게 물러나고 있었다. 복녀는 질식할 것 같은 고요속에서 비로소 깊은 산중에 혼자 남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중 이름못할 공포가 밀려오며 목이 말랐다. 종구의 말을 명심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갈마들었지만 이미 돌이킬수 없는 일이였다. 복녀는 물병을 꺼냈다. 물은 밑굽에 고작 둬모금 남아있었다. 복녀는 병을 거꾸로 쳐들고 입에 털어넣었다. 물은 뜨뜨미지근했다. 그래도 그게 들어가니 축 처져있던 몸이 조금이나마 누게가 지며 기운이 좀 나는 것 같았다.
이제 오늘밤은 영락없이 산에서 보내야 한다. 그 생각을 하니 우선은 곰취를 잘 건사해야지 싶었다. 길까지 잃어가며 뜯은 곰취인데 래일 길을 찾아 내려가게 될수도 있는 거니 허투루 대할 수는 없었다. 복녀는 주머니안에 손을 넣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주머니 속은 열기로 뜨끈뜨끈했다. 복녀는 주위를 둘러봤다. 너럭바위 하나가 보였다. 복녀는 주머니를 끌고 그리로 갔다. 곰취를 모조리 꺼내 탈탈 털어 줄기쪽이 밑으로 가게 해서 너럭바위밑에 줄지어 세워 놓았다. 꺼내 놓고 보니 곰취는 참으로 먹음직했다. 장에 갖고 나가면 너도 나도 집어갈 놈들이였다. 길만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돈푼이나 됐을터인데 참으로 맹랑하기 그지 없었다. 복녀는 곰취가 시들 것을 염려해 쑥을 꺽어 곰취를 꼼꼼하게 덮어 놓고나서 바위 옆 큰 나무밑에 기대여 앉았다.
길을 찾아 헤매느라 다급했던 마음이 차차 진정되며 허기가 느껴졌다. 하긴 집에서 싸 온 주먹밥 두 개를 먹은 게 점심때이고 그 뒤에 정신없이 산을 헤매고 다녔으니 언녕 소화가 되어버린지 오랜 터였다. 복녀는 행여나 하고 주머니를 뒤져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곰취캐러 다닐 때 갖고 다니려고 소래안에 알사탕을 넣어 놓았었는데 아침에 하도 정신 없어서 그것도 미처 못 가지고 온것이였다.
아침이였다. 복녀는 밥 하랴, 곰취 뜯으러 올 준비를 하랴, 돼지죽 주고 닭을 내몰고 모이를 주랴, 가랑이에 바람소리가 날 지경으로 바쁜데 남편은 늘쩡거리며 소래에 물을 떠서 면도칼을 씻고 있었다. 세상 여유만만하게 칼날을 몇 번이고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꼼꼼히 씻고 있는 남편을 보노라니 부아가 확 치밀어 올랐다. 남편은 어깨너머로 배운 수의재간이 있었다. 수의라고 해봤자 별것 아니고 소나 돼지가 병들면 어림짐작으로 주사를 놓고 수퇘지 거세나 해주는 일이였다. 돈 버는 일도 아니고 고작 술 한잔 얻어 걸치는 일에 남편은 남다른 열성을 보였다. 저래 가서는 또 고주망태가 되어가지고 올테지. 누구는 밭일하고 산부업해서 자식새끼들 먹이고 입히고 가정 이끌어 나가느라 네 각이 물러날 판인데 누구는 팔자 늘어졌네. 복녀는 부글거리는 속을 가까스로 진정하며 아침을 차렸다. 헌데 남편은 이따가 술 얻어먹을 생각에 신이 나는 듯 짐짓 콧노래까지 부르며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에구 저걸 보지 말아야 내 속이 덜 문드러지지. 복녀는 남편의 얼굴을 보기 싫어서 머리를 수그리고 밥을 둬숟가락 먹는둥 마는둥 하고는 주머니를 챙겨가지고 급히 집을 나왔다.
손잡이 뜨락또르 있는데까지 나오니 복녀가 첫사람이였다. 한참 기다려서야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뭘 하러 이리 일찍 나왔소? 차가 떠나야 가지 참. 복녀아즈마이는 정말 욕심도 많소. 복녀의 속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두마디씩 하며 복녀를 욕심쟁이로 몰아갔다.
" 집에 남편은 또 누구네 짐승개 치료하러 간게요 ? 이재 오면서 볼라이 자전거를 타고 어데 가던데. "
" 예 "
복녀는 마지못해 웃으며 대답했다.
" 야, 만석이 대단하다이. 어느때나 그저 누구네 짐승개 앓는다무 두말 않구 나선단데. 돈 버는 일두 아닌데 저렇게 하기가 쉽재요. "
" 그러재쿠. 이 단간세월에 만석이같은 사람이 어디 있소. 만석이 아니문야 공사수의를 불러야겠으니 그거 짐승개 치료비도 만만치 않다이. "
" 만석이 좋은 사람입지. "
철준이가 한마디 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복녀는 주고 받는 말들이 꼭 남들은 먹고 사느라 바쁜데 철없이 누구네 돼지 거세나 해주고 술이나 얻어먹고 다니는 한심한 놈이라고 남편을 비꼬아 말하는 것 같아 짜증이 확 났다. 복녀가 고개를 돌리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자 눈치를 챈 듯 사람들은 얼른 화제를 바꾸었다.
