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날이 밝아오자 복녀는 길을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산으로 왔음직한 시간이 되어서 부터는 어데선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수시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랬으나 기껏 들려오는 건 바람에 풀이 흔들리는 소리거나 나뭇가지가 우수수 몸을 떠는 소리, 이름모를 새가 나뭇가지에 앉았다가 인기척에 놀라 날개를 푸득이며 날아가는 소리뿐이였다. 

" 어이, 어이, 내 여기 있소. "

" 어이, 어이. 여기 있다이. "

복녀는 누가 보기라도 하듯 숫제 팔까지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쯤이면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을텐데 웬지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복녀는 다시 간 길을 되돌아왔다. 그래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이번에는 사선으로 나가며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바위우에 올라가서도 소리를 쳤고 나무에 올라가서도 한껏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들려오는 건 복녀의 메아리뿐이였다. 

" 어이, "

복녀는 소리를 지르다가 목이 잠겨 꿀꺽 침을 삼켰다. 이제 복녀는 지쳐 있었다. 몸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당장 쓰러질 것 같았고 배는 잔등에 들어붙는 것 같았다. 게다가 비가 오려는 지 하늘이 어둑어둑해나며 찜통같이 더워났다. 복녀는 멈춰섰다. 등으로 땀이 곬을 치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숨을 쉴때마다 몸에서 나는 시큼한 땀냄새가 코속으로 파고 든다. 복녀는 이마살을 찌프렸다. 뭐라도 먹으면 걸을 힘이라도 생기련만 이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다리가 휘청거려 도무지 걷지를 못하겠는 것이였다. 

복녀는 우선 물을 찾아 마시기로 했다. 한참 걸어가니 산골짜기와 골짜기 꽤 깊은 계곡이 보였다. 여기로 내려가면 혹시 도랑물이 흐르지 않을가. 복녀는 행운을 바라고 나뭇가지를 휘여잡으며 발볌발볌 내려갔다. 경사가 강해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였다. 한참을 내려가니 과연 물 흐르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왔다. 아이쿠, 살았다. 복녀는 물소리가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었다.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려니 쓰러진 큰 나무 하나가 가로 막고 있었다. 이걸 건너가면 물을 마실수 있겠구나. 복녀는 얼른 나무우에 올라섰다. 금방 통통통 달려서 건너갈 것 같았는 데 정작 한두걸음 옮겨놓으니 몸이 기우뚱거리며 평형을 잡기가 어려웠다. 복녀는 엎드려 손으로 나무를 짚으며 벌벌 기다 싶이 하면서 나아갔다. 절반쯤 건너 갔을 때였다. 복녀는 입을 떡 벌렸다. 바로 앞에 커다란 뱀이 나무를 통째로 칭칭 감고 있었다. 이걸 어째야 하나 , 복녀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순간, 뱀은 입을 딱 벌렸다. 뱀의 붉은 혀가 복녀의 앞에서 춤을 추듯 나불거고 있었다. 

이제는 나아갈수도 없고 몸을 돌릴수도 없다. 몸을 돌리는 순간 뱀이 와락 몸을 솟구치며 덮칠수도 있다. 복녀는 몸을 동그랗게 말면서 아래쪽으로 훅 뛰여내렸다. 아아, 이걸 어떡해. 복녀는 공중에서 혼자 절규하듯 웨쳤다. 발이 먼저 바닥에 닿고 그다음 벌렁 나자빠졌다. 한참만에 정신을 차려보니 몸은 온통 흙투성이였다. 복녀는 몸을 움직여보았다. 뜻밖에도 몸은 상한데 없이 멀쩡했다. 아이쿠, 놀래라, 복녀는 혼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물 흐르는 쪽으로 숲을 헤쳐나갔다. 눈앞에 금방 본 뱀이 어른거리고 뛰여내리던 순간의 아찔함이 떠올라 심장이 쿵쿵거리고 걸음을 옮길때마다 다리가 후둘거렸다. 앗, 복녀는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발밑의 돌멩이를 미처 못보고 허망 내딛는 통에 순간적으로 발이 쭉 미끌었던 것이다. 복녀의 몸이 허망 곤두박질하며 굴렀다. 사타구니가 썩은 나무그루터기를 안으며 정면으로 부딪쳤고 복녀는 허망 나동그라 졌다. 다리사이가 빠개질 것 같았다. 복녀는 이발을 앙다물고 한참동안 통증을 참았다. 겨우 뱀을 피하니 또 이런 봉변을 당하는구나. 이거 정말 하늘이 나보고 죽으라는건가 하는 생각을 하며 복녀는 숨을 몰아쉬였다.

