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9월 3일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70돐, 9월 2일은 연변의 ‘조선언어문자의 날’ 8돐 생일이다.
연변이야 70년이든 80년이든 90년이든…… 쭉─ 이어져서 이 땅에서 이 강산에서 여전하겠지만 조선언어문자나 조선족은 언제까지 꾸어다놓은 보리자루 신세로 자리보전을 할지… 회의적인 탄식뿐이다.
근래 연변에서는 ‘신신펀펀’한 간판과 표식판들이 단시일내에 통일적으로 와닥닥 바뀌고 있다. 조선문자는 한어의 뒤 혹은 아래로 옮겨지고 있다. 과거의 어느 때, 이처럼 드높은 기세로 언어문자의 일상생활 속 사용상황이 격변에 가속페달을 밟고 약진하여 불이 펄 나는 눈 띄는 성과를 거두었던지…… 간판이나 표지판을 교체하는 데 쏟아부을 수 있는 많은 자금이 있다는 것은 연변의 재정상황이 매우 량호하다는 반증이니, 날로 잘 ‘살아지는’ 일흔돐 맞은 연변은 새 시대의 새 기상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것이 확실하다. 아! 날따라 살기 좋은 내 고향 연변이여!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의 동창이나 친구들 절대 대부분은 연변을 떠나서 생활하고 있다. 그토록 살기 좋은 고향땅을 버리고 떠난 ‘나쁜놈’, ‘배신자’들! 이토록 살기 좋은데 왜 다들 떠나지 못해 안달인지 나는 도저히 모르겠다. 간도의 서울이던 룡정이나 국제변강 도시 도문 등과 같은 연변의 여러 도시는 상주인구수가 급격히 줄어 유령도시로 전락되여 가다고 하는데……
앞으로도 어떤 멍청이, 바보들이 이 살기 좋은 연변에서 꿈과 열정을 불사르지 않고 떠나버릴가? 꿈의 요람, 행복의 터전, 풍요로운 옥토─ 연변조선족자치주!

혀바닥이 하는 말은 대뇌가 굴리는 속셈과 다르고 대뇌가 내보내는 신호는 마음속 감정의 온도와 또 다르다.
정부에서는 소수민족언어문자를 착실하게 보호하고 전승하고 또 자기 민족의 언어문자를 배울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보장해주기 위하여 많은 편리를 제공해준다고 한다. 아주 멋진 소수민족정책임이 틀림이 없다. 중국말로 ‘땐짠!’이다.
올해의 9월 2일이면 ‘조선언어문자의 날’ 8주년이 되는 데, 이 기념일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제정한 것인지 갸우뚱해진다. 그리고 연변조선족자치주에는 표지판에 적힌 글을 관리하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조선어문 사업위원회 등과 같은 기관이나 부서도 있을 줄로 안다. 그러나! “지린성 옌볜시 조선족 자치주”같은 문구가 적힌 표지판을 보면서 이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어떻게 떡하니 걸려있을 수 있는지 실소를 금할 길 없다. 밥 먹다 숟저를 떨구는 건 실수지만 밥상을 엎는 건 실수가 아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그것도 경사스러운 자치주 70주년 경축 문구를 기상천외를 넘어 해괴망측하게 제작해놓고 ‘실수’였다고 살랑 발뺌하면… 잔치날에도 조선족들의 언어문자가 대접은 커녕 괄시를 받는데 과연 ‘실수’라고 생색내면 민심이 눅잦혀 질가?
연변조선족자치주는 그저 력사 속에 있고 고서에 있고 박물관이나 전시관에 있는 듯싶다. 려행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공룡왕국의 공룡처럼 말이다.
타지의 려행객들이 와서 보면 눈앞에 펼쳐진 모든 것이 ‘연변’이라며 방긋 미소 짓고 한복사진도 찰칵 찍어대겠지만, 연변사람인 내 눈 앞의 광경은 전혀 ‘연변’스럽지 않다. 정확히 말하면 연변조선족자치주 답지 않다. 낯설어서 멀미가 날 지경이다. 멀미약 몇알을 복용해야 요란한 이 내 마음 진정시킬 수 있나?
한복 이야기가 나오니 얼핏 떠오르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있다. 지난 동계올림픽에서 일명 ‘한복 논란’이 일었을 때… 너나없이 혀를, 손가락를, 핏대를 마구 할애하여 흥분된 감정을 절제하지 않고 광분하며 ‘강펀치’ 날리던 그 많은 ‘협객’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일흔 번째 구삼명절을 맞이하시는지…… 안부라도 들을 길 없어 서운하고 적적한 마음 이만저만이 아니다. 투사들이여, 정의의 이름으로 잘 못 된 것을 호되게 족쳐주세요! 다시는 못 그러게 한손엔 자부대를 다른 한 손에는 족디미 잡고 야무지게 혼꾸멍 내주세요!