집에서는 어쩌고 있을가. 딸애는 울고 있을 것 같았고 아들애는 워낙에 큰 눈이 더 둥그래서 잔뜩 겁에 질려 있을 것 같았다. 돼지 거세를 하러 간 남편은 돌아오기나 했는지. 보나마나 또 술이 떡이 되게 먹고 비틀대며 왔을 것 같았다. 소도 풀어오고 닭도 우리에 몰아넣어야 하고 돼지죽도 끓여야 하고 무엇보다 아이들 배고프지 않게 밥부터 해먹여야 할 터인데 …. 여기는 지금 어딘지도 모르겠고 이 밤에 헤매고 다녀봤자 헛고생만 할테고, 복녀는 생각할수록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다.
에라 모르겠다. 래일 아침 날이 밝으면 길을 찾을 방도를 생각해보고 일단은 좀 쉬자. 한참 속으로 안달을 떨다가 복녀는 체념했다. 나 없다고 다 같이 굶는거야 아닐테지뭐. 탕개를 늦추자 온 몸에 기운이 빠지며 나른해 났다. 때를 같이하여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앵 하는 소리가 들리며 모기가 면바로 이마를 물었다. 복녀는 손을 올려 이마를 탁 쳤지만 모기가 잽싸게 몸을 피하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산모기라서 이거 보통 날쌘게 아니네. 복녀는 이제 날이 어두워지면 모기떼가 더 극성을 부리며 떼거지로 사람한테로 몰려들거라는 생각에 걱정이 앞섰다. 배는 고픈데 몸이 노곤해 움직이기는 싫다. 복녀는 눈을 감았다. 모기가 앵앵거리며 주변을 감도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잠이 쏟아져 복녀는 사지를 늘어뜨리고 미구에 고개를 한쪽으로 툭 꺽고 가볍게 코를 골았다.
복녀는 잠결에 뭔가 차가운 것이 가슴에 툭툭 부딪쳐 오는 감각을 느꼈다. 이어 목덜미에, 이마에 랭랭한것이 느껴졌다. 복녀는 비몽사몽간에 손을 뻗어 그것을 움켜 쥐였다. 차갑고 물컹한 것이였다. 복녀는 와뜰 놀라 손에 쥔걸 힘껏 뿌리치며 눈을 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복녀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고정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복녀의 손에서 뿌려져 나간 것은 큼직한 개구리였다. 아이구 놀래라. 이 넘은 어째 남의 몸 우에 기여 올라와가지구. 복녀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개구리를 바라보았다. 개구리도 놀란 듯 어둠속에서 말간 두눈을 껌뻑거리며 복녀를 바라보았다. 복녀는 개구리를 눈주어 봤다. 배가 훌쭉한 수놈이였다. 에구 사람이나 개구리나 수놈들은 왜 이렇게 철이 없는거야, 밤이 깊었는데 곱도록이 엎드려서 자야지 뭘 이리 돌아다니는 거니, 복녀는 혀를 끌끌 찼다. 개구리는 어둠속에서 몇 번 멀건 눈알을 끔뻑거리더니 이내 폴짝 하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휙 하고 바람이 불더니 어디선가 우어어 하는듯한 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복녀는 저도 모르게 소름이 쫙 끼쳤다. 막개골은 이 근래에는 잠잠했지만 몇 년전까지만 해도 포수들이 범을 봤네 곰을 봤네 했던 곳이였다. 설마 저 컴컴한 수림속에서 갑자기 뭐가 와락 달려나와 덮치진 않겠지? 생각만으로도 머리카락이 쭈볏 일어서고 있었다. 복녀는 도정신하고 귀를 바싹 강구어 보았다. 다시 들어보니 우어어 하는 소리는 나무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나는 소리였다. 복녀는 그제야 마음을 진정했다.
잠은 이제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몇시나 되었을가. 달이 둥실 떠 있는 걸 보니 한밤중인 듯 했다. 복녀는 엉뎅이 밑이 축축해 끄응 하며 일어섰다. 얼굴이며 손등이며 밖에 내놓은 살은 모기가 물어 울퉁불퉁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복녀는 모기가 문 자리가 가려워 썩썩 긁다가 침을 발라 놓고는 팔이며 다리를 꾹꾹 주물렀다. 하루종일 산에서 헤매고 다니고 옹크리고 앉아 잠을 잤는 지라 온 몸이 뻐근했고 땀을 얼마나 흘렸는 지 목덜미며 팔이며 손이 닿을 때마다 아교라도 붙은 듯 떡떡 붙어났다. 등에 철썩 들러붙은 적삼을 잡아당기자 지지직 소리가 나며 등이 얼얼했다.