사타구니가 참을만해지자 복녀는 다른데는 다친데 없나 살펴 보았다. 손바닥은 굵게 몇줄 긁힌 자리가 부풀어 오르긴 했지만 다행히 깊은 상처는 없었다. 무릎에서 통증이 심하게 느껴진다. 걷어보니 피가 발목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복녀는 멀거니 상처를 들여다보다가 그대로 바지를 내리고 짐승처럼 벌벌 언덕을 기여 내려왔다. 드디여 물가에 닿았다. 눈으로 흐르는 물을 확인하는 순간 복녀는 현기증이 났다. 눈앞에서 나무가 거꾸로 땅에 처박히고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듯 했다. 복녀는 크게 눈을 뜨며 안간힘을 다해 정신을 차렸다. 한참만에야 눈앞에서 사물이 제 위치를 찾아가고 있었다. 

복녀는 도랑물을 내려다 보았다. 바닥에는 썩은 나뭇잎이 한 벌 깔려 있었고 도랑에 반쯤 잠긴 돌에는 퍼런 이끼가 끼여 있었다. 복녀는 손바닥을 땅에 대고 엎드리려다가 아 하고 신음했다. 무릎이 돌에 닿으며 또다시 빠개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겨우 한쪽 무릎을 세우고 한쪽은 땅에 박은 자세로 엎드리자 그제야 입이 물에 닿았다. 흡하고 숨을 들이쉬자 물에서 비릿한 냄새가 났다. 복녀는 눈을 감고 숨을 참으며 꿀꺽꿀꺽 물을 마셨다. 닭이 물을 마시듯 잠간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마시기를 서너번 반복하자 배가 그득 차올랐다. 복녀는 그제야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정신이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물도랑옆에 쇠채가 자라나 있었다. 복녀는 쇠채를 뜯어 입에 넣었다. 새큼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그 옆에 새여빠진 참나물이 보여 그것도 잎을 뜯어 먹고 줄기를 씹어보았다. 한참 입을 놀렸더니 기운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우르릉 꽝. 천둥소리가 나서 올려다보니 수림사이로 하늘이 거멓게 흐려오고 있었다. 비가 오면 골짜기에 있는건 위험하다. 복녀는 서둘러 언덕을 올라 왔다. 나뭇가지를 잡고 무릎에 바짝 힘을 주어 톺아 오르려니 무릎이 빠개질 것 같았다. 몇 번을 멈추어서 숨을 고르며 겨우 언덕을 올라왔을 때 후둑후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복녀는 이마에 달라붙는 머리카락을 떼여내며 비 내리는 수림속을 헤집어 나갔다. 비가 점점 거세지며 나뭇가지들이 사정없이 꺽였다. 눈을 뜰수 없을만큼 거센 비발이였다. 쑥대와 새풀과 싸리나무가지들이 마구 뒤엉키며 쓰러지고 있었다. 급작스런 소나기였다. 복녀는 다래덩굴밑에 뛰여 들었다. 우우 아아. 요란한 불청객처럼 들이 닥친 비에 수림속의 온갖 것들은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복녀는 얼굴의 물기를 훔치며 멍하니 서서 정신없이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았다. 비는 한참을 두들긴 뒤에야 비로소 가늘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배가 끊길 듯이 아파났다. 복녀는 큰 나무 옆에 쭈그리고 앉아 바지를 내렸다. 뒤에서 주루룩 하고 멀건 것이 한꺼번에 밀려 나갔다. . 복녀는 배를 부둥켜 안았다. 한참을 모지름을 쓰며 안의걸 짜내고 나서야 복통이 조금 가셨다. 아무래도 아까 도랑물을 정신없이 마신 것이 아마도 화근인 것 같았다.