간판은 곧 얼굴의 상징. 얼굴을 뜯어고친 몰골로 만면에 웃음 머금고 성세호대하게 70주년 생일을 열띈 모습으로 맞이하고 있는데… 성괴(성형 괴물)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중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으로서 이제는 자기 민족의 언어문자를 배우는 일은 매 개인(가족)의 선택이나 의지에 맡겨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조선족학교에서 조선언어문자와 《조선어문》이 주도적인 지위에서 밀려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조선족학교는 조선족 선생님과 학생들이 한글로 씌여진 교재를 들고 우리 말과 글로 우리의 력사, 전통, 문화 등을 더불어 지식을 학습하는 곳이다. 민족교육의 요람, 그러나… 변해가고 있다. 앞으로는 조선족학교라는 개념 자체가 지워지고 통일적으로 학교로 불릴 것이다.

얼마 전, 연길의 길거리를 배회하다 연변일중 정문 량켠의 돌벽에 새겨진 학교명이 ‘아가파라’하며 뜯기 우는 현장을 목격했다. 꽤나 충격이였다. 연변은 ‘교육의 고향’이요 ‘가무의 고향’이요 ‘축구의 고향’이고 조선족은 ‘문화민족’이라고 아름답게 불리웠다. 교육이 죽으면 모든 건 헛말이 될 터이니 가무나 축구나 문화를 더 말해봤자… 모든게 눈물이다. 기초교육이 와르르 무너지는데 고등교육이라고 성할리 만무하다.
연변과학기술학원이 폐교됐을 때, 우리 조선족 중에는 유치원부터 소학교, 초중, 고중, 대학교까지 평생 다닌 모든 학교가 일제히 사라져 모교라곤 없는 분들이 꽤 많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쓴웃음 지었더랬다. 그리고 연변대학은…
70주년을 맞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모습과 조선족학교의 모습은 많은 곳이 닮아있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도 주덕해 초대주장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고 있다. 물이 다 빠진 바다가에서는 대어를 낚을 수 없다. “작달막한 마라도나가 중국에서 태여났으면 절대 축구의 신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그 물에 그 고기가 산다. 콩밭엔 콩, 팥밭엔 팥이다. 요즘의 현실생태에서 주덕해는 ‘오솝소리’ 오기섭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턱대고 초대주장님 같은 목민지관을 그리워하는 일은 자작다정(自作多情), 우리말로는 김치국 마시는 미숙한 어리석음이다. 수많은 똘똘한 조선족들은 이미 연변에서 빠져나갔다. 고래들은 깊은 바다로 뛰여들었다.

