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에 사는 85후다. 요즘 대도시에 진출한 나같은 젋은이들은 참 고민이 많다. 

죽기살기로 외나무다리를 비집고 건너 대학 문턱을 넘어섰건만 졸업을 해도 취직하기 어렵고, 돈을 써가며 유학을 다녀와도 바다거북(海归)들이 산란기의 모래톱처럼 바글거리고, 천신만고로 직장에 들어가도 월급이 오르는 속도는 은행이 돈 찍어내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해마다 공기관에서 발표하는 사회평균월급 수치를 갉아먹는다. 

결혼을 하자니 집과 차가 없이는 장모님과 눈길 한 번 마주치기 어렵고, 대도시의 집 한 채는 웬만한 집안 적금과 수십년의 부동산 대출의 지게를 짊어져야 하며, 어렵사리 결혼을 했더니 계획출산이 선물해준 "4-2-1" 구조 즉 한 쌍의 부부가 4명의 노인 부양과 1명(최소)의 자녀 양육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거기다가 영화도 봐야지 쇼핑도 해야지 맛집 찾으랴 취미생활 지키랴 여행도 다녀오랴 게임하랴… 하고 싶은 것, 눈에 보이는 것도 많은데, 주위에는 늘쌍 누구는 몰디브 다녀왔소, 누구는 어디에 몇평 짜리 집을 사놨더니 집값이 왕창 뛰었소, 누구네 집에는 수입산 식품만 먹소, 누구네 애는 어느 국제학교에 다닌다느니 하는 소리들이 심심찮게 들려와, 그 상대적 상실감과 무력감에 허덕이게 한다.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이런 시대에 태어나고 이런 가정 이런 사회 속에서 이렇게 부대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생각들이 자꾸만 밀려드는 것을 떨쳐낼 수가 없다. 

부모님 세대는 대학을 나오면 곧바로 안정된 직장에 분배해 줬는데, 형제가 많아서 부모님 봉양도 부담이 덜했는데, 윗세대만 해도 내집 마련이 너무 쉬웠는데, 개혁개방 시기라 제대로 장사만 하면 목돈을 벌수 있었는데, 공기도 좋고 식품안전도 걱적 없고 물도 깨끗했는데, 왜 하필 우리가 사회무대에 등장할 때가 되니 모든게 이리도 힘들어진 걸까?

ⓒ박해성 그림

근데 과연 그럴까? 그게 사실일까? 실제로 얘기를 나누어 보면 부동한 나이, 부동한 세대마다 모두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즉 꼭 자기네 때에만 상황이 달라서 애먹었다는 식의 이야기다. 

학교를 예로 들면, 나는 우리가 졸업하고 나서야 다니던 고중에 체육관이 생겨서 누리지 못했다고 불만이었는데, 어떤 선배는 자기네가 졸업하고 나서야 새 청사가 세워졌다고, 어떤 후배는 자기네는 숙사에 에어콘이 설치되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졸업했다고, 또 몇 년 후배느 장학금 금액이 오르던 시기를 놓쳤다고 "불평"을 늘어 놓는다. 

우리의 초점은 언제나 자신한테 맞추어져 있다.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놓친 좋은 것들만 아쉬워하고 누린 좋은 것들은 쉽게 잊어버리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알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기적인 "정보 근시안"이자 자아 중심의 피해의식인 것이다. 

다시 보면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기성세대들, 즉 50후는 전쟁과 기아를 겪었고 60후는 가난과 동란을 겪었으며 70후는 사상과 경제적 혼란과 동요를 겪었다. 반면에 80후, 90후가 겪는 여러 어려움의 맞은 켠에는 상대적으로 풍요롭고 평화로운 성장기와 대학생 인원모집 확대와 중국경제의 고도성장과 해외출입의 자유와 인터넷 발달이 가져다준 편의를 누렸고 또 지금도 누리면서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일차적으로는 우리의 두 눈에 보이는 이 격변의 중국사회를 인식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무한하게 열려있는 듯한 가능성들과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듯한 "나"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집단적 초조함"이라는 시대적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이다. 

허나 조금만 더, 한 발만 뒤로 물러나 바라보면 "왜 하필 나"인 것이 아니라 "역시 나도"인 것이다. "시간"이라는 종적 척도로 보면, 이는 앞에서 살폈 듯이 부동한 세대마다 갖고 있었던 비슷한 생각이었고, "공간"이라는 횡적 잣대를 갖다 대도 역시 닮아있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가까운 한국과 일본이든 청년들의 취업난과 실업이 모두 문제로 되고 있으며 가계부채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지어 한국에서는 "헬조선"(헬>지옥)이나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암담한 미래를 전망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는 아직도 더 좋은 상황과 나은 내일을 기대해 볼 수 있는 사회와 나라에 있지 않는가.

2015년

21세기의 중국사회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혁명과 전쟁에서의 공훈으로 정치적 상승이 가능했던 건국시기가 아니여서 "출세"에 한계가 많다고, 계획경제 민족집거의 안정된 공동체 생활의 때가 이미 지나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중국진출 한국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고 외국살이 외화벌이가 옛날보다 돈값이 떨어졌다고, "왜 나만 갖고 이러냐"고 신세한탄만 하다가는 이 세대에게 주어진 기회들을 흘려보내 버리고 위아래 세대들과도 소통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이 되고 말 것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 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 그렇고 그래왔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항상 "하필이면" 과도세대인 것이다. 이걸 다시 뒤집어 보면 "나"는 과도세대가 아니라 최상의 현재를 사는 주인공이다. 내가 잘 살고 우리 세대로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생각과 마음 자세의 바로잡음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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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 글을 쓰고나서 한 후배로부터 뜨거운 밥 먹고 식은 소리 한다는 식의 평가를 받았었다. 그렇다. 그것 또한 다양한 생각과 부동한 삶을 살고있는 우리 세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현주소일지도 모르겠다. 단 분명한 것은 나의 이러한 고민이 실제 삶에서 오는 현실 그 자체이고, 이러한 고민을 나누고 있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다만 현실을 바로 마주해야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적었던 말들이었다. 다시 한번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린다. 

초판: 2017.05.01
교정: 2019.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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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떠돌면서 듣고 모으고 배우는, 이야기 "꾼"이 되고싶은. 연변, 북경을 거쳐 교토에서 고전과 씨름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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