비는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때에야 그쳤다. 비를 피해 나무밑에 서있기는 했지만 온 몸이 다 젖어있었다. 복녀는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고 옷 가장자리를 비틀어 대충 짰다. 수림속에서의 두 번째 밤이다. 날이 어두워지자 온도는 급격히 내려갔다. 바람이 휙 불자 몸이 덜덜 떨려 복녀는 몸을 한껏 옹송그렸다. 어찌할바를 몰라 가만히 서있다가 곰취를 놓은 바위옆에 가서 몸을 기댔다. 바위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래도 일어나기는 싫었다. 어제부터 쌀알을 못먹은 데다 설사까지 하는 바람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복녀는 한참을 눈을 감고 있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온 몸에 열이 끓어오르고 있었다. 이제 어떡하나, 복녀는 바위에 비스듬히 기대 누운채 칠흙같이 어두운 수림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저게 뭔가, 저만치 앞에 푸른 불빛이 보였다. 복녀는 뭔가 싶어 눈을 슴뻑이며 찬히 보려고 눈을 쪼프리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푸른 빛을 내뿜는 형체가 움직이고 있었는 데 덩치가 큰 개만큼 되는 것이였다. 승냥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치자 온 몸에 경련이 일었다. 자세히 보니 그 뒤에 또 뭔가가 언뜰했다. 앞에 놈보다 조금 덩치가 작은 놈들이였다. 세여보니 모두 네마리였다. 

복녀는 침을 삼켰다. 움직이는 네 개의 형체는 복녀를 향해 아주 천천히 소리도 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게 무리로 덮친다면, 아니 저 앞에 큰 놈 하나만 덮쳐든다고 해도 , 복녀는 긴장으로 온 몸에 경련이 이는 것 같았다. 숲속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복녀는 숨도 쉴새 없었다. 그런데 맨 앞에서 오던 덩치가 제일 큰 놈이 멈춰서는 것이였다. 뒤에 놈들도 멈춰섰다. 복녀는 온 몸의 모든 털이 꼿꼿이 일어서는 것 같았다. 발바닥으로부터 쥐가 나고 있었다. 승냥이들은 선자리에 장승처럼 버티고 서서 꼼짝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승냥이무리와 복녀사이에 팽팽하게 당겨진 줄 같은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질식할 것 같은 공기속에서 시간은 조금씩 흘렀다. 얼마나 지났을가. 수림속이 희부염해지더니 달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어흥, 승냥이 두목이 고개를 쳐들며 하늘을 향해 괴상한 소리를 질렀다. 이제 공격해오려나 , 복녀는 눈은 똑바로 뜬채 입술만 지긋이 깨물었다. 죽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다음 순간, 믿을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두목 승냥이가 고개를 떨구더니 슬며시 몸을 돌리는 것이였다. 다른 놈들도 따라서 몸을 돌렸다. 스럭스럭, 풀 스치는 소리가 났고 놈들은 이내 검은 수림속으로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놈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한참 지나서야 복녀는 어헉 하고 참았던 숨을 토해냈다. 숨을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지 사례 들린듯 기침이 마구 터져나왔다. 복녀는 가슴을 붙안고 끓어오르는 기침을 뱉어내느라 모지름을 썼다. 

공포가 사라지자 그제야 온 몸을 뜨끈하게 달구는 열기가 느껴지며 속이 메슥거리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마를 짚어보니 델것 같았다. 이거 큰일 났는데. 된감기까지 들었으니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복녀는 어쩐지 살아서 집에 돌아가기는 힘들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을 떠나온지 고작 이틀째인데 아득하게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다. 