아까부터 배가 고프더니 이제는 눈앞이 어질거린다.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이 산속에서 먹을게 뭐가 있지? 곰취야 두주머니나 있다지만 저게 뭔 요기가 되겠노, 그래도 먹을건 그것밖에 없지 싶어서 복녀는 곰취를 한웅큼 쥐여다가 씹어보았다. 예상대로 곰취는 씁쓰레하고 텁텁하기만 했지 아무 맛도 없었다. 하긴 곰취는 밥을 올려 쌈을 싸서 먹어야지 이것만 무슨 맛에 먹노, 퉤퉤. 복녀는 이발사이로 씹다 만 곰취를 뱉어내며 아직 내가 굶어 죽을만큼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복녀는 요기가 될만한게 뭐가 없을가 싶어 달빛을 빌어 가만가만 풀숲을 헤집었다. 복녀의 눈이 반짝했다. 가느다란 도라지줄기가 보였던 것이다. 복녀는 마른 나무가지를 꺽어들고 앉아 땅을 뚜졌다. 도라지 몇 개를 캐여가지고 나무에 기대여 앉아 복녀는 손톱으로 껍질을 대충 깠다. 손에 게발려 있던 흙이 도라지에 묻어 달빛에도 도라지는 얼룩덜룩했다. 에라, 모르겠다. 옛날에는 흙도 먹었다던데, 이런 심산속의 흙은 부식토라서 독도 없을텐데 뭐. 복녀는 이발로 야금야금 도라지를 씹어 먹었다. 입안에서 도라지와 흙이 같이 씹혔지만 그런대로 약간 쌉쓰레하고 적당히 물기도 있어 맛은 나쁘지 않았다. 연거퍼 서너개 씹어 넘기자 허기가 조금 달래지며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배가 채워지자 그제야 정신이 좀 들었다. 복녀는 혹시라도 몸에 진드기가 붙었을 것 같아 손으로 팔이며 배를 더듬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가 겨드랑이에서 뭔가 작고 단단한 것이 만져졌다. 놈은 벌써 주둥이를 살속에 처박고 있었다. 복녀는 진드기 머리쪽을 꼭 집어 확 잡아챘다. 아직 깊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진드기는 어렵게 않게 빠졌다. 달빛에 비춰보니 꽤 큰놈이였다. 복녀는 지금 잡았으니 망정이지 이게 내 몸에 밤새 박혀 있었더라면 피를 얼마나 많이 빨아냈을가 하며 혀를 끌끌 찼다. 복녀는 손톱으로 진드기를 두동강을 내 던져버리고 진드기가 박혔던 자리에 침을 발라 놓았다.
복녀는 몸 어딘가에 숨어있는 진드기가 더 있을 것 같아 적삼과 바지를 벗고 속옷까지 홀랑 벗었다. 달빛을 향해 우뚝 서서 복녀는 자신의 알몸을 비춰봤다. 배살이 처진쪽은 그늘이 져 잘 보이지 않았다. 복녀는 고개를 한껏 숙이고 두손으로 배살을 부여잡고 눈에 힘을 주어가며 배살에 가렸던 곳을 세세히 살폈다. 다음에는 고개를 숙여 사타구니를 샅샅이 손으로 어루만져 가며 달빛에 비춰보았다. 진드기는 컴컴하고 으슥한 곳으로 파고 드는 습성이 있다. 아닌게 아니라 사타구니를 향해 돌진하던 우둔하게 큰 놈이 한놈 손에 잡혔고 벌써 사타구니 안쪽에 주둥이를 박고 있던 작은 놈이 한놈 잡혔다. 복녀는 혀를 끌끌 차며 진드기를 손톱으로 아주 잘게 토막을 내서 던져버리고 다시금 몸을 뒤로 젖혀도 보고 허리를 굽혀 사타구니를 다시 한번 달빛에 자세히 비추어도 보았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걸 누가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겠지? 미친년 달밤에 체조한다는 말이 뭔가 했더니 내가 지금 정말 딱 그 꼴이구나, 복녀는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몸에 더는 진드기가 없음을 확인하고 나서 복녀는 이번에는 옷을 뒤집어 탁탁 털었다. 그리고 나서 세세히 달빛에 비춰보았다. 옷의 솔기를 내리 훑으며 달빛에 비춰보는 데 자꾸만 어둡게 그늘이 져 잘 보이지를 않았다. 복녀는 혹시라도 진드기가 옷 솔기에 숨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진 애를 쓰며 달빛에 솔기를 꼼꼼히 훑었다. 옷에도 더 이상 진드기가 보이지 않았다.
복녀는 옷을 바로 해서 다시 주어 입고 나무에 기대 앉았다. 허기도 달랬고 진드기도 잡았고 더는 할 일이 없었다. 언제나 해도해도 끝없는 일에 치이며 살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으니 적응이 잘 되지를 않았다. 복녀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쟁반같은 달이 참 밝기도 했다. 복녀, 이름만 복녀면 뭐해, 인생에 복이라고는 없는 데. 복녀는 생각에 잠겼다.