삼복더위도 지나 8월 말에 접어드니 9·3이 코앞으로 다가왔건만, 아무런 감흥이 없다. 솔직히 말해보면 명절을 맞이하는 들뜬 기분이 나지 않는다. 오히려 씁쓸한 감정들이 을씨년스러운 가을비처럼 치치사게 불쾌한 습기를 얹어준다.
왜일가?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딱히 어데 가서 응석부릴 데도, 누구한테 신경질적으로 하소할 데도 없다. 홀로 스산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서러운 몸짓을 가누어야 한다. 그나마 조선족은 과경해왔으니 몽고족보다는 원통이 덜하겠지…
남의 땅에서 주인도 아닌 내가 무얼 더 어쩔 수 있단 말인가? 우리 조선족은 그 어디에도 완전히 귀속될 수 없는, 늘 ‘곁들이’ 신세가 아니였던가? 조선족은 조국이 없는 가엾은 족속이다. 얼빤한 인간들이 지구를 이래저래 쪼개서 국경 같은 것을 만들어 놓은 것도 전혀 달통 안 되지만…
항일시기 조선민족렬사가 연변지역 렬사 총수의 97%를 차지한다는 피의 력사도, 모택동 주석님께서 하신 “중화인민공화국의 찬란한 오성붉은기에는 조선족 렬사들의 선혈이 물들어있다.”는 말씀도, 이제는 잊어야 할 옛날 이야기가 되여 먼지 켜켜이 쌓인 전설 속에서 수면제 먹고 혼곤히 잠들어야 한다.
구삼명절 70돐을 맞이하는 마음이 우중충하기만 한데…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했는데, 서운하고 서럽고 분해도 상쾌하게 바뀌는 것 없이 세상은 잘도 돌아가고 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미래는 모르는 일이지만 마음을 비우면서 진정한 자신을, 진실된 우리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아야 되리. 멈춤이 없을 것 같던 관성에 등 떠밀려 너무 해맑게 락관적으로 살아온 과거의 ‘행복’은 랭각시키고 반성도 해봐야 하리. 어느때부터인가 주체적인 삶이 아닌 주어진 삶에 길들여진채 디룩디룩 살만 쪄간‘가축’같은 비루한 삶을… 비록 이미 늦었고 불필요할지라도.
연변조선족자치주 70돌을 맞으면서 망향가나 목 메이게 불러야 겠다. 보내야 하는 리유도 모른 채 떠나보내야 하는 사랑에게 슬픈 노래 들려줘야겠다.
일제침략자들은 극악무도한 민족문화말살정책과 황국신민화정책을 펼쳤다고 한다. 조선인들의 민족과 국가 의식을 희석시켜 뿌리의식을 거세해버리고 강도적인 ‘내선일체’를 내세워 식민지화하려는 것이였다. 험악한 세월을 살아 온 선인들이 새삼스레 존경스러워 난다. 누군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홀로 지켜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살아남는다. 조선족은 스스로 지켜내는 법을 끝끝내 배워내지 못한 것 같다. 어쩌면 애초부터 자생력을 잃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삶을 위해 여기저기에서 분투하는 모든 생명들은 아름답고 위대하지만 그래도 답답한 이 현실에 대한 명쾌한 답은 찾을 수 없다. 흉악한 일제는 총칼과 문화탄압,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곁들여(하드하게+소프트하게) 침략국 인민들을 침식시키려 했지만 강제적인 일체화는 실현하지 못했다.
생계 하나야 밥그릇 들고 폭 가리지만, 울고 싶은 마음 연변만 하니 눈 감을 밖에.
호수 1
정지용
얼굴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 싶은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 밖에.

일흔돐 맞은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중화민족공동체의식을 확고히 수립하면서 드팀없는 돌진으로 중국몽 실현을 위해 새 시대의 새 노래 새빠지게 부르면서 새 비상을 꿈 꾸는 새가 되리.
머리숱 빠진 나의 뻔들머리 같은 날개깃으로 파다닥─ 파다닥─ 고향도 조국도 없는 이 땅, 이 강, 이 산을 날아예리.
눈물로 날면서 성수나는 노래 구성지게 불러재끼리.
자치주 해산 애소의 노래
원곡: 차창준 작사, 김성민 작곡
개사: 도투바이
에루화 어절시구 슬프고 슬퍼
해란강도 글썽이고 백두산도 휘청하네
에루화 두둥실 간판을 바꾸세
연변조선족 자치주 얼굴을 바꾸네
에루화 어절시구 분하고 분해
조선글 이제부터 주도 지위 잃었네
에루화 두둥실 피눈물 흘리세
사라진 우리 문자 눈물로 영탄하세
에루화 어절시구 x같네 정말
마을마다 학교마다 줄을 지어 없어지니
에루화 두둥실 자치주 해산되고
우리말 모르는 령혼 잃은 조선족
(후렴)
에루화 두둥실 모두 다 버리고
동화되고 세뇌되여 한가정 건설하세
2022년 8월 23일, 도투바이 씀.
[도투바이 략력]
도투바이
청마협회 회원.
다년간 목구멍만 쑤시운 백수 생활 력임.
곧 한국으로 진출하는 해외로무송출일군.
잉여기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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