복녀는 눈가가 찡해 났다. 사람이 태여났다가 한번 죽는 건 세상 리치이긴 한데 정말로 이렇게 죽는 다면 에미 없이 살아갈 새끼 둘이 제일 걱정이였다. 내가 없으면 남편이 애들을 건사하며 살아갈수 있으려나. 부지런하지도 못하고 생활에 대한 계획도 없는 남편이였다. 그래도 자식들한테는 끔찍하니 애들을 아예 버리지는 않을 것이였다. 산 목숨이니 어떻게든 살아가긴 할테지만 오죽할가. 남편이 새 장가를 가면 남편이야 좋겠지만 애들은 후엄마 손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커 야 할테니 안쓰러워서 어쩔가. 복녀는 마음이 착잡해났다. 눈앞에서 울고 있는 두 아이의 환영이 보이고 있었다. 

복녀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설핏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벌써 해가 수림속을 비추고 있었다. 고열로 속이 뒤집어 질 듯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날이 밝았으니 오늘도 사람들이 찾으러 올터였다. 그러니 어떻게든 기운을 차리고 사람들이 들을수 있게 소리를 질러야 했다. 그런데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복녀는 안간힘을 쓰며 겨우 몸을 일으켰다가 풀렁 하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풀이 복녀의 앉은 키를 넘고 있었다. 여기에 쓰러지면 사람들이 지나가면서도 발견 못할것 같았다. 아니야, 이대로 맥을 놓고 죽기를 기다릴수는 없어. 복녀는 머리를 저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게 억울하지도 않니?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지 않니? 엄마 없이 살아갈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니? 너 자신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해. 복녀는 스스로에게 웨쳤다. 그래 살자, 살아야겠다. 생에 대한 열망이 복녀를 무섭게 달구었다. 

복녀는 뭔가 결심한 듯 이발을 악물며 일어났다. 겨우 두어 걸음을 옮기자 온 몸이 와들와들 떨려왔다. 복녀는 팔을 뻗어 곰취를 덮어놓은 나뭇가지를 걷었다. 곰취는 이제 거멓게 색이 죽어가고 있었다. 복녀는 그것을 한참동안 멀거니 바라보았다. 소금도 사고 전기요금도 내고 식구들한테 고기반찬도 해먹이고 여름이 다가오는데 아이들 옷도 한견지씩 사입히고, 곰취 뜯으러 오면서 오밀조밀 계획도 많았었다. 그래 이제 마지막 기대를 이것들한테 걸어보자. 

복녀는 곰취를 한아름 품에 안고 네발 짐승처럼 벌벌 기며 곰취를 널어놓기 시작했다. 쑥대우에도 널어놓고 머루넝쿨에도 널어놓고 싸리나무가지에도 올리 뿌렸다. 더러는 땅에 떨어지고 더러는 가지에 걸쳐졌다. 이름모를 잔잔한 꽃들우에도 새풀우에도 복녀는 줄줄이 곰취를 널어놓았다. 행여라도 누가 이걸 본다면 곰취를 따라서 들어올테지, 그때까지 목숨만 붙어있다면 난 사는거야, 복녀는 자신이 살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하고 죽을 힘을 다해 곰취를 널고 또 널었다. 몸을 움직일때마다 힘이 부쳐 자주 멈추고 숨을 몰아쉬여야 했다. 드디여 곰취 두 주머니를 다 널어 놓았다. 복녀는 나무에 기대 앉았다. 

온 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며 정신이 흐려지고 있었다. 수림속은 괴괴한 정적이 감돌았다. 바람 한점 없이 찌물쿠는 날씨였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어 빙빙 돌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야 하는 데 눈꺼풀이 자꾸만 내려왔다. 복녀는 눈에 힘을 주며 안간힘을 썼다. 진드기 수십마리가 기여 다니는 듯 온 몸이 근질거리고 눈꺼풀이 아교처럼 끈적하게 달라붙고 있었다. 