복녀는 늘그막 자식이였다. 복녀가 철이 들자 부모들은 둘 다 늙어 있었다. 그래도 어렸을때는 더러 좋은 기억이 있긴 했다. 복녀는 총명했고 공부도 무척 잘해서 어른들의 칭찬도 많이 받았다. 손재주가 있어서 종이접기도 잘했고 동네 아이들 머리태도 이쁘게 땋아주군 했었다. 그동안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지만 그때는 공부를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도 싶었던 것 같다. 복녀에게 찾아온 인생의 첫 시련은 열 살때였다. 복녀는 천연두를 앓았다. 열에 일곱은 죽어나간다는 모진 병이였다. 복녀는 목숨이 끈질겼던지 그나마 살아났지만 그 미열로 얼굴이 심하게 얽었다. 철 모르는 아이들은 복녀를 ' 곰보 ' 라고 놀렸고 어른들은 아까운 애가 얼굴이 저리 심하게 얽었으니 시집을 잘 가기는 글렀다고 혀를 찼다. 복녀는 의식적으로 사람을 피했고 과묵해졌다.
마을에 있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또래 아이들이 모두 현성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할 때였다. 부모들은 형편이 안된다고 하면서 복녀를 보내주지 않았다. 몇해전에 공부도 못하는 오빠가 중학교에 갈때는 소를 팔아 보내며 아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를 시켜야 한다고 하던 생각이 났다. 복녀는 자신이 여자애라는 것과 얽은 얼굴 때문에 아버지 엄마가 공부를 시켜봤자 별볼일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해서 보내주지 않는거라고 생각했다. 서럽고 분했으나 복녀는 원망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혼자서 괴로운 시간을 버텼다.
학교를 다니지 않으니 일을 해야 했다. 지금도 크지 않지만 열네살에 학교문을 나왔을 때 복녀는 무척이나 작고 약해 얼핏 보면 열 살정도 되는 아이로 보였다. 복녀는 작은 손에 호미를 들고 땡볕에서 기음을 맸다. 호미자루는 굵은데 손이 작아 흙을 돋구고 풀뿌리를 호미날로 짓이개며 기음을 매다보면 호미자루를 잡은 손아귀에 자꾸만 힘이 들어갔다. 복녀는 밤이 되면 한껏 늘어난 손가락의 관절들이 아파 잠결에 자신이 내는 신음소리를 듣군 했다. 그러나 복녀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이런 육체의 고달픔이 아니였다.
복녀가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햇복숭아처럼 뽀얗게 피여오르는 또래 아이들을 볼 때였다. 현성에서 중학교를 다니는 복녀의 친구들은 방학이 되자 집으로 돌아왔다. 그중에서 더러는 학업을 그만둔다고 했고 더러는 계속 다닌다고 했다. 그래도 공부를 해야지 않아? 난 고중을 가고 대학을 갈건데? 선화란 애가 하는 말이였다. 난 집에 부담이 되는것도 그렇지만 솔직히 공부가 재미없어. 그래서 그냥 안 다니기로 했어. 영자가 하는 말이였다.
아이들은 재잘거리며 누가 나한테 쪽지를 보내왔네, 누가 멋있지 않아? 오우 갸는 별루야,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복녀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너희들은 좋겠다. 이뻐서 좋고 가슴이 쿵쾅거리는 연애를 해서 좋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처럼 평생 자비감에 모대기며 살겠지. 나를 진심으로 좋아해줄 남자도 없을거야. 복녀는 그때 그토록 통절하게 자신과 친구들 간의 괴리를 느꼈고 이대로 조용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집갈 나이가 되어 또래 여자애들이 하나 둘 짝을 찾아 가는 데 복녀에게는 늦도록 혼처가 들어오지 않았다. 간혹 혼처가 들어오면 장애가 있거나 반푼이거나 했다. 복녀는 굳이 시집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으나 복녀의 부모들과 동네사람들은 시집을 못가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도처에 복녀의 혼사를 수소문하며 복녀의 걱정을 했다. 복녀는 귀찮아서 아무데나 날 좋다는 사람이 있으면 훌쩍 가버리고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 무렵, 중매가 들어왔다. 얄상한 얼굴에 뱁새눈을 한 남자는 인물도 없었고 몸도 든든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사지 멀쩡했고 말을 섞어보니 똑똑하긴 했다. 복녀는 이번에도 큰 희망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남자쪽에서 복녀를 마음에 들어한다고 했다. 그 말에 복녀는 벌써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 집이 두메산골이고 사는 형편이 궁색하다고 했지만 그런걸 따질 계기가 못되였다.
신랑집에서는 뭐가 그리 급했던지 보통 서두르는 게 아니였다. 복녀의 엄마 아버지도 요행 차려진 혼처라고 생각해서인지 무척 서둘렀다. 복녀와 남편은 겨울에 맞선을 보고 이듬해 봄에 씨붙임을 하기전에 혼례를 치렀다. 벼짚을 깐 수레에 앉아 신랑을 따라 오면서 복녀는 웬지 마음이 석연해졌다. 산골이여서 논이 없고 한전농사만 한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그렇게 고개를 넘어 가고 또 갈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 싸인 곳에 이르러 설마 했는 데 소수레가 찌그러져가는 울바자가 량켠으로 있는 울퉁불퉁한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외벽을 진흙으로 매질하고 회칠도 하지 않은 초가집 마당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얼핏 봐도 그 동네에서도 제일 루추하고 찌그러진 집이였다. 복녀는 헌 까래우에 담요를 깔아놓은 자리에 앉아 대충 흉내만 낸 큰상과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칠 게라고는 없어 보이는 살림살이를 둘러봤다.
