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코로나(Corona)란 맥주가 있다. 나는 대단한 애주가긴 하지만 술 종류를 많이 외우지는 못한다. 세계맥주는 더 그렇다. 호가든, 버드와이저, 산미구엘 등등. 그냥 주는 대로 마시는 편이다. 내가 코로나를 알게 된 데에는 스토리가 있다. 어느 하루, 또 다른 애주가 A와 가장 무난한(싼) 카스를 알딸딸해질 정도로 마셨다. 원래 인간이란 종은 취하면 세상만사에 관대해지는데, 치명적인 것은 지갑을 여는 일에도 무감각해진다는 점이다. 그런 A는 술이 떨어지자 카스 대신 코로나를 주문했다.(수입 맥주는 어째도 비싸다) 그렇게 코로나와 내 고막과의 첫 만남이 성사됐는데, 문제의 발단은 여기였다. 가게가 시끄럽기도 했었고, A의 발음도 문제였다. 거기다가 취하면 청력이 급속도로 저하되는 나까지 해서. 그날 밤 이후로 나는 ‘코로나’를 ‘포로나’로 기억하게 된다. ‘포로나’가 다 잊힐 즈음에 다른 벗들과 술자리를 가질 일이 있었다. 수입 맥주 가게서. 다들 메뉴판을 뚫어지라 쳐다보기만 하고 선뜻 주문을 못 하길래, (뭐 이런 촌뜨기들이 있나 하는 생각과 함께) 어렴풋한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당돌하게 외쳤다. ‘나는 포르노(porno).’ 코로나, 포로나, 포르노. 이후로 나는 코로나를 잊은 적이 없다.

2. 이 난리통에 (싸)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꼬박꼬박 말해주는 고마운? 사람이 몇몇 있다. 맞는 말이지만 들을 때마다 피식 헛웃음이 난다. 사람들은 대개 나가선 안 되는 이유로 감염의 위험을 꼽는다. 나는 이러한 발로야말로 우리의 밑뿌리이자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태생적으로 교만하고 이기적이다. 생사화복은 인간이 통제 가능한 영역 바깥에 있다. 소싯적에 나는 온갖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할 수 있다’, ‘하면 된다’를 철석같이 믿어왔다. 그런데 정작 살아보니 그렇지 않더라. 속된 표현으로 될 사람은 되고, 안 될 사람은 진짜 안 되더라. 어제 뉴스를 보면서 (몇 번 확진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감염될 사람은 저렇게도 감염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정승천(人定勝天) 같은 허무맹랑한 구호를 외치면서 우리의 능력을 너무 과대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이 마치 만물의 주재인 양 행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코로나는 자연을 정복하겠다는 인간의 탐욕에 대한 자연의 반기이자 경고이다. 우리는 자연 속 하나의 입자, 미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수용하는 것도 일종의 지혜라 할 수 있다. 기독교인으로서 한마디만 첨언하자면, 오늘과 같이 초자연적 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기독교, 그리고 여타 종교에서는 그 힘을 신이라 해석한다.

3. 2번에 이어서. 그렇다고 감염 여부를 팔자에 맡긴 채 동네방네 활개 치고 다니자는 게 아니다. 29일이었나. 중국에서 돌아온 뒤로 나도 아직은 성실하게 셀프 자가격리에 임하고 있다. 우리는 나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잘못 설정하고 있다. 밖으로 나돌면 바이러스에 전염될 수 있어, 같은 말로 자기기만 할 게 아니다. 나도 바이러스의 숙주(전파자)가 될 수 있어, 이 시국에 돌아다니다가는 민폐가 될 수도 있어, 하는 생각을 가지자는 거다. 무슨 차이가 있나. 전자는 자신에, 후자는 타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나부터 살겠다는 나르시시즘도 어느 만큼 필요하지만, 이왕이면 다 같이 살았으면 더 좋겠다는 사유의 전환이 절실하다. 자신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돌려보자.

4. 코로나 얘기를 할까 했는데 결국 쓸데없는 얘기만 잔뜩 늘어놨다. 후속편-본론을 조만간 쓰도록 하겠다. 나는 최근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겨 글을 쓰면 절대 A4용지 한쪽을 넘기지 않으려 한다. 차별과 혐오에 관한 얘기, 지역주의에 관한 얘기, 그리고 괴벽한 식문화와 죄 없는 박쥐에 관해서. 다음 편의 구성이 이렇게 될 거란 보장은 없다. 일단 던지고 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나는 쓰고 싶을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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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 Neru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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