" 복녀, 복녀, "

" 송화 엄마, 송화야, "

" 송철아, "

그때였다. 복녀는 어데선가 희미하게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복녀는 대답하려고 입술을 움직여 보았다. 헌데 아무리 애를 써도 목구멍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복녀는 모지름을 썼다. 순간, 욱, 하고 속으로부터 시큼한 것이 올라왔다. 삭지 않은 더덕과 풀냄새가 역한 냄새를 풍겼다. 냄새가 코를 찔러 속이 더욱 뒤집어 지고 있었지만 그걸 치워버릴 힘도 없었다. 

복녀는 뭍에 끌어 낸 물고기처럼 몸만 풀떡이며 계속해서 속의 것을 게워냈다. 몸은 기진맥진해 땅속으로 잦아 드는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뭐가 나오지도 않았다. 복녀는 한참을 어깨만 들썩거리다가 간신히 눈을 떴다. 사면팔방에서 곰취들이 기발처럼 나붓기고 있었다. 복녀는 제발 너희들이 생명의 기발이 되어 나를 구원해달라고 중얼거리다가 그만 의식을 잃었다. 

6

안해를 잃어버린지 벌써 삼일째다. 만석은 멈춰서서 숨을 몰아쉬였다. 아무리 수림사이를 헤치고 다녀도, 목이 터지게 불러도 안해는 대답이 없었다. 어제 오늘 얼마나 헤매고 다녔는 지 다리가 나른해 났다. 그래도 멈출수 없었다. 나무사이로 열덩이같은 해빛이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해의 각도를 보니 정오가 다 된 것 같았다. 하루중 가장 더운 시간이다. 가만히 서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몸이 찜통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였다. 

" 어이, 만석이 "

철준의 목소리였다.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하긴 정신없이 헤매고 다녔으니 어림잡아도 꽤 깊이 들어왔을 것이였다. 

" 어. "

만석은 크게 맞받아 소리쳤다. 

" 없는가? "

" 냐…"

만석은 입속으로 웅얼거리며 작게 대답했다. 설음이 왈칵 올라와 만석은 눈을 껌벅거리며 간신히 눈확으로 번지는 습기를 코속으로 잠재웠다.

오늘까지 안해를 찾지 못하면. 만석은 도리를 흔들었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였다. 눈앞에 자꾸 안해가 어른 거렸다. 고작 삼일인데 웬일인지 안해의 모습은 그저 어렴풋한 윤곽만 기억날뿐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음을 매고 있는 안해, 밥을 짓고 있는 안해, 돼지죽을 끓이고 있는 안해, 소를 끌고 오는 안해, 머릿속에 떠오르는 안해의 모습은 온통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안해는 늘 바빴다. 만석은 한숨을 푹 쉬였다. 하긴 안해가 언제 한번 단장을 하고 옷을 곱게 입어본적 있었던가. 시집을 와서부터 안해는 손이 발이 되도록 일만 했었다. 

안해를 찾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찾아내야만 한다. 만석은 눈을 부릅뜨며 주변을 살폈다. 대체 어느 쪽으로 가야 안해를 찾을수 있을가 . 문득 만석의 눈이 반짝였다. 소 장바 길이만큼 떨어진 곳에 뭔가 마른 풀 같은 것이 여러개 나무에 걸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불현 듯 뇌리를 스치는 예감이 있어 만석은 와락와락 새풀을 헤치며 나아갔다. 손을 뻗어 집어들고 보니 시들어 가는 곰취였다. 누가 이걸 여기에? 가슴이 후둑후둑 뛰였다. 만석은 주변을 찬히 살폈다. 바로 옆 싸리나무가지우에도 곰취가 걸쳐져 있었다. 이건 분명 안해가 널어 놓은 것이다. 만석은 마음이 다급해졌다. 곰취는 끊길 듯 하며 계속해서 줄을 지어 널려 있었다. 

만석은 황급히 곰취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아이쿠, 급히 걸음을 재우치던 만석은 발을 헛디디며 주저 앉았다. 너무 급하게 내디디느라 그만 움푹 패인 흙구뎅이를 보지 못했던 것이였다. 두손으로 발목을 잡고 돌려보니 다행히 뼈는 상하지 않은 듯했다. 발목이 욱신거리며 통증이 몰려왔지만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만석은 나뭇가지를 잡고 일어섰다.