시집온 이튿날, 례법대로 새댁인 복녀가 아침을 짓게 되었다. 시엄마가 부엌에서 불을 지피고 복녀는 커다란 쌀함박에 시엄마가 내준 좁쌀을 씻었다. 손으로 벅벅 비비며 씻어서 일어보니 쌀은 돌이 반이였다. 복녀가 천천히 쌀함박을 기울이며 세 번이나 정히 일어서야 돌은 끝이 보였다. 복녀는 굵게 쪼갠 감자를 촘촘하게 밑에 펴고 밥을 안쳤다. 반찬거리도 없는지 시엄마는 달랑 시래기 한가지를 내밀었다. 복녀는 시엄마가 건네주는 시레기를 데쳐서 반은 장국을 끓이고 저가락이 갈만한게 없어보여서 반은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서 상에 내놨다. 시엄마는 어쩜 밥에 돌 하나 안 씹히는 가며 연신 복녀의 손부리에 감탄을 금하지 못했고 식구들은 그렇게도 달게 먹는 것이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물 밑의 돌이 드러나듯 시댁 돌아가는 상황이 알리기 시작했다. 시아버지는 몸이 아파서 일을 못한다고 했지만 결국 게을러서 안하는 거였다. 시댁은 전에는 시엄마가 혼자 일해서 애들을 키우며 힘겹게 살다가 지금은 두 시누이와 시엄마 여자 셋이 일군이 되어 살림을 이어 나가고 있는 판이였다.
복녀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왜 먼곳에 연줄을 놔서 혼처를 구했으며 신랑이 왜 불문곡직하고 자신과 결혼하려고 했는지, 혼사는 또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다 알 것 같았다. 복녀는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시엄마한테서 자신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았다. 겁이 더럭 났으나 그때 복녀는 이미 배속에 태기가 있었다.
복녀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이 또한 받아들이기로 했다. 복녀는 이른 봄부터 들에 나가 냉이를 캐오고 달래를 캐오고 빨갛게 돋아나는 민들레를 캐왔다. 그걸 씻고 데치고 버무리고 무쳐서 맛갈지게 반찬을 만들어서 밥상에 올리고 임신한 몸으로 시엄마와 시누이를 따라 밭일을 도왔다. 시아버지와 남편은 차려놓은 밥상만 축내고 물러앉는 손님이였다. 복녀네 시댁은 복녀가 시집오게 됨으로써 여자로동력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였다.
복녀네 친정도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지만 시댁은 한층 더 어려웠다. 때는 큰가마밥을 먹던 때였다. 아무리 바지런을 떤다고 해도 농촌에서는 힘을 쓰는 남자들이 공수를 많이 받기 마련이였다. 여자들이 아무리 걸싸다고 해도 남자만큼 공수를 받을수는 없었다. 그러다보니 시댁은 늘 먹을게 빠듯했다. 시집 온 해였다. 곡식이 영글어 분배를 받으려면 아직은 한참 있어야 하는데 쌀이 떨어졌다. 시어머니는 물동이를 들고 나가더니 림장동네에 가서 쌀을 꿔왔다. 복녀가 시집 온 송림동은 림장마을과 학교 하나를 사이두고 있었다. 림장동네는 배급을 타는 지라 농촌마을과는 때깔이 다르게 다들 윤택한 살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복녀네 시댁처럼 추수를 하기 전에 먹을게 떨어지는 사람들은 저저마다 림장동네에 가서 쌀을 꿔왔다.
림장동네에서 내놓는 쌀은 오래 묵어 벌레가 낀 것이였지만 그걸 마다할 처지가 못되였다. 꿔온 쌀을 마당에 헌 보자기를 펴놓고 널어놓으면 희고 살찐 벌레가 여기저기 꿈틀거리며 기여 나갔다. 그렇게 주어내고 쌀 씻을 때 다시 또 주어내고 했지만 가끔은 밥알사이에 익을대로 익어서 한껏 몸을 늘어뜨린 허연 벌레가 누워있었다. 그래도 벌레를 주어 내고 그 밥을 먹어야 허리께가 펴지는 터였다. 가을이 되어 분배를 받자 시엄마는 윤기 자르르 흐르는 쌀을 림장동네에 갚아주었다. 그러고나니 또 쌀이 부족했다.
다음해에는 아이가 태여났고 복녀가 일을 못하다보니 살림은 한결 더 궁핍해졌다.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 다음해에도 복녀네는 벌레 낀 쌀을 꿔다 먹으며 추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살다가 시엄마와 시아버지도 사망하고 시누이들도 련이어 시집을 가게 되였다. 때를 같이하여 마침 호도거리가 시작되였다. 다 같이 일하고 공수를 받던 세월이 끝나고 밭을 나누고 소를 나누고 제각기 농사를 지어 소출을 개인이 가지게 된다고 하자 사람들은 너나없이 잔뜩 들떠있었다.
