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훈대리는 모니터를 들여다보면서 커피를 홀짝거린다. 그가 고개를 돌릴때마다 힐끔힐끔 그를 곁눈질한다. 그가 지금 그의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고르고 있는것처럼 영훈대리도 그를 향한 말들을 고르고 표정들을 찾고 있는것일가. 

김영훈, 

39세

탑아웃소싱회사 대리.

깔끔하고 차가운 인상만큼이나 빈틈없는 성격의 남자.

상황에 따라 여우가 되기도 하고 승냥이가 될줄도 아는 사람.

대리라고는 하지만 실권을 쥐고있는 사람.

대표도 그 앞에서는 굽실거리는 사람. 

커피는 바닥났다. 그는 종이컵을 한손으로 움켜쥐였다. 종이컵이 그의 우악진 손아귀에서 그대로 구겨진다. 영훈대리도 커피를 다 마셨는지 컵을 한쪽옆으로 옮겨놓고 있다. 그는 쓰레기통에 구겨진 종이컵을 쑤셔넣고 천천히 김영훈대리가 앉아있는 책상쪽으로 다가갔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는 잠간 눈을 감았다가 떴다. 눈이 깔깔하다. 며칠째,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낮에는 서울의 변호사 사무실을 빚받으러 다니는 사채업자처럼 찾아다녔고, 밤에는 길에서, 전철에서 잠간잠간씩 핸드폰으로 알바자리를 보고 문자를 넣은 곳에서 연락이 오면 야간일당을 했다. 일하는 중간중간, 밥먹는 와중에도 그는 인터넷을 광기어린 손놀림으로 뒤져 급여 체불관련에 관한 모든 정보들을 훑었다. 

지금 그가 막 다른 회사에서 야간 일당을 하고 퇴근하는 통근차에서 내려 그쪽 사무실에 들러 일당을 챙기고 이리로 곧장 온 것임을 영훈대리는 알지 못할것이다. 대롱대롱 낚시코에 매달려 오도가도 못하는 지렁이토막처럼 그토록 지독하게 돈에 매달려야 하는 인생도 있음을 그는 알수 없을 것이다. 어제밤, 그는 한숨도 쉬지 못하고 플라스틱 종이컵을 쌓아 박스에 포장했다. 이 몇 년간,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건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돈이였다. 될수만 있다면 몸에 붙은 장기 어느 하나라도 팔아 당장 돈으로 바꾸고 싶은게 그의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이였다. 그만큼 그가 처한 현실은 각박했다. 

그런데, 

2년가까이 일한 회사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야말로 너무 갑작스러워 꿈을 꾸는 것 같은 일이였다. 

그날도, 여느때와 똑같았다. 그는 현장에서 이제 손에 익을대로 익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몸이 움직여지는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이, 하던 일 놓고 모이라는데?”

누군가 소리 질렀다. 

“무슨 일이야.”

“모이라는데 빨랑빨랑 가야지 뭘 저리 꾸물거리고 있는대?”

구내식당에 들어서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생산과장이 근엄한 표정으로 앞쪽에 서서 들어서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뭔가 음식을 먹고 체한듯한 얼굴이였다. 생산부장에 웬만하면 회사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대표이사까지 서있었다. 

“자. 다들 모이셨죠? 아직 안 온 사람 있습니까? 송반장. 다 온거죠?”

생산과장이 그렇게 인원체크를 하고 대표이사한테 마이크를 넘겼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을 모이라고 한건 참으로 죄송한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희 회사가 어떤 사기에 연루돼서 부득이하게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바늘 떨어지는 소리라도 들릴 것이다. 침 삼키는 사람도 없이 고요하다. 수많은 눈동자들이 일제히 대표이사의 입만 바라보고 그 입에서 이제 튀여나와 자신들의 귀에 들어올 말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자.”

대표이사는 슥 그림을 감상하듯 곤색의 어두운 작업복을 입은 얼굴들을 눈으로 쓸더니 꿀꺽 침을 삼킨다.

“좋은 일로 여러분을 뵈여야 하는건데 참으로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희 델코리아 매 한 발자국을 같이 해온 가족같은 여러분에게 죄송함과 고마움을 표하는 바입니다.”

대표이사가 중앙으로 나와 목례를 한다. 

그의 희끗한 머리키락은 막 샴푸하고 드라이를 마친 듯 부드럽게 날린다. 연회색 양복에 연한 핑크빛셔츠를 받쳐입은 그는 이 불행한 소식을 마치 아나운서가 뉴스를 전하듯 담담하게 말하고 있다. 많이 배우면 저렇게 담담해지는걸가. 어떤것도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수 있게 되는걸가. 그는 그런 생각을 했다. 한 대 호되게 맞은 듯 머리가 뻥하다. 

“그럼 회사가 이제 망한겁니까?”

“참,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생겼구만.”

“거리로 내몰리긴 왜 내몰려? 그깟 일자리야 다시 찾음 되지, 뭘. 월급은 언제 줍니까?”

잠간 침묵이 흐르고, 누군가 먼저 입을 열자 그제는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댔다.

“아. 그러니까 여기 정직원분들은 이제 따로 회사 사무실에서 부를거고, 아웃소싱에 소속되신분들은 급여문제를 본인들이 소속된 아웃소싱에 물어보시면 되겠습니다. 저희는 아웃소싱 대표들하고 소통을 할거니까요. 그 이외의 사안에 대해서는 생산과장님이나 반장님을 통해 들으시죠.”

잘난 사람은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법인가. 대표이사는 그 말을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다음에 계속. 글쓴이 하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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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몽(蛤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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