그때였다. 몇미터 앞 커다란 나무밑에 뭔가 나무토막같기도 하고 짐승같기도 한 형체가 보였다. 저게 뭔가 하고 만석은 눈을 쪼프렸다. 머리카락과 옷이 보였다. 만석은 가슴에 쿵 하고 돌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만석은 절뚝거리며 엎어질 듯 황급히 달려갔다. 구겨진 옷과 몸의 륜곽이 눈에 익었다. 만석은 얼른 다가가 부여안고 돌려보았다. 얼굴이 얼마나 부었는 지 꼭 축구공 같고 목 여기저기에 굵게 긁힌 피자국이 력력한채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은 바로 애타게 찾아 헤매던 안해였다. 

" 송화에미, 송화에미. 복녀. 어이 어이. "

만석은 크게 소리쳐 안해를 불렀다. 안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만석은 손바닥으로 안해의 뺨을 두들겨 보았다. 안해는 깊은 잠에 빠진 듯 만석이 흔드는 대로 머리를 좌우로 움직일뿐 눈을 뜨지도 않고 대답도 하지 않았다. 코밑에 손가락을 대보니 다행히 코김이 느껴졌다. 만석은 급히 주머니에서 물병을 꺼내 입을 벌리고 쏟아넣었다. 안해는 물을 넘길 기운도 없는듯 입술도 움직이지 않았다. 쏟아넣은 물은 다시 입가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만석은 울음이 나올것만 같았다. 

만석은 안해를 안고 한참을 우두커니 내려다 보고만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이렇게 안해를 자세히 바라본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해빛이 강렬하게 안해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안해의 얽은 얼굴은 모기가 얼마나 물어 뜯었는지 온통 붉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찬히 보니 안해의 이마에는 어느새 주름이 패이고 있었다. 언제 이렇게 됐지? 만석은 처음 만날 때 작고 약한 몸집에 단발머리를 해서 꼭 아이같았던 안해를 떠올렸다. 온 몸의 혈관들이 끓어번지며 왈칵 눈물이 솟구치고 있었다. 이러다가 영영 깨여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이렇게 안해를 보내는 건 아니겠지? 만석은 안해가 이대로 죽는다면 영원히 그동안의 자신을 용서할수 없을 것 같았다. 눈가가 시큰해나며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만석은 고개를 쳐들고 눈확으로 번지는 물기를 코속으로 잠재우다가 급기야 정신이 번쩍 들어 다급히 소리쳤다. 

" 어이, 어이. 여기 있다이. 어이 어이. "

" 어디요. 어디. "

" 여기, 여기요. 우쪽으로 올라오라이. "

만석은 크게 소리치며 팔까지 흔들어 보였다.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는 듯 여기저기서 풀을 헤치는 소리가 서럭서럭 들렸다. 

" 사람이 완전히 늘어졌구만. "

" 그래도 숨은 있소. "

" 날래 업으라이. " 

만석은 등을 들이댔다. 안해를 업어본 건 처음이였다. 복녀가 완전히 맥을 버리고 축 늘어진터라 집채처럼 등을 누르는 무게에 만석은 거퍼 몇걸음을 걷지 못하고 헉헉 댔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도저히 걸음을 내딛을수가 없었다. 철준이가 자기한테 넘기라며 등을 들이밀었다. 그렇게 남정네 여럿이서 겨끔내기로 등을 내밀어 받아 업어서야 겨우 큰길까지 나올수 있었다. 복녀를 적재함에 들어올리자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사람들은 재빨리 올라타고 종구는 손잡이뜨락또르의 발동을 걸었다. 

퉁퉁퉁.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손잡이 뜨락또르는 전속력으로 산길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저자 하몽 ( 다음에 계속 )

이 글을 공유하기:

하몽(蛤梦)

사소한 것들을 사랑하며 웃음이 헤픈 아줌마입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7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