복녀는 아직도 제비를 뽑아 밭을 나누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은 온 동네에 숨을 쉬고 있는 건 다 모였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니 개들도 좋은지 덩달아 컹컹 짖으며 달아다니다가 발길에 채워 깨갱대며 울바자 구석을 찾았고 고양이들은 사람들 틈새로 재빠르게 빠져나가 울바자우에서, 지붕꼭대기에서 내려다 보았다. 집집마다 남자들이 나가서 제비를 뽑았고 아낙네들과 애들은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복녀도 아들애를 업고 딸애의 손을 잡고 사람들 틈에 끼여서 긴장된 마음으로 제비 뽑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돌밭만 몰아서 차려졌다고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고 고아대는 사람도 있었고 일등지를 뽑아쥐고 좋아서 슬며시 웃으며 돌아서는 사람도 있었다. 남편이 뽑은건 마을에서 내다보이는 앞 들판에 있는 사래 긴 밭과 산너머에 대면적으로 있는 밭이였다. 앞 들판의 밭은 너무 나쁘지 않은 땅이고 산너머밭은 거리가 좀 멀다뿐이지 땅은 비옥하니 잘만 가꾸면 괜찮을거였다. 소도 암소 한 마리가 차려졌다. 복녀는 시작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제 사람만 노력하면 될터였다.
밭을 나누고 나자 다른 세상이 되어버렸다. 노력한만큼 내가 가진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전에 없는 열성을 보였다. 집체때는 어영부영 일을 나가고 빈둥대던 사람들도 전에없이 부지런해 지고 있었다. 사는 게 다들 비슷하던 살림살이는 호도거리를 시작해 한두해 지나자 확연하게 차이가 나기 시작했다. 첫 몇해는 그래도 기껏해 농사 소출이 차이가 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약삭빠른 집들에서 경제작물을 심기 시작하면서 만원호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들 목재부업을 해서 뭉치돈을 벌어오고 농한기에도 여러 가지로 부업을 하면서 잘살려고 애를 바등바등 쓰고 있었다.
헌데 세월이 바뀌고 사람들이 모두 바뀌는 데도 남편만은 예전의 그 본새 그대로 였다. 산너머 밭은 거리가 멀어서 아침에 일찍 가야 하는데 남편은 세월아 네월아 하고 늑장만 부렸다. 그래도 체면은 있어서 남과 같이 소결이를 하는 밭갈이철에는 며칠이나마 고분고분 밭에 나오긴 했다. 그러다가 기음철이 되자 남편은 아예 남의 일처럼 손 놓고 있었다. 누구네 집에 짐승개가 병들었다고 찾아오면 얼싸 좋다고 아침에 나가면 저녁이 돼서야 들어오군 했다. 어쩌다 요행 밭에 나오는 날은 또 뭐가 그리 구경할게 많은지 밭머리에서 땅도 괜히 살펴보고 개울에도 갔다오며 껄렁거리다가는 점심때도 되기전에 밥을 먹자고 보채는 것이였다. 요행 밭에 붙어 있는가 싶은 날도 해가 지려면 한발이나 남아있는 데 소를 가지러 간다고 하면서 호미를 팽개치고 밭에서 떠나가군 했다.
복녀는 혼자서 아글타글 농사일도 하고 산부업도 하고 돼지도 사들였다. 쉴 참이면 풀을 캐서 모아놨다가는 집에 돌아올 때 한보따리씩 이고 와서 돼지죽을 끓여 먹여서는 돼지를 늘씬하게 키워서 팔았다. 그렇게 애를 썼지만 부부간이 손 맞들고 버는 집을 따라갈수가 없었다. 남들은 텔레비도 사놓고 옷장도 사놓고 랭장고도 사놓는데 여직 복녀네는 텔레비 하나도 못사놓고 있었다.
에휴, 복녀는 한숨을 내쉬였다. 생각할수록 짧은 인생 참으로 곡절도 많고 고달프게도 살았다 싶어 가슴이 답답해왔다. 불현 듯 푸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복녀는 와뜰 놀라며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검고 커다란 것이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장꿩인가? 독수리인가? 아이구 별거에 다 놀라네 정말. 복녀는 후 하고 숨을 내쉬였다. 푸르스름하게 먼동이 트고 있었다. 드디여 산에서의 첫 날 밤이 지나간 것이였다.
4
먼동이 푸르스름하게 트자 사람들은 종구의 손잡이뜨락또르에 앉아 막개골로 향했다. 사람들중에는 마른 몸집에 얼굴이 길고 하관이 뾰족한 남정네가 끼여 있었다. 남정네는 몹시도 불안하고 초조한듯 가끔 혀로 입술을 감빨고 있었다. 복녀의 남편 만석이였다. 평소 같으면 벌써 사람들 틈에서 입을 나불거리며 제일 많이 떠들어 댔을 만석이가 오늘은 입을 꾹 다물고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 자 패를 나눠서 들어가서 찾기요. 잘못 하다가는 사람 찾으러 왔다가 도루 사람 잃어버린다이. 그러니까나 모도 너무 깊이 들어가지 말고, 서로 서로 자주 부르고 그러자이 . "
종구가 지휘를 했다.
사람들은 두세사람씩 패를 나눠 흩어졌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풀잎에 이슬이 가득 맺혀 있었다. 다들 나뭇가지로 풀잎을 쳐서 이슬을 떨어뜨리며 산으로 들어갔다.
" 복녀, 복녀~"
" 송화야, 어이 송화 에미야, "
" 아즈마이, 복녀 아즈마이. 대답 좀 합쏘. "
사람들의 목소리가 수림의 아침을 깨웠다.
만석은 덤덤히 허벅지를 치는 풀을 손으로 헤치며 산으로 들어갔다. 거퍼 몇걸음 걷지 않아 바지가 이슬에 젖으며 허벅지에 척척 감겨왔다. 심산은 심산이다. 무슨 풀들이 이렇게나 키가 크단말인가. 만석은 안해가 지금 이 산속 어딘가에 허기지고 지쳐 쓰러져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자 목구멍에 걸레라도 막힌 듯 숨이 쉬여지지가 않았다.
어제 밤, 만석은 실면했다. 돼지거세를 하고 술을 마시는 데 어쩐지 술이 당기지 않았다. 만석은 술이라면 언제라도 싫다는 소리를 안하는 사람이였다. 거 참 별일이다 하며 둬잔 마시고 만석은 일어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데 골목어구에서 딸 송화가 울고 있었다. 뭐야, 저건 또 왜 질질 짜고 있는 거냐, 애들과 싸웠냐. 엄마도 이제는 돌아왔겠는 데 집에를 안 가고. 만석은 성큼성큼 딸애한테로 다가갔다. 마음이 여려서 노상 애들하고 싸우면 울기부터 하는 딸애였다.
" 너 왜 우냐 ?"
" 흐윽. 흑. 아부지, 엄마 없어졌담다. "
" 건 뭔 소리냐 ?"
만석은 어정쩡해서 딸애를 바라봤다.
" 산에, 흑. 엄마 금화아부지랑 같이 곰취캐러 갔재쿠 뭐임까. 엄마만 못왔담다. "
만석은 떨떠름해 있다가 이내 무슨 일이 생겼는 지를 깨달았다. 얼마 안 마신 술이 확 깨고 있었다. 안해 복녀는 욕심이 끝도 없었다. 그 덕에 자신이 허구헌날 술 먹고 놀러 다니면서도 밥을 굶지 않고 사는걸 알지만 밤만 되면 끙끙 앓음소리를 하는 안해가 짜증나기도 했다. 이 여편네, 기어이 일을 치고야 말았네. 만석은 속이 부글거렸다.
뭐부터 해야 하지? 집에 돌아온 만석은 서성거렸다. 안해를 찾으러 가는 건 래일 아침 날이 밝아서의 일이고 일단은 집의 일부터 해야 할것이였다. 만석은 우선 소를 풀어다가 외양간에 들이 맸다. 깔단을 헤쳐서 구유에 널어주고 나니 그다음에는 뭘해야 할지 궁리가 떠오르지 않았다. 꽥꽥거리고 수탉이 외양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차 , 저걸 우리에 몰아넣어야겠구나. 만석은 닭들을 우리쪽으로 몰기 시작했다. 헌데 이리 쫓고 저리 쫓아도 닭들은 자꾸 도망갈 뿐 우리로 들어갈 념을 안했다.
" 에구, 날이 어두워져야 그것들이 들어가지 벌써 쫓아서 들어감까 ? 그것들두 다 시간을 아는 데. "
금녀였다.
" 아, 그런가. 그걸 또 생각 못해가지구. "
닭 키우는 일은 여태 안해가 도맡아 하다보니 만석은 닭알만 먹어봤지 닭을 우리에 몰아 넣어본건 처음이였다. 그 생각을 하자 만석은 어쩐지 게면쩍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 이거나 받으쇼. "
금녀가 갖고 온 밥통을 내밀었다. 돼지고기를 넣고 한 미역국이였다. 안 그래도 저녁에 애들을 뭘 해먹이나 싶었는 데 이게 있으면 밥만 하면 될 것이였다.
난생 처음 돼지죽을 안치고 닭까지 우리에 몰아 넣고나니 날이 어두워졌다. 어디서 벌써 들었는 지 다른 때 같으면 밖에서 놀다가 어두워져서야 겨우 달아오던 아들 송철이도 쭈볏거리며 집에 들어섰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였다. 아들애는 아버지와 누나의 눈치만 보다가 구들에 올라가 한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만석은 널장판을 걷고 불을 지폈다. 불을 때는 일도 처음 해보는 것이였다. 어렵사리 불을 지피고 쌀을 씻어 안치고 몇 번이나 부엌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며 불조절을 했는 데도 솥뚜껑을 열어보니 밥은 밑은 타고 우는 설익어 있었다. 그런대로 밥을 퍼서 밥상을 차려놓으니 애들은 미역국만 먹고 물러나는 것이였다.
저녁을 먹고 종구와 철준이가 와서 날이 밝는 대로 래일 복녀를 찾으러 가자고 하면서 꼭 찾을수 있을테니 너무 걱정말라고 위안을 했다. 평소에는 얼굴 붉히는 일이 있더라도 죽고 사는 일이 있으면 서로 나서주는 게 시골 인심이였다. 엄마 걱정에 울던 애들은 곤했던지 이내 잠들었다. 만석이도 자리에 누워서 눈을 감았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아무리 억세고 강해 보이는 안해라 해도 여자 혼자 심산에서 밤을 보내려면 무서울 것이였다. 새벽녘에는 많이 추울텐데. 만석은 여러 가지 걱정을 하다가 밤이 늦어서야 잠간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만석은 급히 옷을 주어입고 나왔다. 종구네 집쪽으로 급히 걸음을 옮기는데 종구도 언제 일어났는지 퉁퉁퉁 하고 손잡이 뜨락또르의 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 송화에미, 어이 ~"
만석은 크게 안해를 불렀다. 어쩐지 어색하기 그지 없었다. 여태 안해에 대해 이렇게 세세하게 생각해본적도 없었고 이렇게 안해를 애타게 불러본적도 없었다.
" 송화, 송화엄마, "
만석은 안해를 부르다가 땀을 훔치며 멈춰섰다. 자꾸만 목이 잠기며 소리도 크게 나오지 않았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는 데 안해는 어디에 있는 지 통 대답도 없다. 뭐라도 먹었을가. 지금쯤이면 배도 고프고 사람이 지쳐 있을텐데. 혹시 너무 기운이 없어서 대답을 못하는 건가? 만석은 입술이 바짝바짝 말랐다. 눈앞에 새풀사이로 곰취가 보였다. 만석은 허리를 굽혀 뜯어쥐고 보았다. 이게 뭐라고 이것땜에 이 봉변을 치른단 말인가. 하긴 이걸 뜯어서 안해는 고기도 사다 밥상에 올리고 애들 옷가지도 사입히고 나한테도 옷 한견지라도 사주려고 했을 것이였다. 전기요금도 내고 기름이며 소금도 사고 집안 살림 어느것 하나 돈이 들지 않는데가 있단 말인가. 여태껏 만석은 사소한 집안일에 대한 걱정을 안하고 살았었다. 안해가 알아서 살림을 잘하고 있는터라 구태여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였다.
" 하, 이거 참. "
만석은 곰취를 손에 쥐고 뱅글뱅글 돌리다가 던져버렸다. 혹시라도 안해를 못찾으면…만석은 눈앞이 캄캄해났다. 안해없이 애들을 데리고 살아간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큰 일이 닥쳐야 철이 든다고 만석은 불쑥 자신이 너무 한심한 남편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해는 일만 아는 사람이였다. 사람이 개미도 아니고 어찌 바등거리고 일만 하겠는 가. 좀 놀기도 하고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즐길줄도 알아야는 데 안해는 늘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뿐만아니라 남편인 만석에게도 자신처럼 할 것을 요구하며 바가지를 긁고 닦달을 했다. 만석은 그런 안해가 못마땅하고 숨막혀서 일부러 더 게으름을 부리며 엇나갔었다.
나도 참 , 만석은 후회가 갈마들었다. 아무리 안해의 잔소리가 귀찮고 짜증 났다고 해도 애도 아니고 일부러 안해와 어깃장을 놓으며 안해를 애먹이다니 참으로 한심했었구나 싶었다. 아무리 깡다구가 있다 해도 덩치도 크지 않은 여자가 가정을 이끌어 나가려니 그동안 얼마나 고달팠을가, 만석은 가슴이 저릿해났다. 안해를 만나서부터 지금까지 이런 감정은 처음이였다.
" 어이, 없는 가 ?"
" 없소. 없다이. "
" 허, 이거 당금 비 쏟아지겠는 데. "
복녀를 찾으러 들어갔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수림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들 지치고 맹랑한 기색들이 력력했다.
" 찾아 나온다는게 시방두 정처없이 그저 자꾸 안으루 들어가는게 아닌가 모르겠소. 이거 참. "
철준이가 이마살을 쪼프렸다. 하늘에 먹장구름이 시커멓게 몰려 오고 있었다. 어쩔수 없이 돌아가야 할 판이였다.
" 어이, 만석이 나오라이. "
" 비 막 쏟아지게 생겼소. 날래 나오오. "
사람들이 거듭 소리를 쳐서야 만석은 새풀을 헤치며 나왔다.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지 머리에 나뭇가지가 매달리고 온 몸이 땀에 절어 옷이 척 들어 붙어있었다.
" 한 삼일까지는 갠챌게요. 산에 뭐 도라지를 캐먹어도 그렇구 쇠채같은거 뜯어먹어두 그렇구. 사람이 쉽게 죽잰다이. "
" 그러재쿠. 제 살도리를 하고 있을게요. 너무 속을 끓이지 말라이. "
사람들은 한두마디씩 건네며 만석을 달랬다. 만석은 마지못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퉁퉁퉁 , 종구가 손잡이 뜨락또르의 발동을 걸자 모두들 말없이 적재함에 올라탔다.
저자 하몽 ( 다음기에 계속 )

나이 고작 사십에 이 여자 어째 이리 고달픈가요. 해피엔딩 기대합니다.
에구 그러게말임다. 이름만 복녀면 뭐함가
우와 이런 우유곡절이 있었네요.또 다음화를 기다릴게요 해피엔딩을 바라면서 😊
해피엔딩 기대해보기쇼
나그내들 좀 각성해야겠네요 ㅎㅎ
아… 복녀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